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생활유산에 발목 잡힌 세운·수표지구 재개발

서울시, 세운3구역·수표지구 사업 전면 보류
“역사문화적 가치 있는 장소·산업생태계 파괴 우려”
일방적 결정 반발, “강제 철거 아닌 강제 보존될 수도”
“소프트웨어적 가치 생활유산, 하드웨어 보존” 지적
  • 등록 2019-02-14 오후 3:23:02

    수정 2019-02-14 오후 3:23:02

세운3구역 일대 전경. 사진=세운3구역 토지 등 소유자


[이데일리 김기덕 기자] “생활유산이 문화재라도 됩니까, 수십 년 간 시행착오와 사회적 합의를 통해 겨우 정비됐던 재개발 사업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건 도대체 누구의 머릿속에서 나온 겁니까?”

최근 기자가 만난 세운상가 상인은 다소 격앙된 반응이었다. 지난달 서울시가 세운상가 재개발 정비사업을 전면 중단하기로 한 것을 두고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며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역사문화적 가치를 위해 ‘보존’이라는 한마디를 던지자 갑자기 사업 계획이 확 틀어진 게 사실 아닙니까, 개발 추진에 따른 실익은 차치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행정을 하면 앞으로 어떻게 시를 믿고 사업을 추진합니까.”

서울시가 내세운 명분은 ‘생활유산’이다. 서울시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이어져 오는 시설·기술·업소 등이나 생활모습·이야기 등의 유무형 자산을 생활유산으로 지칭, 지난 2015년 역사도심기본계획에 기본 내용을 담았다. 이 과정에서 당시 현재 논란이 되는 세운3구역 내 을지면옥, 을지다방, 조선옥, 양미옥 등의 가게(老鋪) 뿐만 아니라 을지로 일대 한약방 및 노가리 골목 등을 생활유산으로 지정했다. 세운상가와 길 건너 있는 수표도시환경정비구역 내 공구상가도 기존 상인들의 이주대책이 미흡하고 급격한 산업생태계 훼손 등을 이유로 내세워 사업을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물론 생활유산을 포함하고 있는 역사도심기본계획은 법적 강제성이 없는 시 가이드라인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연말까지 실태조사를 벌여 생활유산이 법적인 요건에 맞을 경우 이를 강제철거가 안 되도록 ‘도시재정비촉진을 위한 특별법’에 포함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추후에 생활유산에 속한 가게의 상인들이 개발을 원하더라도 보존을 해야한다. 즉 일각에서 우려하는 ‘강제 철거’가 아닌 ‘강제 보존’이 가능해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미 사업시행인가 승인 신청을 한 수표도시환경정비사업도 오리무중인 상황이다. 계획대로라면 이 일대는 지하 5층~지상 24층 연면적 11만7813㎡ 규모의 대형 업무용 오피스 빌딩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하지만 서울시가 제동을 걸자 직접적인 인허가권을 가진 중구청은 상급기관인 시의 계획을 따르는 모습이다.

이번 사업 중단 논란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십억대 매출을 올리는 준재벌격인 부자 노포(老鋪)나 높은 보상과 개발을 원하는 토지주 등이 아니다. 비가 오면 물이 새고 제대로 된 소방환경도 갖춰지지 않는 등 척박한 환경에서도 월세를 내며 힘겹게 장사하는 상인들이다. 이들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과 이주 대책을 마련하지도 않고 사업 시행, 중단을 번복하는 서울시의 행정이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서울시 내부 관계자도 을지면옥과 같은 유명 음식점 건물 외관이 조형적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시 주장대로 해당 노포가 시민들의 추억과 맛, 삶의 흔적이 깃든 소중한 공간이라면 이를 그대로 옮겨주는 것도 방법으로 보인다. 오래된 노포였던 필동면옥이나 하동관이 새로 지은 건물로 이사를 한 후 여전히 문전성시를 이루며 장사를 하는 것을 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또 수표지구 내 공구상가의 산업생태계를 존속시키기 위해서라면 서울시가 직접 시행해 분양을 앞둔 인근 세운4구역 등으로 상가를 이전하는 것도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도시건축가 김진애 박사가 최근 라디오에서 “(서울시가)소프트웨어로서 보존할 가치가 있는 생활유산을 문화재와 같이 하드웨어 중심으로 보존하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발상”이라고 말한 것을 되새겨보길 바란다.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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