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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조원 때문에 선박 나포했다고?…미·이란 싸움에 등 터진 韓

이란, 환경오염 때문에 선박 억류했다 하지만
상대국 사전설명 없이 공해상 나포 이례적
바이든 정부 출범 앞두고 美과의 협상 동력 절실
트럼프행정부 대이란 제재에 韓에 동결된 7조원 자금 목적도
  • 등록 2021-01-06 오전 11:00:30

    수정 2021-01-07 오후 1:19:53

※이 기사는 이데일리 ‘e뉴스 플러스’에 2021년 1월 6일 출고된 기사입니다. 이데일리 홈페이지나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깊이 있고 색다른 기사들을 하루 앞서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한국은 (미·이란 대립에서)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희생자다”

미국 CNN방송은 4일(현지시간) 페르시아만 호르무즈해협에서 한국 국적 선박이 나포됐다는 소식을 전하며 이같이 평했습니다. 이란이 우리나라 선박을 억류했는데 왜 갑자기 미국이 나오는 걸까요?

(그래픽= 이미나 기자)


환경 오염 때문에 선박 억류했다고?

이란은 우리 선박을 억류한 이유로 환경오염을 들었습니다. 해당 선박은 에탄올 등 석유화학 제품을 옮기는 운반선인데요. 이 선박이 환경오염을 일으키고 있다는 신고가 몇번이나 있었고 이번에는 고소까지 들어와서 사법 절차를 개시한 것이란 설명입니다.

이 선박의 회사인 ‘DM쉬핑’은 물론 이같은 주장을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습니다. 해당 선박은 이중 선체 구조로 기름을 샐 우려가 없으며 환경오염을 한 사실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외교부는 이란 정부 측에 증거 제시를 요구했지만, 이란은 아직 자료가 준비되지 않았다며 거부하고 있다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이란의 주장이 맞다고 하더라도 이상한 점은 또 있습니다. 이 선박이 이란 혁명수비대에 억류당한 곳은 오만 하사브 인근 해역으로 공해(共海)였기 때문입니다.

이란은 대한민국과 교역을 시작한 중동 국가 중 최초의 나라이고, 대한민국이 처음으로 중동 건설에 진출한 나라입니다. 이란 핵무기 개발로 국제사회가 이란에 대한 제재를 가하는 와중에도 우리는 대사관을 유지했고 대림산업을 비롯한 한국기업들은 끝까지 현지사무소를 철수하지 않았죠.

어려운 국제 환경 속에서도 나름대로 우호관계를 유지한 나라의 선박을 사전 설명도 없이 억류했다는 것은 외교관계에 금이 갈 각오를 한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종건 1차관은 오는 10일 이란 방문을 앞두고 있었는데요, 고위급 대면교류를 앞두고 이같은 일을 한 것 역시 이례적입니다.

유조선 억류 관련 초치된 사이드 바담치 샤베스타리 주한이란대사가 5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손가락은 ‘韓’을 가리키지만 ‘美’를 바라보는 이란

여러모로 ‘말이 되지 않는’ 이란의 행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큰 그림’을 봐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그 큰 그림이 바로 ‘미국’인 셈입니다.

한국 선박을 나포한 날, 공교롭게도 이란은 포르도 지하 핵시설에서 순도 20%의 우라늄 농축 작업을 개시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란은 오바마 정부 시절인 2015년 핵개발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대가로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포기한다는 내용의 핵 합의(JCPOA)를 체결했는데요. 핵무기 제조에는 90% 순도의 농축 우라늄이 필요한데, 20% 농축에 달성하면 90% 달성은 시간문제인 것으로 판단됩니다. 즉, 핵 합의는 어기지는 않지만 언제든지 어길 수 있다는 시그널을 보낸 것이지요.

게다가 1월은 이란 혁명수비대 최정예부대 쿠드스군 사령관인 거셈 솔레이마니가 이라크 바드다그 공항에서 미국 정부에 의해 사살된 지 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솔레이마니 사령관은 이란에서는 중동 전략 설계자로 불리는 전설적인 인물이었죠. 이같은 인물이 미국에 피살됐던 만큼, 국제사회에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었습니다.

더구나 지금 이란은 6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미국이 2018년 핵 합의를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대이란 제재를 강화한 이후, 이란에는 온건파들이 세력을 잃고 ‘미국에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 주장하는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을 직접 건드리면 어떻게 될까요? 오는 20일에는 이란에게는 ‘지긋지긋’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을 떠나고 조 바이든 미국 정부가 출범합니다.

바이든 당선자는 오바마 정부 당시 부통령이고 제이크 설리반 차기 국가안보보좌관이나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 내정자는 이란 핵합의 설계자입니다. 이란으로서는 미국이 다시 핵 합의로 복귀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미국과 완전 척을 질 일을 하기는 어렵겠죠.

특히 현재 이란으로서는 2015년 핵 협상이 이뤄지던 당시보다 국제 지형이 더욱 악화했습니다. 오바마 정부가 이란과 갈등을 줄이는데 초점을 맞췄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 대한 고삐를 죄이고 대신 이란의 적(敵)들이 손을 잡게 하는 방식을 내세웠기 때문입니다. 반목하던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이 정식 외교 관계를 수립한 아브라함 협정이 바로 그 성과입니다.

아브라함 협정을 주도한 제러드 쿠슈너(왼쪽) 미국 대통령 고문과 로버트 오브라이언 국가안보보좌관이 2020년 8월 31일 이스라엘 국적기 엘알 항공에서 내리고 있다. 이 항공기는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의 관게정상화 이후 처음으로 걸프아랍국가를 비행한 것으로 상징적인 의미를 담는다. (사진= AFP)
실제 미국 차기 대통령 당선자의 윤곽이 나온 지난해 11월 27일 이란 국방부 소속 핵 과학자 모흐센 파흐리자데가 수도 테헤란 외곽에서 테러로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죠. 누가 사살했는가. 명확하진 않지만, 바이든 정부 출범 후 이란과의 관계정상화를 우려를 우려한 이스라엘 모사드의 테러라는 것이 국제 외교가의 정설처럼 여겨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처럼 이란의 국제사회 복귀를 반대하는 ‘저항’이 거세지는 가운데 이란으로서도 향후 협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모멘텀’이 절실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7조원 동결자금도 美 제재의 산물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적절한 타깃이 됐습니다. 미국을 건드려 ‘판’은 깨지는 않지만, 자신들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상대로 말입니다. 게다가 선박이 억류된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최대의 원유 수송로입니다. 이란으로서는 국제사회에서의 존재감을 어필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죠.

우리나라는 이란의 우호국이지만 그 이전에 미국의 동맹국입니다. 국제사회의 갈등 속에서도 나름 잘 지내왔던 두 나라이지만, 미국이 ‘세컨더리 보이콧’(2차 제재, 제재 대상과 거래하는 외국인이나 기관도 제제 대상이 된다는 것)을 한다고 하면서 우리나라도 백기를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전까지 우리나라는 한-이란 원화대금 결제시스템으로 제한적이나마 이란과 교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란과의 달러화 은행거래가 중단됐지만 기업은행과 우리은행에 이란 정부의 원화 계좌를 만들고, 이란산 석유 대금을 원화로 지급하는 방식을 사용했던 것이지요. 또 이란은 우리나라 제품을 수입할 때, 이 원화 계좌의 돈을 지불하는 형식으로 거래를 했습니다.

그런데 세컨더리 보이콧이 들어가면서 2019년부터는 이같은 결제시스템도 모조리 막혔습니다. 게다가 트럼프 정부는 이란산 석유를 수입하는 것도 막았죠. 결과적으로 2017년 80억달러에 달했던 한국의 대이란 수입규모는 2020년 839만 7000달러로 10분의 1수준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한국과 이란의 교역 규모. (자료 =관세청)
더 큰 문제는 이란에 돈을 줄 방법이 막히면서 우리나라 은행 계좌에 이란 정부의 돈이 고스란히 묶였다는 것입니다. 이란은 이 돈은 70억달러(7.6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국제제재에 코로나19까지 설상가상인 이란은 우리나라 정부에 이 돈을 돌려보낼 것을 꾸준히 요구합니다. 이란에서 “한국은 미국의 하인이냐”라며 험한 말이 나온 것 역시 이때쯤이죠. 그러나 이 돈을 돌려줄 방법이 딱히 없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인도적 물품이라는 명목하에 수출품목을 늘려오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다만 이 인도적 물품을 보내는 것 역시 미국 정부와의 긴밀한 협의가 필요하고, 세컨더리 보이콧을 우려한 해운선박들의 우려로 운송 수단 역시 화물기로 제한되면서 이란 측이 요구하는 수준에는 한참 미달했던 것 역시 사실입니다.

최근 이란 측은 코로나 퍼실리티를 통해 코로나19 백신을 확보하려고 했는데 이를 위한 대금을 한국에 있는 원화로 납부하는 것을 추진했습니다. 우리 정부 역시 이란 측 요청을 받아들여 미국 재무부와 협의하고 특별승인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국 측의 승인에도 이란은 원화를 달러화로 환전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자금을 동결할 가능성을 우려해 아직 확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미국의 ‘달러’를 중심으로 한 패권은 강력하며, 미국에 대한 이란의 불신 역시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 사이 끼인 우리나라의 등만 터졌다는 해석은 과도한 것일까요?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된 한국 유조선 ‘한국케미’ [타스님 뉴스·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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