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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의원은 “저를 보며, ‘저런 사람도 있구나’ ‘나도 할 수 있겠다’라고 용기를 내도 된다”며 “지금까지 35년 동안 일했다. 10대에는 3교대 방직공장에서, 20대에는 보험설계사에 식당을 열었고, 돈을 좀 모아 야간으로 법대를 가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에는 15년 동안 변호사로 죽어라고 일만 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이어 “여성·인권 운동을 하며 한계를 느끼고 국회에 왔다. 그간 15년 동안 답답했던 걸 입법과 정책활동으로 연결하겠다”며 “싱글 워킹맘인 저를 보고 힘내달라”고도 힘주어 말했다.
김 의원은 범죄소년의 위탁보호자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고,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는 “아이가 있는 30대 여성이 남편을 살해한 것을 보고, 엄마도 엄마지만 아이는 어쩌나 해서 무료변론을 했다”며 “그때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했는데 친한 변호사들과 여성단체들도 합류해 힘을 줬고, 여성 연대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미투운동에 대해서도 “피해여성들을 지원할때, 경남 여성들이 법정에 같이 와주셔서 그때 연대의 힘을 느꼈다”고 언급했다.
김 의원은 ‘마음 속 자신만의 영웅이 누구인지’를 묻는 질문에 어머니를 꼽았다. 그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늘 한결같았다”며 “비가오나 눈이오나 자식들 걱정에 본인 몸 돌보지도 않고 살다 가신 분”이라고 추억했다.
김 의원은 ‘여공 출신 싱글맘 변호사’로 불리며 인권활동에 앞장서 왔고, 국선변호사 시절 15년간 760건이 넘는 변론을 맡은 바 있다. 지난 총선에서는 부산 해운대을 선거구에서 현역 의원을 꺾고 이번 국회에 입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