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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 ''비프 콘소메''
  • 프로방스 ''비프 콘소메''
  • [조선일보 제공] 서울에 처음 온 서양 친구를 안내할 겸, 좋아하는 조선시대 도자 그릇도 볼 겸 해서 박물관에 들렀다. 감상용보다는 아마도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을 조선시대 그릇은 군데군데 빈틈이 보이는 형태의 따뜻함이 오히려 마음에 와 닿는다. 요즘 나는 그릇 자체보다 형태적으로 무언가 모자란 듯한 그릇의 틈새를 통해 다른 세상을 상상하는 일을 즐기게 되었다. 그릇은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하나의 창(窓)이다. 완벽하지 않음으로 해서 오히려 제약받지 않는 상상을 가능케 하는 그 넉넉함은 이 그릇을 보는 이들의 수많은 다양성을 수용하며 몇 백 년이 지나도, 어느 장소에서도,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빛나고 있는 것이다. 프로방스의 포도밭 구경을 따라나선 길에 포도농장에서 준비한 프랑스 시골의 풍성하고도 소박한 점심, 그리고 큰 볼(bowl)에 격식 차리지 않고 담아낸 '비프 콘소메(beef consomm�·맑은 쇠고기 장국)'는 '넉넉한 투명함'을 다시 일깨워준 음식이다. 프랑스의 대표적 수프요리인 콘소메를 만드는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맛과 색깔을 내기 위해 양파를 볶다가 각종 채소와 쇠고기, 향신료 등을 넣고 끓인 후 고운 망에 맑게 걸러내는 것인데, 함께 끓이는 재료 중에 머랭(meringue·달걀 흰자 거품)이 들어가는 점이 특별할 수 있겠다. 찌꺼기와 잡냄새 제거 등을 위한 것이 아닐까 싶은데, 수프의 맛에 큰 영향을 주는 것 같지는 않다. ▲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프랑스 레스토랑‘라브리’의 콘소메 수프. / 조선영상미디어 유창우 기자 canyou@chosun.com질 좋은 프로방스 쇠고기 양짓살과 바질(민트과의 허브)이 많이 들어간 부케 가르니(bouquet garni·국물의 풍미를 내기 위해 각종 허브를 묶은 다발)로 만들어지는 프로방스의 투명한 콘소메는 처음 입에 댈 때부터 혀를 돌아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까지 조그만 변화도 보이질 않는다. 밋밋한 맛은 놀라운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한 그릇을 다 비웠을 때쯤이면 무언가 가슴이 촉촉해지는 그리움을 맛보게 된다. 그리고 그 그리운 맛은 슬픔이라기보다는 뭔가 한두 마디로는 표현키 어려운 따뜻함 같은 것이다. 프로방스 콘소메는 프로방스에서 생산되는 모든 산물과, 풍경과, 이야기를 포함하는 듯하다. 이런 느낌을 일본 도쿄에서도 경험한 적이 있다. 도쿄에 사는 동생 집에서 자고 난 아침 조용한 주택가를 산보했다. 동네 입구 조그만 초등학교 옆을 지날 때 우연히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꽃나무 향기를 맡게 되었다. 내 초등학교 시절 교정에 지천이던 향기 좋은 꽃나무인데, 요즘 우리나라에선 잘 보이지 않는 나무이다. 까맣게 잊고 지내던 향기를 기억해낸 것이다. 향기에서 음악이 들린다. 나는 '스리 도그 나이트(Three Dog Night)'가 부른 '올드 패션드 러브 송(Old Fashioned Love Song)'이라는 노래의 시작 부분 반주와 'just an old fashioned love song playing on the radio…'하고 시작되는 앞 부분의 몇 소절을 좋아한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구식 진공관 라디오에서 온갖 잡음과 함께 섞여 몽글몽글하게 들리는 AM 라디오 소리 같은 것인데, 또한 햇살 따가운 가을 아침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조회시간에 교가나 애국가 반주를 위해 연주되는 풍금 반주에 마이크를 갖다 댄 소리와 비슷하기도 하다. 잊고 지냈던 추억을 담은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투명하고 밍밍한 쇠고기 국물. 콘소메는 정찬의 시작을 알리는 수프로, 온갖 소스의 기본 소재로 자기 주장 없이 숨어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련한 기억과, 음악과, 향기와, 친구들과, 그 시절의 맑은 공기까지 일깨운다. 프로방스 콘소메는 그런 맛이다.
 은밀히 사랑을 봉인했던 돌벽 주변엔 ‘1달러 행렬’만
  • [세계영화기행] 은밀히 사랑을 봉인했던 돌벽 주변엔 ‘1달러 행렬’만
  • ▲ 앙코르 유적지에서 만난 캄보디아 소녀.[조선일보 제공] ‘화양연화’에서 차우와 리첸은 각자의 배우자가 서로 연인 사이임을 알고 문제를 논의하다 사랑에 빠진다. 다가서지도 물러나지도 못한 채 미끄러지기만 하는 인연. 아찔할 정도로 아름다운 영화의 자취를 찾아 떠나는 이의 가슴은 ‘사랑의 달콤한 패배감’에 대한 감상적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적어도 처음엔 그랬다. ◆홍콩 여행이 기대와 달라진 것은 영화 속 치파오(원피스 형태의 중국 전통의상)의 산실을 찾아나설 때부터였다. ‘화양연화’는 스물여섯 벌의 치파오를 갈아입으며 연기한 배우 장만옥이 가장 아름답게 나온 작품이었다. 그런데 극 중 의상을 담당했다고 주장하는 가게는 하나가 아니었다. 크게 성공한 ‘화양연화’의 상업적 위력 때문이었다. 코즈웨이 지역의 낡은 건물 2층에 있는 ‘롱콩 레이디스 테일러’는 ‘화양연화’ 미술감독의 친구란 인연으로 이 영화에 참여했다는 양랑광씨가 주인이었다. 영화와의 인연에 대해 계속 질문했더니 대답 대신 장만옥 장쯔이 등 스타들이 그의 옷을 입고 함께 찍은 사진들이 담긴 파일을 보여줬다. 좁고 허름한 실내엔 재단 중인 옷들로 가득했다. 란콰이퐁 지역의 치파오점 ‘린바 테일러’는 매장을 제대로 갖추고 기성복과 맞춤복을 팔았다. 손님인 듯 고를 땐 친절하던 주인이 기자 신분을 밝히자 차갑게 변했다. “‘화양연화’ 옷을 만든 곳이 맞냐”고 묻자 “화양연화의 옷과 같은 치파오를 만들어줄 수 있다”고 애매하게 답했다. 한자로 ‘연화(年華)’를 표기한 간판을 가리키며 “상호만으로도 알 수 있지 않냐”고 한 뒤 “영화와 관련된 어떤 말도 할 수 없다”며 입을 닫았다. ‘화양연화’의 옷을 만든 곳에 대해 자료마다 엇갈렸다. 멜로 한 편이 명성을 얻고 나면, 환상엔 늘 돈 냄새가 들러붙는다. 어쩌면 판타지란 구름처럼 성기고 몽글몽글한 유동체가 아니라 각을 이뤄가며 정교하게 가공된 금속성 고체 같은 건지도 모른다. ▲ 앙코르 유적지의 아침은 앙코르 와트의 탑 위로 불쑥 해가 오르면서 갑자기 찾아왔다. 연못은 해와 탑이 빚은 풍경을 거꾸로 비쳐 거대한 환(幻)의 세계를 그려냈다.◆캄보디아 ‘화양연화’는 앙코르 와트로 간 차우가 오래된 석조 건물 구멍에 대고 뭔가 속삭인 뒤 진흙으로 메우는 상징적 장면으로 끝난다. 그들 사랑이 안타깝게 끝난 후 먼 훗날의 일이었다. 캄보디아로 간 것은 그 장면의 비밀을 엿보고 싶어서였다. 시엠립 인근 거대한 고대 유적터의 중심을 이루는 앙코르 와트는 전성기를 누리던 앙코르 왕조가 12세기에 건립한 힌두교 사원이다. 일출 때 방문한 앙코르 와트는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새벽 5시에 도착해 어둠 속 앙코르 와트의 차가운 돌 벽을 더듬어 걸어갈 때 허둥대는 손과 발을 타고 묵은 시간이 고스란히 옮아왔다. 사원에서 나와 연못가에 자리 잡았다. 불그스름한 기운이 주위로 퍼지더니 어느 순간 탑 위로 태양이 불쑥 솟아올라 눈부시게 빛났다. 연못은 풍경을 거꾸로 비쳐내 거대한 환(幻)을 빚었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은 유구했다. 세월을 이겨낸 돌은 당당했다. 그러나 인간은 그럴 수 없었다. 바푸온 사원 근처를 어슬렁대자 팔찌 3개를 1달러에 팔려는 다섯 살 남짓 아이가 끝까지 따라왔다. 따 프롬 사원에서 헤맬 때 길을 가르쳐준 청년은 ‘원(one) 달러’를 외쳤다. 신상(神像)의 얼굴에 넉넉히 머물렀던 ‘크메르의 미소’는 현실에서 늘 1달러짜리 그림자를 달고 다녔다. 앙코르 와트를 포함해 유적지 곳곳의 사원들은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화양연화’의 사랑은 점차 희미해졌다. 대신 최빈국 캄보디아의 거리 풍경이 여행자를 압도해왔다. 관광객이 지나다니는 곳마다 할머니들이 빈 페트병을 찾아 쓰레기통을 뒤졌다. 왓 트마이의 위령탑 안에는 킬링 필드 학살 때 죽은 사람들 해골이 쌓여 있었다. 허름한 농가를 개조한 지뢰 박물관엔 다리 잘린 청년이 목발을 짚은 채 방문객을 따라다녔다. 박물관 천장의 선풍기가 제대로 바람도 일으키지 못한 채 요란한 소리만 냈다. 과거를 찾아나섰다 현재와 마주쳤고, 판타지를 좇다 리얼리티에 부딪혔다. 오토바이에 태우고 다니며 이틀간 안내해준 스물두 살 청년 품라는 캄보디아인치고도 유달리 피부가 검었다. “실내에서 일하기에 피부가 하얀 당신과 난 여건이 다르다”며 “피부색 차별이 없는(그는 그렇게 믿었다) 미국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캄보디아를 떠나기 직전 ‘똔레 삽’을 ‘관광’한 건 정말 실수였다. 수상 마을이라기에 이국적 풍광을 기대했는데, 보트를 타고 다니면서 점점 더 마음이 무거워졌다. 캄보디아에서도 최빈층이 모여사는 그곳 실상은 참담했다. 호수라고 불리는 그 거대한 흙탕물 바다는 거주민들의 삶 자체였다. 주민들은 그 물을 그냥 마셨다. 아이들은 잠수해 물고기를 잡거나 대야를 타고 다니며 관광객에게 손을 벌렸다. ‘똔레 삽’이 ‘신선한 물’을 의미한다는 역설 속에 세계의 부조리가 들어앉아 있었다. 보트 운전사 코이는 임신한 애인 집에서 180만원의 지참금을 요구해 결혼을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캄보디아에선 돈이면 청부살인도 할 수 있다”던 코이는 “난 아무것도 아닌 놈이니까 오늘 죽어도 상관없다”는 말을 끝으로 입을 닫았다. ‘관광’의 마지막은 침묵이 지배했다. 흙탕물 속에서 그물을 던지던 아이들 쪽으로 애써 고개를 돌리다가 무의식적으로 손에 쥔 콜라 캔을 비웠다. 탄산이 입에서 톡 쏘며 가볍게 터졌다. 음료가 목구멍을 시원하게 넘어갔다. 견딜 수 없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빈곤을 눈요기하며 상대적 행복감을 제공하는 관광은 얼마나 비윤리적인가. 그리고 가지지 못한 자에게 물질만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큰 위선인가. 다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해도, 비참한 생활의 현장을 구경거리로 소비하는 일만큼은 명백한 잘못이었다. 수백년된 돌 벽에 사랑을 봉인(封印)해 영원을 꿈꿨던 차우는 다시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 사랑을 애틋하게 기억할까. ‘화양연화’ 자취를 찾아 캄보디아를 찾았던 여행자가 그렇게 묻는다고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늦은 밤 시엠립 공항에서는 전혀 다른 물음이 꼬리를 물었다. 코이는 신부를 데려올 수 있을까. 품라는 미국에서 일할 수 있을까. 설혹 그게 제대로 꾼 꿈이 아니라 해도. 당장이 아니라 멀고 먼 훗날이라도.최고의 사랑영화로 흔히 거론되는 ‘화양연화’는…홍콩의 대표적 감독 왕가위의 2000년작이다. 왕가위는 국내에도 허다한 팬을 갖고 있는 인기 감독이지만, ‘화양연화’는 그의 작품들 중에서도 특히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60년대 홍콩의 아파트를 배경으로 아프게 사랑을 나누는 남녀 이야기를 시적이고 음악적인 영상에 빼어나게 담아냈다. 홍콩 배우 장만옥과 양조위가 가장 멋지게 등장한 작품으로 꼽히기도 한다. 양조위는 이 영화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이웃에 살던 차우와 리첸은 서로의 배우자끼리 연인 사이임을 알게 된다. 서로를 위로하는 과정에서 점차 사랑을 느끼게 된 둘은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여행수첩=앙코르 와트를 중심으로 한 앙코르 유적지는 캄보디아의 도시 시엠립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아시아나 항공에서 인천-시엠립 직항편을 운행한다. 핵심인 앙코르 와트는 12세기에 전성기를 누렸던 앙코르 왕조의 뛰어난 축조술을 보여주는 힌두교 사원이다. 어느 때 방문해도 좋지만, 일출 무렵에 가장 아름답다. 나무들이 유적지 벽을 무너뜨린 채 자라면서 폐허 같은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따 프롬, 앙코르 유적지 중 유일한 불교 사원인 앙코르 톰, 멋진 일몰 풍경을 볼 수 있는 프놈 바켕과 프레 룹 등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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