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국제유가가 또다시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기술적으로 약세장으로 들어섰다.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21일(현지시간) 하루에만 2% 이상 떨어져 배럴당 42달러대까지 주저 앉았고 지난 2월 고점 이후 22% 이상 하락하면서 본격 약세장에 들어섰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과 비(非)OPEC 산유국들의 계속된 산유량 감축 합의 이행에도 불구하고 미국 셰일오일과 감산 합의에서 빠진 일부 산유국의 증산으로 인해 글로벌 원유 공급과잉이 좀처럼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원유시장 참가자들이 좌절하는 대목이다. 실제 이날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이 공개한 지난주 미국내 원유재고량이 시장 예상보다 많은 270만배럴 감소를 기록했지만 한 해 중 휘발유 소비가 가장 많다는 드라이빙 시즌 평균치를 계속 웃도는 미국내 재고 부담은 계속 시장을 짓누르고 있다.
게다가 OPEC 회원국이지만 감산 예외를 인정받고 있는 나이지리아의 경우 오는 8월 원유 수출량이 하루 200만배럴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17개월만에 최대치다. 지난해 무장세력들의 공격 때문에 생산에 차질을 빚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회복된 모습이다. 감산에서 빠진 리비아 역시 원유 생산량이 하루 평균 5만배럴 늘어난 88만5000배럴에 달했다. 미국 셰일오일도 늘어 미국 원유 생산량은 하루 935만배럴로 근 2년만에 최고 수준으로 급증했다. 사우디와 러시아 등 최대 생산국 수준에 근접한 상태다.
실제 원유 탱커 데이터를 집계하는 프랑스업체 케이플러에 따르면 부유식(플로팅) 원유 저장장치가 1억1190만배럴로 역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부유식은 원유 저장장치 가운데 가장 비싼 보관형태다. 이 수치가 늘어난다는 건 그 만큼 원유 공급과 재고가 늘어나 어쩔 수 없이 비싼 비용을 부담하고서라도 원유를 쌓아둘 수 밖에 없다는 뜻으로, 결국 앞으로 유가가 더 떨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낳는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전날 열린 OPEC과 비OPEC 산유국 공동위원회는 당초 예상과 달리 현재의 감산 합의가 끝나는 내년 3월말은 물론이고 내년 2분기말까지도 원유시장에서의 수급 균형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다급해진 산유국들은 구두 개입에도 나섰다. 비잔 남다르 잔가네 이란 석유장관은 이날 국영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추가로 감산폭을 더 확대하는 합의를 내놓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제이미 웹스터 보스턴컨설팅그룹 선임이사도 “OPEC이 원유시장 수급 불균형을 해결할 만큼 충분한 감산을 하지 않고 있는 만큼 해법을 가진 쪽도 결국은 OPEC 밖에 없을 것”이라며 추가 감산 확대를 점쳤다.
물론 추가 감산여부나 그 효과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큰 편이다. 브잔 쉴드롭 SEB 수석원자재 애널리스트는 “현 시점에서는 시장을 끌어올릴 만한 호재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며 “미국과 리비아 등이 계속 생산을 늘리는 마당에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감산을 더 확대해주기 만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라고 지적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2분기말이면 글로벌 원유시장 수요가 공급량을 하루 평균 50만배럴씩 앞지를 것으로 보고 있다. 닐 애킨슨 IEA 원유시장 대표는 “만약 OPEC이 지금과 같은 감산 추이를 유지하기만 해도 연내에 원유시장 수급 균형은 달성될 수 있다”고 점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