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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사모펀드 은밀한 거래’…시한폭탄 위의 개미들

상장사 사모펀드 투자손실에 소액주주 '부글부글'
금융상품 투자현황 공개 제각각…투자금 사용내역 공시도 미흡
"일정액 이상 펀드이름 공개하고 자금 감독 강화해야"
  • 등록 2020-11-16 오전 11:00:30

    수정 2020-11-17 오전 11:04:42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상장사가 소액주주로부터 모집한 투자금을 당초 약속과 다르게 손실 발생 가능성이 큰 고위험 금융 상품에 투자했다. 이 사실은 주주에게 알리지 않았다.

코스닥 상장 바이오 기업인 헬릭스미스(084990)의 부실 사모펀드 투자 사태의 문제점은 크게 이 둘로 요약된다.

헬릭스미스 뿐만 아니다. 올해 5000억원대 환매(투자금 환급)가 중단된 옵티머스자산운용 사모펀드에 오뚜기(007310)·넥센(005720) 등 59개 상장사가 많게는 100억원 넘는 회삿돈을 투자한 사실도 뒤늦게 공개됐다.

기업들은 “우리도 사모펀드 사기 사건의 피해자”라고 항변한다.

(그래픽= 이미나 기자)
헬릭스미스는 “문제가 된 팝펀딩 사모펀드는 혁신 금융 상품이라고 추천받아 가입한 상품”이라며 “우리도 위험성을 모른 채 투자한 펀드 사기 피해자”라고 밝혔다. 또 “회사가 펀드 투자 사실을 숨겼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며 이번 유상 증자를 위한 증권 신고서에서 해당 세부 내역을 모두 공개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소액주주 입장은 다르다. 주주들이 몰랐던 위험 상품 투자로 회사가 손실을 보며 기업 가치와 주가가 하락하게 됐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상장사 금융상품 투자내역 공시 제각각

그래픽=이미나 기자
문제는 이처럼 논란이 불거지기 전까지 기업의 비밀을 밖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해야 하는 공시 제도 등은 전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는 기존 제도가 상장회사의 금융 상품 투자 내역 공개를 기업의 자율에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상장사에 적용되는 국제회계기준은 회사가 투자한 금융 상품(금융 자산)을 단기 투자 차익 목적의 상품 등 세 종류로 구분해 유형별 시가 평가액과 평가 방법, 위험성 등을 재무제표에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제시하는 기업 공시 서식 작성 기준도 투자 상품의 구체적인 내역을 공개할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회계기준원 관계자는 “현행 국제회계기준은 기업의 금융 자산 현황을 어떻게 표시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형식을 제시하지 않고 회사가 자율적으로 판단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부각해서 나타내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상장사마다 관련 공시는 제각각이다.

지난해 연구·개발(R&D) 비용 조달을 목적으로 증권사 등을 상대로 1000억원 규모 전환사채를 발행한 코스닥 상장 바이오 기업인 파멥신(208340)은 현재 288억원 규모 사모펀드 투자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투자 상품의 세부 명세는 공개하지 않았다.

헬릭스미스도 금감원 지적에 따라 투자 세부 내역을 공시하기 전까지 재무제표에 상품 유형별 자산 보유액만 기재해 왔다. 올해 옵티머스운용 펀드에 자회사에 함께 400억원을 투자했다가 물린 에이치엘비(028300)도 지분증권·채무증권·단기 금융상품 등 상품 종류별로 총액만 공시하고 있다.

통상 신약 개발을 위해 주주 등으로부터 투자금을 조달하는 바이오 기업은 확보한 자금을 연구·개발 등에 쓰기 전까지 금융 상품 등에 투자해 굴리는 사례가 많다. 그만큼 투자금 운용의 관리·감독 필요성이 크지만 현실은 딴 판인 셈이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사모펀드는 상장사의 회계 감사인 등 외부에서 투자 자산의 적정 가치를 알기 어려운 한계도 있다”며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최소한 투자액이 일정 규모 이상인 사모펀드는 펀드 이름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등 공시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주가 낸 돈 사용내역 공시도 미흡

기업이 소액주주 등으로부터 조달한 투자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상장사가 주주의 돈을 엉뚱한 데 쓰지 못하게 하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행 규정상 상장사가 주식·채권 등을 10억원어치 이상 발행해 일반 투자자 50명 이상을 상대로 팔려면 의무적으로 증권 신고서를 작성해 금융위원회 위탁 기관인 금감원 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 신고 서류에 조달한 자금을 어디에 쓸지 구체적인 사용 목적과 계획도 담아야 한다.

금융 당국은 국회 지적에 따라 지난해 말부터 상장사의 정기 보고서에 투자금 조달액 사용 내역 등을 공시하도록 규정을 일부 강화했다. 그러나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금감원이 올해 상반기 기업 2402곳(비상장사 356곳 포함)이 제출한 사업 보고서의 자금 조달 및 사용액 기재 적정 여부 등 7개 항목을 점검한 결과, 46.3%(1114곳)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회계사는 “기업이 소액주주들이 낸 쌈짓돈을 사용 목적에 맞게 투명하게 쓰도록 감시 및 관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기존 제도를 손보는 것에 부정적인 기류다.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공시 업무 부담만 커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금도 기업이 공모로 조달한 자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정기 보고서에 공시하도록 돼 있다”면서 “회사별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투자 상품의 상세 내역을 공시하라고 서식을 정해서 강제하는 것은 기업의 자율성 등을 고려할 때 과도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지홍 뉴욕주립대 한국캠퍼스 경영학과장(교수·전 금감원 회계 전문심의위원)은 “기업의 재무제표는 기본적으로 회사가 아니라 주주와 채권자 등 투자자를 위해 공시하는 것”이라며 “현재 회계기준에 구체적인 규정이 없으니 공시 책임도 없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투자자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기업이 판단해서 알려주라는 국제회계기준의 정신에 심각하게 위배되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규제 기관이 투자자 관점에서 재무제표가 적절하게 작성됐는지 따져보고 문제가 있다면 제재해야 맞는다”고 덧붙였다.

(그래픽=이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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