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원, 기저귀랑 물티슈 사면 안남아요”

  • 등록 2009-06-17 오후 8:36:12

    수정 2009-06-17 오후 8:36:12

[경향닷컴 제공] 버블세븐 부동산 시장이 꿈틀거린다. 주가도 최저점 대비 30% 이상 올랐다. 대기업들의 실적도 예상 외로 좋다. 경제위기가 끝나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서민들은 헷갈린다. 살림살이는 갈수록 빠듯해지고 버티기도 힘들다. 대기업 위주의 정책에서 소외된 중소기업들과 비정규직, 구직자들에게 체감 경기는 여전히 한겨울이다. 재정 조기집행 약발도 떨어지는 하반기엔 서민경제가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의 낙관론 속에서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서민경제의 현실을 점검한다.

중소 제약업체에 다니는 유모씨는 지난 4월 이후 월급을 만져보지 못하고 있다. 회사가 폐업한 탓이다.

많지 않은 액수지만 2003년 입사 첫 급여로 105만원을 받아들고 가슴 뿌듯했던 기억은 이미 저편이다. 마지막으로 받은 급여는 상여금까지 150만원. 그는 “하루 2교대로 몸은 힘들지만 보람을 느끼며 일했는데 일자리도 없어지고, 이제는 저축해놓은 돈마저 야금야금 다 써버려 앞날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김모씨(39)는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임금이 삭감돼 월급이 100만원밖에 안된다”며 “조금이라도 벌기 위해 주말엔 부업으로 이삿짐센터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의 실적 호전, 주가 및 아파트값 상승에 정부의 예산 조기집행으로 시중에는 돈이 넘쳐나는 것 같지만 서민들의 주름살은 좀처럼 펴지지 않고 있다. 경기 침체로 일자리 지키는 것조차 쉽지 않고, 직장이 있더라도 월급 봉투는 얇아졌다. 여기에 장바구니 물가까지 치솟으면서 피부로 느끼는 생활은 훨씬 팍팍해졌다. 경기 침체로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위기 계층’이 올해에만 98만명이 새로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오는 23일에는 5만원권 신권이 나온다. 서민들에게 5만원은 어느 정도 크기일까. 17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던 주부 김모씨(33)는 “5만원으로는 두살배기 아기의 기저귀와 물티슈 사면 끝”이라며 “지난해보다 물가가 20% 이상은 오른 것 같아 장보기가 겁난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는 조금 좋아지고 있다는데 ‘가진 자’들의 얘기”라며 “우리 같은 서민들은 하루하루가 정말 고단하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최근 남편의 월급이 20% 깎였다. 그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라도 다시 일을 할까하지만 일자리 얻기도 쉽지 않은 형편”이라며 한숨지었다.

자취생 박모씨(28)에게 5만원은 ‘하루 데이트’냐, ‘일주일 식비’냐를 선택해야 하는 금액이다.

5만원을 들고 여자친구와 함께 길을 나서면 영화 한 편을 보고 포켓볼 혹은 오락을 즐긴 뒤 저녁밥을 먹고나면 달랑 몇 천원 남는다. 식비로 선택한다 해도 하루에 1만원이 채 안되는 꼴이다. 박씨는 “전에는 집 앞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이나 라면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사먹었지만, 이제는 조금 멀더라도 대형마트까지 가서 몇백원씩이나마 아끼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른바 ‘MB물가지수’를 설정하며 서민들에게 밀접한 우유, 라면, 삼겹살 등 52개 생필품의 가격을 집중 관리, 물가를 잡겠다고 했지만 체감효과는 거의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부터 1년간 MB물가지수 품목의 상승률은 5.7%로 소비자물가지수(4.9%)는 물론 체감 물가를 나타내는 생활물가지수(5.2%)보다도 높았다. 소득이 줄어든 서민들에겐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장바구니 물가는 올랐지만 서민 지갑은 더욱 얇아졌다. 경기 침체로 대부분의 회사들이 임금을 동결하거나 삭감했기 때문이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회사원 신모씨(31)는 “술 한 잔에 택시비를 생각하면 5만원 가지고는 턱도 없다”며 “다들 부담스러워해 회식을 하더라도 소주 혹은 막걸리로 끝내고, 지하철이 끊기기 전에 귀가한다”고 말했다.

6월부터 서울·인천지역 택시비는 500원 더 오른 상태다. 여기에 국제 유가, 곡물가 등 원자재 값이 상승세인 데다 전기, 가스 등 공공서비스 요금까지 들썩이고 있어 서민들의 시름은 한층 더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정의실천연합 고계현 실장은 “서민경제는 상대적으로 취약한데도 정책에서 오히려 소외되고 있다”며 “직접적인 대책과 지원은 물론 고용 보장으로 소비와 기업 활동의 선순환을 이루는 타깃별 지원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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