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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욱의 포토에세이]늘어가는 '포토홀릭', 그 매력이 뭐길래...
- ▲ 사진 마니아로 알려진 배두나, 박지윤, 이병진(왼쪽부터)[이데일리 SPN 김정욱기자] 제 2의 인사동이라 불리울 만큼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서울 삼청동. 이색적인 전시가 끊이지 않는 갤러리와 높은 건물 하나 없는 고즈넉한 풍경에 어울리는 각양각색 카페들이 지나가는 행인들의 발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카페에 앉아 한가로이 차 한잔을 즐기며 창밖으로 거리를 내다보면 거짓말 조금 보태 지나가는 사람 세 명 중에 한 명은 꼭 카메라를 지니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사진 동호회로 보이는 무리들이 모임을 갖기도 하며, 쇼핑몰 피팅촬영을 나선 모델들이 촬영 삼매경에 빠진 모습들도 쉽게 볼 수 있다.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며 사진을 취미로 하는 인구가 천만명을 넘어선 가운데 프로사진 작가 못지않은 실력으로 활동중인 아마추어 연예인 사진작가들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이들 중 몇몇은 단순히 취미를 넘어서 자신이 직접 촬영한 사진을 글과 함께 담아 사진집으로 출간하기도 하며, 사진 전시회를 열어 자신의 실력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뽐내기도 한다. 대중들에게 친숙한 연예인들의 이같은 사진 사랑은 여러 포털 사이트를 통해 소개되고 기사화 되어 사진 마니아들을 더욱 즐겁게 하고 있다. 이들이 어떤 기종의 카메라를 사용하는지 또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연예인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왜 사진에 열광하는 것일까? 과연 어떤 매력이 있길래 너나 할 것 없이 카메라에 관심을 갖는 것일까? 일단 사진의 탄생과 그 당시 사회적 배경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보다 상세한 내용은 인터넷이나 관련 서적을 참조하길 바란다) 1839년 8월19일 니엡스와 다게르의 은판사진술이 프랑스에서 국가적으로 공인되었고 이날이 바로 사진의 탄생일로 정해졌다. 이 부분에 대해선 여러 학자들이 보는 관점에 따라 각기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사진술, 즉 사진이란 것이 왜 탄생하게 되었고 최초의 사진 용도는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1750년 전후의 사회적 변동과 함께 중산층의 위상이 높아진다. 이 계층들이 다른 사람에게 그들의 지위상승을 보여주고 또한 자신들을 그 계층 속에 스스로 귀속시키고 돋보이게 하려는 차원에서 초상화 제작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다. 다량의 초상화 복제품에 대한 요청이 생겼고, 당시 초상화를 위한 도구로 쓰였던 카메라 옵스큐라의 영상이 실용적 기술로 제작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생겨났다. 이같은 시대적 대중들의 요구에 따라 사진술이 발달하게 되었고 급기야 사진이 탄생하게 된다. 이같은 기술발달로 인해 자신의 신분계층을 나타내는 상징적 행위인 초상화 제작이 가격면이나 대량복사에 유리한 초상사진으로 대체되며 유행하기 시작한다. ◇ 사진의 매력 1 : 초상사진. 예나 지금이나 자신을 보여주려는 욕구는 같다2002~2003년. 미니홈피란 이름의 사이버상 개인공간이 생기며 이를 채우기 위해 사람들은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미니홈피가 생겨나면서 디지털 카메라 시장이 발달했다고 봐도 무방할만큼 당시 미니홈피 열풍은 대단했고 지금까지 그 인기가 이어져오고 있다. 미니홈피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제일 즐겨찾는 카테고리가 바로 사진폴더다. 디카 든 폰카 등 손쉽게 사진을 찍어 간단히 작업해 글과 함께 간단히 업로드 시킬 수 있다. 이 사진폴더를 들여다보면 주를 이루는 것은 아마도 자신들의 사진이 아닐까 싶다. 자기애(愛)를 넘어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려는 현대 젊은이들의 성향과 맞물려 이른바 '셀카' 사진들이 넘쳐난다. '셀카' 찍는 방법도 나날이 발전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신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심지어 화장실도 주요 촬영 장소로 이용된다. 또한 '셀카'를 넘어서 마치 잡지 화보 속 주인공처럼 패셔너블한 느낌의 사진도 빼놓을 수 없다. 7~80년대 관광사진의 어색한 포즈와 표정이 아닌 그야말로 잘 연출된 사진을 원하는 그들에게 고급 카메라 기종은 필수로 자리매김한다. 원하는 사진을 얻기 위해 좋은 카메라를 원하는 것. 그리고 그 카메라를 보다 잘 쓰기 위해 공부하는 것. 정식으로 사진 공부를 하지 않아도 그들은 자신들의 욕구에 의해 자습하고 돈과 시간을 투자한다. 19세기 위상이 높아진 중산층들의 초상사진과 21세기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셀카사진. 이 둘을 비교해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때나 지금이나 자신을 보여주고 알리려는 부분에선 그 목적이 일치하고 그것이 일반 대중들이 사진에 관심을 갖는 가장 기본적인 첫번째 이유라 할 수 있겠다. * 사진의 매력 2 : 자기애(愛)에서 시작되는 일상의 기록. 결국 나를 대변한다 세계 최초의 사진은 무엇일까. 1827년 경 니세포르 니엡스의 '르 그라의 집 창에서 내다본 조망'이란 사진이 바로 그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로 집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을 담은 것이다. 1827년 최초 촬영한 사진이나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네들 사진과 비교할 때 소재는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결국 소재는 자신의 주위에 존재하는 소소한 일상들이다. 마치 고대인들이 그림이나 상형문자로 그들의 일상을 기록하듯 현대인들은 카메라로 일상을 기록한다. 자기가 일하는 공간이라든지 생활하는 방안의 모습이라든지, 이런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 자기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기록의 대상이 된다. 또한 자신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 부모, 친구, 심지어 지나가는 사람까지도 사진의 소재가 된다. 디카라는 아주 손쉬운 기록 장치. 마치 핸드폰을 몸에서 떨어뜨려 놓지 않듯 카메라 또한 이제 현대인의 필수품이 되어버렸다. 언제 어디서든 손에 잡힐만한 곳에 두고 자신의 눈이 바라보는 것을 카메라에 담는다. 이렇게 찍혀진 사진은 굳이 예전 필름 카메라 쓰듯 현상하고 인화할 필요없이 컴퓨터를 이용해 미니홈피 등 자신만의 공간에 저장된다. 단순히 모아두기 위해 찍는다면 이것은 사진의 매력이라 단정짓기 어려울 것이다. 자신의 기록이 인터넷으로 퍼지고 퍼져 결국은 자신을 알리는 것과 동일한 결과를 불러온다. 내 주위의 일상들이 바로 나를 말해준다. 즉 '내가 찍은 사진이 바로 나'로 표현되는 것이다. 또 이 사진들이 '셀카' 사진 못지 않게 자신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결국 사진에 대한 두번째 매력은 카메라를 이용한 일상의 기록들로 인해 자기 자신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릴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 사진의 매력 3 : 교감. 찍는 사람이 있으면 보는 사람도 있다 사진은 다분히 개인적인 작업이다. 소재를 정함에 있어서부터 또 그 소재를 어떤 시각으로 어떻게 표현하느냐까지 모두 자신이 결정하고 판단한다. 그렇기에 지극히 주관적인 결과물이 나오게 마련이다. 하지만 단순히 자기 만족을 위해 사진을 찍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또한 자기가 찍은 사진을 혼자만 간직하며 감상하는 사람 또한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평가 받기를 좋아한다. 하물며 투철한 작가정신으로 예술사진(굳이 그 경계를 구분하자면 순수사진)을 직업으로 삼는 사진작가들도 평론가로부터 평가 받기를 원한다. 미니홈피나 개인적 공간에 올려진 사진, 자신의 절친한 일촌의 평부터 시작해 파도타기 해 들어온 전혀 일면식도 없는 네티즌들까지 사진을 보고 느낌을 적는다. 어찌보면 어떤 게시물을 보고 댓글을 남기는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종의 예의(?)가 되어버린 듯도 싶다. 서로서로 댓글을 달며 이 사이버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교감을 한다. 또 그 속에서 새로운 사회를 형성해 간다. 사진이라는 간단한 매개물로 인해 의사소통을 하고 생각을 공유한다. 세 번째 사진의 매력은 이 부분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만들어낸 사진으로 상대방과 교류를 할 수 있다는 점 말이다. 내 사진이 다른 사람을 통해 이곳저곳으로 흘러나가 결국엔 나를 알리게 되고, 나 또한 다른 사람의 사진을 퍼 옴으로써 그 상대방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새로운 재밋거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어떤 사람은 사진 찍는 이유로 '즐거우니까'라고 딱 잘라 답한다. 즐겁게 사진찍을 수 있고 또 그 결과물을 보며 즐거워하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며 즐거워하며 그 사람 또한 즐거워진단다. 사진이라는 취미. 과하지 않게 즐길 줄 안다면 정말 매력적인 취미생활인 것은 분명하다.▶ 관련기사 ◀☞[연예인 포토홀릭③]이병진, '사진으로 말하는 그의 일상 속 개그'☞[연예인 포토홀릭②]박지윤, '그녀는 아직 소녀다'☞[연예인 포토홀릭①]배두나, '그녀에게 사진은 놀이다'☞[김정욱의 포토에세이]'같은 장소 다른 느낌' 김명민 vs 손예진☞[김정욱의 포토에세이]대중의 요구에 의해 생겨난 '필요악', 파파라치▶ 주요기사 ◀☞[취재수첩]음주방송, 더 이상 낭만적 에피소드일 수 없는 이유☞임경진 아나 계기로 돌아본 음주방송 파문...이종환 DJ 복귀까지 2년☞소녀시대, '완자남' 신정환 조원석에 '완소남' 비법 전수☞세븐 美 데뷔 카운트다운...닥 차일드 참여 앨범 마무리 단계☞최진실 "나훈아 기자회견 이후 우울하고 혼란스러워"
- (문기환의 홍보에 울고 웃고)소문난 집
- [이데일리 문기환 칼럼니스트] 최근 모 경제신문 부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다음날로 예정된 점심 약속을 부득이 연기해야겠다고 한다. 서로 바쁜 일정 때문에 매년 하던 망년 모임을 못 가져 신년하례 점심을 하기로 작년 말에 잡아 놓은 터라 조금 섭섭했지만, 신문사 고위층이 점심을 같이하자고 했다는 데야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언론사 고위 간부들이 사회 지도층 인사들과의 식사 자리에 흔히들 관련 부서 데스크와 함께 가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해서, 모처럼 근처에 있는 직장 시절의 후배에게 연락을 했다. 약속 없으면 맛있는 것 사준다고 오라고 하니 아직까지도 말을 잘 듣는(?) 착한 후배가 득달같이 달려온다. 붐비는 시간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사무실에서 얘기를 나누다가 12시 반쯤 음식점으로 향했다. 메뉴는 ‘날씨도 춥고 하니 멀리 가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만두국이나 먹으러 가자’고 선배의 힘으로 어렵지 않게 의견 일치(?)를 보았고. 그 음식점은 작고 허름해 보였지만 점심때면 손님들이 밖에 까지 줄지어 있어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후배가 맛있게 잘 먹었노라고 인사 치레를 한다. 필자도 그런대로 괜찮았다고 평가를 내리며 계산을 치렀다. 그런데 계산대 옆 벽을 보니 신문기사를 스크랩한 액자가 보였다. 직업의식이 발동해 무슨 내용인가 하고 빛 바랜 기사를 읽어 보았다. 바로 그 음식점이 맛있는 곳이라고 추천하는 수년 전 어느 신문의 글이었다. 취재를 위해 이곳 저곳 돌아다니는 기자들은 서울 아니 전국 구석구석의 맛있는 음식점을 많이 알고 있다. 지금껏 기자의 추천을 받은 곳 치고 실망 한적이 한번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기자와 함께 식사를 하는 시간이 중요한 업무의 연장이라 할 수 있는 홍보맨들도 어부지리 격으로 만만치 않은 미식가의 내공을 갖고 있다. 수년 전 모 중견기업의 홍보 임원 이던 시절 필자도 어느 신생 신문사의 요청으로 ‘회사 근처의 맛있는 음식점 추천’에 사진과 함께 등장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아마도 그때 신문에 보도된다고 하니 음식점 주인이 굳이 식사값을 안 받았을 것이다. 언론 홍보의 힘 덕분이다. 요즘 웬만한 음식점을 가보면, 그야 말로 홍보의 대가들만 모여있는 듯 마케팅 홍보 전쟁이 한창이다. 앞의 만두국 집처럼 자기 음식점을 보도한 신문이나 잡지 기사를 액자에 모셔 놓은 집은 차라리 애교이다. 아예 음식점을 방문한 정치인, 연예인, 스포츠인 등 유명인사 들의 멋진 서명과 방문 소감 등을 음식점 내 사방 벽면에 도배를 한 곳도 적지 않다. 대형 음식점의 경우는 멀리에서도 볼 수 있게 플래카드를 걸거나 아예 음식점 상호 간판 위에다가 ‘ooo TV xxx 프로그램에 나온 곳’이라고 대문짝 만하게 써 붙인 곳도 수 없이 많다. 하다못해, 어떤 곳은 ‘ooo TV, xxx TV에 안 나온 곳’이라고 써 붙인 것을 보고 실소를 금치 못한 적도 있었다. 차라리 신선해 보이고 솔직해 보여 한 번 가봐야지 할 정도다. 하여튼 분명한 홍보 효과를 보고 있기 때문에 음식점들이 너도나도 이렇게 하는 것이리라. 몇 해전 강원도 일대로 여름 휴가를 다녀 온 적이 있다. 출발하기 전 매번 그만그만한 수준의 호텔 음식을 피하고 그 지역 별미를 맛보기 위해 근처의 유명 음식점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 보았다. 그리고 휴가지 도착 다음 날, 가족들에게 큰 소리 치며 어느 언론사 소속 잡지에서 추천한 음식점을 택시를 대절해서 물어 물어갔던 적이 있었다. 두부 전문 음식점이었는데 산골 구석에 위치해 있었지만 우리처럼 사전 정보를 입수하고 왔는지 전국 각지에서 온 피서객들로 붐벼 보였다. 몇 십분 기다리다 겨우 자리를 잡고 잔뜩 기대하며 음식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평균 이하의 음식 맛과 서비스 수준은 차치하더라도 반찬 이곳 저곳을 윙윙대며 분주히 날아다니는 파리들을 목격하고선 왕복 택시비조차 아까울 정도였다. 가족들의 실망한 모습을 보고 자연 그런 곳을 버젓이 추천한 그 잡지에 대한 원망의 마음까지 갖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맛있는 음식점 소개 기사의 경우 음식 전문기자들이 직접 발로 뛰며 체험한 것도 있지만, 직접 가보지도 않고 그야말로 광고 판촉 차원에서 광고비를 받고 음식점에서 제공한 자료를 기사처럼 쓰는 소위 ‘기사식 광고 (Advertorial)’를 일부 매체에서 집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그것은 정식 보도가 아니라 독자의 눈을 현혹 시키기 위한 광고였던 것이다. 독자나 시청자는 자신이 신뢰하는 신문과 방송의 기사를 대부분 그대로 믿는다. 그러나, 아무리 큼지막한 글자로 현란하게 포장돼있더라도 광고 문구라면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드물 것이다. 음식점에서 한번 광고를 집행했다고 해서 당장 찾아가지는 않지만 ‘이 음식점이 맛있다’는 기사 한 줄, 방송 한편이 보도되면 우르르 몰려 가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일회성 구매가 아닌 말 그대로 한번 선택이 10년을 좌우하는 가구, 자동차, 전자제품 등 고가의 상품일 경우는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30여 년 전통의, 규모는 작지만 기자와 홍보맨 세계에서 소문난 어느 음식점 주인의 말이 기억난다. “나는 취재를 한다고 하면 극구 사양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우연히 잡지에 맛 집으로 소개 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손님이 한꺼번에 너무 몰려서 단골 고객들이 불편해 했기 때문입니다.” 문기환 새턴PR컨설팅 대표이사
- 송일국, "잘못된 일은 바로잡아야 된다 생각했다" (심경고백 전문)
- ▲ 탤런트 송일국[이데일리 SPN 박미애기자] 여기자 폭행시비에 연루된 탤런트 송일국이 자신의 인터넷 팬 카페에 글을 올리고 참담한 심경을 토로했다. 송일국은 29일 자신의 팬 카페에 장문의 글을 올리고 잡지사 프리랜서 여기자 김 모 씨와의 폭행 시비에 관한 입장을 밝혔다. 다음은 '송갤분들께'라는 제목으로 송일국이 남긴 해명글 전문이다. 안녕하세요! 송갤 가족 여러분. 송일국입니다. 며칠 전만해도 저는 다음번 이곳에 남기는 글은 결혼 이야기나 앞으로의 제 거취 등 꿈과 희망이 가득한 글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허나 오랜만에 남기는 글이 이렇게 어두운 내용에 관한 것이 돼 죄송합니다. 여러분! 주병진씨 사건이나 뽀빠이 이상룡 선생님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두 사건 모두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떻게 됐습니까? 그 여기자 분 주장대로 '사과만 했으면 없던 일로 하려고 했다'는 일을 저는 왜 이렇게 까지 몰고 갔을까요? 사람들은 말합니다. 깡패손자라 사람을 팬다고. '자기 할아버지 닮아 주먹이 센 가보지? 한 방에 6개월이 나오게' '효도르랑 붙으면 되겠네! 슬쩍 팔꿈치로 쳤는데 6개월이면' 미국에서도 '일국이가 사람을 팼다'며 전화가 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저 어릴 적부터 누누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잘하면 장군의 손녀요, 못하면 깡패의 딸"이라고. 그러기에 저는 더 조심하고 살았습니다. 저같이 대중의 인기를 업고 사는 사람들은 접촉사고를 당해 피해자 입장이어도 상대방이 큰소리치면 어쩔 수 없이 가해자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주몽 촬영 기간 중에 정말로 저는 그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멈춰있는 상태에서 후진하는 차에 받히고도 상대방이 큰소리로 우기는 바람에 어쩔 수없이 제가 죄지은 사람처럼 바뀐 적이 있습니다. 하물며 상대는 기자 분이고 더군다나 여자 분입니다. 저는 평소에도 “세상에서 제일 못난 사람이 여자 때리는 남자다!” 라고 얘기했습니다. 설사 고의가 아니었더라도 살짝 밀치기만 했어도 분명 사과를 했을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 말합니다. 그냥 인터뷰 해 주면 될 것을 왜 그렇게 피하다가 이런 일이 생기게 하냐고.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제 결혼상대를 소개해 준 사람이 기자분입니다. 그것도 다름 아닌 연예부 기자분입니다. 그럼에도 이 분은 저희 결혼 소식을 거의 다른 기자들의 기사를 통해 접해왔습니다. 저는 이분께 뭐라 말할 수 없이 미안하고 죄송한 입장입니다. 그렇지만 상견례도 하지 않은 상태라 결혼에 대해 이분께 아직 뭐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터뷰를 상견례 이후 결혼발표 공식 기자회견에서 하는 것 이외에는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저희를 맺어주신 그 고마운 기자분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집 앞에서 그 문제의 기자 분과 마주치게 됐고 저는 그분을 피해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겁니다. 제가 아파트 현관 안으로 들어와서 현관문을 거의 다 닫을 때쯤, 그 기자 분이 현관문 바깥쪽에 도착해 문을 밀고 들어오려 하셨습니다. 저는 현관문이 닫혀 자동으로 잠길 때까지 문이 밀리지 않게 붙들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때 현관유리문 너머의 그 기자 분이 저를 향해 미소 지으면서 "그러지 말고 인터뷰 좀 하시죠, 일국씨!" 라고 하는 것을 보자 솔직히 좀 미안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위에 설명한 이유 때문에 인터뷰를 할 수 없는 입장이어서 그냥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10여분 후 그 기자 분은 다른 주민과 함께 현관문을 들어왔는지 이제는 저희 집 문의 벨을 누르며 제게 다시 한 번 인터뷰를 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죄송합니다' 되뇌면서 또 다시 무응답으로 인터뷰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연락이 왔습니다. 이가 흔들려 병원에 가고 있다. 정말로 황당했습니다. 옷깃이 스친 적도 없는데 이빨이 흔들린다니. 그리고 다음날 연락이 왔습니다. 전치 2주 진단 나왔다고! 진단서 끊어서 고소장 접수하겠다고! 며칠 후엔 뭐2주 뭐2주 뭐2주 해서 다 합쳐 전치 6주! 급기야는 전치 6개월의 진단이 나왔으니 사과를 하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전치 6개월이라면 사과만으로 끝날 수 있을까요? 도대체 왜 저럴까 생각해 봤습니다. 그분이 원했던 것이, 정말 저의 사과였을까요? 저에게 잘못이 없음은 그분도 잘 알고 계실 테니, 그분이 진정으로 듣고 싶었던 말은 "잘못 했습니다"가 아니라 "기자님, 도대체 왜 이러십니까? 어떻게 하면 이런 일을 그만 두시겠습니까?"라며 저희 쪽에서 조용히 마무리 지으려고 손 내미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그 기자 분 판단에 제가 아무리 억울하고 당당해도 함부로 나오지 못 할 것이라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니 끝까지 가봐야 자기는 손해 볼 것이 없다. ‘송일국 여기자 폭행!’ 이 한 줄의 기사 제목만으로 저는 만신창이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잃게 되는 건 뭘까요? 여러분 같으면, 불과 결혼을 두 달도 안 남긴 상태에서, 아직 공직자 신분이 확정되지도 않은 예비신부를 앞에 두고, 여자를 폭행한 사건에 휘말리고 싶겠습니까? 설사 휘말리게 되더라도, 맞고소를 함으로써 일을 더욱 크게 만들고 싶겠습니까? 일반적인 경우라도 위와 같은 위험을 감수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이미지로 사는 배우인 저는 이 사건의 진실이 뭐든 간에 일단 기사가 나가는 순간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습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타협하는 사람이었다면 억울하고 분해도 좋게 해결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 그렇게 배우지 않았습니다. 내가 억울해도 내 입신양명을 위해 타협하라고 배우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보십시오. 저는 이미 기사만으로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는 실명조차 거론되지 않습니다. 진실은 밝혀지겠지만 저는 이 일로 돌이킬 수 없는 이미지의 타격을 입게 되겠죠! 하지만 그래도 타협 할 수는 없었습니다. 설령 제가 이 일로 배우 인생이 끝나게 된다 하더라도. 저 같은 제2, 제3의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올바른 취재를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하시는 대다수 연예 기자분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저는 잘못된 일은 바로잡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사람이기에 실수도 많이 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올바르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제가 이 땅에 태어나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어이없는 일로 송갤 여러분께 걱정 아닌 걱정을 끼쳐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변치 않는 사랑이 올바른, 힘든 길을 가는 데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송일국 드림▶ 관련기사 ◀☞송일국 "결혼 앞두고 여자 폭행 사건 휘말리고 싶겠나"...심경토로☞송일국, 상견례 마치고 결혼 준비 박차..."결혼 2개월도 안남아"☞송일국, 폭행 논란 여기자 형사 고소 29일로 하루 늦춰☞송일국 측 변호사 "무죄 입증 결정적 증거 이미 확보"☞송일국, 프리랜서 김모 기자에 20억 손해배상 청구 등 맞소송 준비 ▶ 주요기사 ◀☞유재석-노홍철 27일 태안서 자원봉사...몰래한 선행, 잔잔한 감동☞박진영 “스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실력, 스타성, 열정”☞루이뷔통 영상감독 손태영 미모 극찬...'세련된 얼굴, 표정 풍부한 미인'☞토이 콘서트 암표 25만원..."사기 거래에 속지 마세요"☞가수 비, KBS와 손잡고 콘텐츠 사업으로 해외 공략
- 최태원 회장 "노력하면 상상못했던 것도 할 수 있다"
- [이데일리 정태선기자] 최태원 SK(003600)회장이 사내독립기업제(CIC)의 책임 자율경영을 재차 강조하고 나섰다. 13일 SK그룹에 따르면 최태원 SK회장은 지난 10~11일 이틀 동안 전 계열사에 방영된 `2008년 SK, 회장에게 듣는다`에 출연, 직원들에게 자율경영과 책임감을 주문했다. 최회장은 150분간 토론형식으로 진행된 방송을 통해 "그 동안 SK그룹은 회사별로 자율경영을 해왔지만 이제는 CIC제 도입, 단위 조직별로 자율경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사업부서가 마치 회사인 것처럼 행동하고 관리하고 책임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예컨대 SK에너지의 경우 매출액이 23조원으로 웬만한 그룹 수준. 그런 규모 기업을 CEO 혼자서 컨트롤하기가 쉽지 않다. 사업부별로 쪼개 각 사업부 담당 사장이 자율적으로 경영하게 하고, 경영성과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하겠다는 의미도 해석된다. ▲ 사내독립기업제를 설명하고 있는 최회장최 회장은 아울러 변화에 적응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SK에 있어 `변화`는 선택이 아닌 생존과 성장 조건이며, 특히 속도 있는 변화가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변화에 항상 적응하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하는 것이 차라리 편할 것"이라면서 "기업경영에서 변화는 선택이 아니며, 변화 속도가 떨어진다면 우리는 낙오자가 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 "기술이 계속 발전하는 디지털라이제이션, 세계가 서로 열려서 통하는 글로벌라이제이션, 모든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는 휴먼 엔리치먼트의 3가지 방향으로 세상이 변하듯 SK도 입체적으로 변화해야 생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쥐띠인 최 회장은 쥐띠 해를 맞아 기억에 남는 쥐가 있냐는 질문에 대해 "`누가 내 치즈를 옮겼는가`에 나온 쥐들이 옮겨진 치즈라는 변화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적응하는가가 인상적이었다"고 소개했다. 이어 "최근에 본 `라따뚜이`라는 영화에서 요리에 대해 영감을 받은 쥐가 나오는데, 그 쥐를 보며 누구든지 자기가 노력을 하면 자기가 상상하지 못했던 데까지 할 수 있다는 의미로써 그 쥐가 기억에 남았다”고 재치 있게 답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SK C&C, 외국계 금융권도 책임진다!!☞SK, 저평가 국면 진입 `매수`..목표가는 하향-삼성☞증권사 신규 추천 종목(9일)
- (창업설명회) 떡삼삼겹살 '떡삼시대' 外
- [이데일리 EnterFN 강동완기자] 창업아이템 사업설명회 일정을 소개한다. ◇ 떡쌈삼겹살 ‘떡쌈시대’ 현장창업설명회 쫄깃한 떡피에 싸 먹는 삼겹살로 유명한 ‘떡쌈시대 (www.ttokssam.co.kr)’ 에서 1월 10일(목) 현장 사업설명회를 개최한다. 딱딱한 강의 형식에서 벗어나 본사에서 간단한 설명회 후 직접 매장을 보며 아이템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현장투어와 함께 시식도 해 볼 수 있으며, 관심있는 예비창업자들은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시간은 오후 4시. 선착순이므로 사전 예약은 필수. 장소는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 10번출구 계원빌딩 1201호. (문의) 02-734-3360~2 ▶ 관련기사 ◀ ☞(창업아이템) 떡에 싸먹는 삼겹살로 대박 행진하는 ‘떡쌈시대’◇ 전주 전통 콩나물국밥 전문점 사업설명회 전주 전통 콩나물국밥 전문점 ‘완산골명가( www.wansangol.com )’가 1월 11일(금) 오후 2시사업설명회를 개최한다. 육수를 티백으로 만들어 특허까지 취득, 전통의 맛을 간편하게 되살릴 수 있는 노하우를 보유한 브랜드로 직영점 2개를 포함해 130여개 가맹점이 오픈돼 있다. 이날은 전통 콩나물국밥전문점의 시장성, 업종 특성 및 성공전략 등을 소개한다. 장소는 서울 지하철 5호선 마포역 1번 출구 인근 신화빌딩 601호. 참가비 무료 사전예약 필수. (문의) 02-716-5600 ◇ 청소 전문시스템 ‘푸르른계단’ 부산, 경상 지역 사업설명회 클리닝 대행 전문회사 청소꾼청돌이의 계단 청소 전문 브랜드 ‘푸르른계단’( www.cleanboy.co.kr )이 오는 1월 12일(토) 부산에서 사업설명회를 연다. '푸르른 계단'은 다세대, 빌라, 상가, 연립 등 중소형 7층 이하 건물의 계단청소 서비스를 전문적으로 제공해 기존 청소대행 서비스를 전문, 세분화한 업종이다. 1천만원대 소자본창업 아이템이며 영업도 지원이 가능하다. 이번 설명회에서는 청소대행업 시장 현황과 창업성공 노하우, 업종 경쟁력 등이 소개되며 질의응답, 개별상담도 이뤄진다. 참가비는 무료. 시간은 오후 1시부터이며, 장소는 부산 벡스코 글래스홀 2층. (문의) 1566 - 7479 (서울본사) 051-851-7479 (부산 본부) ◇ ‘쿠킹플러스’, 창업설명회 개최 생활요리관련 창업 프로그램 ‘쿠킹플러스’의 새해맞이 창업설명회가 오는 1월 9일(수) 오후 2시에 대치동 (주)홈사랑 본사에서 진행된다. ‘쿠킹플러스’ 는 요리 기기와 재료를 판매하는 쿠킹샵 운영, 500여 가지의 계량화된 레시피를 활용한 생활요리 교실 운영, 전문가와 연계하여 당뇨 환자와 가족 건강을 위한 맞춤식단을 제공하는 메디쿠킹 서비스를 종합한 획기적인 창업 아이템으로, 가족이 없는 낮 시간에 소자본으로 자기집에서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생활요리 관련 창업 프로그램이다. 이번 설명회를 통해 (주)홈사랑은 수년간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매뉴얼화하고 온라인화한 요리관련 비즈니스를 위한 창업 프로그램을 소개할 예정이다. (문의) 02-1588-5282 ◇ 죽전문점 '맛깔참죽' 창업설명회 개최 죽 조리체험이 가능한 맛깔컨설팅의 맛깔참죽이 오는 1월8일(화) 오후2시부터 공덕역 인근에 위치한 본사 세미나룸에서 체험창업설명회를 개최한다. 이번 설명회에선, 음식점 창업성공 노하우와 함께 자체개발한 죽메이드를 통한 직접 체험도 가능하다. (문의) 02-766-1230 ◇ 성공창업을 위한 치어스 사업 설명회 프리미엄 레스 펍 치어스(www.cheerskorea.com 정한대표)는 오는 1월9일(수) 성공창업을 위한 치어스 사업설명회를 본사 세미나실에서 진행한다. 이번 사업설명회는 소자본창업컨설팅협회(www.consultant.or.kr) 최철용 사무총장이 프랜차이즈 창업에 관한 유의사항 및 내실있는 프랜차이즈 본사 구별 등에 관한 강의와 직영점 현장방문을 통한 시식 및 시음 순서로 진행된다. 참가비 무료, 사전등록 (문의) 080-445-8888 ▶ 관련기사 ◀☞(창업아이템) 가족이 모두 즐길 수 있는 정통 레스펍 지향. 치어스
- [맛 다이어리 2008 #1] 달력만 넘겨도 군침이 돈다
- [조선일보 제공] 신문을 보다가 이런 글에 시선이 꽂혔습니다. “만들고 싶은 달력이 하나 있다. 계절마다 나는 과일, 꽃, 그리고 생선을 표시한 달력이다. 예를 들어 곶감을 먹으려면 경북 상주에 언제쯤 가면 좋고, 국화를 보려면 언제 고창의 미당 서정주 생가 근처에 가면 되고, 라일락을 보려면 어디가 좋고, 겨울 소나무는 어디에 멋진 자태의 소나무가 있다는 식이다. 이 모든 세세한 정보를 표시해 놓은 달력을 가지고 있으면 시간낭비가 적을 것이다. 이런 달력 하나 가지고 조선팔도를 돌아다닌다면 이 세상에 온 보람이 있을 법하다.”〈조선일보 2007년 12월 6일자 ‘조용헌 살롱’〉 ‘이런 달력이 있다면 정말 좋겠다’ 싶었습니다. 가족과 친구들과 얘기해보니 자기들도 그런 달력이 있다면 유용하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맛 다이어리 2008’을 만들었습니다. 계절마다 제철 음식이 있습니다. 이 음식을 월별로 정리했습니다. 음식의 맛과 유래, 먹는 방법, 그리고 어디에 가야 제대로 맛볼 수 있을지를 간략하게 설명했습니다. 보관하다가 필요할 때 꺼내보도록, 오려내기 쉽게 지면을 편집했습니다. 물론 이 정도 정보만으로 음식을 먹으러 여행을 떠나기는 힘듭니다. 맛 다이어리에 월별로 소개한 음식 중 하나를 앞으로 매달 소개하려고 합니다. 음식이 가장 제철인 시기에, 가장 흔하게 나오는 지역을 찾아, 가장 맛있게 요리해 내는 식당을 골라서 알려드리겠습니다. ‘맛 다이어리 2008’을 D1~3면에 소개합니다. 물론 여기 소개한 ‘제철’은 맛이 들기 시작한 시기이거나, 관련 도시에서 축제를 하는 시점 등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음식 맛이 그렇듯, 이 ‘제철’이란 것도 들쭉날쭉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1년 동안, 세세한 정보를 채워 드리겠습니다. 1. 아귀|마산 홍어|흑산도·목포 그물에 걸리면 “에이, 재수 없어”라면서 바다로 텀벙 내던졌다고 해서 ‘물텀벙’이란 별명을 가진 아귀. 한국에선 1960년대 중반 경남 마산에서 아귀를 먹기 시작했다고 알려졌다. 아귀를 맛보려면 그래서 마산에 가볼 만하다. 아귀 요리 전문점이 오동동 사거리 일대에 몰려있다. 찜은 물론 수육, 내장수육, 불고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아귀 요리를 낸다. 전라도 사람들의 ‘소울 푸드’인 홍어는 겨울부터 3월까지가 제철이다. 전남 흑산도 예리항에선 홍어 경매가 열린다. 울룩불룩한 살결이 불그레하다. 옆에 놓고 보면 칠레산은 밋밋하다. 맛도 그렇다. 홍어는 회나 구이, 찜, 찌개 등 다양하게 먹을 수 있지만 역시 삭혀 먹어야 제맛이다. 화장실을 연상케 하는 고약한 냄새는 요소 때문이다. 홍어 몸 속에 요소가 많은데, 요소가 암모니아로 변하면서 특유의 냄새를 낸다. 요소는 사람의 오줌에도 많다. 그러니 냄새도 비슷할밖에. 흑산도에서는 알싸한 홍어를 서울보다 훨씬 싸게 먹을 수 있다. 하지만 흑산도 들어가기가 그리 쉬운가. 아쉽지만 목포에서 입맛을 달래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다. 2. 도다리쑥국|통영 새조개|남당리 황태|인제 냄비 물이 팔팔 끓으면 도다리를 넣는다. 양념은 무 몇 조각, 마늘, 풋고추, 파 정도가 고작. 도다리가 익었다 싶으면 햇쑥을 끊어 넣는다. 별 솜씨 부리지도 않았건만, 그렇게 시원하고 향긋할 수 없다. 언 땅을 뚫고 올라온 쑥은 이때가 지나면 뻐세서 맛이 떨어진다. 도다리쑥국을 초봄 한 달 남짓밖에 맛보지 못하는 까닭이다. 도다리쑥국을 먹으려면 역시 경남 통영이다. 껍데기를 벌리면 발과 몸통, 내장이 드러난다.길고 통통한 발은 가운데가 살짝 구부러지고 끝은 뾰족해서, 얼핏 작은 새처럼 보인다. 새조개다. 뜨거운 물에 새조개를 살랑살랑 흔들어 꺼낸다. 입 속에서 감칠맛이 폭발한다. 전남 여수와 경남 일부에서 나던 새조개가 1980년대부터 충남 홍성군 남당리 앞바다에 나타났고, 서울에서도 각광받게 됐다. 매년 2월 남당리에선 새조개 축제가 열린다. 인제 등 강원도에서는 날씨가 추워지면 명태를 엮어서 덕장에 내건다. 얼었다가 녹기를 되풀이한다. 명태 살이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황금빛으로 변신한다. 황태다. 황태는 3~4월 본격적으로 출하된다. 하지만 2월쯤 강원도에 가면 황태 수천 마리가 덕장에 걸린 장관을 구경할 수 있다. 3. 마른굴비|영광 매실|광양 요즘 굴비가 예전만 못하다는 사람들이 있다. 과거에는 조기를 짜게 소금 간 하고 오래 말려 굴비로 만들었다. 냉장기술이 발달한 요즘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굴비는 1㎝ 차이에도 값이 크게 달라지는 데다, 도시 사람들이 덜 짜고 통통한 굴비를 더 쳐준다. 7~14일 정도만 말려 물을 뺀 ‘물굴비’를 냉동시켰다가 유통한다. 옛날식으로 꾸덕꾸덕하고 짜게 말린 굴비는 3월초 짧은 기간 전남 영광에 가면 맛볼 수 있다. 영광에선 ‘마른 굴비’ 혹은 ‘봄굴비’라고 부른다. 쌀뜨물에 담가뒀다가 솥에 쪄내면 예전 ‘밥도둑’ 명성 그대로다. 전남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는 ‘매화마을’로 알려졌다. 매년 봄이면 섬진강 물줄기를 따라 불어오는 봄바람에 묻어있는, 달콤하면서도 향긋한 매화 꽃 냄새가 마을을 휘감는다. 매실은 4월부터 맺히기 시작해 5월 말에서 6월 초 수확을 시작하니, 꽃 구경이냐 매실 맛보기냐는 선택에 달렸다. 행복한 고민이다. 매실은 맛도 맛이지만 건강에 좋다. 해독 작용과 살균성이 강하다고 한다.
- (이명박 당선)샐러리맨 신화에서 '경제대통령'까지
- [이데일리 김수연기자] ▲ 한나라당 경선 기자회견이명박 당선자는 한마디로 '개천에서 용 난' 사람이다. 그런 그가 대중들을 만날때마다 꼭 하는 이야기가 있다. 어머니 이야기와 가난했던 어린시절, 또 그것을 공부로 극복했다는 것 등이다. 가난, 현대건설과 정주영, 서울시장 등은 당선자의 궤적을 가장 빨리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다. 그의 삶은 개발시대 한국사와 결코 떼어낼 수 없는 한몸이다. ◇ 가난했던 어린 시절, 공부로 탈출 이명박 당선자는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노동자 이충우씨의 4남3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1945년 가족이 일본에서 아버지 고향인 경북 포항으로 이주했다. `찢어지게` 가난해 온식구가 단칸방에서 지냈고 술지게미로 끼니를 때웠다고 당선자는 회고한다. 어려운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 시절부터 생활전선에 나서야 했다. 김밥, 풀빵 등을 팔면서 장학금을 받아 포항중학교와 동지상고 야간부를 졸업했다. 대학 진학은 꿈도 못꿀 형편이었지만 청계천 책방에서 헌책을 얻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독학하며 시험을 준비해 1961년 고려대 경영학과에 입학한다. 스스로의 표현에 따르면 "합격만 하면 못 다녀도 중퇴"라는 생각으로 시험을 봤다고 한다. 막상 합격하자 이웃들의 도움으로 이태원 시장에서 환경미화원 자리를 구해 학비를 벌면서 학교를 다녔다. 이런 성장과정으로 인해 당선자는 "교육으로 가난의 대물림을 극복한 사람이 바로 저"라고 수없이 말한다. 1964년 고려대 상대 학생회장으로 6·3한일회담반대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고 6개월간 복역했다. 당선자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고,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 어머니는 이때 출감 한달만에 세상을 떠났다. 당선자는 "어머니 생전에 새 옷 한벌 못해드린 것이 그렇게 후회스럽다"고 두고두고 말했다. 어렵게 자랐고 밑바닥에서 안해본 게 없다는 당선자이지만, 서민적인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는 것은 매우 역설적이다. 청중에게 가난을 이야기할 때 그의 화법 속에서 빈곤은 전적으로 개인에 달린 문제고, 개인이 극복할 대상으로 형상화한다. 사회구조적 맥락에서 바라보는 일은 드물다. 이를 두고 "자신이 겪은 가난의 본질에 공감하는 게 아니라, 가난을 극복한 자기 스토리에 깊이 공감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던 정신과의사 정혜신씨의 분석은 유명하다. ◇ 현대건설서 샐러리맨 신화 대학을 마치고 65년 현대건설에 공채로 입사했다. 입사하면 해외에 보내준다는 광고에 끌려 지원했다고 한다. 입사 5년만에 이사가 됐고 12년 만인 77년 사장 자리에 올라 88년까지 현대건설 사장을 했다. 이 기간 인천제철과 한국도시개발(현 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도 겸임했다. 88년 현대건설 대표이사 회장 자리에 올라 92년까지 현대맨으로 살았다. ▲ 현대 시절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함께태국서 회사 금고를 지켰다는 것 등 `샐러리맨 신화`를 구성하는 에피소드들이 이때 탄생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상당 부분 부풀려지고 또 윤색된 이야기들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현대건설 시절의 모습은 1995년 민자당 국회의원이던 시절 출간했던 자전에세이 <신화는 없다>에 자세히 소개돼 있다. 어쨌든 당선자가 현대에서 성공가도를 질주했던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현대건설 이사 시절인 1970년 부인 김윤옥씨를 만나 결혼했다. ◇ 순탄치 않은 정치역정 2002년 서울시장으로 화려하게 재기하고 이어 대선에서 승리하기 전까지 이명박의 정치인생은 그리 평탄치 못했다. 92년 14대 총선때 민자당 전국구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당시 14대 대선을 앞두고 민자당이 '샐러리맨의 영웅'을 영입한 것이지만 내심으론 당시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창당한 국민당을 겨냥한 측면도 강했다. 현대가와 멀어진 것도 이 시기를 전후해서다.95년 지방선거 당시 여권 핵심부가 지원한 정원식 전 총리에 맞서 민자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경선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무소속 출마를 고려하다 막판에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만류로 포기했다.정치인으로서 첫 절정기는 96년 15대 총선. 정치 1번지인 종로에 출마, 당시 야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였던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 및 청문회 스타였던 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그러나 좋은 날은 오래가지 않았고 당선 직후 법정 선거비용 초과 등 선거법 위반에 따라 재판이 시작돼 결국 98년 의원직을 사퇴하고 미국으로 떠난다. 당선자는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 객원연구원 생활을 한다. 집권 이후까지 여진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BBK와 얽힌 것도 이때가 계기가 됐다. 2001년부터 언론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데, 인터넷 시대에 맞는 새로운 금융사업을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곧 이를 접고 서울시장 출마 준비에 들어가고 2002년 서울시장에 당선돼 화려하게 복귀했다. ▲ 3기 민선시장 재직시 서울광장에서정치인 이명박은 보수진영 정치인 중에서는 거의 최초로, 이념이나 노선보다 스타일로 유권자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들의 공허한 말에 지친 사람들은 '일하는 국가CEO'라는 그의 이미지에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지지자를 결정했다. ◇ 정 재계 막강 혼맥 샐러리맨 출신 치고 당선자의 혼맥은 매우 화려하다. 당선자와 마찬가지로 재계 출신 정치인인 작은 형 이상득 국회 부의장과 딸의 혼사를 통해 삼성·LG·대림 등 우리나라 대표 재벌가와 연결된다. 당선자의 작은 형인 이상득 부의장은 코오롱그룹 사장(1979~1983)을 거쳐 1988년 13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정치권에 발을 들여 놓았다. 이후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사무총장·최고위원 등을 거치며 거물급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이상득 부의장은 부인 최신자씨와의 사이에 1남2녀를 뒀는데, 장녀 성은씨가 구자두 LG벤처투자 회장의 아들 구본천 LG벤처투자 사장과 결혼했다. 당선자는 작은 형인 이상득 부의장을 통해 LG가와 사돈관계인 셈이다. LG가와의 혼맥을 통해 다른 재벌가와도 멀리 연결된다. 이 후보의 사돈인 구자두 회장의 셋째형은 자학씨다. 자학씨의 부인은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전 회장의 딸 숙희씨다. 또 구자두 회장의 여동생 자혜씨는 대림그룹 창업자 이규덕 전 회장의 며느리다. 당선자는 삼성·대림가와 멀게나마 인척이 되는 셈이다. ▲ 이명박-김윤옥 부부 당선자 부인 김윤옥씨는 공무원이었던 김시우씨와 최덕예씨 사이에 3남 3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났다. 현재 이 후보의 '차명재산' 의혹을 둘러싸고 언론에 자주 이름이 나오는 김재정씨는 윤옥씨의 막내 남동생이다. 당선자 부부는 슬하에 장녀 주연, 차녀 승연, 3녀 수연씨와 막내 아들 시형씨 등 1남 3녀를 두고 있다. 주연·승연씨는 미국 줄리어드 음대에서 기악을 전공했고, 수연씨는 이화여대 미대를 나오는 등 모두 예술을 전공했다. 외아들 시형씨는 국제금융센터에 취직했다가 그만두고 '위장취업'등 구설수에 오르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세 딸은 모두 결혼해 전업주부다. 큰 사위이자 주연씨의 남편인 이상주씨는 현재 삼성화재 법무담당 상무보다. 서울대 법대를 나와 사법시험에 합격, 부산지검 등에 근무하다 2004년 삼성화재로 자리를 옮겼다. 둘째 사위인 최의근씨는 서울대 의대 내과 전문의다. 최씨 부친인 최윤식 서울대 의대 교수는 국내 의학계에서 순환기내과의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3녀 수연씨는 2001년 9월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과 결혼했다. 조 부사장은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차남이다. 효성가(家)는 SK, 고려산업 등 국내 재벌가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이봉서 전 부총리 등 정·관계에 걸쳐 막강한 혼맥을 형성하고 있다. 당선자는 효성가와 사돈을 맺어 멀리나마 정·재계 쪽과 혼사로 연결됐다. ◇ '공감' 보다 목표제시형 리더십수차례의 TV토론 등에서 나타났듯이 당선자는 표현이 유려하거나 청산유수 말솜씨와는 거리가 멀다. 다만 어눌한 말 속에서도 표현방식이나 내용은 거침없고 직설적이다. 농담도 곧잘 하지만, 부적절한 용어나 주제 선택 등으로 인해 몇차례 구설수에 오르자 선거 기간중에는 가급적 농담을 자제하고 말수도 줄였다. 승부욕이 대단하고, 도전적 기질이 강하다는 평을 받는다. 저서 <청계천은 미래로 흐른다>에는 "60여년 간 한 번도 안락한 길을 걸은 적이 없는 것 같다..편안한 길을 걸을 때마다 모험과 도전의 길을 걸을 때의 열정과 긴장에 대한 나의 기질적인 선택이 그러했기 때문.."이라며 스스로 이런 기질을 밝히기도 했다. 테니스 등 구기운동을 좋아하는데, 운동을 할 때는 상대의 나이나 지위를 막론하고 악착같이 이기려고 한다고 알려져 있다. 또 오랜 건설회사 경영자 경력 때문인지,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밀어붙이는데는 이골이 났다는 평이다.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기업인에게 '일'은 곧 '결과'이고 '효율' 은 가장 중요한 가치다. 현대라는 살벌한 생존경쟁의 장에서 몸으로 익힌 철학일 수 있다. 하지만 목표 달성에 이르는 동안의 부작용이 가볍게 취급되는 등의 이면도 필연적이다. 설득과 공감의 리더쉽 보다는 목표제시형 리더십에 가까운 것으로 분류된다. ◇ 이명박 대통령당선자 프로필▲41년 12월 19일생 ▲경북 영일(포항) 출신 ▲동지상고·고려대·미국조지워싱턴대학 객원연구원 ▲현대건설·인천제철 등 현대계열사 10개사 대표이사 회장 ▲6.3동지회 회장 ▲14·15대 국회의원 ▲세계수영연맹 집행위원 ▲미국 아칸소주 명예대사 ▲아태환경NGO 한국본부 총재 ▲민선 3기 서울시장 ▲ 영국 파이낸셜타임즈사 fDi 선정 2005 올해의 인물 ▲저서: 신화는 없다, 절망이라지만 나는 희망이 보인다, 청계천은 미래로 흐른다. 온몸으로 부딪쳐라, 이명박의 흔들리지 않는 약속, 어머니 ▲부인 김윤옥씨와 1남 3녀▲학력 사항 - 1954 포항 영흥초등학교 졸업 - 1957 포항중학교 졸업 - 1960 동지상업고등학교(야간) 졸업 - 1965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 1998 한국체육대학교 명예이학박사 - 1999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객원연구원 - 2004 서강대학교 명예경영학박사 - 2004 카자흐스탄 국립유라시아대학교 명예박사 - 2005 몽골국립대학교 명예경제학박사 - 2005 국립목포대학교 명예경제학박사 ▲경력 1965 현대건설 입사 (공채) 1977~88 현대건설 대표이사 사장 1978~81 인천제철 대표이사 사장 겸임 1978 한국도시개발(現 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 사장 겸임 1978 한국철강협회 부회장 1980 해외건설협회 업계대표 부회장 1980 한국원자력산업회의 업계대표 부회장 1981~92 대한수영연맹 회장 1981~92 대한알루미늄 대표이사 사장 회장 겸임 1982~87 현대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사장 겸임 1982~92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상임위원 1982~92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1982~92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 1983~92 한국능률협회 부회장 1983~92 해외건설협회 이사 1983~90 동남아 경제협력 건설분과 위원장 1984~92 아시아수영연맹 회장 1984 세계수영연맹 집행위원 1985~86 한라건설 대표이사 회장 겸임 1986~99 주한부탄왕국 명예총영사 1987~92 현대엔지니어링 대표이사 회장 겸임 1988~92 현대건설 대표이사 회장 1988~92 현대엔진공업 대표이사 회장 겸임 1988 한무쇼핑(현대백화점) 대표이사 회장 겸임 1989~92 한·소 경제협회 설립준비위원장 겸 부회장 1989~91 현대종합목재 대표이사 회장 겸임 1990~92 현대자원개발 대표이사 회장 겸임 1990~92 한국항만협회 이사 1991~92 동북아 경제협력 민간협회 한국측 회장 1992~95 14대 국회의원(민자당→이후 신한국당, 전국구) 1992~94 6.3동지회 회장 1992~현 미국 아칸소주 명예대사 1993~96 한국청년실업인협의회 회장 1993 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 이사 겸 운영이사회장 1994~2002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 1995 삼청로터리클럽 회장 1996~98 15대 국회의원(신한국당→이후 한나라당, 서울 종로) 1996 한국국악협회 고문 1997 한나라당 종로지구당위원장 1999~2002 아태 환경NGO 한국본부 총재 2000~현 캄보디아 훈센 총리 경제고문 2000~02 한국장애인정보화협의회 명예회장 2001~현 해외한인무역협회 고문 2001 한나라당 국가혁신위원회 미래경쟁력분과 위원장 2002~06 서울특별시장(32대, 민선3기) 2002~06 전국시도지사협의회 회장 2007 한나라당 제 17대 대통령후보
- 프랜차이즈 브랜드, 특성에 맞는 미디어 전략을 수립해야
- [이데일리 EnterFN 강동완기자] “기업의 철학과 기본적인 제도, 브랜드 전개에 따른 프로세서확립, 프로세서에 맞는 회사제도 등 정리해 트랜드에 대비해야 한다” 지난 8일,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이경희소장은 ‘맥세스컨설팅의 프랜차이즈 실무형 전문가 과정’ 특강을 통해, 새로운 변화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트랜드 변화에 대비해야 트랜드의 성격에 대해 이 소장은 “시장지향성과 고객지향성을 가지고 있다”며 “트랜드는 새로운 것은 늘 나타나며, 이는 호기심을 자극하게 된다”고 소개했다. 소비자에게 인정받는 브랜드가 되기 위해 “움직이는 트랜드를 찾아거가나 스스로 창출해야 한다”며 “치열한 경쟁속에서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 차별적 경쟁우위를 들어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트랜드의 발전과정에 대해 “붐과 유행이 트랜드를 만들어 가고 있다”며 “만들어진 트랜드는 문화와 전통으로 발전해 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프랜차이즈 본부는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게 된다며, 이소장은 “앞으로 1인10색의 다양화가 필요하며, 이를 통한 트랜드를 수립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트랜드를 잡기 위한 본부의 철저한 준비 필요 최근 컨설팅시장의 경우도, “예전에 텅키의 컨설팅이었다면 현재는 다양한 세분화된 시장으로 변하고 있다”며 “1인10색의 다양성시대가 발전되어 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일례로 일본의 경우는 세분화된 컨설턴트로 음식업전문, 만화가게전문, 분식점 전문등으로 나누어지고 있으며, 이런 컨설턴트들은 프랜차이즈본사에서 배출되고 있다는 것. 국내에서도 슈퍼바이져가 소비자와 점주등 다양한 채널을 이용한 지식노하우를 축적해 앞으로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 지식경영 노하우 축적을 위해 가맹본부가 준비할 사항으로 “조직과 시스템을 직무시스템에 맞게 업무프로세서를 갖추어야 한다”며 “방법론적으로 업무일지 등을 통해 철저한 시간관리와 함께, 전문성을 쌓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슈퍼바이져를 통한 소비자에 대한 패턴과 정보, 가맹점의 문제점등을 파악함으로써 본사만의 노하우로 축적으로 만들어 가야한다는 것. 이를 위해 “회사는 시스템이 필요하며, 백업인프라는 IT이다”며 “사내 인트라넷, 문서화일 보관은 어떻게 하는지 등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 좋은 차별화 전략으로 우수한 프랜차이즈 본부 만들수 있어 트랜드를 통한 프랜차이즈 본부로 만들어가기 위한 방법중 차별적 경쟁우위가 중요하다. 이에 대해 이 소장은 “상품혁신과 마케팅혁식이 필요하다”며 “일례로 떡삼시대의 경우 삼겹살에 떡을 싸먹는 상품혁신 케이스이다”고 소개했다. 상품자체를 차별화 하면서 상품혁신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 이외에도 마케팅혁신은 “누가 설득을 잘 하느냐에 따라 발전되는 것으로 기업이 고객에게 어떻게 설득하느냐의 부분으로 커뮤니케이션에 해당된다”고 덧붙였다. 최근엔 신뢰마케팅이 높다. 이 소장은 “비즈니스를 우아하게 풀어가는 능력을 만들어가야 하며, 엘레강스 처럼 만들어가 보자”며 “2억짜리 창업자를 모으기 위한 비즈니스인지. 4천만원짜리 창업자들이 모이는 것인지. 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잠재의식을 잡아가는 미디어전략을 짜야 한정된 전략으로 특성에 맞게 미디어전략을 짜야 한다. 커뮤니케이션 전략도 체계적인 것이어야 하며, 이중 인쇄물을 이용한 커뮤니티 전략이 중요하다는 것. 프랜차이즈 가맹본부의 고객은 “창업을 위한 점주와 상품을 구매해주는 소비자로 구분되어 있다”며 “잠재의식에 호소하는 전략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지역컨셉에 맞는 차별화된 전략도 체계적으로 세워야 한다”며 “프랜차이즈 본부의 문제점이라고 지적되는 획일성을 지역특성에 맞게 바꿀수 있는 변화도 모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문기환의 홍보에 울고 웃고)진주 목걸이
- [이데일리 문기환 칼럼니스트] 새삼 일일이 거론치는 않겠지만 2007년 한 해에도 어김 없이 우리 사회에는 정치, 사회, 경제, 교육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각종 부정과 비리, 그리고 폭력에 연루된 대형 사건들이 발생했다. 그 사건들의 발생과 종결까지 처리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국민들은 언제나 따가운 의혹의 눈총을 보내곤 한다. 그래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사건이 발생한 조직, 특히 대기업인 경우 외부 압박으로 인해 엄청난 위기 상황에 빠지게 된다. 왜냐하면 요즘처럼 공개된 사회에서는 과거처럼 은근슬쩍 구렁이 담 넘어가듯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한 위기 관리의 왕도가 무엇인지를 살펴 보자. 일단, 사건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정확한 사실을 파악해야 한다. 진실은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방어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이를 수습하기 위한 합리적이고 공평무사한 타개책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한 해결책이다. 특히 기업의 언론 창구를 맡고 있는 홍보 파트에서는 빗발치는 언론의 예봉을 피하고 부인하는 것이 잠시 동안의 미봉책일 뿐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오직 인내심과 용기를 갖고 ‘正道 홍보’를 수행하는 것 만이 장차 자신의 기업을 위해서나 궁극적으로 나라 전체를 위해서도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문득 어릴 적에 읽었던 동화 한편이 기억이 난다. 국민학교 6학년 시절이었다. 여름방학을 이용해 월남 사이공 지점에 근무하시던 아버지를 방문하러 갔다가 그만 6개월 동안 머물러 있게 되었다. 체류 기간이 너무 짧아 현지 국제학교에 다니기도 뭐해서, 집에서 기초 영어를 배우는 것으로 학교 교육을 대신하던 때였다. 그러다 보니 주말이 되어 또래의 한국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을 때까지는 항상 심심했다. 그나마 서울에서 들고 온 한국어로 된 책도 몇 권 안돼 대체로 지루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딱해 보였는지 아버지의 직장 동료 분께서 한국어로 된 반가운(?) 책을 선물로 주셨다. 그것은 15~16권으로 된 불교 동화 전집이었다. 당시 타국 땅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열세 살 짜리 어린 소년은 독서에 굶주린 양 전집을 불과 1주일 여 만에 독파(?)했고 이후에도 심심할 때면 읽고 또 읽었다. 그 중에서 3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기억나는 동화 한편이 있다. 그 당시 읽었을 때 큰 감동을 받아 이후 성장해 가면서 사회적 가치관을 정립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던 동화이다. 기억을 되 짚어 개략적인 내용을 소개해 보겠다. 『어느 날 오후, 부처님이 제자들과 함께 시골의 한 작은 마을을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한 노파가 개울가에 주저 앉아 땅을 치며 슬피 울고 있는 것이 보였다. 측은하게 여긴 부처님은 그 연유를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노파는 조금 전 개울 물에서 세수를 하다가 그만 목걸이가 물 속에 떨어졌는데 밑바닥이 훤히 보이는 얕은 개울물에서 도무지 찾지를 못해 울고 있다고 그 사유를 얘기했다. 그러면서 잃어버린 예쁜 진주 목걸이는 지난 일년 동안 우유 장사를 열심히 해서 번 돈으로 불과 며칠 전에 산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억울하고 원통하다고 했다. 노파의 사정을 들은 부처님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노파여, 원래 물이 물로 돌아간 것뿐인데 왜 슬퍼하느냐?” 그 말을 들은 노파는 순간 울음을 그치며, 잠시 생각을 하더니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일어 섰다. 이어 부처님께 합장을 하더니 그 길로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얼마 후 사람들은 그 연유를 알게 되었다. 노파는 마을에서 가족 없이 혼자서 우유를 판매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오랫동안 마을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서 단골 고객이 많아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고 오히려 조금이나마 모을 수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노파는 시장에서 본 진주 목걸이가 너무나도 갖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 비싸서 갖고 있는 돈으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하고 며칠 동안 골똘히 생각한 후 한가지 꾀를 생각해 내었다. 다름아닌 우유에 조금씩 물을 섞어 파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쉽사리 눈치를 못 챌 것이고 그렇게 팔다 보면 돈이 많이 모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후 단골 고객들은 우유 맛이 전보다 약간 묽어 진 것 같이 느꼈으나 한 마을에서 오랫동안 잘 알아온 그 노파를 믿었기에 별다른 의심 없이 우유를 계속 사 마셨다. 그로 인해 추가 이윤을 얻게 된 노파는 일년 후 드디어 자기가 그토록 소원했던 진주 목걸이를 살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정치하는 사람이나, 기업하는 사람이나 모두가 바른 길로 나아갔으면 한다. 한때 실수나 그릇된 일을 했더라도 이를 뉘우치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 난 우유 장사 노파의 마음을 배웠으면 한다. 올바른 정치, 올바른 기업, 올바른 사회, 나아가 올바른 언론 그리고 올바른 홍보가 2008년도의 화두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비단 필자만의 바램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문기환 새턴PR컨설팅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