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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 소원이라며 안아달라 부탁…역겨운 문자도"

'나는 피해호소인이 아닙니다' 내용 보니…
피해자 김잔디 씨의 생존 과정 담아
'제대로 기억될 권리' 위해 집필 결심
"한 명의 존엄한 인간으로 기억되고 싶다"
  • 등록 2022-01-20 오후 3:26:00

    수정 2022-01-20 오후 3:26:00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박 시장의 성적인 가해는 이것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내실에서 둘만 있을 때 소원을 들어달라며 안아달라고 부탁을 하고, 여자가 결혼을 하려면 섹스를 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성행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문자를 보냈고, (중략) ‘내일 안마해줘’ ‘내일 손잡아줘’ 같은 누가 봐도 끔찍하고 역겨운 문자를 수도 없이 보냈다.” (‘나는 피해호소인이 아닙니다’ 52쪽)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사건 피해자인 김잔디(가명)씨가 20일 출간된 ‘나는 피해호소인이 아닙니다’를 통해 박 전 시장의 성적 가해 사실이라고 밝힌 내용 중 일부다. 김 씨는 이번 책에서 박 전 시장으로부터 입은 성적 피해 내용과 고소를 결심하게 된 계기, 박 전 시장의 죽음 이후 자행된 2차 가해의 실상과 이로 인한 상처를 극복하기까지 생존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해 3월 17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회견에 고 박원순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자리가 마련돼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책에 따르면 김 씨는 2015년 서울시 공무원으로 발령받아 서울시 산하기관에서 근무하던 중 갑자기 서울시장 비서직 면접을 받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게 됐다. 면접 다음다음 날 시장 비서실로 출근하라는 통보를 받았고, 이후 2019년 중반까지 4년 넘게 박 전 시장의 비서로 일하면서 그의 일정 관리를 맡았다.

김 씨는 책에서 박 전 시장이 2017년 상반기부터 부적절한 연락을 해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2018년 9월 박 전 시장의 집무실에서 있었던 성추행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비롯해 비서로 일하는 4년간 지속된 성적 가해의 실태를 낱낱이 밝히고 있다. 김 씨는 책에서 “런닝셔츠 차림의 사진을 보내면서, 나한테도 손톱 사진이나 잠옷 입은 사진을 보내달랐고 했다”며 “밤늦은 시간에 뭐하고 있냐고, 혼자 있냐고 물으면서 ‘내가 지금 갈까’ 같은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고 폭로했다.

4년간 참아온 성적 가해를 세상에 밝히기로 마음먹은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2020년 4월 서울시청 직원 회식 자리에서 동료에 의한 불의의 성폭행을 당하고 사건에 대한 서울시의 미온적인 태도를 겪은 뒤,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4년여 동안 박 전 시장에게 지속적으로 당한 성적 괴롭힘의 상처가 트라우마로 고여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시청 젠더특보는 나에게 정신건강의학과를 소개시켜주었고, 그곳에서 내 정신상태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오랜 시간 지속된 박원순 시장의 성적 괴롭힘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성폭행 사건으로 곪아 터진 것이었다. (중략) 그와 나의 사회적 위치를 고려했을 때 법 앞의 평등이라는 원칙 아래 나의 안전이 보호받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사법 절차 뿐이라고 생각했고 고소를 결심했다.” (‘나는 피해호소인이 아닙니다’ 8~9쪽)

책 ‘나는 피해호소인이 아닙니다’ 표지(사진=천년의상상)
어렵게 박 전 시장에 대한 고소를 결심했지만, 박 전 시장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김 씨는 예상치 못한 2차 가해를 경험해야 했다. 박 전 시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김 씨에게 쏟아진 공격과 비난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여성운동의 대모 격인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김 씨를 ‘피해호소인’이라고 주장하는 일도 벌어졌다. 김 씨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전달한 의견서를 통해 “약자의 보호와 인권을 강조해오던 그들은 정작 중요한 순간에 본인들의 지위와 그를 통해 누려온 것들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었다”고 박 전 시장을 옹호한 이들을 비판한다.

이밖에도 김 씨는 박 전 시장이 시민운동가 활동 시절 주장했던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와 복지에 대한 철학, 소신이 서울시장 재직 당시에는 철저하게 무시되고 간과됐다는 주장도 함께 펼친다. 3부 ‘서울특별시장실 이야기’에서 서울시장 비서로 일하면서 경험한 부당한 노동환경과 처우를 언급하며 “생각할수록 납득이 가지 않는 업무와 환경이 주어졌지만 그것을 심각하게 생각할 때면 나만 괴로웠다”고 썼다.

김 씨는 출판사와 진행한 서면 인터뷰를 통해 “성폭력 사건 피해자에게 있어 ‘잊혀질 권리’는 더 간절한 소망이지만, 저에게는 잊혀질 권리보다 ‘제대로 기억될 권리’가 먼저 회복돼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이 책은 사건 발생 이후부터 복직하기까지 478일간의 기록이며, 저는 이 책을 통해 한 명의 존엄한 인간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집필 계기를 설명했다.

출판사는 이번 책이 정치적 쟁점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입장이다. 출판사 천년의상상 측은 “저자 김잔디와 이 책 ‘나는 피해호소인이 아닙니다’는 이념적 지형에 따라 적대적으로 갈린 양대 정치 집단의 이해관계에 어떤 식으로 사용되거나 복무되는 것을 거부한다”며 “이 책이 2022년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 사회 전 구성원에게 지키고 마땅히 가꿔나가야 할 공동체의 정의와 윤리적 가능성을 묻는 불편하지만 피해서는 안 될 유효한 질의서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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