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희의 톡톡아트]"나는 사랑한다! 고로 납치한다!"

신들의 동성애: 납치의 로망
  • 등록 2012-04-19 오후 4:43:18

    수정 2012-04-19 오후 4:43:18

▲ 그리스로마 조각, 가뉘메데스의 납치
[이데일리 유경희 칼럼니스트] 그리스 신화에는 많은 동성애 커플이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미술사에 자주 등장하는 커플은 제우스와 가뉘메데스다. 특히 제우스가 가뉘메데스를 납치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그것도 독수리로 변신해서! 화가들도 이런 테마에 초절정 압도됐던 것 같다.

가뉘메네스(그리스어: Γανυμήδης)는 트로이왕의 아들로, 인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모를 가졌다. 미인이라면 남녀를 가리지 않는 제우스가 가만둘 리 없지 않은가? 변신의 귀재인 제우스는 독수리로 변신하여 가뉘메데스를 납치했고, 천상으로 데려와 술을 따르는 시종으로 삼았다.
▲ 미켈란젤로, 가뉘메데스의 납치, 1532~1533년/미켈란젤로, 가뉘메데스의 납치, 1532년경
일설에 따르면, 미노스왕이 가뉘메데스를 납치했다고도 전해지는데, 이는 크레타 섬에서 소년에 대한 동성애 전통 및 납치풍습과 관련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먼저 가뉘메데스를 납치했다고도 한다. 그런데 제우스가 에오스 여신에게서 그를 빼앗아왔다는 것이다. 게다가 헤라는 제우스의 이런 행동이 자신과 자신의 딸인 헤베(Hebe)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때까지 신들의 술잔을 따르는 것은 청춘의 여신인 헤베의 몫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헤라의 투정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제우스는 가뉘메데스의 모습을 물병자리로 만들었다. 하늘에 새겨 넣을 정도로 그를 아끼고 사랑했던 것! 물론 물병자리 근처에는 독수리자리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가뉘메데스는 목성의 위성 이름이기도 하다. 목성은 바로 주피터, 제우스의 로마식 명칭이다. 목성 주변에는 이오, 에우로파, 메티스 등 제우스의 연인들의 이름이 붙어있다. 가뉘메데스는 제우스의 유일한 남자 연인으로서 이름을 올려놓고 있는 것이다.

다시 제우스와 가뉘메데스의 사랑으로 돌아가보자. 그들의 사랑은 오늘날 동성애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는 우리조차 경악할 노릇으로 보인다. 왜냐면 바로 어린아이와 성인남성의 사랑이니까! 바로 '페도필리아(pedophilia: 소아애 혹은 유아애)'인 것이다. 성인남자들끼리의 사랑이야 성인들이니 뭐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자유로 인정해준다 치자!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어린애와의 그것은 동성애 중에서도 더욱 금기시된 것이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시대에서는 오히려 성인남성들간의 동성애가 금지되어 있었다.
▲ 코레지오, 가뉘메데스 납치, 1531/루벤스, 가뉘메데의 납치, 1611년/로마에서  활동한 무명의 토스카나 화가가 그린 '가뉘메데스의 납치, 1615-1620년 경(왼쪽부터)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는 성인남성과 어린 남자아이의 동성애를 권장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 관계는 그리스 도시국가를 이끌어 갈 인재를 양성하는 스폰서쉽이었던 것이다. 에라스테스와 에로메노스는 그들의 관계를 정의하는 그리스식 용어이다. 나이든 남성을 `에라스테스(erastes)`라고 부르고, 연하의 어린 남자를 `에로메노스(eromenos)`라고 부른다. 에라스테스는 스무살에서 마흔살 가량으로 결혼으로 정착하지 않은 자여야 한다. 반드시 부와 경제력, 무엇보다 연설과 철학적 담론을 가르칠 만큼 풍부한 학식과 교양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아이가 에로메노스로 발탁되는가? 우선 사춘기에 도달한 열 두 세 살에서 스무 살 사이의 소년이어야 한다. 물론 아름답고 튼튼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용기와 활력, 인내심과 도덕성, 절제와 조화와 같은 영혼의 아름다움이 더욱 중요하게 평가됐다.

에라스테스가 적합한 에로메노스를 점찍었다면? 제우스가 가뉘메데스에게 그랬듯이, 이제는 납치해와야 한다. 우리 옛말의 `보쌈`이라는 말의 뉘앙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시대의 납치는 묘한 쾌감을 주는 로망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동성애 풍습이 국가적으로 인정됐던 크레타에서 소년의 납치 풍습은 의례적인 일이었다. 크레타에서 성인은 자신이 사랑하는 소년의 가족에게 소년을 `납치`할 의사를 밝히고 동의를 얻어 실행에 옮긴다. 이것이 바로 일종의 밀월여행이며 도시국가의 남성이 되기 위한 입문의식이다.

그리고 성인남성은 아마 소년의 부모에게 무언가 보상을 해야했을 것이다. 우리가 결혼 후 양가에 예단을 보내는 것처럼 말이다. 제우스 역시 가뉘메데스의 부모에게 그럴듯한 선물을 보낸다. 헤르메스를 시켜 트로이왕에게 찾아가 헤파이스토스의 작품인 황금의 포도나무와 두 마리의 명마를 주었던 것! 그게 전부가 아니다. 아들이 신들의 곁에서 불사의 몸이 될 것이며, 노년의 고통도 느끼지 못할 것이라 안심시켜 줬다. 그런 절차를 거쳐 가뉘메데스는 손에 황금잔을 들고 항상 웃으며 올림푸스 신들 곁에서 넥타르를 따르게 되었던 것이다.

▲ 코레지오, 가뉘메데스 납치, 1531
예술가들은 제우스가 독수리로 변신하여 가뉘메데스를 납치하는 테마를 아주 세심하고 면밀하게 다루었다. 특히 그리스 예술을 모토로 삼았던 르네상스 시대에 이런 테마는 더욱 매혹적이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코레지오의 그림만큼 묘한 쾌감을 주는 낭만적인 그림도 드물다. 누군가 "저 정도라면 한번 납치당해도 좋아"라고 말할 것만 같다! 또 동성애자였던 미켈란젤로의 드로잉은 얼마나 장엄하고 드라마틱한가? 아마 동성애자로서 사랑하는 대상을 생각하는 자신의 심경이 그대로 녹아있어서 더욱 절절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그림뿐 아니라 자신의 시를 통해 동성애인에게 애달픈 사랑의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아마 미켈란젤로가 그랬듯이, 에라스테스들은 자기 맘만큼 뜻대로 다가와주지 않는 에로메노스에게 지독한 갈증을 느꼈을 것이다. 이런 그들의 심경이 그대로 여러 그림들에 투사된다. 그러니까 독수리가 날개와 발갈퀴로 소년을 힘껏 움켜쥐고 있는 모습, 소년을 어떡해든 놓아주지 않으려는 독수리(성인남성)의 안간힘이 그것이다. 그래서 그런 그림은 한없이 아름답고 극도로 화려하기는 하나, 맥없이 애처롭기도 한 것이다.

▲ 렘브란트, 가뉘메데스 납치, 1635년/렘브란트, 가뉘메데의 납치 세부 (위쪽부터)
그런데 웬걸! 바로크 미술의 대가 렘브란트가 이상한 짓을 했다. 그리스 동성애를 비웃기라도 하듯 가뉘메데스를 아주 불쌍한 아기로 그려놓은 것이다. 그것도 납치에 놀라 오줌을 지리는(?) 울상 짓는 아기로!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망연자실해진다. 빨리 구해오고 싶어진다. 모성애적 측은지심을 발동하게 만든 것이다. 이 그림은 그리스 신화 자체보다는 <변신이야기>의 기독교적 번안인 <도덕화된 오비디우스>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한다. 개신교 신자답게 렘브란트는 독수리에 의해 납치당한 가뉘메데스를 그리스도에 의한 인간영혼의 포획을 의미하고자 했던 것일까?! 그렇데 본다면 가뉘메데스가 울부짖는 아기의 모습으로 변형된 사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진정으로 믿는 자는 엄마 잃은 아기처럼 그리스도를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렘브란트의 기지는 정말 압권이다. 천재는 역시 천재다!  
▲유 경 희(미술평론가, 유경희예술처방연구소 대표)
홍익대 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하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시각예술과 정신분석학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수년간 미술잡지 기자와 큐레이터로 일했고, 뉴욕대에서 예술행정 전문가과정을 수료하였다. 저서로는 [예술가의 탄생], [테마가 있는 미술여행] 등이 있다. 현재 대학원 최고위과정과 대기업, 공기업 등에서 하이브리드적인 미술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집중'
  • 사실은 인형?
  • 왕 무시~
  • 박결, 손 무슨 일?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