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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층분석] "부동산 환상 버리고 현금비중 높여야"
  • [노컷뉴스 제공] "전체 자산 중 현금 비중을 높여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리세요."(김해식 우리은행 PB팀장)"무주택자는 내집 마련 준비하세요. 값싼 급매물이 쏟아질 겁니다."(심영철 웰시안닷컴 대표)물가는 뛰고, 금리는 치솟고, 주식시장은 좀처럼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이 같은 낯선 상황에서 어떻게 재테크를 해야 할지 막막해하고 있다. 실제로 은행과 증권사 상담 창구에는 고물가 시대의 자산 투자법에 관한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 고(高)물가·고(高)금리·증시침체기의 신(新)투자지도는 어떻게 그려야 할까? 재테크 전문가들은 "요즘처럼 재테크 환경이 나쁠 때는 부동산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현금 비중을 높여 원금을 지키고 손실을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충고했다. ◆현금을 확보하라물가가 계속 뛰는 인플레이션 시대에는 실물 자산에 투자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실제로 1970년대 오일 쇼크 당시, 병풍·절구통 같은 골동품값은 10배 이상 치솟았다. 그림과 피아노, 도서전집 사재기 현상도 극심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현 시점은 1970년대와는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정봉주 기업은행 부동산팀장은 "과거와 달리, 물가 급등 속에 경기침체가 예상되기 때문에 부동산이나 그림, 골동품 등의 가격 상승이 예전만큼 크진 않을 것"이라며 "욕심 내지 말고 예금 등 현금성 자산에 투자해 적절한 수익을 내면서 재테크 '보릿고개'를 넘어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해식 우리은행 PB팀장도 "부동산, 주식, 채권 등 모든 자산 가격이 동시에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며 "수익을 불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손실을 최소화하고 원금을 지키는 전략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올 상반기(1~6월) 국내 주식형 펀드(-12.1%), 해외 주식형 펀드(-17.9%)는 밑지는 장사를 했고, 아파트(3.1%), 채권(2.61%) 등도 5% 안팎의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실질 수익률은 마이너스(-)였다. ◆눈높이를 낮춰라전문가들은 자산 가격이 급변하는 시대에는 떼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버리고 원금을 지키면서 손해는 보지 않을 정도의 안정적인 투자를 권한다. 전 세계가 지난 수년간에 걸쳐 저물가·고성장이란 풍요로움을 누려왔기 때문에 거품 붕괴 과정도 상당히 오래갈 수 있다는 예상 때문이다. 김종석 우리투자증권 부장은 "일단 현금 유동성을 확보해 관망하다 미국 신용위기 해소와 국제 유가의 방향성 등을 확인한 뒤 눈높이를 낮춰 움직이라"고 조언했다.이에 반해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처럼 지금이 투자 적기라는 의견도 있다. 고규현 삼성증권 팀장은 "주식은 향후 1~2년 정도 지지부진할 수 있지만 주요 주식투자층인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하는 시기인 2015년까지는 대세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집 마련 기회 노려라내집 마련을 앞둔 실수요자들에겐 기회가 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조재영 삼성생명 팀장은 "지금보다 훨씬 싼 값에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올 테니 현금을 확보하고 준비하라"고 말했다. 다만 집값 급등을 기대하면서 은행 대출을 많이 끼고 매수하는 전략은 피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CMA(종합자산관리계좌) 증권사·종금사 등에서 판매하는 금융상품으로 국공채 등의 채권에 투자한 뒤에 그 수익을 고객에게 돌려준다. 은행의 정기예금과 달리 수시로 입출금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며, 수익률은 정기예금보다 약간 낮은 연 5~5.45% 수준. MMT(특정금전신탁), MMF(머니마켓펀드) MMT는 은행에서 팔며, 금융회사의 발행어음이나 초단기자금(콜자금) 대출 등에 투자한다. 당일 입출금이 가능하며, 수익률은 연 5% 수준. 은행과 증권사에서 판매하는 MMF는 투자 대상과 수익률에선 MMT와 비슷하나 당일 입출금은 안 되며 익일 입출금이 가능하다. ELS(주가연계증권), ELF(주가연계펀드)ELS는 개별 주식의 가격이나 주가지수와 연계해 수익률을 결정하는 파생 금융상품. ELF는 이 같은 ELS 상품들에 투자해서 운용하는 펀드를 말하며, 은행·증권사 등에서 판매한다. 이들 상품은 전체 주가가 떨어지더라도 일정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설계돼 있지만, 상승장에선 주가가 오른 폭만큼 수익을 올리기 힘든 단점이 있다.
김태희, '자체발광' 울산소녀...이기적유전자
  • [화제만발! 3高 스타①]김태희, '자체발광' 울산소녀...이기적유전자
  • ▲ 연예계 '엄친딸'의 대표로 꼽히는 배우 김태희[이데일리 SPN 최은영기자]'외모 되고, 머리 되고, 집안 되고...' 연예계 일명 '엄친아, 엄친딸'들이 새삼 화제다. 최근 선보여진 조선소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내 여자'에서 뜬금없이 출연진 명단에도 없는 강동원이 주인공보다 더 큰 화제를 불러 모으면서부터다. 강동원은 이 드라마의 제작을 지원하는 모 조선소의 계열사 고위급 임원 아들이란 사실이 밝혀지며 한동안 잠잠했던 연예계 '엄친아, 엄친딸' 열풍에 다시금 불을 지폈다. '엄친아' '엄친딸'은 엄마 잔소리의 기준이 되는 엄마 친구 아들과 딸을 빚댄 신조어다. 최근에는 학벌, 얼굴, 집안 등의 삼박자를 두루 갖춘, '완벽한 조건의 젊은이들'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빛나는 외모에 곧은 심성, 좋은 학벌, 재력가 부모 등은 말 그대로 뭐든 잘난 '엄마 친구 아들, 딸'의 필수조건으로 꼽힌다. 연예계 엄친딸의 대표로는 연예계 최고 학벌과 미모를 자랑하는 배우 김태희를 첫 손에 꼽을 수 있다. 김태희는 서울대 의류학과를 졸업, 패션 잡지 모델로 연예계에 첫 발을 내딛었다. 작은 얼굴에 큰 눈, 오똑한 코, 탐스러운 입술까지, 데뷔 당시 김태희의 완벽한 외모는 대중의 시선을 잡아끌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최고학부라는 서울대 간판까지 더해지면서 김태희는 대한민국 대표 '알파걸(엘리트집단 여성)'로서의 명성을 이어갔다. 사실 이런 김태희의 자질은 어려서부터 빛이 났다. 김태희는 데뷔 전 이미 출생지인 울산 지역에선 나름 주목 받던 인재 중의 인재였다. 고향 울산의 명문 울산여고를 나온 김태희는 고교시절 늘 수석을 다툴 정도로 성적이 좋았다. 게다가 김태희의 빼어난 미모는 중고등학교에 이어 서울대 재학시절에도 '학교 내 전설'로 꾸준히 회자되곤 했다. 게다가 '있는 집안의 딸'이라는 수식어는 사람들로 하여금 '김태희'에 더욱 주목하게 했다. 김태희의 부친은 울산 지역에서 모 운송업체를 운영 중인 대표이사다. 한때 태권도협회 부회장직을 겸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려서부터 예쁘장한 외모에, 남부러울 것 없는 사장 딸, 공부까지 잘하는 김태희를 부러워 하는 사람들은 한 둘이 아니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엄친딸'의 조건을 타고난 셈이다. '초록동색'이라 했던가. 김태희의 '엄친딸' 이력은 그녀의 '엄친아' '엄친딸' 친구들로 인해 더욱 빛이 난다. 김태희는 울산 대현중학교 시절엔 '엄친아' MBC 오상진 아나운서와 쌍벽을 이루며 교내 인기를 주도했고, 또 다른 '엄친딸' 서울대 동기 이하늬와는 교내 같은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데뷔 전부터 친분을 쌓아온 사실이 알려져 네티즌들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관련기사 ◀☞[화제만발! 3高 스타③]'우리는 유학파'...이필립&이지아, '태사기' 엄친남매☞[화제만발! 3高 스타②]강동원, '엄친아 3박자'에 '좌우뇌 동시 발달' 축복☞[화제만발! 3高 스타⑤]'원조 엄친아 빅3', 이서진-윤태영-한재석☞[화제만발! 3高 스타④]이하늬, '지덕체+진선미' 갖춘 미인에 집안까지 특별☞'태사기' 이필립 '가족사(史)신기'...가족 4명 美 조지워싱턴대 동시 졸업
2008.08.06 I 최은영 기자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년대를 풍미한 외식업계의 풍운아
  •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년대를 풍미한 외식업계의 풍운아
  • [이데일리 EFN 이덕철 객원기자] 먼지가 적당히 쌓인 옅은 밤색 007가방을 서재 창고에서 꺼낸다. 꽤 오래된 듯하다. 20여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가방이다. 그리고는 한참을 생각에 잠긴 듯 응시한다. 이내 찰칵찰칵 비밀번호를 돌린다. 번호를 잊어버렸는지 아니면 잘못 돌렸는지 다시 시도한다. 덜커덩 소리를 내며 드디어 가방이 속을 드러낸다. 리비아 현지에서 국내로 송금한 돈의 기록표들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만감이 교차한다. 손의 움직임은 분주해지고 이것저것 뒤진다. 그리고는 이내 감회에 젖은 듯 말이 없다. 눈가의 고요에 잠시 물기가 얹힌다. 사업실패로 쫓기 듯 열사의 나라 아프리카 리비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때가 언제였던가. 당시의 아픈 기억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007가방 하나 달랑 들고 20대 중반에 무작정 떠나왔던 리비아. 돼지갈비와 함흥냉면으로 한때 외식업계의 살아있는 신화로까지 불린 (주)이학면옥 윤희원 대표(51)의 성장통의 한 페이지다.  그리고 이 가방에는 오늘의 성공키워드를 제공한, 두차례에 걸친 리비아 3년의 흔적과 사연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가끔씩 그는 스스로 나태해졌다 싶을 때마다 가방을 꺼내보곤 한다.  그는 지금 조용한 신도시인 인덕원 부근의 대지 1421.49㎡(430평) 저택에서 거주하고 있다. 10년 전 똥창(?)이 맞는 친구와 공기 좋고 경치 좋은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가맹점이 아닌 직영점으로 16개의 대형매장을 운영하며 외식업계의 기린아로 떠오를 때 이곳에 들어왔다. ◇ 전성기 시절 직원만 550여명 10년 전의 전성기 시절, 점포 전체 매출액이 200억원대를 넘나들 정도였다. 이학면옥 본점과 본사가 있는 인천 연수구의 대지 2281㎡(690평)에 연건평 3305.8㎡(1800평)인 3층 건물도 그의 소유다. 현재 그는 사업의 내실화를 위해 점포들을 정리하고 남은 직영점 6개를 운영하고 있다. 무서운 기세로 점포확장에 나섰던 전성기 시절에는 직원만 550여명이었다. 30대 후반에 일찌감치 외식사업으로 대성공을 거둔 그다. ◇ 16살때 심야 완행열차타고 서울행 감행 “괜찮을까” “괜찮을 꺼야” “혹시 잘못되는 것은 아닐까” “ 그렇지 않을 꺼야” “언제쯤 도착하지” “조금 있으면 도착하지 않을까” “서울은 무서운 사람들도 많다는데” “태연하게 자세를 잡아야 돼, 겁먹은 표정을 하지말고” 15~16세 쯤 되어 보이는 까까머리 두 소년의 표정에 불안한 그림자들이 가득하다. 겁을 잔뜩 먹은 얼굴이기도 하다. 두 소년은 연신 통로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쳐다보며 말을 주고받는다. 전남 나주에서 용산역으로 가는 완행열차에 몸을 실은 두 소년의 머리속에는 고향이 멀어질수록 부모 형제들의 얼굴이 더욱 또렷해져 가고 있었다. 1973년 6월 29일 16살 중학생이던 윤희원 대표는 친구와 가출해 야간완행열차를 타고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8남매의 5째인 그는 잎담배 농사를 짓는 부모님 돈 10만원을 슬쩍 해 서울행을 감행한 것이다. 집안은 6611.6㎡(2000평)이 넘는 잎담배 농사를 지어 그리 곤궁한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워낙 많은 형제자매들과 많은 농사일로 어린나이의 그는 힘에 부쳤고 늘 배가 고팠다. 늘 쌀밥을 배불리 먹는 게 꿈이었다. 그는 학창시절에도 ‘짱’노릇을 주로 해 왔다. ◇ 사회에서 받은 첫 월급 3000원 받고 감회 이런 기질은 훗날 그가 외식사업에 뛰어들면서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대범하게 처신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일까. 어린 나이에 생면부지의 도시인 서울로 가출을 감행하는 용기를 발휘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한 12시간 쯤 달려왔을까.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용산역이었다. 두 소년은 고향에서 사전정보로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직업소개소 안으로 냉큼 들어선다. 그리고 그날 용산역 인근에 있는 평양냉면집에 취직한다. 사회를 알기에는 어린 나이에 사회인으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그가 사회에서 받은 첫 월급 액수는 3000원이었다. “먹는 장사로 반드시 성공해서 돌아가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식당에 취직해서 쌀밥을 배불리 먹고 싶었다. 평양냉면집에 취직해서 받은 첫 월급 3000원은 나에게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지하철 4호선 인덕원역에서 하차해 마을버스로 약 10분쯤 가 ‘주공 4단지’에 내리니 윤 대표가 마을버스역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아침식사를 자기 집에서 하자고 해 그의 집으로 가는 길이다. 만난 지 이번이 두 번째인데 자기 집에서 식사를 하자니 좀 당황스러웠다. 저녁도 아니고 아침을 같이하자니 보통 친하지 않으면 청하기 어려운 일이 아닌가. 그랬다. 그는 사람냄새 폴폴 나는, 꾸미지 않은 소박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외식업계에서 크게 성공한, 작은 거인답지 않게 수수하고 온정적이다. 그의 키는 162센티미터로 작다. 외식업계의 ‘오뚜기’, ‘등소평’이라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투박하나 정겨움이 물씬 묻어나는 얼굴에 격의 없는 미소를 ‘씩’하고 띠우면 부처상이 따로 없다. 주변에 사람이 많이 몰리는 이유도 그가 나대지 않고 겸손하며 주위 의견에 경청을 잘하기 때문이다. 그의 눈빛이 그의 시골틱한(?) 외모에 견줘 형형한 이유는 사물에 대한 깊은 관조의 힘이 녹아있어서다. 이해와 배려는 그의 사람사는 방식이다. 그의 오늘을 만든 강철 같은 의지와 배포 그리고 일벌레 습성이 후덕한 인상과 버무려지면서 그만의 독특한 이미지로 살아난다.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라고 주변에서 말한다. 그의 집을 방문하게 된 필자에게 리비아에서의 3년을 이야기 하면서 감정이 살아났는지 그 당시 가지고 갔던 007가방을 찾아가지고 왔다. ◇ 정겨운 모습에서 형형한 눈빛이 주는 관조의 미학 그를 리비아로 가게 만든 사연은 무엇일까. 16살에 서울 생활에 들어간 그는 부지런함과 성실함으로 단박에 주인의 눈에 든다. 아침 6시에 기상해 하루에 70~100 군데를 배달하고 나서도 저녁에는 틈틈이 요리를 배웠다.  힘은 들었지만 일 벌레 습성이 그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주인이 아예 혀를 내두를 정도로 요령을 피우지 않았다. 저녁에 문을 닫으면 혼자 식당 안을 깨끗이 청소도 했다. 훗날을 대비해 요리법도 어깨너머로 계속 익혔다. 이런 그를 보고 주인이 인심 쓰듯 한마디 던졌다. “지금까지 우리 식당에 일하러 온 많은 사람들 중에 너같이 일 잘하는 놈은 처음 본다. 나이도 어린데 정말 부지런하고 열심이다.” 그러나 1년쯤 되어갈 무렵 그는 가슴에 상처를 받고 자리를 옮긴다. 매장에서 분실한 돈 4만원의 범인으로 몰린 것. 물론 나중에 아니라는 게 밝혀졌지만 그는 더 이상 근무할 의욕을 잃었다. 자리를 옮겼다. 종로에 있는 한식집 ‘한일옥’에서도 그의 진가는 여실히 드러났다. 심지어 주방장이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하자 어린 나이에 주방장을 겸하게까지 된다. 한마디로 그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다. 일찌감치 될성싶은 나무로 주변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도 그는 주인으로부터 한마디를 듣게 된다. “이 다음에 나이가 들면 진짜 잘 살 것이다.” 그는 이 한마디를 가슴에 묻었다. 그리고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 결심한다. 의지력은 그의 오늘을 만든 동력이다. 어린 나이에 일찍 배운 담배를 18살 때 끊고 지금까지 금연을 한것이라 든지, 2전3기 끝에 오픈한 이학면옥 1호점부터 5~6년 동안을 1000원짜리 한 장 허투루 써 본적이 거의 없다라든지 서초 2호점을 오픈하고 나서 6개월 만에 3억원을 까먹고도 의연하게 대처한 것 등은 오늘날 그의 성공이 얼마나 자신을 갈고 닦으면서 이뤄진 것인가를 잘 대변해 준다. ◇ 세 번째 직장 ‘감미옥’에서 7년 보낸후 첫 가게 18살이 되던 해, 그는 세 번째로 자리를 옮긴다. 종로 4가에 있는 설렁탕 전문 음식점 ‘감미옥’이 그 곳이다. 작은 가게의 주방장 월급 수준인 2만5000원을 받았다. 3년 만에 월급이 8배로 뛰었다. 자신의 상품성을 키워놓은 것이다. 직원 30여명 중에서도 조리, 관리, 직원간 화합 등을 두루 잘하는 몇 안되는 직원으로 꼽혔다. 당연히 일 잘한다는 칭찬에 이어 “월급을 줘도 돈 안 아깝다”는 말까지 덤으로 들었다. 그는 어린 나이부터 ‘세상은 자기하기 나름’이라는 철학을 몸에 새기고 있었던 듯하다. 지금도 그는 주변 외식인들에게 “장사가 되고 안 되고 하는 것, 또 직원들이 자주 나가는 것 등은 모두 업주한테 책임이 있다”고 설파한다. 감미옥에서의 근무는 군대를 갔다 와서도 계속돼 모두 7년간 머물게 된다. 윤 대표는 이 시기 스스로 식당을 운영해 보고픈 유혹에 빠진다. 그는 군대 제대 후 1년 6개월간 500만원짜리 적금을 붓는다. 월급 25만원 중 24만6000원을 다 적금에 부었다. 한번 마음먹으면 해내는 의지력이 아닌가. 드디어 1981년, 서울로 뺑소니치듯 가출한 지 10년이 다 될 무렵인 25살의 나이에 가게를 오픈한다. 종로4가 서울극장 뒤편 생선구이 골목에 500만원을 투자해 생선구이 가게 ‘청송집’을 33.06㎡(10평) 규모로 문을 열었다.  그러나 직원으로 일하는 것과 직접 경영을 하는 것은 달랐다. 경영에 대한 경험부족은 관리부재로 이어졌고 외지에서의 외로움을 고향친구들과의 잦은 만남으로 달래다가 결국 식당일에 소홀해졌다. 매일 술 마시고 노는 게 일일 정도였다. ◇ 친구와 술 그리고 경험부족으로 8개월만에 손들어 결국 8개월 만에 가게를 넘기고 손을 털었다. 리비아행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그는 재기의 사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리비아로 향한다. 해외건설현장의 주방장으로 취직해 2년 동안 근무했다. 여기서 저축한 사업자금 3000만원으로 29살에 82.65㎡(25평) 규모의 두 번째 음식점을 방배동 부근에서 개업했다. 일명 기사식당이다. 그러나 ’86서울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개최로 택시 2부제가 시행되면서 손님들이 감소하기 시작하고 종전과 마찬가지로 친구와 술에 의지하면서 서서히 내리막길을 달리기 시작, 결국 가게를 팔게 된다. 1년을 두문불출했다. 어떻게 마련한 자금으로 창업한 가게인데 너무 허무하게 무너졌다는 자괴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책과 자학으로 스스로를 고문했다. 결국 가게를 넘겨주고 남은 돈도 1년이 지나자 다 떨어졌다. 그는 지인에게 150만원의 빚을 내 다시 리비아로 향한다. 장사의 실패와는 달리 인간적인 신뢰감은 지인들에게 여전히 잃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신에 대한 원망으로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들었다. 그러나 윤 대표는 두 번째 리비아 행에서는 자신을 완전히 180도 바꾸기로 결심한다. 지나친 온정주의나 술에 대한 집착 그리고 노름 같은 것들을 완전히 그의 몸에서 떼어내기로 한 것이다. 2년 계획으로 간 리비아 2차행은 회사 내부 사정으로 1988년 한 해만 보내고 1989년 초에 귀국했다. 그가 손에 쥔 사업자금은 이리저리 떼어내고 남은 500만원 가량이었다. 1989년 2월 세 번째 가게를 방배동에 오픈했다. 물론 부족한 자금은 지인들에게서 융통했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가 70만원이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곧 신뢰로 통했다. 어려울 때마다 주변에서 그를 도와주는데 주저하지 않는 이유다. ◇ 두 번의 리비아행 자신을 송두리째 바꾸고 돌아와 그가 보여준 진실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서울 방배동에 실평수 115.7㎡(35평)의 ‘이학숯불갈비’를 오픈했다. 오늘날 이학면옥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이었다. 대박이었다. 돼지갈비 1인분이 2500원이었다. 하루 잘 팔면 30만원정도 쯤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뚜껑이 열리자 매출 40~50만원은 손쉽게 올렸다. 시간이 흘러가자 70~80만원을 넘어 최고 140만원까지 매출이 올랐다. 1년만에 8000만원의 수입이 들어왔다. 더 큰 가게가 필요했다. 때마침 운영하고 있는 가게터 옆에 신축건물이 들어섰다.  1년만에 규모가 두배 정도인 218.18㎡(66평) 가게로 1990년 3월에 옮긴다.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가 210만원으로 지출비용은 종전의 3배였다. 하지만 영업은 계속 승승장구했다. 1993년 서초 2호점을 오픈할 때까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로 바삐 움직였다. 장사에 자신이 붙었다. 826.45㎡(250평) 규모로 서초동에 2호점을 과감히 오픈했다. 그의 인간성과 능력을 믿은 친구 5명이 신용대출해 준 자금으로 개업했다. 그러나 여기서 그는 참담한 패배를 맛본다. ◇ 이학면옥 1호점의 대박 … 서초 2호점서 3억 빚 져 입지선정의 잘못으로 6개월 만에 문을 닫게 된 것이다. 인테리어 비용 등 3억원의 빚도 떠 안았다. 이제 좀 일어서나 했는데 암초를 만난 것이었다. 세 번째 위기였다. 그러나 그는 태연했다. 아니 태연한 척했다. 복구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통 큰 배포는 이렇듯 위기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이학면옥 서초 2호점의 실패로 무려 3억원의 빚을 떠 안게 되자 집사람이 나보다 더 불안해했다. 심지어 나보고 그 큰 금액을 날렸는데 몸무게가 1킬로그램도 안 빠진다고 놀랄 정도였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어찌할 도리가 없지 않겠는가 생각했다. 다만 이를 복구할 대안을 찾으려고 무진 노력했다.” 기회를 엿보고 있던 그는 1994년, 50년만에 찾아 온 최고의 무더위에 관심을 갖는다. 그는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했다. 무슨 음식이 무더위를 날려줄 것인가. 윤 대표는 냉면으로 시선을 돌린다. 1994년 5월 시흥대로변에 이학면옥 시흥 3호점, 그리고 7월에 목동 1호점이자 전체 4호점을 잇따라 오픈했다. 선풍적인 인기였다. 그의 안목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매장 앞면을 통유리로 깨끗하게 단장해 오픈한 점포에서는 한 그릇 4000원의 냉면이 22개 테이블에서 1000만원어치가 넘게 팔려나갔다. 줄을 길게 서서 기다리는 것이 예사였다. 기다리는 사람의 줄이 너무 길다보니 손님이 매장에 들어와서 먹고 나가는 시간 10분도 채 되지 않는 형국이 발생하곤 했다. 3억원의 빚은 1년 안에 다 해결했다. 그리고 그는 여기서 여세를 몰아 직영점체제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한다. 1995년도 부평 계산 5호점, 수지 6호점, 중동 7호점, 인천 만수 8호점, 1996년도 목동 2호점/ 9호점, 중동 2호점/10호점, 송파 11호점,  1997년도 인천 연수 12호점, 일산 13호점, 인천 부평 13호점, 요인 신갈 14호점, 1999년도 군포 산본15호점, 목동 3호점/16호점, 발산 17호점, 간석 18호점 등을 잇따라 오픈하면서 외식업계의 풍운아로 급부상한다. ◇ 대형직영점 18호점까지 90년대 잇따라 오픈 그리고 2002년 말 인천 연수동에 2281㎡(690평) 대지, 연건평 5950.44㎡(1800평)에 이르는 3층짜리 대형 건물을 구입해 이학 두부사랑, 이학수산, 이학면옥 등 3개의 이학식당들을 오픈시켰다. 대신 그는 점포정예화를 위해 6개 점포만 남기고 정리하는 결정을 단행한다. 그의 점포들은 큰 대로변에 주로 입지해 있다. 공격적 마케팅으로 당시로서는 선구자격이었다. IMF가 오기 이전인 1997년 전후가 최대 부흥기였다. 그의 나이 40세에 불과했다. 이 당시 전 매장 연매출액이 거의 200억원대에 이르렀다. 국내 토종브랜드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또한 종업원 수도 한 때 550여명에 달해 동종 경쟁업소들을 압도했다. 당시 외식업계로서는 가공할 숫자였기 때문이다. 그의 영엉방식은 줄건 다 주고 받을 건 받는 식이다. 고급식재에 후한 인심을 얹히고 가격은 제값을 받는 식이다. 저렴한 식재에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하는 방식을 거부한다. 그러나 잘 나가던 이학면옥도 최대의 시련기에 봉착하게 된다. 바로 광우병 파동이다. 매출이 곤두박질치다 못해 여태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적자 상태까지 가기에 이른 것이다. 돼지갈비로의 전환과 마케팅강화로 어렵게 광우병터널을 빠져나왔다. ◇ 직원교육에의 열의와 관심 그의 오늘을 만들어준 비결중 하나는 교육에의 관심이다. 한참 사세가 뻗어 나가던 1997년도를 전후해 매년 우수사원 7~10명을 선발하여 외국에 보내 선진 음식문화를 배우도록 했다. 직원들의 서비스 개선과 음식문화에 대한 개념 등을 일깨워 주기위해서다. 지방의 음식축제, 김치축제 같은 곳에도 직원들을 수시로 파견해 다양한 음식조리법을 손님들에게 선보이도록 했다. 또 유명식당이나 세미나 등에도 직원들을 보내 공부와 함께 의식을 깨우치도록 하는데도 무척 신경 써 왔다. 그가 교육비를 아끼지 않는 이유는 이렇다. “교육비를 들여 직원들의 자질을 높이게 되면 본인들도 좋고 또 교육을 받은 입장에서 회사에 감사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일하게 돼 일거양득이다. 교육비에 대해 아깝게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투자한 것에 비해 효과가 더 크다.” 그는 외식사업을 통해서 얻은 이익을 사회의 어려운 이들에게 돌려주는 데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연수구의 미화원, 양로원의 노인들, 소년 소녀 가장들을 초청해 음식을 대접하고 있으며 그가 직·간접적으로 어려운 이들을 위해 사회단체에 기부하는 경우도 여러번이나 된다. ◇ 호텔사업이 최종 목표 ‘60살 안으로 해결되겠지’ 희망 올해로 그가 외식업에 들어온 지 35년이 된다. 외식업을 무엇보다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그다. 장사를 해서 좋고 배고픈 사람에게 좋은 음식을 주어서 보람 있고 돈을 지불하면서도 인사하고 가는 그런 직업이 따로 없다는 것.  그의 앞으로의 꿈은 호텔을 짓는 것이다. 어릴적 꿈인 음식점은 후회가 없을 정도로 해보았고 이제 호텔을 가지는 두번째 꿈이 남아있다. 6611.6㎡(2000평) 대지위에 20층 규모가 목표다. 그 시기는 60세쯤이 되지 않을까 싶다. [ 도움말 : 월간 외식경영 ]
2008.07.24 I 객원 기자
  • 부동산 정책 `컨트롤 타워`가 없다
  • [이데일리 좌동욱기자]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방향타를 잃은채 부처간 조정에도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재건축이나 대출·세제 규제 등 민감한 부동산 정책에 대해 소관부처들은 물론 당과 부처가 각각 다른 목소리를 내기 일쑤다.  장·차관이나 당 대표가 구체적인 내용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규제완화 방침을 공개적으로 밝혀 부동산 시장심리만 불안하게 만드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 때문에 부동산 정책에 대한 컨트롤 타워가 없어, 정부가 시장 혼란을 자초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 재정부- 국토부 툭 하면 '엇박자' 무엇보다 부동산 시장에 관한 주무 부처간의 입장차이가 뚜렷하다. 재정부는 부동산 시장 안정을, 국토부는 건설경기 활성화를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입장차는 해묵은 것이지만 최근 정부 부처간 정책 조율 기능이 약화되면서 밖으로 문제점이 노출되는 빈도가 잦다. 국토부는 지난 10일 분양가 상한제와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민간 택지에서 공급되는 아파트의 택지비를 감정가 대신 매입가 수준으로 인정해 주는 방안과 재건축 조합원의 지위양도 제한을 완화하는 내용. 국토부는 하반기 법을 개정하겠다는 방침까지 내비치고 있다.  이런 정책 기조는 '선(先) 시장 안정 후(後) 대책 발표'라는 정부 정책 기조를 '확' 바꾸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집값 안정보다는 '건설경기 연착륙'에 방점을 두기 시작했다는 것. 강남 일부 지역의 주택 거래 호가가 뛰고 급매물이 사라지는 등 시장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이런 입장에 대해 재정부 관계자는 "부처 의견일 뿐"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재건축이나 분양가 상한 규제가 국토부 소관 업무이긴 하지만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큰 만큼 부처간 의견 조율을 거쳐야 한다는 게 재정부 논리다.   ◇ 건설 경기 우선 vs 부동산 시장 안정국토부는 건설 경기 침체가 건설업체 연쇄 부도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 경우 저축은행 등 금융권 부실로까지 위기가 확산될 수 있다며 선제대응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재정부의 생각은 다르다.지방 미분양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건설업계 요구에 대해서도 재정부는 "먼저 발표한 대책을 시행해 본 후 문제점을 찾아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6.11 대책(지방 미분양 대책) 중 아직 시행조차 못한 정책들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토부가 시장보다 건설업계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재정부는 특히 이런 민감한 정책들이 부처간 조율 없이 무분별하게 외부로 표출되는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한 관계자는 "(국토부의) 언론플레이가 너무 심하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건설 경기 활성화와 부동산 시장 안정이라는 상반된 정책 목표에 대해 부처 차원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 당 따로, 정부 따로 문제는 부처간 뿐 아니라 부처 내부, 당과 정부 사이에서도 부동산 정책 의견 조율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지난 15일 종합부동산세와 관련해 "1가구 1주택 장기보유세 등을 완화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고 곧 정책을 국민 앞에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정부 세제실은 "당에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알고 있지만 현재 당과 정부가 협의하고 있는 내용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부동산 시장 안정이 최우선이라는 정책 목표는 현재도 유효하다"며 "설사 (세제) 대책을 내더라도 미세조정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이희수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한달 전인 지난달 11일 "현재 부동산 시장에 상당 부분 불안한 요인이 있다"며 "1가구 2주택자 양도세율 인하, 종합부동산세 과표기준 상향 등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못박았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여전히 양도세율 인하, 종부세 과표기준 상향 카드를 여전히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런 현상은 참여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발표할 당시 재경부가 부처간 업무를 조정하고 청와대가 막후 조율을 담당하던 것과 비교된다. 이명박 정부가 6.11 대책을 발표할 때만 해도 이런 시스템이 가동됐지만 재정부 장관의 부처·조직 장악력이 떨어지면서 조정 능력까지 덩달아 약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008.07.16 I 좌동욱 기자
양조위 연인 유가령, '납치&나체사진' 사건에 입열다
  • [차이나 Now!]양조위 연인 유가령, '납치&나체사진' 사건에 입열다
  • ▲ 19년 연인 양조위(사진 왼쪽)와 유가령. [이데일리 SPN 정유미 통신원] ‘19년 연인’ 양조위(량차오웨이)와 올해 결혼을 앞둔 유가령(류자링)이 18년 전 납치 사건과 함께 당시 양조위가 보여준 진실한 사랑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유가령은 지난 90년 홍콩 시내에서 폭력조직에 의해 납치, 폭행 당하고 강제로 나체 사진까지 찍혔던 가슴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사건 당시 근처에서 영화 ‘아비정전’을 촬영 중이던 양조위는 즉시 촬영을 중단하고 현장으로 달려갔으며 측근의 친구들을 동원해 극적으로 유가령을 구출해내 전 중국을 놀라게 했다. 그 후 12년이 지난 2002년 10월 홍콩의 한 연예잡지가 표지에 '강제로 찍은 누드 사진’이라는 제목으로 유가령의 나체사진을 게재하여 정간 처분을 받는 등 당시 사건은 또 다시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다. 특히 양조위가 보여준 연인을 향한 용기와 애틋한 사랑은 오래도록 대중들의 입에 오르내렸지만 유가령은 더 이상 자신의 입으로 사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아왔다. 그러나 유가령은 최근 결혼을 앞두고 이미 오래도록 인생의 동반자로 함께 해온 양조위에 대한 깊은 신뢰와 사랑을 사건의 전말과 함께 공개해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유가령은 먼저 18년 전 치욕적인 사건에 대해 입을 열었다. 유가령은 당시 사건에 대해 “집에 가는 길에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차에 태워졌고 곧 두 눈을 가려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며 “곧 죽임을 당할 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혔다”고 회고했다. 불교 신자인 유가령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만 끊임없이 되뇌었다고 한다. 유가령은 납치되기 전 이미 집에서 “넌 밝은 곳에 있지만 난 어두움 속에 있다”는 협박 전화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강제로 나체 사진을 찍히는 치욕을 겪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난 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사람은 바로 양조위. 양조위는 유가령을 보자마자 “괜찮지?”라고 말하며 놀란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오래도록 품에 안아주었다고 한다. 유가령은 또한 양조위가 그동안 자신의 스캔들에도 개의치 않고 무한한 신뢰를 보여줬다고 털어놨다. 자신이 대만 최고의 갑부인 궈타이밍 훙하이 그룹 회장과 염문을 뿌렸을 때에도 일체 이 일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다고 한다. 유가령은 현재 술, 담배를 일체 끊고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는 등 결혼 후 바로 아기를 갖기 위해 미리 몸 관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양조위는 최근 삼국지의 적벽대전을 소재로 한 오우삼 감독의 영화 ‘적벽대전 : 거대한 전쟁의 시작’에서 카리스마와 부드러움을 겸비한 오나라의 명장 주유로 분해 전작인 '색,계'와 또 다른 매력을 뽐내 화제가 되고 있다.▶ 관련기사 ◀☞[차이나 Now!]'트윈스' 아자오, "이준기와 결혼하고 싶다" 공개 구혼☞[차이나 Now!]중화권 스타들의 노화지수 비교...최고는 주윤발☞[차이나 Now!]'전지현 지고 송혜교 뜨나', 中 방문 극과 극 반응☞[차이나 Now!]양조위, '역시 훈남'!...中 스타들의 졸업사진 눈길☞[차이나 Now!]진혜림 10월 결혼...연하 재벌 알렉스와 16년 사랑 결실
2008.07.13 I 정유미 기자
(르포)촛불시위대는 왜 화가 났을까
  • (르포)촛불시위대는 왜 화가 났을까
  • [이데일리 좌동욱 정원석 기자] 28일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잔뜩 화가 나 있었다. 경찰이 강경대응에 나섰고, 시위대도 극렬하게 저항하면서 시위는 점차 과격해졌다.한 40대 가장은 "촛불이 줄고 있다"는 소식에 처음으로 시위에 참석했다. 다른 아버지는 초등학생 4학년 아이와 함께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시위 한복판에 나섰다. 물대포가 날아오고, 경찰-시위대간 물병과 쇠붙이가 난무하는 상황이었지만 아버지는 위험해도 `산교육`이 될 것이라고 했다.  커피를 나눠주거나 자비로 신문을 만들어 집회상황을 알려주는 이들도 생겨났다. 대통령이 사과하고, 불법·폭력시위에 대해서는 엄정한 대응방침을 천명했지만 고시 강행을 계기로 다시 타오른 촛불이 금방 꺼질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격렬해진 촛불시위.."의료진" "카메라" 외쳐 28일 밤 10시10분경 종로 교보문고 앞 8차선 도로. 길을 차단한 전경 버스 6대를 사이에 두고 경찰과 촛불 시위대들이 서로 대치했다. 버스 창문은 성난 시위대가 소화기, 몽둥이로 두들겨 부순 탓에 앙상한 골격만 남아 있었다.        경찰은 1시간 째 살수차를 동원해 물대포를 쏘아댔다. 처음 한대로 시작한 물대포는 3대로 늘어났다. 경찰이 소화기를 뿌려대는 탓에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었고, 제대로 숨을 쉬기도 어려웠다.   머리위로는 버스 건너편에서 경찰이 던진 물병, 쓰레기 등이 떨어졌다. 시위대도 그것을 주워 다시 던졌다. 누가 먼저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과정에서 시위대와 전경 상호간에 부상자가 발생했다. 누군가 한명이 "의료진"을 외치자 시위대 모두가 함께 외쳤다.  누군가가 "카메라 기자"를 외쳤고, 또 다시 모두가 따라 외쳤다. 카메라 기자들이 찾아와 사진을 찍었다. "의료진"을 외치는 횟수는 점점 많아졌다. 이날 촛불집회가 벌어진 종로 거리는 전쟁터의 '전선'을 방불케 했다.  ◇ 다양한 집회 참가자들..주말맞아 가족단위 참석 전선 앞에 모인 사람들은 다양했다. 화물연대나 민주노총의 옷을 입은 건장한 남자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격한 시위를 예상한 듯 나온 사람도 있었지만 팔짱을 낀 연인, 부부, 노인들, 아이를 데리고 온 어머니 등 일반 시민들이 훨씬 많았다.   박동학(42세)씨는 이 위험한 현장에 초등학교 4학년생 아들과 함께 서 있었다. 경찰과 시위대를 가르는 전경버스로부터 불과 10여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위험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위험한 것은 알지만 현장의 민주주의를 직접 배우라고 (아이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다"고 했다. 100미터쯤 뒤로 가니 여성, 노약자, 학생 등 일반 시민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홍성희(32세)씨는 지인 지연화(45세)씨 부부와 함께 촛불을 들고 있었다. 홍씨는 왜 왔냐는 질문에 "신문, 방송을 보고 화가 나서 왔다"고 했다. 그는 "정부와 언론에서는 우리를 폭력 시위대로 몰아가지만 실상은 경찰들이 물대포를 쏘면서 시위대를 도발했기 때문"이라며 말했다. 남편과 함께 온 지연화씨는 "대통령은 잘못했다고 반성했지만, 곧이어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고시 강행, 시위대 강경 진압을 지시했다"며 "이제라도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고 했다.김종갑(45세, 서울 방학동)씨는 시위 현장에서 DSLR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느라 부산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값비싼 카메라가 비에 흠뻑 젖었다. 고가의 장비가 망가질 수도 있었지만 김씨는 "그래도 찍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심상정, 노회찬 민노당 전 의원도 현장을 지켰다. 심 의원은 "대통령의 강경론이 촛불시위를 키우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 갈수록 격렬해지는 시위시위는 시간이 지날수록 격렬해졌다. 시민들이 전경버스를 밧줄로 묶어 전복한 후 청와대로 몰려가도는 시도가 이어졌다. 밧줄 길이만 족히 100미터는 돼 보였다. 처음엔 버스가 넘어질 듯 크게 흔들렸으나 넘어지지는 않았다. 버스에 묶은 밧줄을 두개로 늘리자, 반대편 경찰측도 쇠밧줄로 지지대를 설치했다. 일부 시위대가 경찰 살수차를 부수고, 경찰도 물대포와 소화기로 적극 대응하면서 양측의 감정은 이미 격해져있었다.  경찰이 방송 마이크로 "불법 집회를 해산하라"고 경고하자, 시민들은 '우'하는 함성으로 응수했다. 밤 10시44분경에는 종로 거리에서 종로구청쪽으로 우회, 청와대로 진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화물연대가 "대책위만 믿고 있을 때가 아니다, 우리가 길을 열어보자"며 앞장섰다. 하지만 종로에서 청와대로 가는 길은 전경 버스로 모두 막혀 있었다. 종로구청 앞에는 집으로 가려는 사람들 십여명이 "집에 어떻게 가라는 말이냐"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 중 한명은 휴대전화로 "빨갱이들 때문에 집에 못가고 있다"고 말했다가 사람들이 쳐다보자 "말 조심해야 겠다"며 소근소근 통화하기도 했다.  ◇ "80년대와 비교하면 오합지졸..그것이 사회 발전"밤 11시50분경 버스로 차단된 바리케이트가 뚫렸다. 시위대가 밧줄로 당긴 힘에 못이겨 전경 버스 한대가 70도 정도 돌아간 것이다. 시위대쪽에서 '와'하는 환성이 터져나왔지만 정작 장애물을 치운 후 시위대는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 틈을 타 경찰들이 방패와 경찰봉을 휘두르며 시위대쪽으로 밀고 들어왔다. 한순간 시위대가 100여미터나 뒤로 밀렸다. 남자들이 앞으로 나와 스크럼을 짰지만 엉성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혼재했다. 사고를 우려한 경찰들도 더 이상 시위대를 밀어내지 못했다. 앞에 서있는 전경들에게 오물을 던지고 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것을 말리는 시위대도 함께 있었다. 86학번이라는 박동학씨는 "87년 민주항쟁 등으로 대학 시절 시위를 많이 참가했다"며 "그 때와 비교하면 지금 시위대는 오합지졸이다. 참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오합지졸로 조직적인 경찰에 맞서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가 한단계 발전된 것 아니냐"며 "하지만 경찰들은 20년전 그대로"라고 꼬집었다.  이날 시위는 종로 뿐 아니라 시청 앞 태평로 거리와 안국역에서도 열렸다. 집회 참가자 들 중 몇몇은 '프레스(PRESS)' 완장을 찬 기자들에게 시위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진화하는 촛불 집회  촛불시위 참가자들은 오후부터 삼삼오오 나타나기 시작, 집회가 시작된 오후 7시경엔 시청 앞에서 동아일보 사옥 앞까지 태평로 8차선 도로를 가득메웠다. 다양한 연령대, 남녀, 노소들이 빽빽하게 들어찼다. 이미 유명해진 유모차 부대가 눈에 띄었다. 유모차 부대엔 출산을 앞둔 산모도 있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도 연단에 올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정규직이 비정규직으로 바뀌고 있다"며 "현장의 비정규직이 곧 광우병"이라는 말을 전했다. 박원석 대책위 공동상황실장은 "집회 참가자가 10만여명"이라고 말했고 경찰이 추산한 참석자수는 2만여명이었다. 촛불이 서울 도심을 뒤덮은 6.10 이후 최대 규모의 인원이 촛불시위에 참석했다. 김영록씨(42세) 가족은 포장마차에서 통닭을 먹고 있었다. 부인, 아들, 딸까지 4명이다. 김 씨는 "오늘 집회에 처음 나왔는데 촛불이 줄고 있다는 보도를 듣고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이 매번 가자고 했지만 직장생활 때문에 오지 못했다"며 "순진한 아이들이지만 알 것은 다 안다. 이젠 쇠고기 먹으러 가자고 해도 안간다"고 말했다. 공짜커피를 주는 곳도 있었다. 직장인 이정우씨(30세)는 시청 잔디마당에 '목마른 시민에게는 커피가 공짜'라는 플래카드를 걸고 '촛불다방'을 운영했다. 오늘까지 11일째라고 했다. 이씨는 "자비로 물과 커피를 나눠주는데 하루 30~40만원 정도가 들었다"며 "혼자서는 힘들어 26일부터 아고라에서 후원을 받고 있는 데 이틀만에 100만원 정도가 모였다"고 말했다. 대학 4학년생이라는 엄모씨(21세)는 자비로 공짜 신문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엄씨는 "촛불집회 상황을 알리고 싶어서 아고라에서 네티즌들과 함께 돈을 모아 신문 10만부를 만들었다"고 했다. 촛불집회에서 신문을 직접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그는 말했다.  29일 현재시각 새벽 4시까지도 집회는 계속됐다. 초여름이지만 빗방울이 굵어진 탓에 날씨가 쌀쌀했다. 시위대 수는 현저히 줄었지만 그럼에도 종각역 사거리에서 SK 본사건물까지 8차선 도로를 메우고 있었다. 광화문 곳곳의 술집과 커피숍에는 추위를 피해 온 집회 참가자들이 눈에 띄었다.  촛불집회가 시간이 지나면서 동력이 떨어지고, 집회에 '시위꾼'들만 참석하고 있다는 인식은 이날 현장 상황과는 거리가 있었다.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다양했고, 화도 많이 나 있었다. 촛불집회는 상황에 따라 대응을 달리하면서 계속 진화해 나가고 있었다.
2008.06.29 I 좌동욱 기자
조디 포스터 "코미디 연기 의외라고요? 제 성격을 잘 모르시는군요!"
  • 조디 포스터 "코미디 연기 의외라고요? 제 성격을 잘 모르시는군요!"
  • ▲ 영화 님스 아일랜드[조선일보 제공] "사람들이 나를 코믹한 역할에 별로 쓰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점만 빼면, 종종 도전해보고 싶은 변신이에요. 제 성격의 가벼운 면을 드러낼 수 있어 재미있는 작업이었어요." 두 차례 아카데미상을 받은 '연기파', 할리우드의 '지성파'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니는 조디 포스터(Foster·45)가 코믹한 가족영화 '님스 아일랜드(Nim's Island·7월 17일 개봉)'에 도전했다. 영화에서 조디 포스터는 우스꽝스럽고, 때론 형편없이 망가지는 코믹한 모습의 소설가로 변신한다. 파리 브리스톨 호텔에서 만난 포스터는 다시 차갑고 이지적이면서, 똑 부러지는 말솜씨로 돌아와 있었다. 아역 배우로 출발, 대배우로 성장한 포스터는 "한 배역을 맡는다는 것은 낯선 삶에 '문을 두드리는 것과 같다'"고 표현하면서 "드라마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영화 '님스 아일랜드'는 해양 생물학자인 아버지(제라드 버틀러)와 함께 외딴 섬에서 살아가는 주인공 소녀 님(아비게일 브레슬린)의 이야기. 바다로 나간 아버지가 폭풍우 속에 실종되고, 님은 자신이 좋아하는 모험 소설 작가에게 도움을 청한다. 세상에서 제일 가는 모험가 '알렉스 로버'를 창작해낸 작가지만 실상은 현관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두려워 집안에 콕 틀어박혀 글만 쓰는 겁쟁이 중년 여성 알렉산드라 로버다. "도와달라"는 님의 이메일을 받고는, 엄청난 용기를 내 좌충우돌 모험 여행에 나선다. 이 작품은 호주의 힌첸브룩 섬에서 촬영했다.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는 장면도 있는데, 한겨울의 호주에서, 그것도 새벽 2~3시에 추위를 무릅쓰고 촬영하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는 후문이다. 포스터는 "힘든 촬영이었지만 하루 일정이 끝나면 뭔가 해냈다는 느낌이 들어 멋졌다"고 했다. 또 폐쇄된 삶을 살아가는 로버에 대해 "혼자 있다는 건 매우 창조적일 수 있다는 뜻이며, 누구에게든 중요한 부분"이라고 애착을 보였다. 포스터는 "내가 출연한 영화들을 내 아이들이 본 적이 없는데, 이번 작품은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포스터는 곧 열 살이 되는 큰 아들 찰스와 여섯 살짜리 둘째 크리스토퍼를 자신의 성(姓)을 붙여 키우고 있다. '님스 아일랜드' 출연을 결정한 계기도 아들의 영향이 컸다. 큰아들이 읽기로 한 독서 목록에 작가 웬디 오르(Wendy Orr)의 소설 '님스 아일랜드'가 들어있어 아들과 함께 책을 읽었다. 원작에 매료돼 시나리오를 받고는 출연 제의를 선뜻 받아들였다. 영화 홍보차 찾은 파리에서 "어떻게 지낼 거냐"고 물었더니 이 '쇼핑 천국의 도시'에서 할리우드 여배우가 "쇼핑하는 데는 별 취미가 없다"고 했다. 스포츠를 좋아해 스포츠용품 사거나, 아이들 물건 사는 것 말고는 (백화점보다는) 서점 가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고 했다. 사생활도 베일에 쌓여있어 두 아들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공개하지 않았다. 수년 전, 동성애자임을 공개했고, 최근에는 14년간 사귄 파트너와 헤어지고 새 여자친구를 만난 사실이 알려져 언론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다시활기찾는 신천역상권, 신중한 접근필요해
  • 다시활기찾는 신천역상권, 신중한 접근필요해
  • [이데일리 EFN 강동완기자] 지하철 2호선 신천역 상권은 크게 4번출구로부터 시작되는 대로변 1군 브랜드 판매상권과 3번 출구로부터 시작되는 근린생활상권, 천주교회를 랜드마크로하여 좌우로 형성된 먹자라인 상권의 세분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밖에 메인 먹자라인에서 파생되는 주변먹자라인까지 총 3000여 점포에 다다를 만큼 그 규모가 여느 중소상권을 압도한다는 것을 느낄수 있다. 이와 같이 대형상권에 속하는 신천역세상권에 대해 점포라인(http://www.jumpoline.com 대표 김창환)의 이언 과장과 함께 알아보았다. ◇ 잠실3단지 입주로 다시 활력찾아본래, 신천역 상권은 잠실주공아파트 단지와 아시아선수촌아파트 단지를 배후로 80년대 대형 국가행사와 더불어 종합운동장, 롯데월드 등이 들어서면서 젊은 층이 주로 찾는 송파/강동일대의 대표적 판매/유흥상권으로 제 2의 압구정이라 불릴만큼 중심상권으로 발돋움하게 된 상권이다. 한때, 어떤 업종이던지 개업을 하면 망해서 나가는 일은 절대 없다는 불멸의 상권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활황이었던 신천역상권은 막강 배후세력이었던 인근 아파트 단지의 재개발 여파로 인한 유동인구와 주고객층의 급격한 감소로 인해 전문가들 사이에서 조차 창업 비전이 없는 지역으로 여겨질 정도로 그 위세가 급격히 하락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침체의 늪에 빠졌던 신천역 상권이 신천역 3번 출구로 이어지는 잠실 3단지의 입주를 시작으로 다시 꿈틀대로 있다. 입주가 완료된 3단지 정문과 마주보고있는 역 3번출구를 기점으로 아직은 미미하나 조금씩 상권회복의 기미가 감지되고 있으며 이는 곧 현재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업주들에게는 실낱같은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 ◇ 숨고르기, 신중한 접근 필요해또한 이를 반영하듯 신천역세권내 점포의 권리금액을 비교해보면 현업주들이 바라고 있는 고권리 호가에서부터 현실적으로 점포매매를 원하는 현실형 호가까지, 동종업종/입지/규모/시설대비를 기준으로하여 많게는 1~2억원이상 권리금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신천역상권이 엄청난 폭발력을 잠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올해 말, 총 2만 5천여 세대의 입주가 완료되는 시점까지는 숨고르기와 상권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만큼 보다 전략적이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 중소기업청 상권정보시스템 신천역주변 (sg.smba.go.kr)◇ 신천역상권 투자/창업전략 신천역상권은 총체적인 경기불황 속에에서도 꾸준히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저력있는 상권임에는 틀림이 없다. 부자가 망해도 3대가 먹고산다, 썩어도 준치 라는 옛말이 있듯 그 명성이 예전같지는 않지만 기본 바탕은 마련되어있는 상권이라고 볼수있다. 이러한 신천역상권의 공략에 있어 현재 상권의 숨고르기 상태와 구조조정의 필요성인식으로 상당한 혼란기 속에 있는 현재가 신천역상권내에서 투자/창업의 기본원칙인 저투자고수익을 실현해 낼 수 있는 가장 적기라고 볼 수 있다. 진정한 신천역세권의 부활과 재탄생을 위해서는 올해 말 인근 재개발 아파트 입주가 대부분 완료되고 현 10~20대만을 위한 저가형 유흥상권에서 벗어나 30~40대 이상의 연령대와 가족단위층을 어우를 수 있는 고급형 종합상권으로의 변화가 필수적이라는 의견에는 이견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현재 신천역상권은 주머니가 얇은 젊은층 타겟의 저객단가 소주방/호프등이 활황을 누리고 있으나, 향후 상권의 변화는 고급화와 가족화, 프랜차이즈 대형화에 촛점을 두고 있고 그래야만 하는 상황이므로 현재 신천상권에서 활황중인 업종(예를들어 저가소주,호프)의 점포를 비싼 금액에 매수하여 향후 상권변화에 맞춰 재투자를 하게된다면 투자/창업의 원초적인 목표인 수익률창출에 있어 의미가 없다. 현시점으로부터 신천역상권의 권리금가격대는 최소한 꾸준한 상승보합선을 유지할것으로 보이며 상권부활의 가시점 시기부터는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일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되고있다. 안정화가 되기전인 혼란기상태의 현재 상황에서 빈틈을 공략하여 최소비용으로 점포매수에 나서고, 향후 상권변화와 부활에 맞춰 본격적인 투자와 운영을 통한 수익률 창출에 나설수 있다면 신천역상권은 그야말로 흔치않은 기회이며 약속받은 땅일 것이다. ◇ 신천역상권의 명과 암 [명] -일일 유동인구 6만여명의 신천역과 9호선의 개통예정으로 인한 멀티 역세상권 기대 잠실, 강남과 접근이 용이, 강동/성남/분당으로 연결되는 잠실역과 구리/하남/미금등 수도권 으로 연결되는 다양한 버스노선이 경유하며 인접한 잠실대교를 통해 강북권 유입 -광범위한 배후세대 총 2만5천명의 직배후세대 입주와 잠실,삼전,석촌,방이 등 근거리내 30여만명 거주 -폭발적인 유동인구 주중에는 젊은층과 직장인, 주말에는 종합운동장과 롯데월드를 방문하는 외부인유입 -배후수요의 집객효과 잠실본동의 오피스타운과 대단지 주거단지를 확보하면서도 신천역일대를 제외한 인근에는 마땅 한 상권이 형성될만한 곳이 없어 배후수요 집객 -빠르게 변화되고 있는 주변여건 잠실재건축 아파트의 입주와 이어지는 초고층 주상복합건물 건축 현재 입주중인 송파 법조타운과 올해말 최초 분양하는 송파신도시 효과 [암] -현업주들의 높은 기대심리로 인한 지나친 권리금 가격대 형성 -현 10~20대 위주의 유흥상권 젊은층의 가벼운 주머니로 인한 낮은 객단가 -취약한 주차시설 상권구역의 대부분이 제 3종 일반 주거지역으로 주차시설 미비, 차후의 신천상권 고급화에 지장초래 -혼란기 상권 본격적인 상권부활과 재탄생을위해 불가피한 상권변화에 따른 업종변화로 치밀한 전략적 접근없는 투자는 낭패를 볼 수 있음 [도움말 : 점포라인 창업컨설턴트 이 언 과장]
2008.06.19 I 강동완 기자
(창업기획) 김치찌개 가격 저항선은 5000원?
  • (창업기획) 김치찌개 가격 저항선은 5000원?
  • [이데일리 EFN 송우영 객원기자] 김치찌개는 점심메뉴를 대표한다. 1인분에 보통 5000원 전후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농산물 가격이 올라 업소 사장들은 울상이다. 두부 한 판에 1만원 하던 것을 지금 1만4000원에 들여온다. 밀가루 가격도 올라 칼국수나 라면이나 빵 가격이 오르고 있다. 채소값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들어가던 식재료를 빼버릴 수도 없다. 500원~1000원 정도 가격인상을 했지만 찾는 고객들은 섭섭하다. 아직 직장인들은 점심값으로 5000원 이상을 지불하면 ‘비싸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다행히 점심 메뉴로 찌개메뉴의 회전율은 빠르다. 다른 찌개나 백반 메뉴에 비해 반찬 역시 많이 필요 없다. 과감하게 반찬을 줄이고 김치찌개의 질을 높이는 것이 고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이다. ◇ '토담골 논현점' 돌솥곱창냉이김치찌개 9000원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 236-6 (02) 548-5121 9000원의 가격에도 김치찌개에 만족도는 꽤 높다. 한정식처럼 반찬만 10가지인 것도 만족도가 높은 이유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메인 메뉴인 김치찌개에 집중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메뉴명에서 드러나듯이 돌솥에 끓여내기 때문에 여느 냄비와의 차별화가 가능하다. 양은냄비나 뚝배기 등 보다 고급스러우면서도 쉽게 식지 않고 황토벽으로 한옥집을 재현한 인테리어와도 잘 어울린다.  밥도 유기그릇에 내고 있어 저렴한 백반집의 김치찌개와 차별화했다.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있는 퇴촌 본점에서 김장철에는 11월 초부터 12월말까지 8번에 나누어 김치를 담근다. 장독으로 옮겨 담아 굴로 된 김치보관소에서 숙성한다.  강원도의 고랭지 배추를 밭떼기로 계약해 매년 배추가격에 큰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한다. 그 외에도 동치미 등등 여러 가지 김치를 담그는데 김장철에 담그는 배추김치만 3000~4000포기다. 달마다 반찬으로 나오는 김치도 다르다.  1주일에 3번 퇴촌본점으로부터 받고 있고 ‘김치가 곧 그 업소의 음식맛’이라고 생각한다는 이경애 대표는 매일아침 3군데 모든 매장의 김치의 색깔과 맛을 직접 확인한다. 찌개용 김치는 반찬용 김치는 다른데 찌개용에는 젓갈을 적게 넣는다.  특이하게도 곱창을 넣고 끓인다. 곱창은 구이로 먹을 때도 마찬가지지만 찌개에 넣고 끓여야하기 때문에 얼마나 잘 씻느냐가 관건이다. 곱이 빠져나오지 않게 씻어야함은 물론이고 너무 오래 삶거나 끓여도 곱이 빠져나오기 때문에 삶는 시간과 온도 조절이 중요하다. 육수로는 곱창을 삶아낸 국물을 사용한다. 곱창이 들어가는 것에 낯설어 하지만 먹어보고 나면 대부분 단골이 된다고. 다른 곳에서 접할 수 없는 곱창과 냉이가 들어가는 김치찌개는 여느 업소와의 차별화를 할 수 있는 전략이 될 수 있다. ◇ '로즈힐' 김치전골 1만2000원 서울시 강남구 역삼1동 737 GFC B1 (02)508-2090 서울 강남구 강남파이낸스센터(GFC) 지하에 위치한 '로즈힐'에는 비즈니스를 위한 외국 고객이 많다. 1년 동안 숙성한 김치를 등갈비와 먼저 한번 쪄낸 후에 주방에서 멸치국물을 넣고 한번 끓인다. 그 과정을 거친 후에 테이블에서 추가적으로 끓여 먹는다.  덕분에 김치가 끓여지면서 나는 강한 냄새는 거의 없다. 김치찌개에 냄새가 별로 없다는 점은 외국손님이나 비즈니스 고객이 많은 이곳에서는 큰 경쟁력이다. 삼겹살을 구워먹는 만큼이나 강한 냄새가 옷에 배는 음식이 바로 김치찌개이기 때문이다. 멸치로 담백하게 끓여낸 김치전골의 국물은 김칫국에 가까울 정도로 맑은 편이다. 김치를 한번 찐 후 끓여서 낸 것이기 때문에 여느 김치찌개의 김치보다 부드럽다. 김치와 같이 쪄낸 무에도 김치 양념이 적당히 밴다.  푹 익은 무 역시 부드러워 나이가 좀 있는 연령층에게도 인기다. 외국고객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표고버섯, 팽이버섯, 단호박, 쑥갓 등 채소를 많이 넣었다. 찜을 하면서 미리 한번 쪄낸 등갈비와 돼지고기 목살을 넣는다. 반찬은 많이 내지 않는다. 드레싱이 가벼운 샐러드와 동치미, 반찬으로는 찌개와는 별도로 반찬용으로 담근 김치, 브로콜리와 어린 갑오징어 데친 것을 찬으로 낸다. 전창희 상무는 “김치전골 메뉴에는 김치가 별도로 필요하지 않지만 외국고객들이 원하는 경우가 있고 구색을 갖추기 위해 내고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2008.06.12 I 객원 기자
간식 같은 애프터눈티 식사 같은 하이티
  • 간식 같은 애프터눈티 식사 같은 하이티
  • [조선일보 제공] 커피의 위세에 눌려 지내던 차(茶)가 최근 기지개를 펴는 느낌이다. 녹차와 홍차, 보이차 등 각종 차를 전문으로 다루는 가게와 찻집이 예전보다 쉬 눈에 띈다. 이들 가게와 찻집은 물론 호텔들도 '애프터눈티(afternoon tea)'를 내고 있다. 나른해지는 오후, 케이크와 쿠키, 샌드위치 등 간단한 음식을 곁들여 차를 마시면서 허기를 달래고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시간이다. 애프터눈티는 19세기 초 영국 베드포드 공작부인(Duchess of Bedford·1788~1861년)이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당시 영국의 저녁식사 시간은 오후 8시. 아침은 푸짐하게 먹고, 점심은 간단하게 때웠다. 어느 날 오후 5시, 베드포드 공작부인은 하인에게 홍차와 케이크를 내오게 했다. 배가 고파서 "축 가라앉는 기분(sinking feeling)"이 든다면서. 베드포드 공작부인의 '다과회(茶菓會)'는 상류층 부인들 사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고, 중·하류계층으로 퍼졌다. 애프터눈티는 곧 영국의 사회적 관습으로 자리 잡았고, 영국의 영향력이 미치는 세계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애프터눈티와 함께 '하이티(high tea)'를 서빙하는 곳들도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하이티는 애프터눈티와 마찬가지로 19세기에 생겨난 비교적 새로운 차문화지만 애프터눈티와는 정반대로 노동계층 또는 중·하류층에서 시작됐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한가하게 오후의 홍차를 즐길 여유가 없었다. 오후 6시에서 7시 사이 직장에서 돌아온 남편, 그리고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은 배가 고팠다. 8시까지 식사를 기다릴 수 없었다. 그래서 주부들은 로스트비프(roast beef)처럼 미리 준비해 놓은 찬 고기요리와 파이, 베이컨, 감자튀김, 치즈, 케이크, 빵 따위를 진하게 우린 홍차가 가득 담긴 큼직한 찻주전자와 함께 식탁에 올렸다. 차린 음식이 많아서 응접실 나지막한 테이블로는 모자랐고, 높고 커다란 식사용 테이블(high dining table)에 옮겨와야 했다. '하이'는 여기서 비롯됐다. 전형적인 영국식 애프터눈티는 찻주전자 가득 담긴 홍차와 따뜻하게 데운 우유, 설탕에 얇게 저민 오이를 넣은 샌드위치와 스콘(scone), 스콘에 발라 먹는 클로티드 크림(clotted cream·저온살균 처리하지 않은 우유를 가열하면서 얻어진 노란색 뻑뻑한 크림)과 딸기·오렌지 잼, 케이크, 비스킷으로 구성된다. 손으로 집어 먹기에 간편하도록 크기가 작고 묻지 않는 종류가 대부분이다. 본격적인 저녁 식사를 앞두고 가볍게 배를 채우며 휴식을 즐기기 알맞은 정도다. 반면 하이티는 음식이 푸짐하고 무겁다. 식사가 될 만하다. 영국에서 음식을 공부한 레스토랑 컨설턴트 강지영씨는 "애프터눈티와 하이티의 가장 큰 차이는 고기 요리가 있느냐 없느냐 여부"라고 말했다. 애프터눈티가 '간식'이라면, 하이티는 '일찍 당겨 먹는 저녁식사'이다. 애프터눈티가 '쉼표'라면, 하이티는 '마침표'라고나 할까. 그러나 '하이'라는 단어가 주는 고급스런 느낌 때문인지, 음식 가짓수가 많은 '고급 버전'의 애프터눈티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과 싱가포르에서는 호텔과 식당에서 오후 내내 하이티 메뉴를 선보이는데, 영국식은 물론 새우가 들어간 만두류 따위의 딤섬이나 커리로 양념한 닭고기를 넣은 페이스트리처럼 중국음식과 인도음식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음식을 뷔페식으로 배부르게 즐기는 나름의 하이티 문화로 발전시켰다. '홍차 이야기' 저자이자 원광대와 서울시립대에서 서양차문화를 가르치는 정은희씨는 "하이티는 영국에서 이른 저녁식사로 시작했지만 문화권과 국가에 따라 다양하게 적응하고 변화하면서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 [Why] 다시 뜬 국진이 ''개그 인생''을 얘기하다
  • [조선일보 제공] 사진 촬영을 위해 좀 웃어달라고 부탁하자 표정이 어색해졌다. "제가 낯을 가려서요. 옛날에는 출연자 대기실에도 못 들어갔다니까요." 그럼 개그는 어떻게? "그러게요, 그게 참 묘하죠?"TV만 켜면 유재석, 강호동을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세상이다. 1990년대 중·후반 김국진(42)이 그랬다. 그가 방송에 나와 '여보세요?'하면 다음 날 동네 꼬마들이 따라 했고 곧 유행어가 됐다. 혀가 짧아 말도 길지 않았다. '어라?' '오 마이 갓' '사랑해요' '밤새지 마란 말이야'….김국진은 키 171㎝ 몸무게 57㎏이다. 그런데 씨름 천하장사를 지낼 때 180㎝에 한때 120㎏이 넘었던 강호동이 방송에서는 그에게 꼼짝 못 했다. 그런 김국진이 어느 순간 TV에서 사라졌다. 이혼하고 골프 선수가 되겠다더니 급기야 사업하다 망했다는 이야기까지 들렸다.김국진이 작년 9월 MBC '황금어장'의 '라디오스타'로 컴백했다. 5년 만에 돌아온 그를 보고 시청자들은 '90년대 개그는 안 통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들이 요즘 김국진만 보면 배꼽을 잡는다. 복귀의 비기(秘技)는 '수비형 개그'다. 다른 사람 말을 귀기울여 듣다 맞받아치는 것이다.물이 오르자 라디오스타에서 췄던 김국진의 일명 '야야야 춤'이 인기를 끌더니 MBC 예능 프로그램 '명랑히어로', KBS '사이다'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10년 전 세상을 웃겼던 억양 그대로다. 지난달 30일 홍대 앞에서 그를 만났다.―'라디오스타'는 '정글' 같은 분위기더군요. 괴성이 오가고 독침 같은 개그가 난무하던데."시작할 때 사람들이 말렸어요. 제 스타일과 안 맞는다고요. 막상 시작하고 나서 저도 놀랐습니다. 그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개그가 파괴적이었으니까요. 방송이라는 게 주고받는 흐름이 있는데 그런 게 없어요. 파도로 비유하면(그는 손을 들어 넘실대는 파도를 표현했다) 이렇게 너울거리면서 '탕' '탕' 뱃머리를 때리는 게 아니라 휙~ 하고 저리로 갔다가 휙~ 하고 이리로 떨어져요. 말하자면 토네이도 같은 개그죠."―처음에 대본을 집어던지거나 김구라 씨 멱살을 잡기도 했는데 그게 적응 과정이었나요."그때는 정말 이게 뭔가 싶어서 그랬어요. 축구로 비유하자면, 목표는 상대방 골대에 골을 넣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건 골 넣을 생각은커녕 자기편 골대에 슛을 해요. 공이 어디로 튈지 몰라요. 초대손님 불러 놓고 진행자끼리 얘기하고 막말하는 걸 보면서 '야, 이게 뭐니, 도대체!' 한 거죠. 그런데 제가 그렇게 얘기하면서 흐름이 끊어지고 오히려 이상한 쪽으로 몰고 가 버렸죠."―최근 시청자들은 그런 스타일의 개그를 원하나요."네. 초반에는 '안녕하세요? 이말 한마디 하고 나서 '아~' '아~' 하거나 웃다가 프로그램이 끝날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묘한 흐름이 보였어요. 무(無) 흐름 속에도 흐름이 있더군요. 제 방식대로 토네이도를 한 번 뿌려보기도 하고 춤도 추게 됐죠. 그게 인터넷 동영상으로 돌더군요. 이렇게도 가보고 저렇게도 가보고 아니다 싶으면 '나만 바본가' 생각해보기도 했어요. 이런 격렬한 개그를 겪으면서 앞으로 다른 어떤 프로그램을 해도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김구라씨가 김국진씨 이혼 경력을 소재로 개그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별의 아이콘''이별을 집대성하신 김국진'이라면서요. 기분 나쁘지 않았나요?"기분 나쁘기보다는 깜짝 놀랐죠. 당황스러웠어요. 대본에도 없는 얘기를 막 하잖아요. 그 친구가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건너뛰는 게 없어요. 그런데, 오히려 좋은 면도 있어요. 어차피 인터넷으로 돌고 도는 얘기잖아요? 다 아는 거 어설프게 숨기는 것보다 낫죠. 지금은 웬만한 얘기를 들어도 웃으며 넘기죠."―짜고 하는 건 아닙니까?"그런 건 없어요. 그런 걸 어떻게 짜고 해요? 중구난방으로 오가는 얘기를 짜고 하려면 아이큐 400은 넘어야겠죠."김국진은 1991년 1회 KBS 대학 개그제에서 동상을 받았다. 그때 동기가 유재석, 김용만, 남희석, 박수홍, 김수용이다. 김국진은 데뷔 1년도 안 돼 인기를 끌었다. 그는 어릴 때 꿈이 "대통령과 개그맨이었다"고 했다.―웃기려면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야 하나요."그런 건 아닌 것 같고…. 어렸을 때부터 학교든 어디든 제가 꼭 마이크를 잡게 됐어요. 그러면 꼭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져요. 원래 소심한 성격이라 주저했는데 주변에서 '너한테 딱'이라는 거예요. 그러다 개그맨 시험 한번 보고 붙은 거죠."―KBS에서 인기를 끌다 MBC로 간 게 문제가 돼 갑자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는 게 사실인가요. "원래 유학을 계획하고 있었어요. 당시 저하고 김용만, 박수홍, 김수용이 입사 동기로 '감자꼴 4인방'이라 불렸죠. 그때 김용만이 허리가 아팠고 박수홍은 입대해야 할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미국행을 생각했어요. '이때 가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없겠다' 싶었던 거죠. 미국식 토크쇼도 접해보고 싶고요. 박수홍씨가 제대하고 돌아오고, 우리는 유학 갔다 돌아왔을 때 다시 뭉치자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선배들은 '잘나가는 애들이 왜 갑자기 그만두냐'고 오해를 했던 것 같아요. 그런 상황에서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초대 받은 거예요. 고별 인터뷰하러 가는 거였는데 '이적(移籍)'으로 오해를 받은 거죠."―연예인협회에서 징계를 받았었죠."신문 보고 알았어요. 선배들은 화가 난 상태에서 사과를 요구했어요. 그런데 사과하면 잘못을 인정하는 게 되는데 우리는 안 그랬으니까요. 벌써 10년도 훨씬 전의 일입니다. 말이 요새는 인터넷으로 돌고 돌아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요. 돌이켜보면 잘잘못을 따질 수 없는 일이죠."―미국에서 뭘 했나요."박사 학위를 따러 간 게 아니잖아요. 그냥 사는 게 공부였어요. 자니 윤 선생님께 얘기도 듣고 돈 벌어야 하니까 라디오 프로그램에도 출연했어요. 그때 LA에 지진까지 나 정말 많은 걸 경험했어요. 코미디라는 게 평범한 일상에 웃음 요소를 집어넣는 거잖아요. 그만큼 경험이 중요하죠."김국진은 1년 만에 귀국해 KBS로 돌아왔다. 복귀 후 맡은 프로그램은 '오키도키쇼'였지만 그는 "처절하게 실패했다"고 했다. 토요일 오후 7시 황금 시간대 프로그램에서 쫓겨나자 어느 프로그램, 어느 방송국에서도 그를 거들떠보지 않게 됐다. 그 후 MBC로 옮겨서 '도전추리특급'을 하며 김국진은 살아났다. '테마게임''일요일 일요일 밤에''칭찬합시다' 등 그가 나온 프로그램마다 '대박'을 쳤다. 1997년 백상예술대상 남자코미디언 연기상, 1998년 MBC코미디언 대상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1999년 한 다큐멘터리에서는 20세기를 빛낸 한국 코미디언 1위로 그를 올려놓기도 했다. ―당시 인기가 어느 정도였나요."그때는 잘 몰랐죠. 제가 방송에서 한마디 하면 다음 날 아이들이 제가 한 말을 따라 했어요. 당시 MBC 사장께서 가끔 제게 들러 '국진아, 뭐 하니?'라고 할 정도였어요. 우리나라 방송계를 움직이는 파워 10인에 들어간 걸 보고 그냥 신기했었죠. 그때는 '내가 열심히 하니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지는 않는구나' 정도로 생각했어요."―5년 동안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스케줄이 꽉 찼었다면서요. 1주일에 한 편씩 광고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고."어느 날 일정이 취소돼서 하루가 빈 적이 있었어요. 쉬는 날을 경험해보지 못해서 매니저하고 둘이서 우왕좌왕할 정도였어요."당시 그의 인기를 반영하는 사례가 바로 그의 이름을 딴 '국찐이 빵'이다. 지금까지 제과 역사상 연예인 이름을 딴 빵은 이후 '핑클 빵'밖에 없었다. ―'국찐이 빵'으로 돈 많이 버셨습니까?"당시 IMF로 그 회사가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많이 못 받았지만 회사가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하더군요."―당시 식품 광고와 내의 광고를 공짜로 해줬다고 들었습니다. "공짜는 아니었고 생각할 수 없는 적은 가격을 받았었죠. 기업이 힘든데 돈을 많이 받을 수 없잖아요?"―어쨌건 돈은 엄청 많이 벌었겠네요."많이 벌었습니다."―더 벌 수도 있었을 텐데요."마음먹었으면 10배는 더 벌 수 있었죠. 그때 소속사라는 게 없었으니까 계약을 모두 제가 결정했어요. 프로그램이든 광고든 돈보다는 저한테 맞는 일인지를 먼저 고민했어요."―그런데 왜 갑자기 어느 날부터 TV에 안 나왔습니까? 골프 때문이었나요.김국진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골프 때문은 아닙니다. 굉장히 지친 상태였어요. 5년간 방송을 그렇게 하면 사람이 골병이 들어요. 방송을 관두고 나서 운동을 시작했죠. 저는 도전을 좋아해요. 골프 안 했으면 에베레스트 에 올랐을지도 몰라요."―골프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접은 이유는요."2년 정도 되니 한계가 보이더군요. 그다음에는 그렇게 골프에 열중하지 않았어요. 제 덩치에 운동 선수처럼 지옥 훈련을 통해 끝장을 보겠다는 것도 아니었죠. 그런데 제가 골프 친다는 걸 아니까 꼭 누군가 '며칠 있다가 골프 시험이 있어' 귀띔하죠. 저는 '그래?' 하면서 어차피 취미로 치는 거니까 나갔던 거예요. 그런데 악재가 겹치니 '다 골프 때문이다'라는 말이 나왔어요. 그런 소리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어요. 지금은 최대한 골프 안 치려 합니다."―주변에서 말려도 끝까지 해보는 성격이라면서요."그게 장점으로 작용할 때는 좋지요. 그런데 골프 치면서 그런 성격이 안 좋을 때도 있다는 걸 알았어요. 우리가 살면서 접하는 게 많잖아요? 모든 걸 끝까지 다 파볼 필요는 없는 거라는 걸 골프를 통해 배웠어요. 사실 지금도 고집이 센 편이지만요."김국진은 2002년 시트콤 '연인들'에서 만난 이윤성과 결혼했다. 결혼 생활은 1년5개월 만에 합의 이혼으로 끝났다. 그 이야기를 예상했다는 듯 김국진은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말을 이어갔다."안 좋은 시절을 겪으며 많은 걸 배웠어요. '내가 너무 동굴 속에서 살았구나' '세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나 많은 일이 펼쳐지는구나'라는 걸 느꼈어요."―한동안 코미디를 하지 않고 MBC '반달곰 내사랑'(2001), KBS '달래네 집'(2004), MBC '진짜 진짜 좋아해'(2006) 같은 드라마에 출연했죠. 드라마를 선택한 이유가 뭔가요."저는 연기를 잘 못해요. 저도 잘 알아요. 그런데 제 얼굴을 카메라에 대면 가만히 있어도 슬픈 느낌이 나요. 똑같은 표정인데도 묘하게 익살스러운 표정도 나온대요. 그것도 자연스럽게요. 당시 저를 제외하면 모두 전문 연기자였어요. 새 분야인 드라마에 대한 욕심도 있었지만요."―결과가 좋지 않아 오래 쉬고 하는 일마다 안 됐는데, 복귀할 때 두렵지 않았나요. "저는 '무모한 자신감'은 있어요. 그게 성공하면 자신감의 결과가 되고, 실패하면 무모함만 남는 거겠죠. 저는 출발선에 서서 똑같이 출발했을 때 최종 골인 지점에 다가갈수록 더 잘 달릴 자신감은 있어요. 세상은, 신은 공평하다고 느끼는 것이 제가 5년 동안 잠도 못 자면서 그렇게 일을 하고 나서 또 5년간 푹 쉬었어요. 데뷔했을 때도 1년 반 동안 정신없이 일하다가 미국 가면서 2년을 쉬었고요. 성공과 실패의 꼭짓점을 찍어봤지만 연예계 생활 17년을 돌이켜보면 평균적으로 적당히 일한 셈이죠."―복귀한 이유가 돈 때문인가요."돈 때문이라면 더 빨리 복귀했어야죠. 인기를 조급해했다면 5년을 못 쉽니다. 저는 방송을 즐거운 마음으로 하길 바랐어요. 제가 즐겁게 일해야 시청자들도 즐거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잘 쑥스러워하고 소심해요. 기다렸습니다. 평온했던 느낌이 돌아오도록. 그리고 지난해부터 엉켰던 실타래 같은 게 하나씩 풀려가는 걸 느꼈죠. 그래서 복귀한 겁니다."―예전 같은 인기를 얻을까요?"제 목표는 인기가 아닙니다. 열심히 하면 인기가 따라올 때도 있고 안 따라올 때도 있죠. 그걸 의식하면 안 돼요. 욕심이라면 방송을 재미있게 하고 싶어요. 저는 신인의 마음으로 출발선에 새롭게 서서 달리려 합니다."김국진은 현재 어머니와 둘이 살고 있다. "어머니는 저를 낳아주셨지만 저와 인생을 함께하고 있는 친구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최근에 외롭지 않냐고 묻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잘나갈 때 결혼식 사회를 정말 많이 봤어요. 그 커플들이 잘살고 있는 걸 보면 기분이 좋죠. 제가 방송에 나와서 '다시 사랑하고 싶다'고 했더니 '나이가 있으니 다시 시작해야 해'라는 소리를 자주 들어요. 하루하루 살다 보면 또 다른 인연을 만나겠죠. 언젠가는 만나지 않겠습니까?" 사족(蛇足)―사진기자와 그는 구면(舊面)이었다. 사진기자가 말했다. "데뷔했을 때쯤 제가 사진을 찍어드렸는데 그때랑 하나도 안 변하셨습니다. 저만 늙은 것 같아요." 김국진은 얼굴을 붉히며 웃었다. 눈 주위에 잔주름이 피어올랐다. "아이고 별말씀을요. 어제 촬영하느라 밤을 새워서요, 사진이 난민처럼 나올까 걱정입니다."
물컹한 첫 맛, 잊을 수 없는 고소함
  • 물컹한 첫 맛, 잊을 수 없는 고소함
  • [조선일보 제공] 흔히 자반으로 구워먹거나 조려 먹는 고등어에도 명품이 있다. 우리집에선 고등어를 몇 달씩 소금에 절였다가 쪄 먹기도 하는데 밥도둑이 따로 없다. 고등어를 '사바(鯖)'라고 부르는 일본에서도 노릇노릇 잘 구워진 고등어 토막이 흔히 식탁에 오르지만, 고소한 맛이 특출한 고등어는 대개 초밥으로 즐긴다. 시모노세키(下關)해협에서 잡히는 고등어를 '세키사바(關鯖)'라고 한다. 고베 지역에서 생산되는 최고급 쇠고기 '고베와규(神戶和牛)'처럼 브랜드화 된 명품 고등어이다. 요코스카(橫須賀) 부근의 물살이 센 해역에서 낚시로 잡는 '마츠와사바(松輪鯖)' 또한 최근 세키 사바처럼 브랜드화 되고 있다. 오랜 일본 친구들이 요코스카의 솜씨 좋은 이자카야(居酒屋·일본식 선술집) '치히로(ちひろ)'에 특별히 부탁해 마츠와사바를 맛보게 됐다. 음식에 대한 일본인 특유의 호들갑에 인색한 나로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 명품 고등어 마츠와사바로 만든 초밥.(이자카야 ""치히로""제공)고등어 하코스시(箱�·상자초밥)도 그렇지만 고등어 초밥은 대부분 생선살이나 밥의 덩어리를 큼직하게 내는데, 이 집의 고등어 초밥은 롤케이크를 두툼하게 썰어 낸 모양새이다. 초밥 위에 얹혀진 고등어의 두꺼운 부분은 2㎝ 정도나 되는데, 붉은 색이 그대로 비쳐 보이는 생선 단면의 조직은 방어처럼 보인다. 한입에 넣기는 거북한 크기의 고등어 초밥을 겨우 우겨 넣었다. 물컹하게 씹히는 식감이 순간 비린 맛이 연상되었으나, 곧 사바 특유의 고소함이 입안 가득 감돈다. 처음 보는 생선 맛이다. 기름이 자르르하게 밴 최상급 고등어에 오토로(大トロ·지방이 많은 참다랑어 앞쪽 뱃살)를 섞어 놓은 맛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씹는 맛은 맛 오른 방어의 뱃살보다 조금 무른 정도지만 몇 번 씹을 사이도 없이 녹아 없어진다. 오토로의 촘촘한 마블은 고소한 맛 뒤에 약간의 기름기가 입안에 남지만, 마츠와사바의 기름은 생선살 자체에 녹아 있어서 아이스크림을 베어먹듯 입에서 사라지고 뒤이어 초밥이 입안을 개운하게 씻어낸다. 초밥용으로 고등어를 손질할 때는 보통 고등어의 맛을 잡기 위해 식초와 술, 설탕을 섞은 물에 두어 시간씩 담가 초절임을 한다. 그러나 이곳의 초절임은 식초물에 잠깐 담그는 정도로 최소화했고, 고등어 초밥에 으레 올리는 생강 따위도 없다. 이자카야 주인은 "신선한 마츠와사바는 초절임을 10여 분 정도에 끝낸다"고 했다. 본디의 맛이 훌륭한 것이다. 조금은 시끄러우리만치 음식에 대한 자기 주장이 확실한 주인은 자신들의 솜씨에 대한 자부심으로 일본인들이 최상품으로 치는 다랑어인 '오마(大間)의 혼마구로(本�)', 수십 개를 실험한 후 최적의 도나베(土鍋·도기솥)를 골라 거기에 지었다는 솥밥을 내놓았다. 그리고 음식 칭찬과 맛있게 먹어준 답례로 꽤나 맛있게 만든 겨울 별미 '앙키모(鮟肝·아구 간 요리)'를 집에서 드시라며 선물로 내놓았다.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훌륭한 맛이었지만, 이날의 여러 가지 훌륭한 음식들은 모두 마츠와사바의 빛에 가려졌다. 본디의 맛은 만들어진 맛보다 자연스럽고 보다 근본적이며 만들어진 맛이 넘을 수 없는 경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만들어진 맛에는 인간의 공력이 들어있으니 이를 얕잡아 볼 수는 없을 터이다. 본디의 맛과 만들어진 맛은 우열로 가늠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높이에서 다양성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인간은 도전해야 할 대상이 있어 즐겁지만, 그 대상에 가까이 이르렀다고 생각되어서야 넘지 못할 대상의 깊이를 알게 된다. 한없이 겸손할 일이다.
진하디 진한 남도의 국물… 속 풀리네
  • 진하디 진한 남도의 국물… 속 풀리네
  • [조선일보 제공] 전주에 들를 때마다 맛있다는 콩나물국밥집을 여러 집 가보았으나, 남부시장 안에 있는 '원조' 중 하나인 '현대옥'을 못 가 봐서 서울에 오는 날 작심하고 찾아갔다. 시장 골목 안에 있는 현대옥은 십여 명쯤 끼어 앉을 좁은 식당이다. 일본 우동집 비슷하게 카운터에 둘러앉게 되어있는데, 카운터 안쪽에서 할머니와 아주머니 하나가 열심히 국밥을 말아내고 있었다. 카운터는 최근에 함석 따위로 덧씌운 듯 비교적 깨끗했다. 그러나 시장 골목 안 해장국집 풍경이라는 것이 대충 거기서 거기다. 만석이라 좁은 골목 안에서 이제나 저제나 자리가 나나 안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밖에서 기다리는 손님이나 국밥을 말아주는 할머니나 안에서 먹는 손님이나 아무 말이 없다. 참 묘한 분위기다. 마치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고 있는 듯한 경건한 조용함. 더구나 밖에서 기다리는 손님들은 옆구리에 검은 브리프케이스 같은 걸 하나씩 끼고 있다. 시장에서 갓 구어 파는 바삭바삭한 통김. 이걸 한 묶음씩 옆에 끼고 때로는 한 장씩 꺼내 먹어가며 기다리는 것이다. '저건 어디서 나누어 주는 것인가…?' 궁금했다. 그렇다고 "그거 어디서 나누어 주느냐"고 물어볼 분위기도 아니었다. 30여 분 기다리는 사이 자리가 났다. 국밥 한 그릇 후다닥 말아주면 바로바로 먹고 나갈텐데, 왜 이렇게 손님 회전이 더딘가 하는 의문은 카운터에 앉자 곧 알게 되었다. 대개 이런 집은 내용물을 뚝배기에 담아 죽 쟁여 놓았다가 주문 들어오는 대로 국물을 부어 낸다. 그런데 이 집은 손님이 자리에 앉으면 그때부터 뚝배기에 밥 퍼 담고, 뜨거운 국물을 부어 몇 번 토렴한 다음, 토핑을 얹어 낸다. 그런데 이 토핑이란 것이 만만찮다. 할머니가 "맵게 해 드려요?" 물어보길래 "좀 덜 맵게" 하고 부탁을 했다. 할머니는 방석만한 통나무 도마에 굵은 청양고추 두 개와 족히 30㎝는 될 대파를 썰어놓고, 튼실한 마늘 세 쪽을 식칼 손잡이 밑동으로 다진다. 다진 양념을 손으로 집으니 어른 주먹만큼의 분량. 그게 뚝배기 한 그릇에 들어가는 분량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으레 뒤에 끓고 있는 솥으로 들어가려니 했는데, 방금 토렴한 국밥에 얹어 주는 것이다. 가만히 보니 아줌마는 뚝배기에 밥 담고 먹은 그릇 치우는 담당이고, 할머니는 토핑을 얹어 최종적 맛을 내고 손님에게 서빙하는 마스터 주방장 같은 구조다. "김은요?" 하고 물어보자 할머니는 칼질을 멈추더니 아무 소리 없이 도마를 내려다봤다. 일순 식당 전체가 조용해진다. 뭔가 큰 일이 난 것이라 직감적으로 알았다. 잠깐, 그러나 상당히 길게 느껴지는 무안한 정적이었다. 조금 뒤 할머니가 남의 얘기 하듯 아줌마에게 "이 손님 김 없단다" 한다. 아줌마가 난감한 얼굴로 손바닥만한 셀룰로이드 팩에 든 인스턴트 김 두 개를 홱 던져놓고 간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그것도 감히 이 집에서 물어보진 못하고-콩나물국밥에 찢어 넣어 먹는 김은 시장 어귀에서 각자가 알아서 사가지고 오는 것이었다. 원래 콩나물국밥 먹을 땐 수란(달걀 반숙)이 덤으로 나온다. 이게 아침 일찍 커피를 주문하면 달걀을 하나씩 띄워주던 옛날 다방의 모닝커피를 생각나게 한다. 어쨌거나 다른 콩나물국밥집은 국밥이 나올 때 수란을 같이 내어주는데, 이 집은 수란을 내주지 않았다. 그런데 옆 사람은 수란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또 참지 못하고 "수란은요?" 하고 물었다. 할머니의 칼질이 다시 멈추고 도마만 내려다보고 있는데, 이번엔 좀 길다. 그리고 식당 안 모든 사람이 나를 쳐다본다. 싸~한 분위기의 어색한 순간이 조금 지나고, 할머니가 거의 포기한 듯한 목소리로 "기다리면 나옵니다" 한다. 촐싹거리지 말고 주는 대로 먹어라 하는 분위기다. 수란 역시 먼저 만들어 놓는 게 아니라 국밥 말기 시작하면서 따로 달걀 두 개를 스테인리스 밥공기에 넣어 뒤에 있는 큰 솥에서 중탕을 한다. 그러니까 이 집의 수란은 국밥을 중간쯤 먹었을 때 나오게 되어있는 것이다. 어렵게 얻어 먹게 된 국밥 국물을 한 숟갈 입에 넣었다. 숙취에 좋다는, 콩나물에 많이 들어있다는 아스파라긴산인가 뭔가 하는 것의 원액을 들이키는 기분이다. 노리끼리한 국물의 진하기가 찡하기까지 한데, 그 뚝배기 한 그릇에 물을 대여섯 배 부어 희석하면 보통 우리가 먹는 콩나물국 비슷하게 될 것 같은 진하기이다. 아마도 북어대가리처럼 국물을 더 진하게 우려내는 다른 재료가 들어있지 싶은데, 다른 재료의 맛은 지나치지 않고 입에서 느껴지는 건 진하디 진한 콩나물국 원액이다. 거기에 예의 그 마늘 세 쪽, 청양고추 두 개, 엄청난 양의 싱싱한 대파가 들어갔으니,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헤아릴만한 맛이다. 서울 올라올 때까지 휴게소마다 들러 양치를 해도 마늘 냄새는 그날 저녁까지 입안에 남았지만 이런 맛이 '남도'의 맛 아닐까? 술 마신 아침이면 가끔 생각이 난다. 물론 맛있게 먹으려면 전날 홍어회에 곁들여 한잔 해야겠지만.
(부산모터쇼)소문난 집안잔치(?)...향후 과제는
  • (부산모터쇼)소문난 집안잔치(?)...향후 과제는
  • [부산=이데일리 문영재기자] 부산 국제모터쇼가 11일간의 화려한 일정을 끝내고 지난 12일 막을 내렸다. ▲ 지난 12일 막을 내린 부산국제모터쇼에는 100여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간 것으로 최종 집계됐다.부산모터쇼는 지난 2001년 지역 자동차 산업 발전과 경제활성화를 위해 벡스코(BEXCO) 개장 행사로  처음 열렸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동안 유치 관람객은 첫 회 72만7000명에서 102만3700여명에 이를 정도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일궈냈다.  또 10개국(156개사)에서 24개 자동차 브랜드가 참가하고 총 1800개의 전시부스가 마련되는 등 역대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세계 모터쇼의 트렌드가 단순 눈요기에서 벗어나 수출이나 투자유치등 국가·지역 경제 특수를 일으키는 이른바 `비즈니스장`으로 바뀌고 있는데 반해 부산 국제모터쇼는 여전히 '걸음마'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 부산모터쇼, `눈요기`에서 벗어나 경제효과 창출해야부산모터쇼를 통한 경제효과는 외형 성장세를 따라오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수출(구매) 상담액은 첫회 2억900만달러를 기록한뒤 2003년 3억8400만달러, 2006년 8억4700만달러로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했다. 하지만 역대 최대규모를 자랑한 올해는 2006년보다 불과 2억 달러 증가한 10억 5400여만 달러에 그쳤다.  미국 디트로이트, 독일 프랑크푸르트, 프랑스 파리, 일본 도쿄, 스위스 제네바 등 세계적인 모터쇼는 차지하더라도, 지난달 폐막한 중국 베이징(北京) 모터쇼가 5조원 이상의 경제 효과를 창출한 것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한 성적표다.    특히나 행사 기간내내 중국내 타 지역과 해외에서 찾아온 자동차업체 관계자, 바이어, 관광객들로 인해 베이징 시내 호텔방이 모두 동이 났던 점은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부산 모터쇼가 전시산업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기 위해선 `집안잔치`로 끝나지 않도록 치밀한 전략수립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美 `빅3` 불참..반쪽행사 전락(?)전문가들은 부산모터쇼가 `글로벌 스탠다드 모터쇼`로 거듭나기 위해선 해외 유명 브랜드의 유치와 월드 프리미어급 차량의 전시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부산모터쇼에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이른바 미국 자동차업체 '빅3'는 아예 불참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걸음마 단계인 부산모터쇼의 함량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며 "규모나 지리적 측면에서 국제 규격에서 약간 비껴나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모터쇼에서 월드 프리미어(최초 공개) 7대, 아시아 프리미어 24대가 전시됐던 것과 달리 부산모터쇼에선 월드 프리미어급 차량이 없는 점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게됐다.◇ "전시장 규모도 국제수준에 미달"▲ 부산 국제모터쇼 행사가 열렸던 벡스코(BEXCO) 전경부산모터쇼의 전시장 규모(4만1400㎡)가 작다는 것도 또하나의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업계 관계자는 "전시장의 면적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점도 자동차 브랜드 유치에 장애였다"고 털어놨다.행사 주최측 관계자는 이에대해 "이미 지난 2006년부터 행사장인 부산 벡스코의 공간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며 "2012년 벡스코 시설확충 사업이 끝나기 전까지 사실상 근본적인 해결은 불가능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다만 "비좁은 공간 문제는 부산시·벡스코와 함께 한국자동차공업협회 등 유관기관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해결해 나갈 것"이라며 "곧 벡스코 2전시장이 새로 문을 열 예정이기 때문에 점차 개선될 것"이라고 덧붙였다.베이징모터쇼의 경우 자동차 전시면적만 10만6000㎡에 달하고 자동차 부품을 전시하는 6만㎡ 임시가설 전시장과 2만㎡의 옥외광장 전시 면적까지 합하면 무려 18만㎡가 넘을 정도였다.또 주최측인 부산시의 지나친 행정 간섭·통제도 개선돼야할 사항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지적했다.
2008.05.14 I 문영재 기자
  • (여의도에서)성공이라는 이름의 `덫`
  • [이데일리 이의철 편집국장] 참여정부 초기의 일이다. 잘 나가던 기업에서 CEO를 하다가 노무현 대통령에 발탁돼 장관으로 취임한 A씨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이런 저런 얘기 끝에 “기업체 사장 하시다가 장관으로 오시니까 뭐가 제일 다릅니까“하고 물었다. 이어지는 A씨의 답변. ”기업은 목표를 세워 밀고 나가면 그 이후엔 목표를 달성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만 남습니다. 그러나 공직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목표 자체도 기업과는 다르고, 목표를 세우더라도 국민이라는 변수가 있습니다. 국민들과의 소통이 그래서 중요하죠. 기업의 고객과는 또 다르더군요. 일에 대한 접근 방식을 완전히 바꿔야 했습니다“눈치 빠른 독자들은 짐작하셨겠지만 A씨는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다. 삼성전자 CEO를 거쳐 장관으로 임명된 진대제씨는 장관 임명당시 자녀의 이중국적 논란에, 재산 논란까지 구설수에 시달렸지만 공직자로 화려하게 변신에 성공, 이후 참여정부 최장수 장관의 기록을 갖게 된다. A씨의 사례는 변신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훌륭한 기자가 훌륭한 부장은 아니다“라는 기자사회의 말이 있다. 체육계의 통설 ”스타플레이어가 꼭 유능한 지도자는 아니다”와도 흡사하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 흥망사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성공의 경험이 실패의 원인이 된 경우가 너무도 많다. 모토롤라의 레이저폰 사례는 말할 것도 없고, 회장 퇴진 등 경영쇄신안을 발표한 삼성그룹의 경우도 사실은 눈부신 성공의 경험이 오만을 낳고 그것이 곧 부메랑으로 자신에게 돌아온 측면이 적지 않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3개월여가 지났다. 광우병 파동을 계기로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리더십이 새삼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제야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했다”고 말한다. 일단 소통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은 다행스럽다. 그러나 한발 더 나아가 대통령의 국정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기 위해선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과거의 성공경험을 극복하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누가 뭐래도 성공한 사람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타고난 끈기와 열정, 성실성으로 국내 굴지의 기업 현대건설 사장을 거쳐 회장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서울시장직을 수행하면서도 청계천 복원사업 등을 성공적으로 이뤄내 결국 대통령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 상황을 보면 이같은 눈부신 성공경험이 어쩌면 대통령 이명박의 성공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성공경험에만 매달려서는, 과거의 패러다임에만 집착해서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이명박 대통령의 성공은 자연인 이명박의 성공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성공이며, 우리가 국운을 한껏 펼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재임기간중에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역설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성공적인 대통령이 되기 위해선 `이명박을 현재의 이명박으로 있게 한` 바로 그 성공의 경험, 성공의 추억을 모두 버리는 것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2008.05.14 I 이의철 기자
SK 정대현 "팀이 필요할때 내 몫을 하는 것이 목표"
  • SK 정대현 "팀이 필요할때 내 몫을 하는 것이 목표"
  • 사진=SK 와이번스[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SK 마무리 정대현(30)은 16일까지 2승3세이브를 기록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SK 승리 공식의 매조지는 언제나 그의 몫이다. 그러나 지난해와는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 막기는 잘 막는데 어딘가 불안해 보이기 때문이다. 승리와 세이브는 많지만 매 이닝 주자를 내보내며 보는 이들을 가슴졸이게 한다. 2.08의 방어율과 3할6푼4리의 피안타율이 그 주된 이유다. 승리를 매조지해야 하는 마무리 투수가 많은 안타를 맞는다는 것은 그만큼 실점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실점은 곧 팀의 패배가 될 수 있는 보직인 만큼 걱정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정작 정대현은 담담하다. 페이스가 썩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크게 많은 피안타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정대현은 "올시즌 볼넷을 줄이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코너 워크를 신경쓰다보니 몰리는 공을 타자들이 잘 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점수를 많이 주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제구는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며 태평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그런 담대함이 정대현의 또 다른 힘이다. 어지간해선 주눅들거나 걱정하지 않는 마음가짐이 살얼음 승부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다. 17일 문학 삼성전서도 그랬다. 정대현은 2-1로 앞선 8회 2사 후 마운드에 올라 김창희에게 3루 베이스를 맞고 좌익선상으로 빠지는 2루타를 맞았다. 안타가 하나만 더 나오면 동점. 그러나 신명철을 간단히 2루땅볼로 솎아내며 위기를 넘겼다. 9회엔 더 숨막혔다. 2아웃까진 잘 잡았지만 박한이에게 볼넷을 내줬고 이어 대주자 허승민이 2루 도루를 성공, 또 득점권 위기를 맞았다. 당시 타석에 선 박석민의 볼 카운트는 0-3였다. 박석민을 내보내면 전날 경기 만루 홈런의 주인공인 좌타자 양준혁이 등장하는 상황. 그러나 정대현은 침착하게 다시 승부를 들어갔다. 커브와 직구를 섞어 스트라이크 2개를 잇달아 집어 넣어 2-3로 균형을 맞췄다. 박석민도 지지 않고 버텼다. 파울 홈런까지 때려내며 강하게 저항했다. 그러나 결국 정대현의 승리. 박석민의 타이밍을 완전히 뺏어내며 유격수 땅볼로 솎아내 승부를 매조지했다. 시즌 4번째 세이브. 정대현은 "지난 주말 목과 팔꿈치 통증으로 쉬었는데 이젠 많이 나아졌다. 화요일(15일)엔 컨디션이 20% 정도였는데 오늘은 그나마 밸런스가 좀 잡혔다. 아직 깨끗하진 않지만 보강 훈련을 하고 있는 만큼 조만간 좋아질 것"이라며 "세이브 숫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팀이 나를 필요로 할때 마운드에 올라 내 몫을 해내는 것이 유일한 목표"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17일]삼성 잔야구 약점 드러내며 3연패...SK 4연승☞[16일]SK 뒷심의 삼성에 7-6 진땀승...3연승으로 단독 1위☞[15일]대역전승 주역 LG 이종렬 "그저 운이 좋았을 뿐"☞[15일]LG '벅찬 승부 허무한 해피앤딩,KIA에 10-9 재역전승'
2008.04.17 I 정철우 기자
다랑이 논이 13년 만에 농원으로… 여기가 ''무릉도원''
  • 다랑이 논이 13년 만에 농원으로… 여기가 ''무릉도원''
  • [조선일보 제공] '안평대군(安平大君·1418~1453년)이 박팽년(朴彭年)과 함께 말을 타고 복사꽃(복숭아꽃) 만발한 오솔길을 올라갔다. 구름과 안개가 서린 첩첩산중 복숭아밭이 노을에 반짝였다. 안평이 말했다. "(이곳이)무릉도원(武陵桃源)이다." 안평대군 일행은 시를 지으며 산을 내려왔다. 그러다 안평이 잠에서 깨었다. 꿈이었다. 안평은 안견(安堅)을 불러 꿈에서 본 풍광을 그리도록 했다.' 조선 최고 화가로 꼽히는 안견이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그린 배경이다. 지난주 찾아간 '산방산비원(山芳山秘園)'을 돌아보며 몽유도원도가 떠올랐다. 꿈을 구체화시켰다는 공통점이 있다. 차이가 있다면 안평대군이 꿈을 그림으로 구체화시켰다면, 자신의 고향을 널리 알리겠다는 꿈을 10여 년에 걸쳐 농원으로 실체화시켰다는 점이다. ▲ 산방산비원의 오후. 인간세상이 아닌 듯 고요하고 평온하다. 이따금 두꺼비 우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조선영상미디어 유창우 기자산방산비원은 경남 거제 둔덕면 산방산(山芳山) 기슭에 오는 19일 새로 문 여는 야생화농원이다. 이 부근은 흔히 '청마마을'이라 불린다. 청마 유치환(柳致環·1908~1967) 선생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청마는 통영에서 활동했지만 산방산에서 멀지 않은 둔덕면 방하리에서 태어났다. 산방산비원을 만든 김덕훈(68) 원장은 청마와 인연이 각별하다고 느낀다. "제가 청마의 생가(生家)에서 태어났습니다. 청마는 태어나고 세 살 때 가족과 통영으로 이사했죠. 그의 가족이 살던 집을 우리 할아버지가 사셨어요." 김 원장이 10년 넘게 정성껏 가꾼 산방산비원을 올해 개장하는 건, 올해가 청마 탄생 100년을 맞는 해이기 때문이다. 오는 18일 청마기념관이 정식 개관하고, 18일부터 20일까지 '청마 탄생 100주년 기념 문학제'가 열린다. 김덕훈 원장도 청마처럼 어렸을 때 고향을 떠났다. 사업으로 큰 돈을 벌었다. 20여 년 전 고향에 왔다가 깜짝 놀랐다. 산기슭을 깎아 만든 다랑이논에 억새가 우거져 있었다. 젊은 농부가 없는 건 어느 시골이나 마찬가지나, 농기계가 들어갈 수 없는 다랑이논이라 나이 많은 땅주인들이 아예 농사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김덕훈 원장은 황폐해진 다랑이논에 야생화농원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야생화 농원은 김 원장의 오랜 꿈이었다. 그는 경남 일대에서 야생화와 수석, 난(蘭)으로 꽤 이름 난 사람이다. "나무와 풀을 잘 가꾸는 어머니를 보고 자랐는데, 그 영향을 받은 모양입니다." 입구에서 바라다 본 농원은 그리 규모가 대단해 보이지 않다. 다른 수목원이나 농원처럼 한 종류의 꽃이나 풀, 나무를 한 곳에 집중적으로 심어놓지 않아 첫눈에는 다소 실망스럽기도 하다. 개인 인터넷사이트에 사진 찍어 올리기가 유행하면서, 요즘은 어디나 소위 '사진발'이 좋아야 사람이 몰린다. 그런데 이곳은 예쁘게 사진 찍기가 쉽지 않다. 이곳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산방산비원 웹사이트를 둘러봤다. 솔직히 '좀 별로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산방산비원은 실제로 보면 훨씬 좋은 곳이다. 입구를 들어서면 먼저 규모에 놀란다. 1995년부터 조금씩 사들인 땅이 3만여 평. 높은 산으로 폭 에워 싸인 지형이라 바깥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넓다. 메울 곳은 메우고 깎을 곳은 깎으며 농원의 터를 잡았다. 다랑이논 형태를 그대로 살려 계단식 연못이나 화단을 만들기도 했다. 여기에 전국 곳곳에서 우리 풀과 꽃과 나무 1000여 종을 찾아다 심었다. 김 원장은 "수국이 약 200가지, 비비추 50가지, 수련 30가지가 있고, 중국 우한(武漢)에서 희귀 연꽃 11종도 들여와 연못에 띄웠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산책로 돌계단 틈새에서 돌단풍이 한창이고, 연못에는 수련과 창포가 물가 군데군데 나 있다. 마치 오래 전 그곳에 뿌린 듯 자연스럽다. 꽃과 나무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심고 조경했다. '사진발'이 살지 않는 건 이처럼 인위적 아름다움을 가능한 배제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꽃 피우거나 잎에 단풍 드는 시기가 조금씩 다른 야생화를 적절히 섞어놨다. 언제나 볼거리가 있다. 김 원장은 "15일 간격으로 꽃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돌단풍이며 라일락, 꽃잔디, 철쭉, 명자나무, 왕벚꽃, 수선화, 진달래 따위가 한창이다. 연꽃이 곧 찾아올 여름에 만개하려 대기 중이고, 멀리 울릉도에서 찾은 까실쑥부쟁이는 가을이면 예쁜 무늬를 잎사귀에 피울 것이다. 김 원장은 "형형색색 꽃으로 눈요기하는 시대는 지났다"면서 "풍경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농원은 김 원장이 자부심 가질 만한 풍광을 품었다. 농원 앞 바다는 산으로 둘러싸이고 섬으로 막혀 잔잔하고 평화로운 호수 같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산방산이 진면목을 드러낸다. 언제나 물 흘러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계곡을 타고 바람이 불어와 상쾌하다. 바람이 왕벚꽃나무 꽃잎을 하늘에 날렸다. 따뜻한 오후 햇빛에 꽃잎이 반짝거렸다. 안평대군은 이 광경을 보고서 뭐라고 할까, 궁금했다. ::: 산방산비원 언제 갈까요?  언제 가도 좋답니다. 왜냐하면… 꽃 피우거나 잎에 단풍 드는 시기가 조금씩 다른 야생화를 적절히 섞어놨기 때문에 언제나 볼거리가 있습니다. 김 원장은 "15일 간격으로 꽃이 나온다"고 설명합니다. 지금은 돌단풍이며 라일락, 꽃잔디, 철쭉, 명자나무, 왕벚꽃, 수선화, 진달래 따위가 한창입니다. 연꽃이 곧 찾아올 여름에 만개하려 대기 중이고, 멀리 울릉도에서 찾은 까살쑥부쟁이는 가을이면 예쁜 무늬틀 잎사귀에 피울 테지요. ▲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여기처럼 어울리는 곳도 없다. 설명을 듣고 나면 꽃 하나, 풀 하나도 소중하게 보인다. 단체관람객의 경우 예약하면 김덕훈 원장이나 다른 직원이 차근차근 재미있게 안내해준다. 1시간부터 4시간짜리까지 다양한 관람 코스도 알려준다. 개별 관람객이면 계절별로 피는 꽃과 풀을 표시하고 설명한 지도를 달라면 된다. 입장료 어른 1만원, 아동 5000원. 농원 내 샌드위치, 김밥 등 스낵과 음료를 파는 매점이 있다. 농원 한가운데 있는 건물에서는 녹차(1만원) 등 전통차를 판다. 경주 커피전문점 '클라라 & 슈만'에서 볶은 커피원두로 드립커피(1만원대)도 내려 팔 계획이다. 문의 (055)633-1221, www.bee-one.co.kr ▲ 통영에서 거제대교를 넘어 오른쪽 둔덕면 방향으로 튼다. 하둔에서 양갈래길을 만나면 왼쪽을 선택한다. '청마생가'란 팻말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갈라지는 길이 보인다. 청마생가를 지나 조금만 더 가면 산방산비원이 왼쪽에 있다. 거제대교를 넘으면서부터 '산방산비원' 간판이 여럿 세워져 있어 찾기 어렵지 않다. ▲ 산방산에 올라보자. 거제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산이다. 한산도와 욕지도, 비진도 등 다도해 절경이 펼쳐진다. 8부 능선까지 등반 가능하다. 2~3시간 걸린다. 둔덕면 하둔에서 해안을 따라 1018번 지방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해안길 드라이브 코스로 이어진다. '홍포-여차 해안도로'가 백미다. 14번 국도를 타고 조금만 가면 해금강이다. 진시황제를 위해 서불이 불로장생초를 구하러 왔었다는 전설이야 믿거나 말거나지만, 전설이 생길만하다 싶게 경관이 훌륭하다. 문의 거제시 관광과 (055)639-3198 ▶ 관련기사 ◀☞노랑·분홍… 화려한 고산식물 만나러 가요☞봄기운 받은 식물원… 야생화들 꽃망울 터트리네☞벚꽃이 진다… 야생화가 핀다
  • 글로벌 투자은행, 亞에 `최고인재` 속속 투입
  • [이데일리 양이랑기자]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아시아 지역에 `최고의 인재`를 대거 파견하고 있다.14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최근 모간스탠리, JP 모간, 도이체 방크 등은 회사 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재들을 유럽이나 미국 본사에서 아시아로 내보내고 있다. 모간스탠리는 스타급 인수합병(M&A)전문 은행원인 스콧 매트록을 영국 런던 지점에서 홍콩 지점의 아시아 M&A 담당으로 내보냈다. 또 글로벌 자산운용담당이었던 오웬 토마스를 아시아 지사 최고경영자(CEO)로 임명했다. JP모간은 뉴욕 지사에서 근무하던 베테랑 은행원 윈스롭 와트슨을 홍콩지사로 발령내면서 아시아 태평양 우량채권시장 대표를 맡게 했다. 크레디트스위스(CS) 는 구조화 파생상품 수석을 맡던 오사마 아바시의 활동 영역을 홍콩에서 아시아(일본 제외)로 확대했다. 골드만삭스도 곧 홍콩, 싱가포르 등지에 고급 인력을 파견할 방침이다.일부 투자은행들은 글로벌 시장 총괄을 아시아 지역으로 이전하기도 한다.지난해 바클레이즈 캐피털은 영국에서 글로벌 외환을 담당하던 이반 리토사를 싱가포르로 발령냈다. 씨티그룹은 테드 쿠 글로벌 소매 투자은행 담당의 직함은 유지하면서 홍콩의 아시아 소비자 투자은행 담당을 겸임케 했다.아시아 시장의 존재감은 점점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톰슨파이낸셜의 집계에 따르면 글로벌 시장에서 투자은행 수익의 15%(일본 제외)가 아시아 시장에서 발생한다. 이는 5년전 5% 대비 크게 증가한 것이다. 또 올해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인수합병(M&A) 시장이 27% 축소됐지만, 이 지역에서의 인수합병 규모는 1% 주는데 그쳤다. 최근 글로벌 주식 거래 담당을 뉴욕에서 홍콩으로 이전한 도이체 방크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자산 시장의 판도가 변하고 있고, 아시아 시장의 중요성이 증대됨에 따라 아시아로 인재를 이동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8.04.14 I 양이랑 기자
  • (미리보는 경제신문)"더 걷힌 세금으로 내수 진작"
  • [이데일리 박옥희기자] 다음은 주요 경제신문들의 내일자(14일) 조간 주요 기사다.(가나다순) ◇ 매일경제 ▲1면 -국세청 조직개혁 외부에 맡긴다 -산은 민영화 3년내 마무리 -"한국기업 印尼 SOC투자 기대" -김창록 산은총재 사표 제출 ▲트렌드 -신문, 디지털 인쇄로 거듭난다 -대기업 경력직 채용 잇따라 -재계 "한국기업 신인도 추락 우려" ▲종합 -美GE 실적쇼크...국내증시 전망은 -이명박대통령 취임후 첫 기자회견 ▲경제종합 -미분양주택 급증 13만가구 육박 -백용호 공정위원장, 경품 제공한도 완화한다 -김중수 경제수석의 불만 "보고 제대로 해달라" ▲정치·외교안보 -한나라 복당논쟁에 날새려나 -현역만 유리한 선거制 바꿔야 -중립성향 무소속 몸값 쑥쑥 -한국 새정부에 美요구 봇물 ▲국제 -중국 핫머니와 피말리는 전쟁 -폴슨 美재무 "세계경제 더 어려워질것" -개도국 식량폭동 확산 가능성 -후진타오-샤오완창 역사적 만남 -日 서브프라임 손실 1조200억엔 -中은행감독위 주석 "금융개방 천천히" ▲금융·재테크 -이번주 금융공기업 CEO 사표 제출 -아직도 카드할부 이자 내세요? -제재심의안 놓고 금융위·금감원 갈등 ▲매경 인도네시아 포럼 -유수프 칼라 印尼 부통령-장대한 매일경제 회장 대담 -韓-印尼 기업협력 `준정부 기구` 만들자 ▲기업과 증권 -이건희 회장 2선후퇴냐? 정면돌파냐? -내년 한상대회 인천서 -낸드 8개월만에 반등 `하이닉스 효과`? -KTF 쇼 가입자 500만명 돌파 -현대로템, 美서 객차 75량 수주 -자통법이후 달라지는 펀드시장-'펀드슈퍼마켓'서 입맛대로 산다 -국내 IT株 추가상승 분수령 -건설·은행株 `MB노믹스`에 두둥실 -프로그램매물 후폭풍 오나 -한국에 `스위스식 PB` 도입하겠다 -부동산펀드 다시 살아나나 -작년 주가급등 불구 ELS 수익률 찔끔 -일부 주식형펀드 돈가뭄 ▲중소기업·과학기술 -고흥서 발사될 로켓 조립 한창 ▲유통 -백화점 남성정장 정찰제 자리잡아 -소연씨 덕분에 우주용품 잘나가네 ▲증권·코스닥 -퇴출 모면위해 경영권 헐값 매각 -안연구소 1분기 실적 악화 우려 -외국인상대 `보일러룸` 범죄 첫 발생 ▲펀드평가 -채권형펀드 주간 수익률 0.47% -러시아 비중 늘려 9개월 수익률 11.45% ▲부동산 -양도세·대출규제 완화로 거래 살려야 -고가주택 기준도 6억→10억 높일 필요 -용인 신봉지구 15일 1760가구 청약 ◇ 서울경제 ▲1면 -내수부양 예산 확보 나선다 -한나라 18대총선 당선자 절반이상 "대운하 반대·유보" -상하이 A증시에 직접투자 길열렸다 -김창록 산은총재 사직서 제출...금융공기업 수장 물갈이 본격화될듯 -G7 재무회담 "약달러 공동대처 필요" -美증시 'GE 실적쇼크' 2% 급락 ▲종합 -李대통령 '산은 민영화' 신속성·대형화 동시 강조 -국민·주택銀 합병 주역 이근영 전금감위원장 "은행 대형화, 단계적 추진해야" -이건희 회장 '경영체계·경영진 쇄신' 발언 이후 -금융 공기업 기관장 물갈이 본격화 -한·미 쇠고기협상 주내 타결 가능성 -러, 우주사업 돈벌이에만 혈안 -年소득 4000만원 넘는 가계 정부 재정 수혜보다 세금이 더 많다 ▲해설 -李대통령 취임후 첫 기자회견 보면 추경·감세등 총동원...내수 살리기 '올인' -MB "대통령 당선 이후 親李 없어" ▲정치 -한미FTA·공정거래법 개정등 국정협안 처리 18대 국회로 넘어갈듯 -김진표 의원 "당 정책노선 경제중심으로 바꿔야" -모피아 출신들 '정가 파워그룹으로' -정몽준, 수천억대 장학재단 설립 추진 ▲기획 -이영희 노동부장관 "투쟁적 노동운동 더이상 지지 못받아" ▲금융 -은행들 '소액대출 시장' 앞다퉈 진출 -카드, 첫해 연회비 면제 사라진다 -은행권 올들어 中企 지원상품 봇물 ▲국제 -中華부흥·亞 경제통합 주도 과시 -글로벌 M&A시장 중심축 뉴욕 지고 런던 뜬다 -"美 대통령 선출방식 직선제 전환 추진" ▲산업 -대우조선해양 인수후보3社 강점...약점은 -`현대오일뱅크 지분 매각` 갈등 심화 -이동통신시장 '경쟁' 사라지나...의무약정제 도입으로 가입자 단속 효과 강화 ▲증권 -"글로벌 증시 급락 가능성 낮다" -물·일본·리츠펀드등 '못난이 3형제' 수익률 개선불구 설정액 지속 감소 -베트남·인도펀드 수익률 회복세 -경기부양 기대..."건설·소비재株 주목을" -회사 분할후 주가 하락 속출 -美 투자은행 실적발표 최대 변수될듯 -실적호전 예상 IT·소재株 관심 ▲부동산 -강북 집값 "단기 정점" "버블 아니다" 논란 ◇ 한국경제 ▲1면 -李대통령 "더 걷힌 세금으로 내수 진작" -동탄2신도시 떠나는 공장에 조성원가보다 30% 싼 용지공급 -법질서 파괴 사회적 비용 63조 '기본' 지키면 성장률 3%P 올라 ▲종합 -용인 기흥 일대에 복합 문화벨트 -日기업 올 임금 상승률 1.9% -백용호 공정위장 "신문고시 전면 재검토하겠다" ▲종합·해설 -G7 "弱달러 더이상 좌시 않겠다" -씨티·구글 곧 실적발표...美증시 고비 국내사는 `무난`...주가 큰 요동 없을듯 -김창록 산은 총재 사표...금융공기업장 교체 본격화 ▲李대통령 기자회견 -메가뱅크 장점 살리고 신속추진도 하고 -歲計잉여금 활용·추경 편성까지 고려 -"5월 임시국회서 민생법안 처리를" ▲정치 -한나라 당권 경쟁 기지개 -통외통위 26명중 12명만 생존...FTA 변수 될까 -`불사조` 변신 이인제, 날아갈 곳 어디에... -한나라 사무총장 이방호 후임에 권영세 우력 -민주, 노선 우향우 하나 ▲종합 -'한미 FTA 주도' 한덕수 전 총리의 제언 -李대통령, 내일부터 방미·방일...관심 끄는 일정은 -한미FTA 합의 최대현안 부상 -재정차관, 금융위·금통위 참여할까 -"은행 문턱이 낮아졌다고요? 립서비스 불과...높은벽 여전" -企銀, 저신용자 소액대출 나선다 -IMF "한국 올 수출 증가율 8.6%로 크게 둔화" ▲기획 -기초질서가 국가경쟁력이다 -내 준법 점수는 '양호'...법질서 혼란은 '네 탓' -강성노조가 기업수명 단축...'高聲不敗' 버려라 ▲국제 -세계 휩쓰는 물가 급등 쓰나미 -인플레 공포에 지구촌이 떤다 '골디락스'가고 식량폭동 위기 -60년만에 中·대만 고위층 첫 회동 -전세계 벤처캐피털 200억弗 中 벤처기업 투자 대기중 -베트남, 외국인에 아파트 소유 허용 ▲산업 -삼성 특검 마무리 국면...이건희 회장 경영쇄신 카드 뭘까 -한국 섬유 생산기지로 떠오르는 '인도네시아' -현대重 "IPIC가 경영참여권 방해" 현대오일뱅크 분쟁 국제중재 승소 확신 -노키아 中시장 질주...왜? -KFT '쇼' 가입자 500만 돌파...3G휴대폰 1천만명 시대 '눈앞' ▲부동산 -내집마련 꿈 더 멀어졌다...서울 60㎡ 아파트 사려면 7.2년 모아야 -미분양 13만가구 육박 -동탄신도시 분양원가로 공급하라" -노원·도봉·중랑 6억 넘는 아파트 고작 2~4%...강남 집값 대책으로 강북 잡겠다고? ▲증권 -中 새내기株 수익률 `한국의 4배` -기관, 하이닉스 대량매수 -파생증권시장 성장세 급제동 -푸르덴셜운용 中QFII 취득 -"철강價 인상폭 시장기대 못미친다" -'장외거래 新시장' 프리보드와 다른 점은 거래제한 없는 경쟁매매 방식 -동양종금證 등 4곳 '최우수 리서치' -LG패션·生健 나란히 '업종대표 기대株' -삼성전기·서울반도체 LED성장성 주목
2008.04.13 I 박옥희 기자
  • (미리보는 경제신문)한나라당 과반의석 확보 확실
  • [이데일리 김보리기자] 다음은 내일자(10일) 경제신문 주요 기사다.(가나다순) ◇ 매일경제신문 ▲1면 -한나라당 과반의석 확보 확실 -출구조사 한나라당 154~178석 -자원보고 인도네시아 다국적기업 몰려든다 ▲종합 -3월 생산자물가 8%↑. 증가률 5년만에 최고 -이소연씨 오늘밤 10시 우주정거장 도착한다 -WSJ "대출확대 ·은행예치금 이자지불 등 검토" -IT 한국경쟁력 세계 9위로 껑충 -올해 유가 평균 108달러 예상 -"은행 취업문 열자" 상반기 공채 시작 ▲4·9총선 -법인세 인하 · 출총제 폐지...MB노믹스 속속 실행 -이 대통령 취임후 첫 한표 행사 -한나라당 20대 보수화 덕 봤다 -"투표 귀찮아" 등돌린 민심 -2004년빼고 87년 이후 여소야대 -17일간의 朴風...대구 칩거기간에도 위력 -與野 개혁공천, 국회 세대교체 효과 거뒀다 ▲정치·외교안보 -6자회담 내달께 재개..北核 검증방식 논의 -미래기획위원장 안병만씨 -북한 당분간은 通美封南 -北노동신문 "국력은 곧 軍" ▲국제 -인도 아프리카 자원 쟁탈전 -대중성·가격파괴·기능성·친환경 히트상품 4대전략 -유럽 '단일경제'구상 흔들린다 -씨티, 120억弗 차입대출 매각 추진 -워싱턴뮤추얼, 70억달러 자금 조달 ▲종합 -기획재정부-지식경제부, 휘발유 · 경유 관세 0%논쟁 -공기업 '낙하산 감사' 없어지려나 -원자재값 올라 개도국 상대 무역적자 -호남고속철도 완공 시기 5년 앞당겨 2012년 개통 ▲금융·재테크 -中企 가업승계 고민 은행에 맡기세요 -카드 할부대금 격월로 결제 가능 -은행수신 석달만에 감소 -생보사 총자산 300조 돌파 ▲기업과 증권 -재계 총수들의 M&A...공개구애형·기습공격형·은둔진행형 -삼성 와이브로 제품도 국제인증 -최태원 회장 중국行 -LG디스플레이 中2공장 가동 -4.9총선 이후 증시 어디로 -신세계 ·롯데쇼핑 실적 호적 ▲유통 -저칼로리 원두맛 살린 진한 커피음료 봇물 -롯데홈쇼핑 "올해 30%성장할 것" ▲부동산 -잠실 1만8천가구 집들이 앞두고 가격하락 -값싼 상한제 아파트 쏟아진다 -남양건설,대주건설 미분양 협력업체에 떠넘겨 ◇한국경제신문 ▲1면 -출구조사 "한나라 154~178석 과반확실" -투표율 40%...사상최저 -첫교신 이소연 "괜찮다.양호하다" -생산자물가 8%급등...9년만에 최고 ▲선택4·9총선 -李대통령 "국민의 뜻 항상 정치에 앞서" -`총선 민심`확인...경제살리기 탄력 받는다 -한나라, 親李 친정체제로 개편 -靑, 선거로 미뤄왔던 개혁 본격 추진 -이회창, 박상천 재기한 노병들 눈에 띄네 -6%성장 위한 경기부양 논의 수면위로 ▲종합 -오늘 금통위...깊어가는 `금리고민` -韓, 2010~2013년 4.6%성장 IMF세계경제 전망 ▲국제 -동유럽 국가, 핫머니 유출로 `한숨` -파운드화 약세 어디까지... -모건스탠리 존 맥 CEO 연임 성공 -美자동차 `빅3` 수출확대 가속 ▲산업 -석유公,한전 사장, 美 등서 유전, 화력발전 개발 계약 -LG디스플레이, 中시장 확대 -올 국내 철강생산 사상 최고 ▲부동산 -"내집마련, 올 하반기 분양 아파트 노려라" -민간 상한제 아파트 1만3236가구 공급 -여주, 이천, 양평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소문에 거래 실종 ▲금융 -외국계, 재무 개선위해 잇단 자본 확충 -총선 통장도 `시들` ▲증권 -온라인 수수료 0.02% 밑으로 -반등 장세 틈타 CB,BW신주 쏟아져 -유진테크, 파이컴 등 1분기엔 영업이익 `활짝`
2008.04.09 I 김보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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