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 위기엔 맷집이다 예술도 그렇다

  • 등록 2020-03-16 오전 12:35:00

    수정 2020-03-16 오전 12:35:00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지난 주말 오후 서울 인사동. 드문드문 행인이 보인다. 총총히 걷는 그들의 목적은 ‘여기가 인사동’인 것과는 멀어 보인다. 그저 ‘빨리 통과할 길’인 듯하니까. ‘코로나19’가 부른 ‘사상 초유의 기록’이 한두 가지겠는가마는 이 또한 만만치 않다. 수십년 전 ‘인사동 예술거리’가 형성된 이래 가장 저조한 방문객. 맞다. 이런 적은 없었다. 한산하다 못해 적막한 거리를 걸어 만난 한 화랑 대표는 고개부터 가로젓는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느냐는 제스처다. 그 속에 품은 덩어리가 어느 정도일지 감히 안다고 할 수가 없다.

코로나19 탓만은 아니다. 이미 지난해 말 미술시장(‘2019년 미술시장실태조사: 2018년 기준’)은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았던 터다. 2013년 3249억원으로 바닥을 친 뒤 서서히 상승하며 ‘5000억원 눈앞!’이란 희망이 단숨에 꺾였으니. 전년(4942억원) 대비 9.3%가 떨어진, 작품거래액 4482억원으로 미술시장은 시계를 4년 전으로 되돌렸다. 특히 화랑가의 타격이 컸다. 1954억원으로 전년(2447억원) 대비 20.1%가 빠졌으니. 2000억원 아래로 하락한 것 역시 2013년 이후 처음이다.

사정이 이러니 올해 시작이 어땠겠는가. 비장한 출발이 아니었겠나. 그 첫발에 바이러스가 깔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 개점휴업이 아니라면 개시도 못한 상황. ‘엎친 데 덮친 격’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거다. 최근 한국화랑협회가 코로나19로 인한 피해액 산출조사를 해봤더니 한 달 남짓 한 화랑당 평균 3000만∼4000만원 수준인 것으로 집계됐단다. “생계가 막막하다”는 엄살이 아니었다.

문화예술을 ‘먹고사는 일’에서 자주 빼놓는 건 부당하다. 먹고사는 일이 맞으니까. 혼자 즐기는 도구가 아니지 않은가. 그림 그리고, 그림 파는 일로 누군가는 ‘연명’을 한다. 그러니 이제 지상명령은 위기탈출이 됐다. 어차피 누가 더 힘든가를 재는 데 그칠 게 아니라면 말이다. 다만 어떤 예측도 할 수가 없다. 사태가 해결돼도 예전 같은 작동능력이 생길지도 의문이다. 그저 한 가지 기댈 건, 도약은 위기를 밟고 오더란 거다.

긍정의 신호 몇몇이 잡히긴 한다. 우선 그간 닦아놓은 IT기량을 제대로 ‘써먹고’ 있다.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던 ‘온라인 공연’ ‘온라인 전시’ 등이 요즘 본연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철저하게 아날로그식이던 문화예술계에 ‘대안의 경제학’이 비로소 틈을 냈다는 뜻이다. 지난 13일 한국화랑협회와 서울옥션이 공동주관한 ‘코로나 피해돕기 온라인 자선경매’ 역시 뜻깊은 시도라 할 터. 작가 김창열·도성욱·사석원·이강소·최병소 등의 작품도 작품이려니와, 6억 3000만원을 모은 출품작 73점이 ‘100% 낙찰’된 일은 미술품 경매에선 거의 없는 경우. 게다가 말이다. 화랑과 경매사는 서로 ‘가까이 할 수 없는 당신’ 사이가 아니었던가. 말로만 ‘온라인’, 말로만 ‘상생’을 외치던 미술계가 진짜 절박한 카드를 뽑아 시험대에 올린 셈이다.

위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다음 단계에 드러난다. 상흔의 크기 문제가 아니다. 면역의 강도 문제란 얘기다. 맷집이 생겼다면 두들겨 맞은 게 절망만은 아닐 거다. 바이러스보다 더한 전쟁 중에도 붓은 움직였다. 한국현대미술이 단단해진 건 한국전쟁에서 살아남으면서다. 비바람에 가지 하나 내주지 않고 버티고 선 나무가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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