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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유해발굴은 한국전쟁 당시 부역혐의 희생사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첫 유해 발굴이다. 진실화해위는 유해 수습을 앞두고 한국전쟁 당시 집단학살 상황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이날 오전 11시 발굴 현장을 공개했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이번 유해 발굴에서 최소 40구의 유해가 확인됐다. 유해(유골)는 폭 3m, 길이 14m 방공호를 따라 빽빽하게 매장된 채 온전한 형태로 발굴됐다.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건장한 남성으로서, 무릎이 구부러지고 앉은 자세 형태를 보이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아산 부역혐의자로 학살당한 후 좁은 방공호에 바로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번 유해 발굴지는 1950년 10월4일 온양경찰서가 좌익 부역혐의 관련자와 그 가족들을 매일 밤 1~2회에 걸쳐 40~50명씩 트럭에 실어 성재산 일대와 온양천변에서 학살해 시신을 유기한 곳이다.
또 1951년 1·4후퇴 시기인 1월 초에는 도민증을 발급해 준다며 배방면사무소 옆 곡물창고 2개와 모산역 부속창고에 좌익 부역혐의 관련자와 가족들을 잡아 가둔 후 한 집에 남자아이 1명만 제외하고 수일간 수백명을 집단학살하고 유기한 지역이기도 하다.
지난해 5월 아산시와 아산유족회가 진행한 시굴조사 결과 유해 일부와 탄피가 확인되면서, 진실화해위가 공수리 일대를 발굴 가능 지역으로 선정하고 지난 7일 본격적인 유해 발굴을 진행했다. 이번에 발굴한 유해들은 세척 등을 통해 다음 달 중순까지 수습할 예정이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아산 부역혐의 희생자들이 가족 단위로 살해되고 유족이 없는 경우가 많아 그간 유해 수습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인근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새지기 2지점(산96-4)에서도 유해 발굴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