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어붙은 정국을 녹인 건 이 한 마디 말이었다. 지난 1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강기정 정무수석이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고성을 동반한 논쟁을 벌이며 시작된 여야의 다툼은 이낙연 국무총리가 고개를 숙이며 일단락됐다. 이 총리는 지난 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에 참석해 “답답하고 화날 때가 있겠으나 그럼에도 스스로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것이 정부에 몸담은 사람의 도리”라고 사과했다.
이 총리의 ‘숙이는 리더십’이 다시 빛을 발했다는 평가다. 행정 각부를 통괄하는 책임자가 고개를 숙인 만큼 야당도 더 문제 삼지 않았다. 실제로 전날 파행의 여파로 녹록잖은 회의 진행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으나 별다른 충돌 없이 끝났다.
주광덕 한국당 의원은 이 총리의 사과 발언에 “오늘 멋지고 아름다운 광경을 목격했다”며 “스마트하게 죄송한 마음을 표현해 주셨다. 야당 소속인 저 역시 감동이며 국민이 보고 싶어하는 모습을 총리께서 보여주셨다”고 말했다. 야당 의원이 질의에 앞서 총리의 언행을 칭찬하며 “감명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야당을 대하는 태도도 이 총리와 이 대표의 자세는 다르다. 산적한 현안을 놓고 공전하는 국회에 대한 이 대표의 입장은 확고하다. “야당이 발목을 잡아 중요한 입법을 못하고 있다”(11월5일)· “정치를 30년 넘게 했는데 이런 야당은 보다보다 처음 본다”(10월30일)· “이렇게 한 입으로 두말하는 한국당과 어떻게 협상을 할 것인가”(10월11일)· “한국당은 공당이길 포기했다”(10월4일) 등 한결같이 한국당을 쏘아붙이고 있다.
원칙을 고집하는 정치는 중하나 언제나 적절한 것은 아니다. 선거법 개정은 ‘게임의 룰’인 만큼 여·야가 합의해 처리하는 게 옳다. 양보를 전제로 합의를 해야한다는 의미다. 민주당이 당론을 고집하며 움직이지 않자 패스트트랙 상정에 함께했던 바른미래·정의·민주평화·대안신당도 “실은 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할 의지가 없는 게 아니냐”며 의심을 사기에 이르렀다. 고집을 부리다 장담했던 정치개혁의 기회를 놓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선거법 개정안은 내달 3일 부의되며 문희상 국회의장이 결단하는 대로 본회의에 상정돼 표결에 부쳐진다. 그때까지 한국당과 합의하지 못한다면 설령 법안처리에 성공하더라도 지난 4월 있었던 패스트트랙 정국 이상의 파행이 불 보듯 뻔하다. 이 대표의 강단이 주효할 때도 있으나 개혁의 시간이 한달도 남지 않은 지금, 집권 여당에 다른 리더십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