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우슈비츠' 형제복지원 원장 '불법 감금' 단죄 못한 이유는?

1970~1980년대 무연고자 3만7000여 명 수용
구타·성폭행·암매장 의혹 제기…사망자만 550여 명
法, '특수 감금' 형제복지원장 檢 비상상고 기각…무죄 판결 유지
"인간 존엄성 훼손…비상상고 이유는 아냐"
  • 등록 2021-03-11 오후 5:03:14

    수정 2021-03-11 오후 10:02:34

[이데일리 최영지 기자] 국내 최대 인권 유린 사건으로 꼽히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검찰이 수용자들에게 감금·강제노역·암매장을 일삼은 고(故) 박인근 전 형제복지원 원장의 혐의를 무죄로 본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비상상고를 신청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이 사건이 인간 존엄성을 훼손했다고 판단했지만 비상상고의 요건은 갖추지 못했다고 봤다.

11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고(故) 박인근 전 형제복지원 원장에 대한 비상상고가 기각되자 법정에서 나온 형제복지원 피해자가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복지시설 내 구타·암매장 성행…공식 사망자 수만 550여 명

11일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32년 전 형제복지원 박 전 원장의 특수 감금 혐의 무죄 판결을 파기해달라는 검찰총장의 비상상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해를 입은 수용자들은 32년 만에 법원 판단을 다시 받게 됐지만 박 씨의 무죄 판결은 끝내 유지됐다.

사건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1975년 부산 소재의 사회복지시설인 형제복지원을 운영하던 박 씨는 내무부 훈령 제410호에 근거해 당시 부산직할시장(현 부산광역시)과 부랑인의 수용·보호를 목적으로 한 ‘부랑인선도(수용보호) 위탁 계약’을 체결하고 국고 보조금을 지급 받으며 단속기관으로부터 단속된 무연고 장애인·고아 등 3만7000여 명을 인계 받았다. 해당 훈령은 일정한 주거가 없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구걸 등을 하는 사람을 부랑인으로 정의하고, 이들을 단속·수용·보호하도록 규정했으나 1987년 폐지됐다.

박 씨는 수용자가 늘어나자 경남 울주군(현 울산광역시 울주군)에다 출입문과 창문에 철창을 단 시설인 울주작업장을 지어 부랑인들을 추가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일부 수용자들은 시설 인근 작업장 토지의 평탄화 작업과 석축 공사 등 노역에 동원됐으며, 밤에는 감금됐다. 또 박 씨는 일부 수용자들을 경비원으로 쓰며, 목봉과 감시견을 이용해 다른 수용자들을 감시하게 했다.

그러다 1987년 수용자 30여 명이 탈출에 성공하면서 비로소 복지원의 참담했던 실태가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수용자들에 대한 감금, 강제노역 뿐만 아니라 구타·살인·성폭행 등의 의혹이 제기됐다. 확인된 사망자만 550여 명에 육박하며, 일부 시신은 암매장돼 여전히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 형제복지원이 ‘한국의 아우슈비츠’로 불리는 이유다.

박 씨는 주간 및 야간 감금 행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두 번의 파기환송심을 거쳐 지난 1989년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 받았다. 당시 대법원은 박 씨의 행위가 훈령에 따른 수용으로 형법상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국고 보조금 등 공금 횡령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가 인정돼 2년 6개월의 징역형이 확정됐다.

재판부 “인간 존엄성 훼손…원칙 벗어나 허용할 순 없어”

지난 2018년 형제복지원 사건을 조사한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와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은 박 전 원장이 수용자들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한 것이 위헌·위법이라고 지적했고,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은 박 전 원장에게 특수 감금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것이 법령 위반이라고 보고 비상상고했다. 비상상고란 확정된 형사 판결에서 위법 사항이 발견됐을 때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재심리를 제기하는 비상구제 절차다.

대법원은 “헌법의 최고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됐다”면서도 비상상고를 기각하며 박 씨의 무죄 판결을 유지했다. 1989년 당시 특수감금 무죄 판결은 부랑인을 마음대로 단속할 수 있도록 한 내무부 훈령과 훈령에 따른 행위는 처벌할 수 없도록 한 형법 20조가 근거가 됐다. 형사소송법이 정한 비상상고 이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기존 판례와 같은 맥락이다.

재판부는 “법원이 적법한 비상상고 이유에 관해 원칙을 벗어나 비상상고를 쉽게 허용한다면, 확정 판결의 확정력과 기판력(旣判力)에 토대를 둔 법적 안정성에 커다란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다만 “문제의 핵심은 단순히 ‘신체의 자유’가 침해됐다는 점보다 헌법의 최고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됐다는 점”이라며 “피해자 및 유가족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정부의 적절한 조치를 통해 피해자들의 아픔이 치유돼 사회 통합이 실현되기를 기대한다”고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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