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전범 피해자 이학래 회장 별세..일제 징집돼 전범 몰려

태평양전쟁 B·C급 전범 중 마지막 한국인 생존 피해자
동진회 결성해 60년 넘게 일본 정부를 상대로 보상 요구
일본인으로도, 한국인으로도 보상을 받지 못해
  • 등록 2021-03-29 오후 6:20:51

    수정 2021-03-29 오후 6:20:51

동진회 활동을 일관해 지지하고 도와준, <적도에 묻히다>의 저자 우쓰미 아이코(內海愛子)와 함께 한 이학래 선생 (이미지출처=민족문제연구소)
[이데일리 성채윤 인턴기자] 태평양전쟁 B·C급 전범 중 마지막 한국인 생존 피해자로 알려진 이학래 동진회(同進會) 회장이 28일 향년 96세로 별세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이 회장이 지난 24일 자택에서 넘어져 머리를 다쳤으며, 외상성 뇌출혈로 숨졌다고 보도했다.

전남 출신인 고인은 지난 1942년 17세의 나이에 일본군 포로 감시원으로 징집돼 태국 수용소에서 영국인·호주인 포로를 감시하는 일을 맡았다. 종전 후 이 회장은 싱가포르 재판에서 B·C급 전범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태평양전쟁 관련 B·C급 전범은 상급자 명령 등으로 고문과 살인 등을 저지른 사람을 뜻한다. A급 전범은 침략전쟁을 기획·시작·수행한 지휘부가 해당한다.

이에 억울함을 주장해 온 고인은 옥중인 1955년에 B·C급 전범이 된 한반도 출신자들을 모아 동진회를 결성했다. 이후 징역 20년으로 감형돼 일본 도쿄 스가모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1956년 출소했다. 그를 포함해 당시 조선인 148명이 태평양전쟁 B·C급 전범으로 분류됐으며 이 중 23명이 사형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인은 억울하게 B·C급 전범으로 몰려 온갖 고초를 겪었지만, 일본인으로도, 한국인으로도 보상을 받지 못했다. 그는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하면서 식민지 출신이라는 이유로 일본 국적을 상실해 전쟁피해자 보상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렇다고 한국인으로서 보상을 받을 수도 없었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이후 일본 정부는 한국인에 대한 보상이 해결됐다는 입장을 견지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석방 후 고향인 전라남도로 돌아가려 했지만, 일제의 부역자라는 비난이 쏟아지자 가족들의 처지를 생각해 고국행을 포기하고 다른 한국인 전범 생존자들과 동진회를 결성해 60년 넘게 일본 정부를 상대로 보상을 요구해 왔다.

1991년 이 회장은 동료들과 함께 일제가 강요한 전쟁 피해자임을 인정받기 위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소해 최고재판소까지 갔지만 결국 기각됐다. 고인은 일본 국회가 종전 75주년을 맞이한 작년에도 한국 출신 전범 피해자들을 위한 보상 법안 처리를 일본 정치권에 호소하기도 했지만 결국 성과를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한국인 전범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법안은 2008년 처음 일본 중의원(하원)에 제출됐지만 심의가 이뤄지지 않아 폐기됐다. 가와무라 다케오(河村建夫) 자민당 의원이 간사장을 맡고 있는 초당파 모임인 일한의원연맹이 이 법안 제정을 지지하고 2016년에는 피해자 1인당 260만엔을 지원하는 법안을 마련하기도 했지만 역시 입법화에는 이르지 못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 등으로 작년 정기국회에는 관련 법안이 제출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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