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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년대를 풍미한 외식업계의 풍운아
  •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년대를 풍미한 외식업계의 풍운아
  • [이데일리 EFN 이덕철 객원기자] 먼지가 적당히 쌓인 옅은 밤색 007가방을 서재 창고에서 꺼낸다. 꽤 오래된 듯하다. 20여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가방이다. 그리고는 한참을 생각에 잠긴 듯 응시한다. 이내 찰칵찰칵 비밀번호를 돌린다. 번호를 잊어버렸는지 아니면 잘못 돌렸는지 다시 시도한다. 덜커덩 소리를 내며 드디어 가방이 속을 드러낸다. 리비아 현지에서 국내로 송금한 돈의 기록표들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만감이 교차한다. 손의 움직임은 분주해지고 이것저것 뒤진다. 그리고는 이내 감회에 젖은 듯 말이 없다. 눈가의 고요에 잠시 물기가 얹힌다. 사업실패로 쫓기 듯 열사의 나라 아프리카 리비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때가 언제였던가. 당시의 아픈 기억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007가방 하나 달랑 들고 20대 중반에 무작정 떠나왔던 리비아. 돼지갈비와 함흥냉면으로 한때 외식업계의 살아있는 신화로까지 불린 (주)이학면옥 윤희원 대표(51)의 성장통의 한 페이지다.  그리고 이 가방에는 오늘의 성공키워드를 제공한, 두차례에 걸친 리비아 3년의 흔적과 사연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가끔씩 그는 스스로 나태해졌다 싶을 때마다 가방을 꺼내보곤 한다.  그는 지금 조용한 신도시인 인덕원 부근의 대지 1421.49㎡(430평) 저택에서 거주하고 있다. 10년 전 똥창(?)이 맞는 친구와 공기 좋고 경치 좋은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가맹점이 아닌 직영점으로 16개의 대형매장을 운영하며 외식업계의 기린아로 떠오를 때 이곳에 들어왔다. ◇ 전성기 시절 직원만 550여명 10년 전의 전성기 시절, 점포 전체 매출액이 200억원대를 넘나들 정도였다. 이학면옥 본점과 본사가 있는 인천 연수구의 대지 2281㎡(690평)에 연건평 3305.8㎡(1800평)인 3층 건물도 그의 소유다. 현재 그는 사업의 내실화를 위해 점포들을 정리하고 남은 직영점 6개를 운영하고 있다. 무서운 기세로 점포확장에 나섰던 전성기 시절에는 직원만 550여명이었다. 30대 후반에 일찌감치 외식사업으로 대성공을 거둔 그다. ◇ 16살때 심야 완행열차타고 서울행 감행 “괜찮을까” “괜찮을 꺼야” “혹시 잘못되는 것은 아닐까” “ 그렇지 않을 꺼야” “언제쯤 도착하지” “조금 있으면 도착하지 않을까” “서울은 무서운 사람들도 많다는데” “태연하게 자세를 잡아야 돼, 겁먹은 표정을 하지말고” 15~16세 쯤 되어 보이는 까까머리 두 소년의 표정에 불안한 그림자들이 가득하다. 겁을 잔뜩 먹은 얼굴이기도 하다. 두 소년은 연신 통로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쳐다보며 말을 주고받는다. 전남 나주에서 용산역으로 가는 완행열차에 몸을 실은 두 소년의 머리속에는 고향이 멀어질수록 부모 형제들의 얼굴이 더욱 또렷해져 가고 있었다. 1973년 6월 29일 16살 중학생이던 윤희원 대표는 친구와 가출해 야간완행열차를 타고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8남매의 5째인 그는 잎담배 농사를 짓는 부모님 돈 10만원을 슬쩍 해 서울행을 감행한 것이다. 집안은 6611.6㎡(2000평)이 넘는 잎담배 농사를 지어 그리 곤궁한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워낙 많은 형제자매들과 많은 농사일로 어린나이의 그는 힘에 부쳤고 늘 배가 고팠다. 늘 쌀밥을 배불리 먹는 게 꿈이었다. 그는 학창시절에도 ‘짱’노릇을 주로 해 왔다. ◇ 사회에서 받은 첫 월급 3000원 받고 감회 이런 기질은 훗날 그가 외식사업에 뛰어들면서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대범하게 처신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일까. 어린 나이에 생면부지의 도시인 서울로 가출을 감행하는 용기를 발휘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한 12시간 쯤 달려왔을까.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용산역이었다. 두 소년은 고향에서 사전정보로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직업소개소 안으로 냉큼 들어선다. 그리고 그날 용산역 인근에 있는 평양냉면집에 취직한다. 사회를 알기에는 어린 나이에 사회인으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그가 사회에서 받은 첫 월급 액수는 3000원이었다. “먹는 장사로 반드시 성공해서 돌아가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식당에 취직해서 쌀밥을 배불리 먹고 싶었다. 평양냉면집에 취직해서 받은 첫 월급 3000원은 나에게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지하철 4호선 인덕원역에서 하차해 마을버스로 약 10분쯤 가 ‘주공 4단지’에 내리니 윤 대표가 마을버스역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아침식사를 자기 집에서 하자고 해 그의 집으로 가는 길이다. 만난 지 이번이 두 번째인데 자기 집에서 식사를 하자니 좀 당황스러웠다. 저녁도 아니고 아침을 같이하자니 보통 친하지 않으면 청하기 어려운 일이 아닌가. 그랬다. 그는 사람냄새 폴폴 나는, 꾸미지 않은 소박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외식업계에서 크게 성공한, 작은 거인답지 않게 수수하고 온정적이다. 그의 키는 162센티미터로 작다. 외식업계의 ‘오뚜기’, ‘등소평’이라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투박하나 정겨움이 물씬 묻어나는 얼굴에 격의 없는 미소를 ‘씩’하고 띠우면 부처상이 따로 없다. 주변에 사람이 많이 몰리는 이유도 그가 나대지 않고 겸손하며 주위 의견에 경청을 잘하기 때문이다. 그의 눈빛이 그의 시골틱한(?) 외모에 견줘 형형한 이유는 사물에 대한 깊은 관조의 힘이 녹아있어서다. 이해와 배려는 그의 사람사는 방식이다. 그의 오늘을 만든 강철 같은 의지와 배포 그리고 일벌레 습성이 후덕한 인상과 버무려지면서 그만의 독특한 이미지로 살아난다.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라고 주변에서 말한다. 그의 집을 방문하게 된 필자에게 리비아에서의 3년을 이야기 하면서 감정이 살아났는지 그 당시 가지고 갔던 007가방을 찾아가지고 왔다. ◇ 정겨운 모습에서 형형한 눈빛이 주는 관조의 미학 그를 리비아로 가게 만든 사연은 무엇일까. 16살에 서울 생활에 들어간 그는 부지런함과 성실함으로 단박에 주인의 눈에 든다. 아침 6시에 기상해 하루에 70~100 군데를 배달하고 나서도 저녁에는 틈틈이 요리를 배웠다.  힘은 들었지만 일 벌레 습성이 그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주인이 아예 혀를 내두를 정도로 요령을 피우지 않았다. 저녁에 문을 닫으면 혼자 식당 안을 깨끗이 청소도 했다. 훗날을 대비해 요리법도 어깨너머로 계속 익혔다. 이런 그를 보고 주인이 인심 쓰듯 한마디 던졌다. “지금까지 우리 식당에 일하러 온 많은 사람들 중에 너같이 일 잘하는 놈은 처음 본다. 나이도 어린데 정말 부지런하고 열심이다.” 그러나 1년쯤 되어갈 무렵 그는 가슴에 상처를 받고 자리를 옮긴다. 매장에서 분실한 돈 4만원의 범인으로 몰린 것. 물론 나중에 아니라는 게 밝혀졌지만 그는 더 이상 근무할 의욕을 잃었다. 자리를 옮겼다. 종로에 있는 한식집 ‘한일옥’에서도 그의 진가는 여실히 드러났다. 심지어 주방장이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하자 어린 나이에 주방장을 겸하게까지 된다. 한마디로 그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다. 일찌감치 될성싶은 나무로 주변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도 그는 주인으로부터 한마디를 듣게 된다. “이 다음에 나이가 들면 진짜 잘 살 것이다.” 그는 이 한마디를 가슴에 묻었다. 그리고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 결심한다. 의지력은 그의 오늘을 만든 동력이다. 어린 나이에 일찍 배운 담배를 18살 때 끊고 지금까지 금연을 한것이라 든지, 2전3기 끝에 오픈한 이학면옥 1호점부터 5~6년 동안을 1000원짜리 한 장 허투루 써 본적이 거의 없다라든지 서초 2호점을 오픈하고 나서 6개월 만에 3억원을 까먹고도 의연하게 대처한 것 등은 오늘날 그의 성공이 얼마나 자신을 갈고 닦으면서 이뤄진 것인가를 잘 대변해 준다. ◇ 세 번째 직장 ‘감미옥’에서 7년 보낸후 첫 가게 18살이 되던 해, 그는 세 번째로 자리를 옮긴다. 종로 4가에 있는 설렁탕 전문 음식점 ‘감미옥’이 그 곳이다. 작은 가게의 주방장 월급 수준인 2만5000원을 받았다. 3년 만에 월급이 8배로 뛰었다. 자신의 상품성을 키워놓은 것이다. 직원 30여명 중에서도 조리, 관리, 직원간 화합 등을 두루 잘하는 몇 안되는 직원으로 꼽혔다. 당연히 일 잘한다는 칭찬에 이어 “월급을 줘도 돈 안 아깝다”는 말까지 덤으로 들었다. 그는 어린 나이부터 ‘세상은 자기하기 나름’이라는 철학을 몸에 새기고 있었던 듯하다. 지금도 그는 주변 외식인들에게 “장사가 되고 안 되고 하는 것, 또 직원들이 자주 나가는 것 등은 모두 업주한테 책임이 있다”고 설파한다. 감미옥에서의 근무는 군대를 갔다 와서도 계속돼 모두 7년간 머물게 된다. 윤 대표는 이 시기 스스로 식당을 운영해 보고픈 유혹에 빠진다. 그는 군대 제대 후 1년 6개월간 500만원짜리 적금을 붓는다. 월급 25만원 중 24만6000원을 다 적금에 부었다. 한번 마음먹으면 해내는 의지력이 아닌가. 드디어 1981년, 서울로 뺑소니치듯 가출한 지 10년이 다 될 무렵인 25살의 나이에 가게를 오픈한다. 종로4가 서울극장 뒤편 생선구이 골목에 500만원을 투자해 생선구이 가게 ‘청송집’을 33.06㎡(10평) 규모로 문을 열었다.  그러나 직원으로 일하는 것과 직접 경영을 하는 것은 달랐다. 경영에 대한 경험부족은 관리부재로 이어졌고 외지에서의 외로움을 고향친구들과의 잦은 만남으로 달래다가 결국 식당일에 소홀해졌다. 매일 술 마시고 노는 게 일일 정도였다. ◇ 친구와 술 그리고 경험부족으로 8개월만에 손들어 결국 8개월 만에 가게를 넘기고 손을 털었다. 리비아행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그는 재기의 사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리비아로 향한다. 해외건설현장의 주방장으로 취직해 2년 동안 근무했다. 여기서 저축한 사업자금 3000만원으로 29살에 82.65㎡(25평) 규모의 두 번째 음식점을 방배동 부근에서 개업했다. 일명 기사식당이다. 그러나 ’86서울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개최로 택시 2부제가 시행되면서 손님들이 감소하기 시작하고 종전과 마찬가지로 친구와 술에 의지하면서 서서히 내리막길을 달리기 시작, 결국 가게를 팔게 된다. 1년을 두문불출했다. 어떻게 마련한 자금으로 창업한 가게인데 너무 허무하게 무너졌다는 자괴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책과 자학으로 스스로를 고문했다. 결국 가게를 넘겨주고 남은 돈도 1년이 지나자 다 떨어졌다. 그는 지인에게 150만원의 빚을 내 다시 리비아로 향한다. 장사의 실패와는 달리 인간적인 신뢰감은 지인들에게 여전히 잃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신에 대한 원망으로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들었다. 그러나 윤 대표는 두 번째 리비아 행에서는 자신을 완전히 180도 바꾸기로 결심한다. 지나친 온정주의나 술에 대한 집착 그리고 노름 같은 것들을 완전히 그의 몸에서 떼어내기로 한 것이다. 2년 계획으로 간 리비아 2차행은 회사 내부 사정으로 1988년 한 해만 보내고 1989년 초에 귀국했다. 그가 손에 쥔 사업자금은 이리저리 떼어내고 남은 500만원 가량이었다. 1989년 2월 세 번째 가게를 방배동에 오픈했다. 물론 부족한 자금은 지인들에게서 융통했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가 70만원이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곧 신뢰로 통했다. 어려울 때마다 주변에서 그를 도와주는데 주저하지 않는 이유다. ◇ 두 번의 리비아행 자신을 송두리째 바꾸고 돌아와 그가 보여준 진실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서울 방배동에 실평수 115.7㎡(35평)의 ‘이학숯불갈비’를 오픈했다. 오늘날 이학면옥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이었다. 대박이었다. 돼지갈비 1인분이 2500원이었다. 하루 잘 팔면 30만원정도 쯤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뚜껑이 열리자 매출 40~50만원은 손쉽게 올렸다. 시간이 흘러가자 70~80만원을 넘어 최고 140만원까지 매출이 올랐다. 1년만에 8000만원의 수입이 들어왔다. 더 큰 가게가 필요했다. 때마침 운영하고 있는 가게터 옆에 신축건물이 들어섰다.  1년만에 규모가 두배 정도인 218.18㎡(66평) 가게로 1990년 3월에 옮긴다.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가 210만원으로 지출비용은 종전의 3배였다. 하지만 영업은 계속 승승장구했다. 1993년 서초 2호점을 오픈할 때까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로 바삐 움직였다. 장사에 자신이 붙었다. 826.45㎡(250평) 규모로 서초동에 2호점을 과감히 오픈했다. 그의 인간성과 능력을 믿은 친구 5명이 신용대출해 준 자금으로 개업했다. 그러나 여기서 그는 참담한 패배를 맛본다. ◇ 이학면옥 1호점의 대박 … 서초 2호점서 3억 빚 져 입지선정의 잘못으로 6개월 만에 문을 닫게 된 것이다. 인테리어 비용 등 3억원의 빚도 떠 안았다. 이제 좀 일어서나 했는데 암초를 만난 것이었다. 세 번째 위기였다. 그러나 그는 태연했다. 아니 태연한 척했다. 복구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통 큰 배포는 이렇듯 위기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이학면옥 서초 2호점의 실패로 무려 3억원의 빚을 떠 안게 되자 집사람이 나보다 더 불안해했다. 심지어 나보고 그 큰 금액을 날렸는데 몸무게가 1킬로그램도 안 빠진다고 놀랄 정도였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어찌할 도리가 없지 않겠는가 생각했다. 다만 이를 복구할 대안을 찾으려고 무진 노력했다.” 기회를 엿보고 있던 그는 1994년, 50년만에 찾아 온 최고의 무더위에 관심을 갖는다. 그는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했다. 무슨 음식이 무더위를 날려줄 것인가. 윤 대표는 냉면으로 시선을 돌린다. 1994년 5월 시흥대로변에 이학면옥 시흥 3호점, 그리고 7월에 목동 1호점이자 전체 4호점을 잇따라 오픈했다. 선풍적인 인기였다. 그의 안목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매장 앞면을 통유리로 깨끗하게 단장해 오픈한 점포에서는 한 그릇 4000원의 냉면이 22개 테이블에서 1000만원어치가 넘게 팔려나갔다. 줄을 길게 서서 기다리는 것이 예사였다. 기다리는 사람의 줄이 너무 길다보니 손님이 매장에 들어와서 먹고 나가는 시간 10분도 채 되지 않는 형국이 발생하곤 했다. 3억원의 빚은 1년 안에 다 해결했다. 그리고 그는 여기서 여세를 몰아 직영점체제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한다. 1995년도 부평 계산 5호점, 수지 6호점, 중동 7호점, 인천 만수 8호점, 1996년도 목동 2호점/ 9호점, 중동 2호점/10호점, 송파 11호점,  1997년도 인천 연수 12호점, 일산 13호점, 인천 부평 13호점, 요인 신갈 14호점, 1999년도 군포 산본15호점, 목동 3호점/16호점, 발산 17호점, 간석 18호점 등을 잇따라 오픈하면서 외식업계의 풍운아로 급부상한다. ◇ 대형직영점 18호점까지 90년대 잇따라 오픈 그리고 2002년 말 인천 연수동에 2281㎡(690평) 대지, 연건평 5950.44㎡(1800평)에 이르는 3층짜리 대형 건물을 구입해 이학 두부사랑, 이학수산, 이학면옥 등 3개의 이학식당들을 오픈시켰다. 대신 그는 점포정예화를 위해 6개 점포만 남기고 정리하는 결정을 단행한다. 그의 점포들은 큰 대로변에 주로 입지해 있다. 공격적 마케팅으로 당시로서는 선구자격이었다. IMF가 오기 이전인 1997년 전후가 최대 부흥기였다. 그의 나이 40세에 불과했다. 이 당시 전 매장 연매출액이 거의 200억원대에 이르렀다. 국내 토종브랜드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또한 종업원 수도 한 때 550여명에 달해 동종 경쟁업소들을 압도했다. 당시 외식업계로서는 가공할 숫자였기 때문이다. 그의 영엉방식은 줄건 다 주고 받을 건 받는 식이다. 고급식재에 후한 인심을 얹히고 가격은 제값을 받는 식이다. 저렴한 식재에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하는 방식을 거부한다. 그러나 잘 나가던 이학면옥도 최대의 시련기에 봉착하게 된다. 바로 광우병 파동이다. 매출이 곤두박질치다 못해 여태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적자 상태까지 가기에 이른 것이다. 돼지갈비로의 전환과 마케팅강화로 어렵게 광우병터널을 빠져나왔다. ◇ 직원교육에의 열의와 관심 그의 오늘을 만들어준 비결중 하나는 교육에의 관심이다. 한참 사세가 뻗어 나가던 1997년도를 전후해 매년 우수사원 7~10명을 선발하여 외국에 보내 선진 음식문화를 배우도록 했다. 직원들의 서비스 개선과 음식문화에 대한 개념 등을 일깨워 주기위해서다. 지방의 음식축제, 김치축제 같은 곳에도 직원들을 수시로 파견해 다양한 음식조리법을 손님들에게 선보이도록 했다. 또 유명식당이나 세미나 등에도 직원들을 보내 공부와 함께 의식을 깨우치도록 하는데도 무척 신경 써 왔다. 그가 교육비를 아끼지 않는 이유는 이렇다. “교육비를 들여 직원들의 자질을 높이게 되면 본인들도 좋고 또 교육을 받은 입장에서 회사에 감사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일하게 돼 일거양득이다. 교육비에 대해 아깝게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투자한 것에 비해 효과가 더 크다.” 그는 외식사업을 통해서 얻은 이익을 사회의 어려운 이들에게 돌려주는 데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연수구의 미화원, 양로원의 노인들, 소년 소녀 가장들을 초청해 음식을 대접하고 있으며 그가 직·간접적으로 어려운 이들을 위해 사회단체에 기부하는 경우도 여러번이나 된다. ◇ 호텔사업이 최종 목표 ‘60살 안으로 해결되겠지’ 희망 올해로 그가 외식업에 들어온 지 35년이 된다. 외식업을 무엇보다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그다. 장사를 해서 좋고 배고픈 사람에게 좋은 음식을 주어서 보람 있고 돈을 지불하면서도 인사하고 가는 그런 직업이 따로 없다는 것.  그의 앞으로의 꿈은 호텔을 짓는 것이다. 어릴적 꿈인 음식점은 후회가 없을 정도로 해보았고 이제 호텔을 가지는 두번째 꿈이 남아있다. 6611.6㎡(2000평) 대지위에 20층 규모가 목표다. 그 시기는 60세쯤이 되지 않을까 싶다. [ 도움말 : 월간 외식경영 ]
2008.07.24 I 객원 기자
열전도율 UP! 연료비 DOWN! 안전한 신소재 냄비
  • 열전도율 UP! 연료비 DOWN! 안전한 신소재 냄비
  • [이데일리 EFN 송우영 객원기자] 냄비는 불 위에서 사용하는 주방기구이기 때문에 질이 나쁜 소재를 사용할 경우 독성이 음식에 녹아나올 수 있으므로 선택에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알루미늄 소재 냄비나 조리도구는 가볍고 열전도율이 좋아 빠른 시간에 조리 할 수 있고 옛날 향수를 느낄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외식업소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알루미늄이 체내 축적될 경우 카드뮴처럼 골연화증과 수은처럼 신경장애 및 빈혈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동물실험을 통해 치매,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상관성이 보고된 바 있다. 도쿄 신경과학총합연구소장이며 기억 분야 전문인 뇌신경학자 쿠로다 요이치로는 2000년에 알루미늄이 뇌신경계통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고 특히 노인성 치매의 한 종류인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이 된다고 썼다. 젊은 사람들에게도 건망증을 일으키는 등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알루미늄은 결합력이 강해서 우리 몸속에서는 원소 성질상 닮은 철분의 자리를 빼앗아 철분 부족과 유사한 장애를 일으키기도 한다. 조리도구의 바닥이 긁히거나 코팅이 벗겨져 알루미늄이 드러나면 소량이기는 하지만 물에 녹아나오므로 만성적으로 섭취하게 된다. 녹아나온 알루미늄이 음식을 산화시켜 맛을 변질할 우려도 있다. 프라이팬이나 일부 냄비에서 사용하는 테프론 코팅이나 불소 코팅된 소재는 무쇠로 된 것보다 가벼우며 녹이 슬지 않고 음식이 눌어붙지 않아 조리와 세척이 편리하다. 그러나 테프론 역시 플라스틱의 일종으로 환경호르몬이 배출되고 불소 역시 발암성 물질이다. 주로 불 위에서 조리할 때 사용하는 도구들이라 환경호르몬 등의 유해물질이 훨씬 더 많이 나오게 되는 것에 있다. 테프론 코팅 피막이 상처를 입어 벗겨지거나 오래 사용해서 피막이 얇아지면서 도료가 녹아난다. 점착성이 강한 도료는 위벽에 붙어 소화흡수를 막고 여러 장애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 식 재료 본래의 맛 살리는 클래드 냄비 - <샤브미 구로점> 서울 구로구 구로동 롯데마트 내 <샤브미 구로점>은 고객이 원하는 샤브샤브 재료를 원하는 만큼 가져다가 테이블 위에서 끓여 먹을 수 있는 뷔페식샤브샤브전문점이다. &nbsp;샤브샤브는 많은 조리 과정을 거치지 않고 신선한 식재를 즉석에서 육수에 데쳐먹는 방식으로 현대인이 추구하는 웰빙식단으로 인기가 있다. 아이들부터 나이가 많은 고객까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메뉴로 이곳 역시 가족고객과 주부고객이 많다. 김국태 대표는 2006년부터 서울 강서구 등촌동 홈플러스 내에 <샤브미 강서점>을 운영해오다 최근 구로점을 추가로 오픈한 것이다. “30년전에 일본에 갔을 때 샤브샤브가 유행하는 것을 보았다. &nbsp;좋아하는 음식 중에 하나이기도 했지만 메뉴가 깔끔하고 사람 손을 덜 타는 메뉴이고 조리방법이나 식재료가 웰빙이라는 콘셉트에 맞다고 생각해서 선택했다. &nbsp;고객들에게도 건강한 메뉴를 내는 것에 대한 자긍심을 느낀다”고 이야기한다. 이곳에서는 개인용 샤브샤브 냄비로 아미쿡 3중클래드냄비를 사용하고 있다. &nbsp;일반 냄비에 비해 가격이 조금 비싸지만 알루미늄을 스테인리스 스틸로 두껍게 감싸 300~500℃고열로 접합시킨 신소재인 클래드 냄비는 저온에서도 알루미늄만큼 열전도율이 높아 빠른 조리가 가능해 연료소비를 줄일 수 있고 내구성이 높은 안전한 조리도구로 업소의 웰빙 이미지 구축과 업소 유지비용절감 및 매출상승에 도움을 준다.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를 고온에서 두껍게 씌웠기 때문에 벗겨질 염려가 전혀 없고 냄비 전체에 열이 고루 분산되어 재료가 골고루 익고 장시간 온도유지가 가능해 음식이 쉽게 식지 않는다. &nbsp;샤브샤브의 메뉴 특성상 뚜껑을 덮지 않고 조리하는 동안 열손실이 높지만 일정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오래 끓이면서 먹어도 음식이 타거나 쉽게 눌러 붙지 않고 세척시 쉽게 떨어져 나가 업소에서 관리하기도 편리하다. 주소 서울시 구로구 구로동 롯데마트 지하1층 전화번호 (02)2636-4488 [ 도움말 : 월간 외식경영 ]▶ 관련기사 ◀☞가스 점화 시 유독가스 없는 전기레인지☞건강한 식기에 고급스런 업소 분위기 연출까지☞음식점 부자 만드는 ‘웰빙 아이템’ 실전전략 (1)
2008.07.17 I 객원 기자
  • (미리보는 경제신문)수도권에 신도시 추가 건설
  • [이데일리 오상용기자] 다음은 10월24일자 경제신문들의 주요 기사입니다.(가나다 순)◇매일경제▲1면 -`생계형 알바` 늘고 있다.-수도권에 분당급 신도시 건설-한반도 주변 해상보험료 오를듯-韓, 농산물 세이프가드 도입요구▲종합-신도시..오산 이천 화성 포천 유력 후보지 거론-정부 "신도시 숫자 제한없이 건설"-한미 FTA 첫날..품목별 관세철폐 놓고 신경전-FTA로 근로시간 단축땐 전직수당 지원-통안증권 국채로 전환추진▲정치 외교 안보-北 6자회담 복귀 비공식 타진-이명박 "과학도시 만들겠다"▲국제-파나마운하 확장-리플우드도 델파이 인수전 참여-日기업 인도서 SW개발▲금융재테크-無심사보험 대박? 발목?-외국계 대부업체 저금리 공세-고액권 발행하면 연 4400억원 절감-산업은행, 사회책임투자펀드 판매▲기업과 증권-GM대우 윈스톰 리콜-삼성 퓨전메모리 파이 키운다-SK커뮤니케이션즈 "구글 네이버 능가하는 검색서비스 내년 출시"-KT&G 순익 1920억원 `장사 잘했네`-은행주 이젠 옥석가릴때-기아차 우선주 악재 터지나-홈쇼핑주 회복될때도 됐는데..긍정·부정론 엇갈려-프로그램 매수잔액 3조 넘었다-주식형펀드 자금융입 주춤-포스코, 신일철 제휴 불구 주가 시큰둥▲부동산-달아오른 수도권 분양시장-서울시장 말한마디에 잠실 단지 일주일새 호가 1억 껑충◇서울경제▲1면-수도권에 분당급 신도시 건설-美, 농산물 수입부과금 금지하라-FTA로 피해 본 근로자 정부가 지원-北 "BDA 계좌동결 풀면 6자회담 복귀하겠다"-무역위, 수입대두유 반덤핑 조사 결정▲종합-美, 농업부문 실리챙기기 수순 돌입-신도시 후보지 어디..오산 시흥 이천 유력-한은총재 "경기 급속 침체 위험 없다"-출자총액제 대안마련, 12월 중순이 고비-중소기업 영업이익률 5년째 하락▲금융-하나금융 "美 지역은행 인수 관심"-은행권, "인천공항 지점·환전소 잡자"..경쟁 가열▲국제-美경제 경착륙하나..비관론 확산-中 공상은행 IPO규모 21조운 달할 듯-버핏, 주가 1억원 `눈앞`▲산업-가전업계 `계량단위` 변경 비상-삼성전자,ST마이크로와 원낸드 라이선스 제공 계약-STX조선, 대만 선박시장 진출-MP3·디카 `끝모를 가격하락`▲증권-건설주 `추가 신도시` 호재-외국인 5%이상 지분 보유 늘어-KT&G 3분기 영업익 2269억원 달해-삼성 IT株 실적 "이대로 쭉~"-조선3사 나란히 52주 신고가-수익구조 개선 철강·금속株 주목▲부동산-수도권 외곽 집값상승 심상찮다-태안 기업도시 `삐거덕`◇한국경제▲1면-수도권에 신도시 추가 건설-한은, 금리인하 통한 경기부양 반대-성인게임방 심야영업 금지-한미 FTA 4차협상 첫날부터 난항▲종합-한국투자公 내달 첫 해외투자-수도권 중소형 아파트 매물 품귀-경매 열풍..낙찰가율·경쟁률 급등-수도권 후보지 촉각..인천 검단외 포천 시흥 이천 등도 거론-英 보험사, 北해역 선박보험료 인상▲국제-온라인 광고 사기클릭 주의보-산유국 석유민족주위..석유메이저 입지 흔들-자산 두배 늘어난 미국인들.."삶의 질 40년전이 더 나아"-골드만삭스, 중국공상은행 40억불 투자대박▲산업-비즈니스위크 "LG전자, 美 시장서 큰 성공"-SK커뮤니케이션즈 "차세대 검색으로 네이버 잡겠다"-오스코텍, 뼈이식재 유럽수출 길 열려▲부동산-청약통장 인기 줄었다지만..알고 쓰면 보배-북 접경지역 토지경매 활기▲금융-개인 빚갚을 능력 점점 떨어져▲증권-외국인 우량株는 더 샀다-국내 콘텐츠 시장 꼬리무는 M&A설..SK텔, 인터파크 인수?-KT&G 3분기 실적 `합격점-태영, 자사주 매입 호재로 `껑충`-상장사, 자사 워런트 매입활발-은행권 이익 올해가 정점?
2006.10.23 I 오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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