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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회는 30일 “무주택 가구에 대해서는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주택금융공사의 대출 보증을 받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초 금융위는 올해 4월 발표한 ‘서민·실수요자 주거 안정을 위한 금융 지원 방안’에 따라 오는 10월부터 주택금융공사 전세 보증을 서민 중심으로 개편하려 했다. 구체적으로 집을 여러 채 보유한 다주택자와 부부 합산 소득이 연 7000만원을 넘는 가구에는 전세 보증 이용을 제한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아낀 재원 연간 1조8000억원을 저소득 취약 계층의 전세 자금 보증 지원에 쓰겠다는 목적에서다. 다만 신혼 맞벌이 가구는 연 소득 8500만원, 1자녀 가구는 연 8000만원, 2자녀 가구는 연 9000만원, 3자녀 가구는 연 1억원까지 지금처럼 보증 지원을 할 계획이었다.
문제는 서민 지원 강화라는 이 같은 정책 방침이 뒤늦게 ‘부동산 투기 방지’라는 꼬리표를 추가로 달면서 중산층의 거센 비판을 불렀다는 점이다.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은 이틀 전인 지난 28일 열린 ‘주택 시장 안정을 위한 가계 부채 관리 점검 회의’에서 “전세 대출이 주택 가격 상승이나 주택 구매 자금으로 활용되지 않도록 전세 보증 요건을 중심으로 전세 자금 대출 기준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주택금융공사의 전세 자금 보증에 소득 요건을 신설하려는 정부 방침에 연 소득 7000만~1억원 넘는 중·고소득층이 크게 반발한 것은 공사 보증 상품의 금리 등 이용 조건이 다른 회사보다 나았기 때문이다. 서울보증의 경우 대출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고 요건도 깐깐한 만큼 기존 혜택을 줄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국토부 산하 주택도시보증공사에도 주택금융공사와 같은 소득 기준을 적용할 계획인 만큼 전세 자금 보증을 이용하려는 중산층 이상 가구가 서울보증으로 몰리는 문제도 발생한다. 민간 경제 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무엇보다 부동산 시장이 요즘처럼 들썩이는 상황에서 내 집을 갖지 못해 박탈감이 큰 전세 세입자들에게 정부가 ‘잠재적 투기 수요’라는 꼬리표를 붙자 불만이 폭발한 것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이 취약 계층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추진하는 정책에 ‘부동산 투기 방지’라는 새 목적을 붙인 것이 민심을 읽지 못한 ‘실기’라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 연구기관 관계자는 “서울의 전체 가계가 330만 가구가 넘고 아파트만 해도 165만 채가량에 달한다”며 “공공기관 보증을 통해 전세 대출을 받아 편법으로 ‘갭투자’ 등에 나서는 일부 수요 때문에 집값이 급격히 오른다고 보긴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금융당국이 처음부터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명분(투기 방지)을 들었다가 오락가락 정책으로 되레 시장 혼란만 부추겼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