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연구원' 이정훈, 공유오피스서 공작 교육…도서관서 北보고"

'北 공작원 접촉 혐의' 이정훈 첫 재판 열려
저서서 '北경제력 곧 韓 따라잡는다' 주장도
이정훈 "대공수사권 지키려는 국정원 조작"
  • 등록 2021-08-18 오후 3:14:21

    수정 2021-08-18 오후 3:14:21

4.27시대연구원 관계자들이 지난 5월 14일 서울종로경찰서 앞에서 기도회를 열고 이정훈 연구위원의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4.27시대연구원)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국내에 잠입한 북한 공작원들과 접촉한 후 수차례에 걸쳐 해외 웹하드를 통해 국내 진보진영 정세 등을 북한 대남공작기구에 보고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민간 통일단체 연구위원이 접선 장소로 공유오피스 등을 활용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 대남공작기구와 정보를 주고받을 때는 공공도서관을 이용했다.

1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양은상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정훈(58) 4.27시대연구원 연구위원(전 민주노동당 중앙위원)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첫 공판에서 검찰은 “이씨가 2017년 4월 국내에 잠입했던 북한 공작원들과 4차례 만나 암호화 통신프로그램을 전달받고 교육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씨는 북한 공작원에게 민주노동당 내부 정보 등을 건넸던 ‘일심회 사건’으로 2006년 구속돼 징역 3년을 복역한 후 2009년 출소했다.

파일명 ‘미스터빈’, 웹하드 통해 국내동향 보고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일본계 페루인으로 위장한 북한 공작원 ‘고니시’와 ‘노부치’는 ‘이씨에게 암호화 통신프로그램을 전달하고 교육하라’는 대남공작기구의 지령을 받고 2017년 3월 필리핀을 통해 국내로 잠입했다. 이씨는 2017년 4월초 서울 소공동 한 호텔 로비에서 이들을 처음 접선한 후 인근의 덕수궁으로 이동해 1시간가량 회합하며 암호화 통신프로그램을 전달받고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이후 △을지로 참치식당 △종로 공유오피스에서 암호화 프로그램 사용방법을 추가로 교육받고 주요 활동상황 등을 보고했다. 하달 지령문을 여는데 사용하는 암호화 프로그램은 정해진 순서를 따르지 않을 경우 내용이 나오지 않았다. 이씨가 웹하드에 올린 압축파일 이름엔 ‘미스터빈’을 포함하도록 했다. 고니시는 이씨에게 “지령문은 한 달에 두 번 웹하드를 통해 하달된다. 보고는 한 달에 두 번이나 필요시마다 해도 된다”며 “대남공작기구에서 보고를 보면 기뻐할 것”이라고 독려했다.

이씨는 이후 지시에 따라 실제 해외 웹하드를 이용해 지령을 받거나 국내 동향을 북한 대남공작기구에 보고했다. 그는 2018년 10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웹하드를 통해 수차례 지령문을 내려 받거나 정보를 보고할 때 집이 아닌 국립중앙도서관, 지역도서관, 공유오피스 등을 활용했다. 대남공작기구에 보고된 횟수만 5차례에 달한다.

아울러 이씨가 출판한 서적들인 ‘87, 6월 세대의 주체사상 에세이’와 ‘북 바로알기 100문100답’에 대해서도 “북한의 주체사상, 세습독재, 선군정치, 핵무기 보유 등을 옹호·찬양했다”는 명목으로 국보법상 이적표현물 제작·판매 혐의가 적용됐다.

검찰은 “‘주체사상 에세이’에선 북한에 대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으로 자주국방 체제를 완성했고 선군정치로 재건했다’고 평하고 있다. 또 북한 독제체제에 대해선 자본주의 선거체제와 다르게 이해해야 한다고 옹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북 바로알기 100문100답’과 관련해선 “주체사상, 선군사상을 찬양하고 핵개발,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을 북한 과학기술 발달이라고 칭하고 있다”며 “북한에 대한 국내총생산(GDP) 통계는 잘못된 것이고 북한 경제력이 곧 남한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등 홍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정훈 “증거조작 수사…간첩활동 없었다”

이씨 측 변호인은 이 같은 검찰 공소사실에 대해 “사실과 다른 부분이 너무 많다”며 “이씨는 무죄”라고 반박했다. 심재환 변호사(법무법인 향법)는 “이씨는 국가의 존립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면서 반국가단체 구성원과 회합이나 통신 등을 한 사실이 없다”며 “찬양고무 혐의도 모두 부인한다”고 밝혔다.

수사기관에서 묵비권을 행사했던 이씨도 직접 발언에 나서 “공안당국의 무리한 짜맞추기와 증거조작 수사”라며 “대공수사권을 지키려는 국가정보원의 행태”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사건은 저와 제 동료를 대상으로 한 프락치 공작이자 정치공작 미수사건”이라며 “국보법이 만든 비상식적 체제가 작동하는 이상 공안당국의 조작 유혹은 시대가 변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진실을 확인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 사건의 주체가 공안기관인지 제3의 기관인지 여전히 알 수 없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알 수 없는 상대와 통신과정을 거쳐 제가 내린 결론은 ‘고니시라는 사람 정체는 결국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며 “몇 차례 연락도 중간에 모두 종료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국정원이 저와 제 동료들을 4년간 미행하고 도청했지만 그들이 고대하던 지하조직과 간첩활동은 없었고 오직 진보활동과 합법적 통일운동만 있었다”며 “수사가 결국 저희 활동의 합법성을 찾아줬다”고 주장했다. 그는 외부에서 컴퓨터를 사용한 점에 대해선 “보안관찰 대상자로서 수사기관의 통신기록 감청이 자주 있었기에 외부에서 컴퓨터 작업을 자주한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법원은 다음 달 두 차례의 준비절차를 거친 후 10월 6일부터 본격적인 증인신문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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