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향하던 카메라렌즈, 왜 비운의 조각가로 돌렸나

PKM갤러리 '불멸의 초상: 권진규×목정욱' 전
BTS '타임' 표지촬영 포토그래퍼 목정욱
'근대조각 거장' 권진규 조각작품 촬영해
조각8점 사진32점 콜래보전…시공 접점
"테라고타 강렬한 눈빛 사로잡혀 앓기도
수백년 뒤 사진이미지 어찌 남을까 생각"
  • 등록 2021-12-07 오전 3:30:01

    수정 2022-02-04 오후 1:17:26

사진작가 목정욱이 서울 종로구 삼청동 PKM갤러리 ‘불멸의 초상: 권진규×목정욱’ 전에 나온 전시작을 배경으로 섰다. ‘한국 근대조각의 거장’ 권진규의 조각작품을 촬영한 사진작품과 그 모델이 된 조각작품을 함께 내건 콜래보 전시다. 앞쪽으로 권진규의 석고조각 ‘자소상’(1970s·왼쪽)이, 뒤쪽으로 목 작가의 사진 ‘자소상 그룹 연구 fig no.108’(2021)이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인생은 공(空). 파멸(破滅). 오후 6시 거사.’

굴곡 많은 삶이 이 한 줄에 접혔다. 51세의 천재 조각가가 서둘러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마지막 흔적이었다. 1973년 그날은 모처럼 그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고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 고려대 박물관에 ‘가사를 걸친 자소상’ 등 아끼던 작품 세 점을 넣고 천천히 둘러봤다고 했다. 오래 걸리진 않았나 보다. 서울 성북구 동선동 작업실로 돌아온 그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게 초저녁이었으니.

유독 그 죽음을 두곤 이야기가 무성했다. ‘한국 조각미술계의 절망적인 풍토를 견디지 못한 좌절’로 몰아가는가 싶었다. 몇십년이 무심히 흘러갔고, 그렇게 묻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뒤늦게 새로운 ‘단서’가 떠올랐다. 숱하게 새겼을, 수많은 조각품의 모티브였던 ‘사랑’의 행보를 드러낸 편지들이 공개된 거다.

권진규의 석고조각 ‘자소상’(1970s)을 옆에서 바라봤다. 그 뒤로 목정욱의 사진 ‘자소상 그룹 연구 fig no.131’(2021)이 어렴풋이 보인다. 바로 이 조각작품을 모델로 촬영한 사진작품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유가 무엇이든 그저 살아남은 자들의 입방정일 뿐, 가슴 아픈 서사는 덮어둔 채 그는 떠났고 작품만 남았다. 비극적인 초상을 뒤집어쓴 붉은 흙과 나무·석고 조각들이. 그런데 끝이 아니었나 보다. 어느 날 문득 그이의 작품과 자료 700여점이 대부업체의 담보물이 됐다는 기가 찬 소식이 들려온 거다.

조각가 권진규(1922∼1973). ‘한국 근대조각의 거장’으로 불리는 그다. “내가 만든 아이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했더랬다. 그 말처럼 한국과 일본 교과서에 수록될 정도로 작품세계는 독보적이었다. 표현은 절제됐고 질감은 거칠었다. 흙으로 만들어 가마에서 굽는 전통방식으로, 특히 실제인물을 모델로 한 테라코타 두상은 그이의 트레이드마크였다. 흔히 사용하지 않은 아주 오래된 방식을 꺼내든 그이는 이를 ‘한국적 리얼리즘’을 정립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눈을 맞추지 않은 채 무표정하게 허공을 응시하는 두상들은 반은 작가를, 반은 어느 여인을 닮기도 했다.

권진규의 테라코타 ‘자소상’(1968) 뒤로 권진규의 테라코타 작품을 재해석해 촬영한 목정욱의 사진 ‘자소상 그룹 연구 fig no.156, 154, 158, 150’(2021)이 나란히 걸렸다.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테라코타 두상은 권진규의 트레이드마크였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카메라 셔터로 정지시킨 ‘붉은 흙 예술혼’

빛도 없는 창고에 권진규의 조각상, 아니 그이의 ‘아이들’이 담보로 묶인 몸이 됐다는 스토리. 멀지도 않은 바로 지난해 세간에 알려진 그 먹먹한 얘기를 떠올린 건 이 전시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PKM갤러리가 연 ‘불멸의 초상: 권진규×목정욱’ 전.

권진규의 ‘비운’을 알았다면 목정욱(41)이 궁금할 수 있다. 미술이나 조각과는 연결이 안 돼 ‘혹시?’ 했다면, 그 ‘혹시’가 맞을 거다. 지난해 12월 ‘타임’ 특별판 표지에 실린 방탄소년단(BTS)을 촬영한 그 패션포토그래퍼 말이다. 전시는 목정욱이 카메라에 담은 권진규, 좀더 정확하게는 권진규의 조각작품을 촬영한 목정욱의 사진작품과 그 모델이 된 권진규의 실제 조각작품으로 꾸렸다. 1968∼1971년에 제작한 조각 8점에 2021년 제작한 사진 32점이 입체와 평면으로 어우러지며 시공의 접점을 시도한다. 다만 전시장에 올 수 없는 권진규를 대신해 목정욱의 짐이 두 배가 된 게 여느 콜래보 전과 다르다고 할까.

권진규의 석고조각 ‘자소상’(1970s) 뒤 양쪽으로 목정욱의 사진 ‘자소상 그룹 연구 fig no.31’(2021·왼쪽)과 ‘자소상 그룹 연구 fig no.31’(2021)이 보인다. 목 작가가 그룹샷으로 진행한, 이번 사진작업 중 가장 규모가 큰 두 점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6개월여간 작업했던, 엄청난 도전이었다. 내 시선이 개입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조각의 시선만 따를 수도 없는, 주관성의 처리가 큰 고민이었다.” 이제껏 작업과는 다른 결이던 이번 작품에 대해 목 작가는 이렇게 털어놨다. “권 선생의 테라코타 작품은 처음 봤는데 눈빛이 정말 강렬했다. 시선을 위로 향한 진취적인 그 눈빛이 사실상 이번 작업의 동기기도 했다. 몇십년, 수백년이 지난 뒤 사진 이미지가 어떻게 남을 건가를 가장 염두에 뒀다.”

셔터를 누르는 일이야 도가 트일 정도가 아니겠나. 그런 그를 멈칫하게 한 이유는 역시 모델이 된 자소상·자각상. 그 작은 두상을 여전히 팽팽하게 채우고 있는 생에 대한 절절한 갈망이었을 터. 그래서였나. 목 작가는 첫 촬영 뒤 흠씬 앓았다고 했다. “테라코타가 나를 계속 쳐다보는 것 같더라. 처음 겪은 경험이었고 그날 밤 많이 아팠다.” 결국 둘의 팽팽한 기싸움에서 목 작가가 물러선 건가. “사진이란 게 에너지가 전부라고, 내 에너지가 대상의 에너지에 묻어져 튀어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목 작가는 멋쩍게 웃었다.

사진작가 목정욱이 서울 종로구 삼청로 PKM갤러리 ‘불멸의 초상: 권진규×목정욱’ 전에 나온 자신의 작품을 배경으로 섰다. ‘자소상 그룹 연구 fig no.120’(2021·왼쪽)과 ‘자소상 그룹 연구 fig no.31’(2021·왼쪽)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충분히 이해한다. 그 조각들이 어찌 살아남았는가를 떠올리면 말이다. “작품 모두를 너에게 맡기고 간다”는 유언을 접한 동생 권경숙 씨와 유족에겐 그 작품을 지켜낼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 숙원이었다. 그 돌파구가 2015년 열리는가 싶었다. 권진규가 고교시절을 보낸 춘천의 한 기업에, 유족이 권진규미술관을 짓는 조건으로 작품 700여점을 40억원에 양도하면서. 그런데 미술관 건립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기업과 갈등을 빚던 유족은 결국 작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그 기업이 대부업체에 작품을 담보로 이미 40억원을 대출받은 사실이 드러난 거다.

자소상의 절절한 생의 갈망 읽어낸 패션포토그래퍼

먼 길을 돌아 작품들은 결국 유족품에 다시 안겼다. 대부업체 변제금 40억원을 유족이 대신 지급하는 조건으로 700여점을 되찾은 거다. 이후 작품들은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는 형태로 정리가 됐다. 전시에 나온 8점 중 2점은 지난 7월 유족(권진규기념사업회)이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한 141점 중에서 대여해 온 것이다. 어찌 보면 이번 콜래보 전이 내년 서울시립미술관이 열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전의 마중물 격인 셈. 이후엔 미술관에 유족이 꿈에도 그리던 ‘상설전시공간’도 생긴다.

목정욱의 사진작품 ‘자소상 그룹 연구 fig no.116’(2021·왼쪽)과 ‘자소상 그룹 연구 fig no.9’(2021). 목 작가는 “처음 본 권진규의 테라코타 작품에서 눈빛에 압도당했다며 그 에너지를 어떻게 옮겨낼지 고민이 컸다”고 말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그런데 여기 ‘잘나가는’ 패션포토그래퍼는 왜 굳이 옛 거장의 흔적을 좇아 카메라를 들이대게 됐을까. 보그·엘르·하퍼스바자 등 국내외 패션잡지도 모자라 엑소·블랙핑크·아이유 등이 줄을 대고, 프라다·디올코스메틱·아디다스 등 브랜드가 러브콜을 연신 보내댄다는 그가 아닌가.

전시에는 의도가 있다. 우선 근대의 권진규와 현대의 세대가 교감하는 에너지를 찾고 싶었단다. 박경미 PKM갤러리 대표는 “대중적인 영역이 좋겠다고 했고, 그중 가장 가깝게 소통할 매체인 사진이 좋겠다 했다”며 시작을 떠올렸다. 그렇게 “인물사진, 특히 남성을 모델로 국내서 탁월한 기량을 발휘하는 목 작가가 제격”이라고 판단했다는 거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 남성이긴 하다. 자소상·자각상 6점에 예수상·불상 2점까지. 결국 의도대로 됐다. 곁에 서기도, 마주보기도 한 그들끼리 먼저 긴 이야기를 시작한 듯하니. 전시는 28일까지.

권진규의 조각 ‘십자가 위 그리스도’(1970s·오른쪽)와 목정욱의 ‘십자가 위 그리스도 연구 fig no.51’(2021). 생전 권진규가 어느 교회로부터 의뢰받아 제작했다는 작품은 정작 구입을 거절당했을 만큼 거칠고 남루하다. 목 작가는 이 조각작품을 두고 외현보다 내면이 더 거친 사진작품을 만들어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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