전국 시내버스 10대 중 4대를 ‘저상버스’로 도입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이 공염불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교통약자법)’ 등 관련 법을 제정한 지 15년이 넘었지만,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은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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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상버스 목표치 낮췄는데도…목표 달성은 ‘요원’
20일 이데일리 취재를 종합하면 국토교통부는 2019년 12월 ‘제3차 국가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 변경안을 통해 전체 시내버스 중 저상버스 비율을 42%로 조정했다. 이는 당초 목표치(45%)보다 후퇴한 수치다. 저상버스는 차체가 낮아 계단 없이도 탈 수 있어 휠체어 장애인은 물론 노약자, 일반인에게도 편리하다.
국토부가 시내버스의 차령과 지방자치단체 재정여건 등을 고려해 올해 말 전국 저상버스 도입률 목표를 3%포인트 낮췄음에도 목표 달성은 요원하다. 국토부에 따르면 전국 저상버스 도입률은 작년 기준 28.8%로 올해 말 목표치에 13.2%포인트 뒤처진다. 이는 10년 전 내놓은 ‘제1차 국가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 저상버스 도입률(31.5%) 최종 목표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해외 선진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갈 길이 멀다. 영국은 저상버스나 장애인이 이용 가능한 버스가 2004년 52%에서 2017년 99%까지 확대됐다. 미국은 저상버스 도입률에 대한 수치가 없는데 1990년 미국장애인법(ADA)에 제정에 따라 이동 약자가 탑승 가능한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저상버스를 도입하지 않으면 장애인 차별이 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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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장애인권 운동가들은 장애인 이동권에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버스에 쇠사슬을 묶거나 선로에 내려가 지하철을 멈추게 하는 등 ‘나쁜 장애인’이 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송석호 정의당 용산구위원회 위원은 “2001년 장애인 노부부가 오이도역에서 리프트를 이용하다가 추락한 사건을 계기로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투쟁이 계속됐다”며 “20년 가까이 됐는데 여전히 장애인 이동권 개선에 대한 진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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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서도 예산은 찔끔…정부의 저상버스 도입 의지 ‘의문’
정부도 저상버스 도입의 취지를 인지하고 있다. 국토부가 발표한 교통약자 이동 편의 증진계획에서 ‘저상버스는 고령화 사회의 진입에 따른 고령자의 증가와 신체적으로 불편한 장애인의 사회활동 증가 등으로 이동 편의성 향상을 위해 확대 도입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어 ‘고령자와 장애인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이 편리하고 안전하게 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저상버스의 확대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문제는 예산이다. 저상버스 도입 취지는 알면서도 돈줄은 죄고 있다. 국토부의 제3차 교통약자 이동 편의 증진계획을 보면 작년 목표 예산은 964억원이었는데 실제 예산은 39% 줄어든 577억원을 집행했다. 올해 목표 예산은 1041억원이었지만, 실제 예산은 37% 줄어든 660억원에 그쳤다. 국토부 관계자는 “기획재정부로부터 예산 편성 기준과 지침을 받는데 그 기준에 맞추다 보니 적게 편성됐다”고 말했다.
작년 9월 기준 저상버스 도입률(59.6%)이 지자체 중 가장 높은 서울시도 예산 확보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서울시의 제3차 교통약자 편의증진계획을 보면 작년 목표 예산은 531억원, 실제 집행 예산은 331억원으로 38% 줄었다. 올해 목표 예산은 497억원, 실제 집행 예산은 292억원으로 41% 급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방이 서울보다 저상버스 도입률이 낮아 국토부에서 우선 배정했고, 국비 자체가 적게 편성됐다”며 “올해 예산은 작년 9월 여객법 시행령 개정으로 버스 운행기간이 11년에서 12년으로 늘어나면서 폐차하는 차량이 줄어 예산이 적게 책정했다”고 설명했다.
의식 개선, 배차 간격, 도로 인프라, 보행환경 개선 등도 뒷받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지혜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동권이라는 게 단순히 차량에서 타고 내리는 게 끝이 아니라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이동하는 것”이라며 “저상버스는 물론 콜택시 도입을 높이고, 보행환경을 좋게 만드는 등 장애인들의 이동에 도움이 되는 시스템을 정부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