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컴 경영진의 이전투구

  • 등록 2003-02-17 오후 6:16:40

    수정 2003-02-17 오후 6:16:40

[edaily 정태선기자] "국민기업" 한글과 컴퓨터(한컴)가 심각한 내분을 겪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이사회에서 김근 사장을 해임한 후 김사장과 등기이사들이 서로 비난을 퍼붓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에 먹힐 위기에 처했던 한컴과 "아래아 한글"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한컴 주식을 샀던 투자자, 국민들은 내부 알력을 지켜보면서 착잡하기만 합니다. 이데일리 산업부 정태선 기자가 갈팡질팡 헤매고 있는 한컴 사태를 짚어봤습니다. 취재와 기사작성으로 피곤한 한주를 보내고, 여유를 즐기던 2주전 토요일 오후, 한건의 보도자료가 이메일로 날아들었습니다. 한컴의 김근 사장이 해임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느닷없는 소식에 황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김사장은 기자들과 만나 한컴의 영업망과 신제품 개발 계획에 대해 열을 올리며 설명했고, 그 다음주에는 회사 비전을 알리기 위한 기자간담회를 앞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회사가 밝힌 이유는 "리더십 부재와 경영실적 부진"이었습니다. 보통 경영자가 물러날 때 상투적으로 "일신상의 이유"등을 이유로 대는 것을 감안하면 다소 원색적이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한컴 경영진 교체에 대한 속사정을 알기 위해 일요일까지 취재에 매달렸지만,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별로 없었습니다. 예상대로 월요일 아침, 김사장은 성명서를 냈습니다. 이사회 결의가 법적으로 정당성이 없을 뿐 아니라 자신의 직인도 위조된 것이라는 주장이었죠. 물론 사장 해임을 결정한 류한웅 이사를 비롯한 김진 이사(CFO), 최승돈 전무(CTO)도 이제 지지 않고 반격을 시작했습니다. 이사회의 결정은 유효하며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며 포문을 열었습니다. 이 싸움에 한컴 노조도 뛰어들었습니다. 새로운 대안이 생길 때까지 김근 사장을 대표이사로 인정하고,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물어 김근 사장을 제외한 현 이사진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죠. 1년 동안 한컴을 운영해 온 김근 사장의 경영책임을 물어야한다면 현 이사진도 마땅히 원죄가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지금도 이 혼란스런 공방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컴 내분이 표면화 된 이유에 대해 누구도 딱 떨어지는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컴은 지난해 순손실 133억원을 냈지만, 전년 416억원 적자에 비하면 손실폭이 68% 개선됐습니다. 경상손실폭도 68% 줄어든 138억원으로 나타났습니다. 매출이 2250억원으로 31% 감소했지만 불법소프트웨어 단속이 없었고 경기가 좋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나름대로 선방했다고 할 수 있죠. 김사장의 경영성적을 매기기에는 좀 이른감이 있습니다. 리더쉽의 부재라는 잣대도 주관적인 판단이기 때문에 속시원한 대답이 돼 주진 못합니다. 회사측은 "내부 속사정을 외부에 알리고 싶지 않고, 이사회가 특별한 사유가 없더라도 대표이사를 해임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해임 이유를 묻는 질문을 피하고 있습니다. 지금 단계에서 설득력있는 설명은 회사 경영에 대한 이사진의 의견대립이 감정싸움으로 번지면서 돌이킬 수 없는 수준까지 다다랐다는 것입니다. 김사장을 포함한 네명의 이사들이 심각하게 대립해 왔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이야기들을 한컴의 핵심 관계자들은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습니다. 한컴 관계자에 따르면 취임 이후 영업망 정비에 특히 힘을 기울였던 김사장은 영업비리와 연루된 일부 직원을 해임하고, 중간관리자의 자진사퇴를 권고했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 재무담당 이사는 자신과 상의없이 일처리를 한 김사장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얘기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김사장은 또 신규사업인 "넷박스" 추진과 관련해 견해가 다른 모이사와도 대립각을 세웠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신제품을 개발하면서 김사장이 창단멤버들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였다는 점이 모이사와 서먹한 관계를 만들었다는 주변의 이야기도 들렸습니다. 이들간 관계가 삐긋거릴 때마다 사외이사가 이사회에서 의견조율 역할을 맡았었는데, 이번에 결국 세명의 이사들이 대표이사 해임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렸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사회에서 표면적으로 내세운 이유와는 다른, 즉 서로간의 의견대립으로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것이 더 큰 이유라는 것이죠. 이같은 해석이 사실인지 아닌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한두가지 사례만 가지고 이번 한컴 경영권 분쟁 원인을 풀이하기에는 모자라는 감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컴 속사정을 알만한 사람들은 이같은 주장에 더 무게를 싣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한컴이 어떻게 해서 기사회생했는지를 잘 알고 있는 현 경영진이 내부알력으로 한컴의 대내외 신뢰도를 이렇게까지 떨어뜨려도 되는 무분별한 행위를 해도 될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투자자들은 속만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분쟁의 핵심인 네 사람은 한컴의 지분을 하나도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자존심 대결을 벌이는 사이 한컴의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 투자자 뿐만이 아닙니다. 회사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야 할 직원들도 맥이 풀려 일손이 잡히지 않는 모습입니다. 이사진이 원했던 것은 이런 모습일까요. 도대체 한컴의 분쟁은 어디까지 흘러갈까요. 어떻게 해결돼야 할까요. 김사장은 명예회복과 함께 뜻을 모아준 직원들과 한컴을 살려내겠다고 버티고 있고, 이사진은 김사장과는 관계없이 회사를 경영할 것이라고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법적으로 시비를 가리는 것은 정말 지루한 시간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정기주총에서 표대결을 한다는 것도 5% 이상의 지분을 소유한 대주주가 없는 한컴의 입장에선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컴 노조가 중재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대표이사 선임에 대해 좌지우지 하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한컴은 대주주나 오너 경영인이 없는 기업의 한계를 보여주는 듯 합니다. 한컴오피스의 영업에 실패한 이찬진 전 사장, 온라인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했다 물러난 전하진 전 사장의 뒤를 이어 야심차게 한컴의 명예를 회복하려던 김사장도 결국에는 이들의 전철을 밟아야만 하는 것일까요. 정말 답답하기 그지 없습니다. 기자가 답을 내놓을 순 없습니다. 다만 한컴에 쏟아졌던 국민의 사랑과 한컴을 살리기 위해 앞날이 불투명한 회사의 주식을 기꺼이 사줬던 투자자를 위해 한컴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김사장과 이사진, 그리고 임직원들이 속을 터놓고 대화를 나누길 바라는 마음뿐 입니다. 그래도 해법이 없다면 현 경영진이 용퇴하고, 사심없이 한컴을 경영할 수 있는 유능한 경영진을 다시 찾는 길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입니다. 대화에 나설 수 없다면, 현 이사들이 스스로 책임지고 물러나는 것이 한컴을 살리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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