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금융은 애초 경영 공백과 혼선을 줄여 조직의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김 행장의 재임을 ‘묵인(默認)’했다. 김 행장의 징계가 당장 직을 내놔야 하는 ‘직무정지’나 ‘해임권고’가 아닌 ‘문책경고’에 그친 만큼 임기를 완주하는 데 큰 걸림돌이 없을 것으로 본 것이다. 실제 법적으로만 보더라도 임기 종료 후 3년간 금융권 재취업을 금지하는 것일 뿐 당장 물러나야 한다는 강제성은 없다.
김정태 회장 특유의 화통한 성격과 뚝심이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시간적 여유를 두고 심사숙고하는 모습을 보인 후 감독 당국과의 교감 속에 판단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대목으로 평가하고 있다.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에 대한 예우 문제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김 행장이 당장 물러나면 저축은행 비리 연루를 스스로 인정한 꼴이 돼버려 같은 이유로 경징계를 받은 김 전 회장 처지에서는 ‘40년 뱅커 인생’의 치명적 ‘오명(汚名)’으로 남게 되는 탓이다.
그룹 차원의 후계구도 문제도 하나금융의 판단에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김 행장의 뒤를 이을 인물로는 김병호 기업영업그룹 총괄 부행장과 함영주 충청사업본부 총괄 부행장, 하나은행이 인수한 미국 브로드웨이내셔널뱅크(BNB) 이사회 의장인 이현주 부행장 등이 거론된다.
어찌 됐든 공은 다시 하나금융에 돌아왔다. 자칫 이번 사태에 한발 비켜서 있는 하나금융 그룹까지도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우려도 고려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감독 당국이 칼집에서 칼을 꺼내 든 이상 사퇴 거부에 대한 후폭풍은 어떤 식으로든 나타날 개연성이 있다.
감독 당국은 하나은행에 대해 최고경영자 리스크에 대한 고강도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외환카드 분할 및 하나SK카드와의 통합 승인이나 KT ENS 협력업체 사기대출 관련 검사 등 굵직굵직한 이슈들도 도사리고 있다.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둘러싸인 하나금융의 결단에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