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소현의 일상탈출)(17)기차만큼 싼 비행기

  • 등록 2006-11-10 오후 5:27:02

    수정 2006-11-10 오후 5:27:02

[이데일리 권소현기자] 바라나시의 한 PC방에 앉아 인터넷으로 몇 번 클릭했더니 뚝딱 비행기표가 예매됐다. 델리에서 뭄바이까지 가는 비행기가 3520루피, 비행기로 두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가 우리나라 돈으로 7만4000원 정도 하는 것이다.

이것도 비행기 타기 하루 전에 예매했기 때문에 비싸게 준 것이다. 인도 여행을 한창 준비할 때 알아봤던 가격은 1800루피. 그러니까 한달 전쯤 예매를 했다면 절반 가격에 끊을 수 있었던 것이다. 델리에서 뭄바이 가는 라즈따니 급행열차가 1500루피 정도 했으니까 기차가격 수준인 셈이다.

인도에도 저가항공사가 생기면서 항공요금이 경쟁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배낭여행자에게는 아주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인터넷에서 모든 스케쥴과 요금조회가 가능하고 예매도 할 수 있어 편리하고 커미션도 지불할 필요가 없다.

PC방에서 예매한지라 프린트도 못 하고 예약번호만 적었다. 바라나시에서 밤기차를 타고 다음날 아침에 델리에 도착해 국내선 공항으로 갔다. 에어데칸 부스로 가니 금방 비행기표를 내준다. 좌석번호도 없고 짐 검사도 간단하다.

공항 문이 열리자 마자 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인도인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한명씩 티켓을 끊고 나가 버스를 타고 비행기 앞까지 이동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인도인들이 마구 뛴다.

늘 느긋한 줄만 알았는데 이런 모습이 낯설다. 이들이 뛰는 이유는 보다 좋은 좌석을 맡기 위해서다. 지정좌석이 아니기 때문에 맡은 사람이 임자다.

비행기는 꽤 크다. 양쪽에 3좌석씩 있고 비즈니스클래스, 퍼스트 클래스는 아예 없다.

비행기에 오르니 이미 창가쪽 자리는 거의 찼다. 중간쯤 창가 자리가 하나 비어서 얼른 앉았다. 옆자리에 아이 둘을 데리고 탄 인도 여인이 앉았다.

옆에 앉은 아이가 계속 칭얼댄다. 결국 인도 여자가 기어이 자리를 바꿔주면 안되겠냐고 묻는다. 아이가 창가쪽에 앉아서 창문 밖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순순히 일어나 복도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내식도 없다. 좌석 앞에 메뉴가 있다. 샌드위치는 4루피, 음료는 10루피.. 먹고 싶은 음식을 돈 내고 먹는 시스템이다.

아이는 창가쪽으로 옮겨 앉았는데도 계속 칭얼댄다. 이제는 아예 울어댄다. 뒤에 앉은 아주머니가 사탕을 줬는데도 뭐가 불만인지 시끄럽게 운다.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공항에서부터 너무 세게 틀어놓은 에어콘 바람에 감기기운이 있었는데 비행기 안은 더 춥다. 온 몸이 으슬으슬 추운게 소름까지 돋았다. 목도 아파오기 시작한다.

비행기는 두시간여만에 뭄바이 공항에 도착했다. 결국 비행기에서 감기에 걸렸고 일주일동안 감기로 고생했다.

남부 인도의 날씨도 북부와 다르지 않게 습하고 덥다. 그런데도 이놈의 감기는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뭄바이에서 고아까지 가는 밤기차 안에서는 두루마리 휴지 한롤을 다 쓸 정도로 밤새 코푸느라 정신이 없었다.

감기약은 아예 챙겨오지도 않았고 인도에서 사려니 좀 찝찝하다. 자연치유력을 믿으며 버텼다.

절대 나을 것 같지 않던 감기는 남부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뭄바이에서 다시 델리로 오기 위해 탔던 기차 안에서 싹 나았다.

이번에도 비행기를 탈까 하다가 기차를 탔다. 어둑해졌을 때 공항에 떨어지는 것보다는 기차에서 하루밤을 보내고 아침에 시내 한 가운데에 있는 기차역에 도착하는 것이 안전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17시간만에 델리까지 가는 라즈따니 급행을 탔다. 급행인데다 비싸서 그런지 식사도 준다. 타자마자 간식을 주고는 따뜻한 물을 아예 보온병에 담아서 준다. 짜이를 만들어 먹으라고 홍차 티백과 크림, 설탕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두꺼운 담요와 깨끗한 시트를 나눠줬다.

따뜻한 차를 몇잔 마시고 두꺼운 담요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잤다. 밥 먹으라고 깨울때마다 일어나서 밥 먹고 따뜻한 차 한잔씩 마셨다. 그리고 또 잤다.

그렇게 17시간을 보냈더니 델리에 도착할 때쯤 감기가 거의 달아났다.

그래서 비행기 여행 보다는 기차 여행이 좋았다. 대부분의 시간을 자리에 앉아있어야 하는 비행기에 비해 기차는 좀 더 자유롭다. 그래서 인도인들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콜카타에서 바라나시로 가는 기차에서였다. 우리 일행은 세명이라 상층, 중층, 하층 이렇게 한쪽 칸을 모두 차지했다. 1층에서 자다가 발에 뭔가 걸려 깼는데 여자 두명이 내 발자락 끝쪽에 걸터앉아 있는 것이었다. 시트를 절반이나 잡아먹고 말이다. 발 끝으로 쿡쿡 찔러서 시트를 좀 올리고 다시 잠을 청했다.

얼마간 갔을까, 잠을 자다가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떴더니 이번엔 언제 바뀌었는지 아저씨 두명이 앉아있는 것이다. 게다가 난데없이 카드판이 벌어졌다. `운신의 폭`이 무척 좁아졌다. 뒤척이다가 발로 건드려도 이들은 꿈쩍을 안 한다.

한 4명이서 짐 박스 위에 하얀 수건을 깔고 카드에 열중하고 있고 그 주위에 구경하는 사람들만 6~7명은 되는듯 하다. 잠깐 누웠다가 시끄러운 소리에 다시 일어나보니 이젠 아예 10명 정도가 빙 둘러서서 카드놀이에 몰입중이다.

다른 장소는 다 한가한데 하필 왜 이 구역에 와서 카드놀이람. 잠은 포기하고 책을 꺼내들어 읽기 시작했다.

갑자기 바로 윗층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일행중 한명이었다. 나를 가르키며 "지금 내 친구가 무척 아프거든요. 카드 놀이는 좋다구요. 그렇지만 좀 조용히 해주시겠어요??"

과자 먹으면서 책을 보다가 난데없이 환자가 돼 버린 나에게 시선이 쏠렸다. 어쩌리..그냥 싱긋 웃었다. 아저씨들은 서로 두번째 손가락을 입에 갖다대고 '쉿' 하는 포즈를 취한다. 한결 조용해졌다.

나는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고 기차는 약한 흔들림을 동반하며 바라나시로 향하고 있었다. 이 착한 아저씨들은 바라나시에 도착할때까지 그렇게 조용히 카드놀이를 했다.

이들을 보며 다음에도 비행기값이 기차값보다 싸다고 해도 기차를 타리라 마음먹었다. 그 때는 카드놀이에도 한번 껴서 놀아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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