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배변까지”…주민들 분리수거 ‘나 몰라라’에 경비원은 웁니다

코로나19 이후 택배·배달 주문↑, 분리수거↑
주민들 분리수거 제대로 안 해…경비원 부담
"파리 목숨이라 눈치만…주민들은 책임 회피"
개인 분리수거 실천·정부 관련 법 제정 필요
  • 등록 2021-07-30 오후 6:05:02

    수정 2021-08-02 오후 9:34:35

[이데일리 김대연 기자] “일반쓰레기 봉투가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그 안에는 음식물이랑 재활용 쓰레기랑 뒤범벅이에요...저같은 ‘파리 목숨’이 어디다 말하겠어요.”

서울 성북구 길음동 A아파트 경비원 오모(63)씨는 분리수거장에 있던 일반쓰레기 봉투 중 하나를 풀어본 뒤 일반쓰레기와 음식물·재활용 쓰레기가 뒤섞인 모습에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는 찜통더위에 마스크와 옷이 흠뻑 젖은 오씨는 “분리수거가 엉망인 건 일상”이라며 “입주민들이 일반쓰레기 봉투에 음식물·재활용·반려동물 배변까지 다 넣다 보니 매번 직접 손으로 다시 분리해야 한다”고 착잡한 심정을 내비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확산한 비대면 소비문화로 인해 택배와 배달량이 늘어나면서 분리수거가 필요한 쓰레기양도 급격하게 불어났다. 하지만 쓰레기는 산더미처럼 쌓여가는데 입주민들이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아 경비원들의 불필요한 업무 부담이 늘어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서초구 우면동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이 분리수거를 하고 있다. (사진=김대연 기자)
“분리수거 엉망이라 다시 분류해야”…경비원들 ‘울상’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배달 수요와 택배 주문량이 증가하면서 덩달아 분리 배출해야 하는 쓰레기양도 늘어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재활용 가능한 종이류는 전년 대비 24.8%, 플라스틱류는 18.9% 정도 배출량이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분리수거된 플라스틱 중 이물질이 묻어 재활용이 불가능해진 폐플라스틱은 54%를 차지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물질을 제대로 제거하지 않고 배출해 절반 이상이 결국 쓰레기가 되는 셈이다. 환경부는 코로나19로 인한 택배·배달 소비가 늘어나면서 생활폐기물도 증가한 것으로 분석했다.

이날 길음동 A아파트 단지 쓰레기 배출장에는 재활용 쓰레기로 가득 찬 대형 포대가 빼곡히 놓여 있었다. 1m 높이가 훌쩍 넘는 대형 포대 안에는 라벨지를 떼지 않은 페트병, 이물질이 묻어있는 컵라면 용기, 구겨진 광고 전단지 등 재활용과 폐기물이 마구 뒤섞여 있었다. 분리수거 날이라 시시각각 주민들이 쓰레기를 버리러 오느라 경비원들은 경비 업무를 보기는커녕 오전부터 쉬지 않고 뒤처리를 감당해야 했다.

경비원들은 주민들이 쓰레기를 제대로 분류해놓지 않고 버린 탓에 일일이 잘못 분리수거한 것들을 찾아 재분류해야 하는 등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이들은 코로나19 이후 종이 상자·플라스틱·음식물 찌꺼기 등 쓰레기양이 많아진 것을 체감한다며 입을 모은다. 하지막 막상 분리수거를 하지 않는 주민을 눈앞에서 발견해도 눈치 보기 바빠 말조차 꺼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경비원 신모(56)씨는 “사실상 주민들이 플라스틱, 음식물 등을 같이 버려서 일을 2번 하게 되는 셈”이라며 “분리수거 날이 되면 일하느라 바빠서 점심을 거를 수밖에 없다”고 난감해했다. 강남구 청담동 B아파트 경비원 송모(76)씨도 “코로나19 이후 종이 상자만 30% 이상 늘어난 것 같다”며 “평소보다 일이 2~3배는 많아졌다”고 말했다.

다른 업무를 보는 사이 각종 쓰레기들을 한꺼번에 내다 버리는 주민들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는 경비원들도 있었다. 하월곡동 C아파트 경비원 전모(63)씨는 “조금만 한눈을 파면 사람들이 쓰레기를 잘못 버려서 힘들다”면서 “직업이 경비원이 아니고 분리수거 감시원이 된 것 같다”고 호소했다.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의 한 아파트 쓰레기 배출장에 붙여 있는 경고장이다. (사진=김대연 기자)
“주민들이 조금만 더 신경 써주길”…개인·정부 공동 노력 중요

오는 10월 21일부터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공동주택에 근무하는 경비원의 업무에 경비 업무 외에도 청소·분리수거·주차관리·주차관리 업무가 포함될 예정이다. 하지만 경비원들은 주민들의 ‘나 몰라라’ 쓰레기 배출로 인해 다른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하는 데 차질이 생길 수 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오씨는 “분리수거가 경비원들의 주된 업무가 아닌데도 실제로 업무 시간 중에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한다”며 “쓰레기 수거업체들이 이제는 제대로 분류돼 있지 않으면 수거해가지 않아서 고충이 많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서초구 우면동 D아파트 경비원 70대 오모씨도 “이렇게 더운 여름에 하루 종일 분리 수거를 하다 보면 본래 업무에 소홀해진다”며 “사람들이 조금만 더 신경 써서 쓰레기를 잘 분류해 배출해줬으면 좋겠다”고 주민들의 협조를 당부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경비원들의 처우 개선책도 수반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의석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서울본부조직차장은 “코로나19 때문에 분리수거 양이 많아져서 분리수거 날에는 경비원들이 하루 종일 분리수거를 해야 한다”며 “개정된 경비업법이 시행되면 경비원들이 그동안 받았던 약 2~3만원의 ‘재활용 수당’도 받지 못할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김해동 계명대 지구환경공학과 교수도 “주민들이 생활폐기물을 잘 배출할 것이라는 선의에만 의존한다면 경비원분들의 업무가 가중될 수밖에 없다”며 “정부나 지자체에서 만들어진 법과 제도가 뒷받침돼야 주민들이 이를 따라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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