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독과점 노선 '알짜 슬롯' 내놓나…경쟁력 약화 우려

英, 사실상 합병 승인…"시장 의견 듣고 최종 승인 여부 결정"
대한항공, '황금 슬롯' 양도 조건으로 英 등 외항사 접촉
"독과점 노선 해소 못하면 합병 심사 통과 어려울수도"
"슬롯은 곧 자산…양사 경쟁력 약화 불가피할듯"
  • 등록 2022-11-29 오후 4:23:52

    수정 2022-11-29 오후 9:28:36

[이데일리 송승현 기자] 대한항공(003490)아시아나항공(020560) 합병(기업 결합)으로 불거진 독과점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결국 ‘알짜 슬롯’ 양도를 조건으로 외국항공사들과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영국 경쟁당국이 최근 양사의 합병을 사실상 승인하면서 시장 의견을 청취하겠다는 단서를 단 것도 자국 항공사에 슬롯 반납하라는 압박이라는 분석이다. 향후 미국과 유럽연합(EU)합병 심사 과정에서도 독과점이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양사 합병을 통한 경쟁력 약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기업 결합 시 경쟁제한성이 있다고 판단한 국제선 노선들. (사진=공정위 제공)
합병 승인에도 시장 의견 듣겠다는 英

영국 경쟁시장청(CMA)은 지난 28일(현지시간) 대한항공이 제출한 자진 시정안을 원칙적으로 수용하며 시장 의견을 청취한 뒤 합병 승인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합병을 승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CMA는 지난 15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에 따른 독과점 우려로 항공권 가격 상승 등이 우려된다며 유예 판정을 내렸다.

CMA가 대한항공의 자진 시정안 제출안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승인 결정을 내리지 않은 것은 독과점 우려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양사가 합병하게 되면 인천-런던 노선은 100% 독점하게 된다.

앞서 대한항공은 향후 국내 저비용항공사(LCC)가 중장거리 항공기를 도입하면 독과점 우려가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라는 내용을 CMA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CMA가 한 차례 합병 승인을 유예하자 대한항공은 결국 자진 시정안에 ‘보유하고 있는 슬롯을 양도하는 조건으로 영국 항공사와 접촉하고 있다’는 취지의 내용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이른바 ‘황금 슬롯’을 국토교통부에 반납하고 이를 내주는 조건으로 외항사를 독과점 노선에 띄우게 하겠다는 방안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 대한항공은 독과점 우려 해소를 위해 영국 내 항공사와 접촉하고 있다. 가장 유력한 후보로는 버진 아틀란틱항공사가 거론된다. 버진 아틀란틱항공사는 지난 9월 대한항공이 속한 글로벌 항공 동맹 ‘스카이팀’에 합류하기도 했다. 버진 아틀란틱항공사는 런던 히드로 공항과 맨체스터 국제공항을 두고 있는 만큼 CMA의 독과점 우려도 해소할 수 있다. 이외에도 대한항공은 코로나19 사태로 직항 노선을 단항한 브리티쉬에어라인과도 접촉했지만 노선 재개 의사가 없어 무산된 것으로 전해진다.

“독과점 해소해야 합병 승인 가능성 ↑”

항공업계는 영국의 사례처럼 미국과 유럽, 중국 등의 합병 심사 과정에서 승인을 받기 위해 대한항공이 황금 슬롯과 일부 운수권을 내줘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결정으로 대한항공은 일부 노선에 대한 노선과 운수권을 반납해야 했지만 해외 경쟁당국들이 독과점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더욱 수세에 몰리게 됐다는 것이다.

당장 대한항공은 미국 경쟁당국의 합병 승인을 받기 위해 독과점 노선 5개(뉴욕·로스앤젤레스·시애틀·샌프란시스코·호놀룰루)에 대한 실질적인 해소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기업결합에 능통한 법조계 관계자는 “미국에서 최근 항공사에 대한 인수·합병(M&A)를 민감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며 “대한항공이 미국 5개 노선에 대해 점유율 50% 미만으로 만들지 않으면 사실 공정법상으로는 통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미국 경쟁당국은 아메리칸 에어라인과 US에어웨이즈 합병 당시 독과점 우려에 따라 슬롯 일부를 매각하는 조건을 달아 승인했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은 영국과 마찬가지로 미주 노선에 취항할 외항사를 광범위하게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대한항공은 울며 겨자 먹기로 ‘황금 슬롯’을 넘겨주는 조건을 포함한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아직 기업 결합 결과가 나오지 않은 유럽과 중국 등에서도 비슷한 절차를 밟을 수 있다는 점이다. 양사 결합 시 독과점 노선은 유럽 6개, 중국 5개 등으로 이들 경쟁당국 역시 영국 미국과 같은 요구를 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한항공의 잇단 슬롯 양도는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전망이다. 슬롯이란 항공기가 공항에서 이·착륙을 하거나 이동하기 위해 배분된 시간을 말한다. 쉽게 말해 항공기 운항 스케쥴로 황금 슬롯을 확보했다는 건 승객이 몰리는 시간에 이·착륙할 수 있단 뜻이다.

익명을 요구한 항공전문가는 “우리나라를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선진국은 단일 거대 항공사 체제를 갖추고 있어 지금도 경쟁력 측면에서는 부족한 상황”이라며 “그런 상황에서 공정위가 조건부 승인을 하면서 해외 경쟁당국에 독과점이 문제가 된다는 빌미를 주게 됐다. 항공산업에 있어서는 매우 좋지 않는 결과로 다가올까 우려된다”고 아쉬워했다.

한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 심사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총 14개 국가 중 9개 국가의 승인을 받았다. 현재 5개 국가의 승인이 남은 상태로 필수 신고 국가 중에서는 미국·중국·유럽연합(EU)·일본, 임의 신고 국가 중에서는 영국의 승인이 남아 있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by LiveRe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