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샤오핑 후임' 장쩌민 전 중국 주석, 향년 96세 타계(종합)

장쩌민, 상하이서 별세…백혈병·장기부전
2003∼2013년 중국 국가주석 역임
'상하이방'의 대부…中경제발전 이뤄
"외국 정부 및 대표단, 추모행사 초청 안해"
  • 등록 2022-11-30 오후 6:45:30

    수정 2022-11-30 오후 9:07:11

[이데일리 신정은 기자] 중국의 3대 권력 계파인 ‘상하이방(上海幇·상하이 출신 정·재계 인맥)’의 대부로 꼽히는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이 30일 세상을 떠냈다. 향년 96세.

(사진=AFP)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장 전 주석이 백혈병과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상하이에서 이날 12시13분(현지시간) 숨졌다고 보도했다.

장 전 주석은 1949년 신중국 성립 후 마오쩌둥(毛澤東), 덩샤오핑(鄧小平)의 뒤를 이은 중국의 제3세대 지도자다. 1926년 장쑤성 양저우 출신으로 상하이 당서기로 있다가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운동 사태를 진압하면서 덩샤오핑에 발탁, 공산당 전면에 나서게 됐다. 이를 계기로 중앙권력을 접수한 장 전 주석은 그의 측근과 함께 ‘상하이방’으로 불렸다.

장 전 주석은 1989년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1990년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1993년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으로 선출돼 중국을 이끌었다. 2003년엔 국가 주석, 2004년 당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를 후진타오에게 물려주면서 평화적 정권이양을 이뤘다.

장 전 주석 재임 기간 중국은 빠른 경제성장을 이뤘다. 1989년 1조7200억위안(약 319조원)이었던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003년 12조1700억위안(약 2258조원)으로 7배 가까이 커졌다. 특히 장 전 주석은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성사시켰고 상하이를 금융 중심지로 발전시켰다. 1992년 한중 수교를 맺고 1995년 한국을 찾은 중국의 첫번째 지도자기도 하다.

또한 2000년에는 공산당이 △선진 생산력(자본가) △선진문화 발전(지식인) △광대한 인민(노동자ㆍ농민)의 근본 이익을 대표해야 한다는 ‘3개 대표론’을 발표했다.

다만 그는 부패에 대해서 관대했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있다. 이에 상하이방은 경제적 이익집단이 됐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집권 이후 부패 척결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장쩌민은 올해 10월 16일 열린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2019년 국경일 70주년 기념행사로 후진타오 전 주석과 함께 연단에 선 것이 공개석상에서의 마지막 모습이다. .

중국전문가인 미국의 로버트 로렌스 쿤은 ‘중국을 변화시킨 거인 장쩌민’이란 책에서 그를 “중국 문명을 사랑했으며 천부적인 협상 능력과 경제적 식견을 갖고 있는 인물”로 평가했다.

한편 중국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장례위원장으로 하는 대규모 장례위원회를 결성했다. 리커창 총리를 포함한 중국 지도부가 모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장례위원회 측은 “추모 대회가 열리는 날까지 톈안먼 등에 조기를 달고 애도를 표한다”면서도 “국가 관례에 따라 외국 정부와 정당대표들을 추모행사에 초청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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