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Mr.바른말` 박병원 차관

"일을 이뤘으면 그 자체가 큰 보람"
공성신퇴(功成身退).."지금이 떠날 때"
  • 등록 2007-02-07 오후 5:20:20

    수정 2007-02-07 오후 5:20:20

[이데일리 이정훈기자] 소위 `엘리트`라고 자부하는 재경부 공무원들로부터 `천재`, `만능`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고 심지어 "그 분이 장관이 되지 못한다면 뭔가 시스템이 잘못됐다는 것"이라는 말을 심심찮게 들어왔던 관료가 있다.

▲ 박병원 재경부 제1차관

우리금융 회장직을 위해 새로운 도전에 나선 박병원 재정경제부 제1차관이다.

"차관보에서 차관으로 승진하면서 해야할 일은 엄청나게 늘었는데 첫 달 월급을 보니 20만원 정도 올랐더라. 장관도 별 거 있겠느냐"며 장관직에 연연하지 않는다던 그의 말처럼 끝내 장관직에 오르지 못하고 과천을 떠났다.

어떤 재경부 공무원은 "이제 재경부에서 누가 바른 말을 할지.."라며 걱정부터 한다. 이 공무원은 "박 차관은 누구 앞에서든지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하는 몇 안되는 우리나라 관료 중 한 분"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사실 박 차관은 이런 면 때문에 여기저기서 미움도 많이 사고 청와대나 열린우리당에게 `찍힌 것`도 여러 번이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개시를 앞두고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을 밝히는데 `총대`를 멨고, 소수 공제자 추가공제 폐지나 민간 분양원가 공개 반대 등을 공개적으로 밝혀 온갖 비난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8.31 부동산대책`을 만들 당시에도 다들 투기수요 억제를 위해 종합부동산세를 강화하고 양도소득세를 중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때도 그는 홀로 "공급 확대만이 해법"이라며 "당정협의에서 이런 내 주장은 먹히지도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에 앞서 지난 1999년부터 2001년까지 발언권이 적은 국가출신 이사들이 그냥 쉬다 가는 코스였던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에서 불필요한 예산을 삭감해 관계자들을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 성격이다보니 이번 퇴임 결정과정에서도 그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박 차관은 "기자들도, 공무원들도 나에게 사표 썼느냐며 확인 전화를 자꾸 하는데, 그런 걸 보면 내가 나가야할 상황이 된 것 같더라"며 "차관회의에서도 내가 제일 연장자고, 벌써 1년 8개월이나 차관을 했으니 더 있다가는 후배들에게 욕만 듣는다"고 했다.

퇴임의 변을 통해서도 "대학 시절부터 가슴에 공성신퇴(功成身退)라는 말을 가슴에 담아두고 살아왔다. 하고자 하는 일을 이뤘으면 그 자체가 큰 보람인 만큼 물러서야 하는데 지금이 그 때인 것 같다"고 밝혔다.

이렇게 박 차관은 떠났지만, 그를 둘러싼 얘기들은 후배들의 입과 입을 돌아 관가의 많은 전설 가운데 하나로 남을 것 같다.

사실 박 차관은 경기고-서울대-경제기획원 등 판에 박힌 엘리트 경제관료 코스를 걸어왔지만, 재경부 후배들은 물론이고 비고시 출신 직원들로부터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와 신망을 받아왔다.

무엇보다 그는 어떤 일이든지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암기하는데도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그가 원래 전공인 거시경제 정책과 예산업무 외에도 금융과 세제, 부동산 등에서 엄청난 내공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이런 점 때문에 본의 아니게 기획예산처와 산업자원부, 건설교통부 장관, 국무조정실장 등 인사에서 후보로 손꼽혀왔다.

재경부 내에서도 논리적이고 말 잘하기로 소문 나 라디오 인터뷰는 물론이고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도 단골 손님으로 등장해 항상 `당하는 역`을 도맡기도 했다.

이같은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또한 노력파다.

책 벌레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많은 책을 두루 섭렵해 전문지식을 쌓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특히 어학분야에서는 어떤 언어에 관심이 생기면 무섭게 파고들어 정통하고야 마는 모습을 보였다.

대학시절 사서삼경을 한문 원서로 탐독했고,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이사 시절, 동구권 지원 업무를 맡으면서 러시아어를 배워 귀국 직전 퇴임사를 러시아어로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화들. 대학 동창인 이계안 의원도 박 차관의 한문실력에는 혀를 내둘렀다는 후문이다.
 
그는 영어를 비롯해 일어, 프랑스어, 독일어, 중국어,러시아어, 스페인어,이탈리어어등 8개국 언어에 능통하다.

실제 얼마전 `차관직을 그만두면 어디로 가고 싶으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지체없이 "내 적성상 연구소 소장이 가장 좋겠다"고 했다. 책 많이 읽고 많은 사람들과 토론할 수 있는 자리라 오래전부터 욕심이 있었단다.

그러나 그의 관심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문학과 예술 방면에도 관심과 애정을 쏟았고, 등산과 여행에 빠지기도 했다.

시 낭송을 좋아해 사적인 자리에서는 좋은 시를 적어와 소개하기도 하고 식물학 관련 책을 직접 쓰기도 했다. 얼마전까지는 매주 백두대간을 이루는 산들을 타기도 했고, 낯선 곳을 찾아 산자락과 꽃, 나무 등을 사진으로 찍는 일에도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이런저런 곳을 다니는 것도 좋아해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유홍준 문화재청장에게 "내가 다녀본 곳들을 중심으로 걸어서 전(全) 국토를 돌아볼 수 있는 길 지도를 만들어 보자"며 제안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와인의 계보를 줄줄이 꿰고 있는 소믈리에급 애호가이기도 하다.
 
털털한 낭만파 천재라고나 할까.

그러나 실력과 관록, 그의 천재성에 비해 관운은 잘 따라주지 않고 있다. 고등학교 동기동창인 권오규 부총리겸 재경부 장관이 큰 힘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지만 숱하게 물망에 오른 장관자리는 아직 한번도 오르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본인과 가족들이 그토록 원했던 것으로 알려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대표부 대사자리에서도 고배를 마셔야했다.
 
하마평이 오르내릴 때마다 자기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 곧은 성격이 번번이 관운의 걸림돌로 작용하곤 했다.
 
후배공무원들은 `Mr.바른말` 박 차관의 사퇴를 못내 아쉬워한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더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버리지 &50527;고 있다. 박 차관이 어떤 활동을 하게 될 지 자못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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