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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리인하, 과연 신경안정제에 불과한가 - BW
  • [edaily] 연준리의 거듭되는 금리인하에도 경기가 좀처럼 살아날 조짐이 보이지 않은면서 시장의 불안감은 날이갈수록 더 해지고 있다고 비지니스위크 최신호가 보도했다. 지금까지 연준리의 통화정책은 무슨 종교의 주문처럼 사람들을 반복해서 세뇌시켰다. 금리를 인하하면 경기가 회복될 수 있으며 그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말이다. 연준리는 자신들의 주문을 몸소 실천하면서 무려 5차례가 금리를 인하하는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아직도 경기가 살아날 것 같다는 징후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고 있다. 전혀 생명력이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2분기 미국 경제는 거의 0%에 가까운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그동안의 금리를 인하한 효과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많은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갈길을 주저하고 있다. 과연 살아나고 있다는 것은 맞는 얘기인가 아니면 더 큰 나락으로 빠질 것인가를 하나하나 저울질하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민간경제학자들은 지속적이 금리인하로 인해 경제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었다. 금리인하와 세금 환급과 같은 두가지 조치를 모두 병행할 경우 경기가 부양되지 않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보스턴 연방은행의 케세이 미네한 행장은 "사람들의 공통적인 전망은 올해 하반기에는 경기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발언이 거듭될수록 사람들의 불안은 가중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보통 금리인하의 효과가 나타나는 시점을 6개월 정도로 잡고 있다. 그렇다면 1월달부터 시작된 금리인하의 효과는 지금부터 어느정도 가시화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시장에서 이같은 징후를 발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기업들의 실적은 그리 개선되지않고 있으며 여러 가지 경제지표들 역시 시장의 기대만큼 나오지 않고 있다. 이래저래 사람들의 불안감만을 가중시키는 소식들만 들려오고 있는 것이다. 또 소위 말하는 신경제기업들이 그동안의 고속성장 만큼이나 회복도 빨라야 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 역시 투자자들의 마음을 졸이게 하고 있다. 고속성장을 하고 오랜 기간동안 침체기를 보인다면 신경제와 구경제냐를 구분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현재 시장에서 연준리의 금리인하 효과가 나타나는 산업은 모기지론 금리의 인하로 활황세를 보이는 주택시장 정도에 불과하다. 심지어 주택시장에서도 이같은 상태로는 안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국에서 주택건축업체인 헌팅던 밸리의 CEO인 로버트 톨은 "지금과 같은 상황이 조금 더 지속된다면 결코 우리는 걍기침체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금리인하의 효과에 대한 의문은 이제는 경기가 장기적으로 침체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으로 바뀌고 있다. 다음주 연준리가 어떠한 결정을 내리게 될지에 대해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아마도 이같은 불안감의 반영이 아닐까.
2001.06.23 I 공동락 기자
  •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⑮지동현 조흥은행 상무(상)
  • [edaily] 우리나라에서 은행의 위치는 다른 어떤 금융기관보다 중요하다. 채권시장에서도 은행은 가장 중요한 투자기관이다. 대형은행들은 수조원의 자금을 채권에 투자하는데 아직 독자적인 투자패턴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금융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은행이면 다 같다”는 생각이 무너졌고 좋은 은행과 그렇지 않은 은행이 구분되기 시작했다. 채권시장에도 앞으로는 “운용을 잘하는 은행과 그렇지 않은 은행”을 차별하게 될 것이다.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주인공은 조흥은행 지동현 상무다. 지 상무는 은행 자산운용을 담당한지 5개월째로 접어든 “신참”이다.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서 은행 구조조정에 참여하고 조흥은행 사외이사도 지냈지만 실전에 참여한 것은 올 2월부터다. 채권도 그의 전공이 아니다. 지 상무의 전공은 “은행경영”이다. 자산운용을 잘 모르는 지 상무가 짧은 시간에 채권시장에서 비교적 큰 전공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실무 트레이더들과 호흡을 잘 맞추고 나름대로 리스크 관리 원칙을 철저하게 지켰기 때문이다. 조흥은행은 올 상반기에 두 차례나 채권시장에 이목을 집중시켰었다. 한 번은 한국은행 전철환 총재의 “국고채 과열” 발언이 나올 즈음 예보채를 대량으로 매각했을 때였고 또 한 번은 지난 5월 수익률 랠리에 참여했을 때였다. 지 상무는 자산운용을 맡자마자 “수익률이 1% 움직일 때 손실가능 범위를 100억원이내로 한다”는 리스크 관리 원칙을 세우고 채권투자 규모를 대폭 축소했다. 실무 딜러들과 마찰이 있었지만 당시 판단으로 손실을 회피할 수 있었다. 지난 5월에는 실무 딜러들이 “채권을 사야한다”는 의견을 제시해와서 주저없이 “질러” 결정을 내렸다. 밤에 잠을 못잘 정도로 걱정했지만 조흥은행내 5개 본부중에서 목표 수익 진도율이 가장 빠른 본부가 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할 만큼 투자이익을 기록할 수 있었다. 지 상무는 은행경영을 전공한 학자로서 은행 구조조정의 아이디어를 제공했고 지금은 자산운용을 책임지고 있다. 채권시장에 성공적으로 데뷰한 지 상무의 “은행론”과 “채권투자론”을 들어봤다. (지 상무 약력은 인터뷰 하편 기사 하단 참조. 지 상무 인터뷰를 끝으로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 시리즈 1부를 정리합니다. 그동안 시리즈를 애독해주신 edaily 독자와 인터뷰에 응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보다 참신한 기획으로 하반기중 시리즈 2부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돈되는 공부를 하기 위해 경영학을 선택> -박사학위를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받으셨습니다. ▲서울대에서 석사과정을 밟다가 논문을 못 쓰고 바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서울대에서 소위 "쯩" 이라고 하는 석사학위를 받은 건 아니구요. 석사학위를 제대로 취득한 곳은 미국입니다. 서울대 경영대학원을 3학기 다니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펜실베니아대학의 경영학 박사과정에 등록했습니다. 이 곳에서는 박사학위 수료과정 중에도 석사학위를 달라고 하면 학위를 줘요. 물론 시험을 통과해야 하지만요. 박사학위를 못 받을지도 모르니까 우선 석사학위부터 취득했습니다. (웃음) 다행히 박사학위도 받을 수 있었구요. 얼마전 금융연구원 개원 10주년 기념행사 때 산토메로 총재가 오셨어요. 이분이 바로 유학시절 제 지도교수셨습니다. 그 분때문에 졸업한거나 다름없습니다. 아니면 못했을 거에요. -그럼 학번은 어떻게 되십니까.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77학번입니다. 제가 보성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저희때부터 뺑뺑이로 고등학교에 입학했거든요. 소위말하는 뽑기 1세대죠. 그런데 고등학교에 들어가니 선배들이 사람취급도 안해주는 거에요. "시험도 안보고 들어온 너희들이 무슨~" 하면서요. 서울대는 저희 때 더 많이 들어갔는데도 말입니다. 하하. 보성을 무척 좋아합니다. 아들도 보성고등학교를 다니게하고 싶어서 일부러 올림픽공원 쪽으로 이사했을 정도입니다. -전공결정 과정 중 특별한 계기라도 있었습니까. ▲저희때는 전공을 결정하고 입학하는 것이 아니라 계열별로 뽑는 시스템이었어요. 사회계열로 입학해서 전공선택을 할 때 잠시 갈등했죠. 아버지는 법대를 가라고 말씀하시는데 아버지가 권유하시니 법대는 더 가기 싫고(웃음). 경영과 경제를 놓고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경제학과를 가면 공부를 많이해야 될 것 같아서 싫더라구요. "경영학과를 가면 돈 버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 결정한 바가 컸습니다. 그런데 수업을 들어보니 돈 버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더군요.하하. 자연스럽게 대학교 2학년때부터 유학이나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됐고 유학준비에 들어갔습니다. SK그룹이 관장하는 한국고등교육재단이 주는 장학금을 받고 펜실베니아대학으로 떠났어요. 사실 전공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한 권의 책 때문입니다. 제가 서머셋 몸의 "달과 6펜스"를 무척 감명깊게 읽었거든요. 주인공인 스트릭랜드가 잘 나가는 브로커였는데 돈 벌어서 그만두고 타히티로 떠나잖습니까. 그게 너무 멋있어 보여서 "나도 돈을 빨리 번 다음 은퇴를 해야지"라는 생각을 굳히게됐습니다. 은퇴 후에는 종합예술센터같은 것을 세워보고 싶었어요. <” 은행은 옛날에도 중요했고 지금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도 여전히 중요하다”> -유학을 떠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학부시절에는 수업이 너무 따분하고 재미가 없었어요. 돈 버는 것과는 하등 관련도 없고 말이죠. "일단 미국으로 한번 가보자. 거기가면 혹시 돈 버는 방법을 배울지도 몰라"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진거죠.(웃음) 펜실베니아에 가보니 “finance”도 세 가지 분야가 있더라구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것은 investment(투자론)였고 그다음이 corporate finance(기업재무), 제가 고른 financial institution(은행경영)은 거의 지원자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왜 은행경영을 지원하신 겁니까. ▲제가 전공을 결정할 때가 84년이었습니다. 속으로 곰곰 생각했죠. "나는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고 학위를 받으면 88년 정도가 될 텐데 그 때에는 무엇이 중요할까" 라고 말이죠. 결론은 은행이었습니다. 은행은 옛날에도 중요했고 지금도 중요하지만 90년대가 돼도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써 먹을 수 있는 걸로 공부해야지라는 생각이 많았죠. 박사공부라는 것이 말은 거창했지만 독학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커리큘럼에서 가르쳐주는 건 investment 나 corporate finance 정도고 financial institution은 한 과목밖에 없었어요. 그때 산토메로 교수가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 외에도 와튼스쿨(펜실베니아 대 경영대학원의 별칭)에서 조교로 재직하면서 공부를 더 많이하게 됐어요. 뭘 알아야 가르칠 것이 아니겠어요. 기초서적부터 신문기사까지 닥치는대로 읽어나가니 많은 도움이 되더군요. <”로컬 경제의 중요성이 존재하는 한 한국이든 다른 나라든 은행의 위치는 확고”> -그렇다면 은행의 중요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은행 중심이냐 자금시장 중심의 경제냐 하는 문제는 외환위기 이후 우리가 직접 대면한 과제 중 하나입니다. 경제가 자본시장 중심으로 돌아가는 나라는 전세계에서 미국과 영국 뿐이에요. 독일이나 프랑스 등 여타 선진국들은 모두 은행위주입니다. 이 사실이 하루이틀에 이뤄진 것도 아니고 아무 이유없이 된 것도 절대 아니에요. 자본시장이 은행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나라인 미국, 영국은 그 제도가 적합하도록 국가가 발전해왔기 때문입니다. 영국은 수많은 식민지를 거느리면서 로컬보다는 글로벌한 쪽으로 경제전략을 수립해왔죠. 미국도 마찬가지구요. 독일이나 프랑스같은 경제선진국도 아직은 로컬중심 경제권을 이루고 있고 한국의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죠. 물론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글로벌 스탠다드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됐습니다. 어느 정도는 그 흐름을 따라가야하는 것도 사실이구요. 그러나 아무리 글로벌화가 된다해도 로컬의 중요성이 줄어드는 건 아닙니다. 로컬의 중요성이 존재하는 한 한국이든 다른 나라든 은행의 위치는 확고할 겁니다. -귀국 후 학교로 가지 않고 금융연구원에 자리를 잡으셨어요? ▲귀국 당시에는 학교에 갈 요량으로 들어왔는데 그게 잘 안 됐습니다. 수출입은행에서 장기 발전전략 수립, 부서 내부평가 문제 등을 담당하다가 금융연구원으로 옮겼습니다. 수출입은행에서는 자산부채 종합관리(ALM asset liability manangement)에 관한 보고서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때가 89년인데 개념자체도 생소하던 시절이었어요. 그 개념을 소개했다고나 할까요. 금융연구원에서도 초창기 4년에는 대부분 ALM관련 컨설팅을 담당했습니다. -금융연구원은 어떤 생각으로 만들어진 건가요. 10년을 근무하셨으니 사정을 잘 아시겠군요. ▲금융연구원은 1991년 6월에 설립됐습니다. 초창기 박재윤 서울대교수를 원장으로 초빙하셨죠.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금융시장 및 금융기관에 대한 전반적인 발전방향을 제시한다는 거였어요. 우리나라 금융산업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취지죠. -박 원장은 김영삼 정부에서 일하셨죠? 금융연구원이 당시 정부정책 입안에 관여하기도 했습니까. ▲김영삼 정부가 추진한 경제정책과 관련, 부분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금융연구원도 일정부분 공과가 있다고 봐야겠죠. -금융연구원에서 IMF 외환위기에 대해서는 전혀 감을 잡지 못했나요? 어렴풋이 문제가 있다는 것은 느꼈지만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할 정도로 심각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외환위기가 터진 후 은행경영을 공부한 제가 그동안 뭘했나 하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그래도 지금까지 은행이 가장 중요하다고 떠들고 다녔는데 뭔가 보여줘야한다는 마음으로 구조조정 아이디어를 만들었습니다. <”은행 구조조정 갈 길이 아직 멀었습니다.”> -서울은행, 제일은행 매각작업에도 참여하셨죠. ▲저는 어드바이저의 역할을 담당했을 뿐이지만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정부는 1998년 1월30일 두 은행에 각각 1조5000억원을 출자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한전과 담배인삼공사 주식을 넣었죠. 그 일을 하면서 두 은행 임원들하고 종종 의견충돌을 빚었습니다. 은행임원들의 생각은 "정부출자가 이뤄졌으니 우리은행은 대한민국 어떤 은행보다 우량하다" 뭐 대충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천만의 말씀입니다. 갈 길이 아직 멀었습니다"라고 말했죠. 그랬더니 제일은행 관계자께서 "아니 은행업무에 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습니까"라고 항의를 하더군요. 은행에 30년 다닌다고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죠. 제가 "은행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아무런 근거없이 그런 말씀 드리는 건 아닙니다" 라고 근거를 말해도 들은 척도 안하더군요. 그래서 크게 언쟁을 한 적도 있었어요. 정부는 "매각대금은 1조5000억원은 넘어야한다. 풋백옵션도 못 준다"고 말했지만 그 조건으로 누가 그 은행을 사겠습니까. 모건스탠리를 주간 증권사, 태평양을 주간법무법인으로 선정하는 작업을 마치고 매각작업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애시당초 뉴브리지에 줬던 조건이라면 협상이 훨씬 수월했을 겁니다. 그러면 정부의 손해가 훨씬 줄어들었을텐데 말이에요. 두 은행과 금융업 전반 아니 우리나라 경제에 대해서 지나치게 낙관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제가 그 당시 은행 부실채권 규모가 200조가 넘는다는 말을 종종 하고 다녔습니다. 세미나나 심포지움에 참석해서 그러한 말을 몇 번 했더니 압력이 들어올 정도였어요(웃음). 세계은행에서 파견나온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같이 일했는데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은 똑같았습니다. "비슷한 문제로 세계 여러 곳을 다녀봤지만 모두 비슷하다. 처음 예상한 (부실채권) 규모보다 적어도 3배는 늘려 잡는게 좋을 것"이라면서 "경험상 틀림없으니 한국도 3배 이상이라고 본다"고 말하더군요. -서울은행은 결국 매각자를 찾지 못하고 위탁경영이라는 묘한 방법으로 일처리가 됐죠. 두 은행 매각에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이나 주시겠습니까. 학자로서 말입니다.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는 건 잘 아실 겁니다. 하지만 실패한 딜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어차피 매각은 불가피한 상황이었고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은 청산과 매각 두 가지밖에 없었으니까요. 지방은행 정도의 소규모 은행이라면 청산이 가능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일이나 서울은행 정도를 청산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거니와 한국경제가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어요. 청산비용도 엄청나게 들어가니까 결국 매각의 길을 자연스레 걷게 됐죠. 아쉬운 점은 현실을 빨리 인정하고 매각자를 찾아나섰으면 훨씬 좋은 조건으로 팔 수도 있었는데 그 기회를 놓쳤다는 겁니다. 망가진 회사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가치가 떨어지게 돼 있어요. 은행이건 기업이건 마찬가지고 대우차나 한보철강 문제도 동일하다고 봐요. (인터뷰 중편으로 이어짐)
2001.06.22 I 정명수 기자
  •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⑭조민식 한신평 이사(하)
  • [edaily]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주인공은 한국신용평가의 조민식 이사 입니다.(인터뷰 중편에서 이어짐) -그 과정에서 토론이 일어나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기업가치와 부채가치는 정말 중요해요. 또 신용등급 하향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이냐도 주요 이슈가 됩니다. 단계적으로 내릴 것이냐, 한번에 왕창 내릴 것이냐의 여부부터 시작해서 내릴때 투자적격 등급을 유지할 것이냐 말 것이냐도 고민대상입니다. 저희의 토론과정은 상상보다 훨씬 격렬합니다. 직원들 모두 자기분야에 있어서는 전문가고 전문 애널리스트 이상의 수준을 갖췄기 때문에 "말"로 밀리면 가차없어요.(웃음) 직급문제는 전혀 고려되지 않습니다. 제가 주장하는 등급에 대한 논리적 기반이 약하면 타인의 등급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이죠. -지난해 신평사 중 하나가 현대건설 등급을 낮췄더니 회사 직원들이 단체로 몰려와서 항의한 적이 있었죠? "정부의 우회적인 압력이 등급 하향조정으로 나타난 거 아니냐"는 식의 언쟁도 크게 벌어졌었구요. 사실 그런 의문을 품는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재벌구조조정과 관련해서 신평사와 정부가 "이심전심"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하는 견해가 많았는데요. "정부가 옆구리를 쿡 찌르는 식으로라도 신평사를 조종하지 않을까?"하는 의구심을 가지게되는 게 사실입니다만.(웃음) ▲정말 그렇지 않습니다. 정부와 저희는 불가근 불가원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무디스에서는 "제도를 만들어 시장을 그 안에 가두려고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정부의 눈치를 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요. 그렇다고 해서 정부와의 관계를 단절할 수는 없으니까 불가근 불가원이 되는 거죠. 이헌재 재경부 장관시절, 그 분께서 한신평에 계셨던 인연때문에 다른 회사보다 특히 그러한 오해를 많이 받았습니다. 저희가 신용등급을 세게 치고 나가면(큰 폭으로 하향조정하면) 사람들이 "이거 다 이 장관하고 암묵적으로 연계된 것 아냐?"라는 식의 곱지않은 눈초리를 보내곤 했으니까요. 솔직히 저 정도의 시니어가 등급결정에 참여한다면 눈치를 전혀 보지않을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저만해도 지금 관리업무에만 주력할 뿐 등급결정에는 참여하지 않고, 실질적인 업무는 모두 젊은 직원들이 합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이 어디 그렇게 호락호락합니까. 장관의 눈치를 살피며 등급결정하는 분위기가 절대 아닙니다. 게다가 저희 직원들은 반골기질이 무척 강해요(웃음). "잘 되는 기업에 대해 잘 된다고 칭찬은 못해주지만 안 되는 건 확실하게 말한다" 이 말입니다. 오히려 우회적으로 압력이 들어오면 젊은 연구원들은 이런 식으로 생각하더군요. "야 이것봐라? 이런 식으로 로비까지 할 정도면 이 회사 진짜 문제가 심각한 것 같은데...낮춰야겠군" 허허. <정크본드 시장에 대한 관심, 본격적인 “리스크-리턴 게임”의 무대> -최근 신용등급 단수평가와 관련해서 문제가 좀 있었죠? ▲그랬습니다. 금감위에서 제도 문제와 관련해서 말도 많았구요. 하지만 다 발전을 위해 겪어야만 하는 과정이 아니겠습니까. 평가사들은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얘기해줘야 합니다. 은행이 말 못하는 것이랑은 전혀 차원이 달라요. -현재 단수평가제도는 어떤 식으로 진행중입니까. ▲발행쪽은 복수평가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유통부분은 복수로 갈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지금 단수평가제를 실시하면 2년안에 신용등급평정이라는 제도는 과거로 후퇴해버릴 겁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rating 제도를 없애버려라"라는 말을 한 적도 있습니다. -정부얘기를 하다보니 이것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군요. 최근 나온 정크본드에 관한 대책발표를 살펴보니 정부는 기업들의 현재 신용등급이 역버블 상태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 기업가치보다 등급이 좀 짜다"는 식 말이죠. 정크본드 시장이 활성화되면 BBB급 회사채가 새롭게 조명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있는데요. BBB급은 기본적으로 정크본드가 아니라는 이런 의견에 동의하십니까. ▲결국 refunding risk를 줄이라는 이야기죠. 저희도 정크본드 시장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고 채권시장이 발전하려면 정크본드 시장이 커져야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리스크-리턴(risk return) 게임이 안 되죠. 정크본드(high yield bond)는 기본적으로 부도(default) 가능성을 전제로 한 것 아닙니까. 시장수익률이 10%일때 20%로 프라이싱이 된다면 할만한 게임일 거에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단 말이에요. 금융권에서도 꺼려하고. 처음에는 물론 초과이득이 생기겠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부도업체 수가 하나만 늘어나도 피해는 막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부도율을 보수적으로 잡고 업체선별을 엄청나게 중요시합니다. 리스크를 완화시킬 수 있는 풀링(pooling)이 가능해야 하니까요. -그럼 풀링이 가능한 정크본드가 나오면 아무 생각없이 사도 되겠네요.(웃음) 정크본드에 투자한다는 비과세펀드도 처음 신상품이니까… ABS(자산담보부채권)도 처음에는 매우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죠? ▲제가 기억하는 것 중에 어떤 ABS는 마지막 후순위채권이 5년후 2배의 수익률이 나는 시스템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기관들은 "무슨 정크에 투자하느냐"며 사지 않았습니다. 주식에 비해서 채권은 단시간에 큰 이익을 내기는 어렵습니다만 정크를 잘 다룬다면 초과수익을 내기가 매우 유리할 겁니다. <”회사채 신용등급 상승추세”> -요즘 경제전반에서는 경기회복론이 서서히 나오기도 하는데요. 회사채 신용등급은 어떻습니까. 신용등급이 올라갈 수 있는 상황인가요 아니면 좀더 기다려야 합니까. ▲올라가는 추세라고 봅니다. 그동안 등급평가가 보수적으로 진행된 부분도 있구요. -그 말씀은 아까 정부의 역버블론을 일부분 인정한다는 의미입니까. ▲인정한다기보다는 펀더멘털한 측면에서 과도하게 하향조정한 면은 있다는 거죠. 무디스의 경우 반도체가 굉장히 경기에 민감한 업종임에도 불구하고 등급은 무척 안정적으로 주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등급평가에도 "부익부 빈익빈"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거에요. 삼성같이 잘 나가는 회사의 등급은 점점 좋아지는데 반해 낮은 등급 회사들은 올라갈 기미가 거의 안 보입니다. -작년 신용경색 현상이 일어났을 때도 A급 회사채는 품귀였었죠? ▲그렇습니다. 저는 저희가 벤처캐피탈리스트와 다르다고 늘 말합니다. 벤처캐피탈리스트야 100개중에 1개만 터져도 대박이 나지만 저희는 달라요. 10개 중에 1개 터지면 쪽박찹니다. -등급 조정이 사전에 누출될 가능성은 없습니까. 만약 한신평 직원이 담당업체의 친구라면 "너희 회사 이번에 이렇게 바뀔거다"라고 넌지시 언질을 줄 수는 있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평가사 등급은 후행성이 강합니다. 그러니 별 의미가 없어요. 시장에서 “어떤 회사가 좋아지고 있다더라”하고 소문이 돌면 신용등급이 상향조정되는 건 적어도 6개월 이상 걸립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신평사에서는 펀더멘털이 모든 것을 우선합니다. 소문에 의해 많이 좌우되는 주식시장과는 달라요. 오히려 이 업계에서는 기업에 대해 펀더멘털과 관계없는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것이 문제가 됩니다. 저는 주식투자를 전혀 안해요. 집사람이 자기 혼자 하는 정도죠(웃음). -주식투자를 전혀 못하십니까. ▲사규로 금지돼있습니다. 신고를 하면 막지는 않겠지만 신고까지 해가면서 주식투자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닙니다. <신용평가를 잘 받는 법, 채권과 주식의 차이를 이해해야> -기업들이 신용평가를 잘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미국에는 RAS(Rating Agency Service)라고 해서 기업과 신용평가기관 사이를 연결해주는 기관이 따로 있습니다. 무디스 같은데서 오래 일한 사람들이 담당하죠. 기업이 신용평가를 받을 때 당신의 업종 특성상 어떤 부분을 강조해라, CEO인터뷰를 할 때 이런점을 주의해라, 기업의 비젼을 설명할 때 이런 부분에 초점을 맞춰라 코치를 해주는 거죠. 이런 코치는 주식투자설명회를 할 때하고는 전혀 다릅니다. 한번은 어떤 벤처기업이 평가의뢰를 해왔어요. 벤처 열풍때 유상증자로 현금을 많이 확보한 기업이었죠. 자기들 현금만 믿고 AA등급쯤 받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내비추더라구요. 저희는 돈 많은 기업이 정말 무섭습니다. 이 기업이 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신용평가는 부채 상환 능력을 검증하는 것입니다. 벤처캐피탈리스트들에게 “우리회사의 비전이 이것이다. 세계 최고의 기술이다.” 설명하면서 유상증자를 액면의 100배로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죠. 아무리 현금이 많아도 수익모델을 위해 비슷한 다른 기업을 사들인다면 현금의 절대규모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주식과 채권의 차이가 바로 이겁니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벤처전용 프라이머리CBO 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을 겁니다. 주식하고 채권하고 접근하는 방향이 완전히 다르거든요. <크레딧 리서치 전문가를 기르는 것이 꿈> -87년 입사해서 15년 동안 변함없이 한 직장에 근무하고 계신데요. 이 업종을 택하고나서 보람을 느낀 것은 언제입니까. ▲이 길을 선택하기를 잘 했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남을 평가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스트레스가 상상을 초월하죠. 저희라고 타인에게 나쁜 소리 하는 것을 즐기겠습니까. 기본적으로 저희 업무는 투자자들에게 경고신호를 보내주는 거에요. 신용평가문화가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도 최소 5년 정도는 시간이 흘러야 할 겁니다. -개인적인 바램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을 좀 키우고 싶어요. 확고한 논리체계를 갖춘 사람들이 한국 금융계에 대거 포진해야하는데 똑똑한 인재들이 자꾸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신용평가(rating)라는 건 각국의 경제수준을 결정하는 인프라 중 하나에요. 그러나 크레딧업무와 관련한 국제적인 전문가가 한국에 몇명이나 있습니까. 인재양성은 필수적입니다. 미국에서도 그렇지만 저희 업무는 실무가 앞서나가는 분야인데 우리나라에선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인력이 무척 부족합니다. 아직까지는 신용평가사 내부에서도 크레딧 리서치와 관련된 인재들을 전문적으로 양성하지 못했구요. 가능하다면 비영리 레이팅 스쿨을 설립해서 회계이론부터 시작, 구체적인 공부를 시켜주고 싶어요. 어찌됐든 한국 자금시장의 발전을 위해서 조금이나마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조민식 이사 약력) -60년 출생(본적 서울) -80년 우신고등학교 졸업 -84년 서울대 경영대학 졸업 -83년 삼일회계법인 -87년 한국신용평가(연구조사팀, 평가팀 등) 현재 조사국 이사
2001.06.08 I 선명균 기자
  •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⑨박성진 삼성투신 차장(중)
  • [edaily]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삼성투신운용의 스트레티지스트인 박성진 차장입니다. (인터뷰 상편에서 이어짐) <운명의 장난(?) 교수의 꿈이 증권사 채권맨으로> -그럼 신영증권에 입사한 것은 어떤 계기에서입니까. ▲아까 말씀드렸듯이 유학을 가려고 했는데요. 제가 준비했던 학교가 인디애나 주립대였어요. 미국 내에서도 빅 10에 들어가고 무엇보다도 한국학자들 중 여기서 학위받은 분들이 많은 곳이죠. 제 석사논문을 영어로 번역해서 원서를 넣었더니 그 쪽에서 “좋다. 너는 바로 박사과정에 진학해도 된다”고 하더군요. 이게 왠 떡이냐 싶었죠. 돈도 없는데 미국에서 다시 석사부터 시작하려면 좀 시간이 많이 걸리겠습니까. 의기양양 비자를 받으러 대사관에 갔더니 아까 그 여자 면접관이 “your job responsibility is not enough guarantee to come back. Your financial status is not enough guarantee to finish your coursework” 이라고 하더군요. 기가 막혔죠. 그때가 12월이었어요. 1월에 미국으로 가서 2월부터 시작하는 강의를 수강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저는 그 때 이미 결혼을 해서 기혼자용 기숙사에 제 피 같은 돈 100불을 예치금으로 송금까지 한 상황이었어요.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그래서 사정을 했죠. 그런데 전혀 안 통해요. 안 통하는 정도가 아니라 전경을 불러서 끌어낼 태세에요. 하늘이 노래진다는 것 느껴본 적 있으십니까. 한 남자의 꿈과 인생이 일개 미 대사관 직원의 손에서 박살이 난 겁니다. 인디애나 주립대에 전화를 했습니다. 창피해서 비자가 리젝트됐다는 소리는 죽어도 못하겠고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서 다음 달에는 못 가겠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괜찮다. 2년 안으로만 다시 하면 된다. 그렇지만 2년이 지나면 토플과 GRE를 새로 시험 봐서 최신 성적을 보내주면 또 된다”고 친절히 알려주더군요. 그래서 낙담한 마음을 조금은 지울 수 있었죠. 그 때 병도 좀 앓았는데 가장이니 어떡합니까. 먹고는 살아아죠. 신문을 탁 펼치고 구인광고를 막 뒤졌어요. 취직을 하기로 결심하고 보니 12월에 신입사원을 뽑는 곳이 딱 두 군데였어요. 신영증권이랑 디지털조선. 처음에는 당연히 디지털조선에 가고 싶었습니다. 대기업공채는 이미 가을에 끝났고 신영증권은 회사 자체에 일이 있어서 12월로 늦춰졌다고 하더군요. 신영증권의 일정이 먼저 시작됐는데 모집분야에 연구/조사 분야가 있었어요. 일단 두 곳에 모두 원서를 넣었죠. -증권이 무엇인지는 아는 상태에서 입사를 결정한 것은 아닐텐데요. ▲그런 건 아닙니다. 사실… 유학준비를 하면서 잠깐 토플학원 강사로 일했는데 그 학원 바로 옆에 동서증권이 있었어요. 학원에서는 초급반 영어랑 주부회화를 담당했습니다. 아침에만 좀 바쁘고 오후에는 내리 놀아요. 그리고 학생들 수업끝나고 직장인들 하루 일과가 끝나는 저녁시간에 연이어 수업이 계속되는 거죠. 학원강사가 참 고달픈 직업입니다. 건강도 많이 망쳐요. 낮에 시간 많겠다 바로 옆에 증권회사 있겠다. 그래서 순진한 집사람을 꾀서 주식을 하겠다고 졸랐어요. 당시 집사람이 피아노 레슨을 20개나 해서 2000만원을 모았거든요. 그 돈으로 주식투자를 시작했습니다. 이 돈을 불려서 유학가자는 결심을 하고 증권계좌를 만들었더니 처음에는 잘 되더라구요. 금방 2500만원으로 돈이 불어났거든요. 저는 주식의 ‘주’자도 몰랐고 기업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었어요. 들어본 회사라고는 아버님이 다니셨던 동아건설이 고작이었어요. 당시 성수대교 붕괴사태 때문에 동아건설주가 무척 쌌어요. 그래서 “음 저건 낙폭과대주야” 라고 매입했죠. 하하. 그리고 당시 금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LG계열사 주식도 샀고요. 그런데 첫끗발이 개끗발이라고 그 다음부터는 폭락하기 시작하는 겁니다.(웃음) 그 후 손절할 때가 왔는데도 그걸 못했어요. 개미투자자의 전형적인 실패사례죠. ‘손절하지 않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오를거야’ 라는 말도 안되는 류의 생각들. 되긴 뭐가 됩니까. 유학 갈 날짜는 다가오고 점점 돈은 줄어드는 지경이 됐어요. 대충 정리를 해보니까 1500만원이 조금 안되는 돈이 남았더군요. 속으로는 “그래도 선방했다. 이게 다 내가 블루칩과 낙폭과대주를 산 덕택이야”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하 유학이 취소되고 나니까 오기가 생기더라구요. 내가 왜 주식투자에 실패했는지 증권회사에 들어가서 몸소 알아봐야겠다는 오기죠. 전 그 당시만해도 증권회사 직원들은 그 이유를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 딴에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몰렸는데 그 길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디지털조선은 어떻게 됐냐구요? 제가 학부는 놀아서 학점이 나쁜데 대학원은 all A였어요. 대학원 all A지, 토플 점수 우수하지…나름대로는 서류는 문제없다고 생각하고 디조에 원서를 보냈어요. 그런데 서류에서 떨어졌습니다.(웃음) 그래서 지금도 조선일보는 감정이 좋지 않아요. <우연의 연속, 채권분석가가 되기까지> -신영증권에 들어자마자 바로 채권부로 갔습니까? ▲연수를 받고 신입사원들에게 지원부서를 적으라더군요. 1순위는 무조건 조사부 적었죠. 한 게 그것 밖에 없으니까요. 그리고 두번째는 국제부. 폼 나잖아요. 3순위. 주식부. 왜 주식을 하다가 망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발령을 하는데 인사부장이 “박성진 채권부” 하고 부르는 겁니다. 인상 팍 쓰면서 ‘도대체 채권부가 뭐하는데야?’ 라고 생각했어요. 인사부장께 물었죠. 채권부가 뭐하는 곳이냐고. 그랬더니 인사부장이 “아파트 분양하잖아. 거기서 채권받거든. 분양하고 나오는 사람들 앞에서 채권, 채권 하면서 소리지르고 가서 팔아. 너 명동이나 주택가에서 채권, 채권하면서 팔러다니는 사람들 본 적 없냐? 그거하는 거야” 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토씨하나 다르지않게 전해드리는 거에요. 반은 농담이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황당했어요.(웃음) 채권이 뭔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던 데다 신입사원 교육 때 채권시간이 무지 재미없었거든요. 수학공식 막 쓰고 계산도 복잡하고. 채권부에 갔더니 지금 LG투신에 있는 최원녕 과장이 “네가 채권부냐?” 라고 인상을 쓰면서 말하는 거에요. 그런데 알고 보니까 초등학교 선배더라구요. 그것 때문에 꽉 잡혀서 찍 소리도 못하고 살았죠. 하하. -결국 전공이나 희망사항과는 전혀 상관없이 채권판에 들어왔군요. 처음에는 무슨 일을 했습니까. ▲수도결제죠뭐.(증권사가 채권매매 중개시 현물 채권과 대금을 교환, 결제해주는 것) 처음 증권사 채권부에 가면 하는 일이 그거 밖에 더 있겠습니까. 속된 말로 인생이 완전히 골로 가더라구요. 그전까지는 알튀세르, 레비스트로스와 라캉을 논하던 나름대로 먹물먹은 지식인이라고 제 딴에 자부했는데 말이죠. 하하. 인생이 이렇게 꼬이고 저렇게 꼬이는데 정신을 못 차리겠더군요. 그냥 전공살려서 기자나 됐으면 폼이라도 날 거 아니겠어요. (웃음) -수도는 얼마나 했습니까? ▲9개월 정도? 한 일년 가까이 했습니다. 제가 신입사원 동기들보다 나이가 좀 많았어요. 다행인 것은 저랑 한 조가 된 친구가 운전을 전혀 할 줄 몰랐어요. 그래서 제가 운전을 하고 그 친구가 막 뛰어다니는 일을 했죠(웃음) 제가 어떤 건물 앞에 차를 탁 세우면 그 친구는 미친 듯 뛰어올라가서 도장 찍어오고. 수도를 직접 해 봐야 채권의 비애를 몸소 체험할 수 있어요. 길이 막힐 때는 원효대교를 뛰어서 여의도로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재미있는 일화가 많았어요. 그때 거래가 많았거든요. 선배들이 “야 이 자식아 빨리빨리 처리 못해? 느려터져 가지고선” 뭐 이렇게 혼이났죠. 저도 열이 받으면 “우리 회사에서 매매보고서 나보다 더 빨리 작성하는 사람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나보다 더 빨리 하는 사람없으니까 늦는다고 갈구지 마” (웃음) 이렇게 맞받았죠. <“너는 컴퓨터도 잘 다루니까 기술적 분석이나 한번 해봐라”> -채권의 기술적 분석을 시작한 건 언제인가요. ▲그것도 제가 하겠다고 한 게 아니라 신영증권 황 부장께서 “너는 컴퓨터도 잘 다루니까 이거 한번 해봐라” 이런 식으로 명령을 내리셔서 하게 된 겁니다. 입사하고 3개월 후부터 수도업무랑 채권분석을 같이하기 시작했어요. 채권단가, 이론부터 알아나갔죠. 실제로 해보니까 제가 한 것이 잘 맞아 떨어지더라구요. 잘 맞을 때까지 조정도 이리저리 해보고. 여하튼 재미있었습니다. -채권관련 책은 몇 종류나 봤습니까. ▲기술적 분석에 관한 책은 사실 그다지 많지 않아요. 거기에 나오는 공식들을 보는거죠. 제가 좀 컴퓨터를 다루니까 그 공식들을 프로그램으로 짜고 그것을 또다시 엑셀에서 구현하는 작업들을 했어요. 조정과정을 몇 개월 거치니까 신기할 정도로 잘 맞는 거에요. 그때 당시에는 족집게처럼 들어맞는다고 느껴졌을 정도니까요. -그게 몇 년도인가요. ▲입사하던 해였으니까 96년이군요. 그런데 이유가 있더라구요. 그 당시 시장은 지금처럼 시가평가(market to market) 시장도 아니었고 대부분 시장참가자들이 기관투자가다 보니까 현재에 비해 모멘텀이 훨씬 분명한 시장이었습니다. 지금처럼 변동성이 큰 것이 아니라 한 번 모멘텀이 생기면 관성에 의해서 일정 기간은 그것이 계속 유지가 된 거죠. 단기 딜링을 해서 돈도 벌 수 있을 것 같고 자신감도 막 생겨났습니다. 아침회의에서 “금리 어떻게 될 것 같나?” 라는 질문을 받을 때 신입사원임에도 불구하고 코멘트를 하고. 그러면서 “아 나는 이쪽 방면에 소질이 있는가봐. 분석의 천재라니까” 라는 착각에 빠지게됐죠(웃음). 그 시절에는 어디 인터넷이 있습니까. 나오는 모든 금융데이타를 일일이 손으로 작업했어요. 한국은행 데이터, 경기동향, 통계청 데이터를 수기로 입력했다는 거 아닙니까. 아주 초보적인 수준이었지만 재미있었어요. -재미를 느낀 것이 가장 큰 이유였군요. 그만두겠다는 생각도 안하고 말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번듯한 직장에 취직해 비자받을 때 흠 잡히지 않고 돈 모아서 곧 유학을 떠날 계획이었습니다.(웃음) 학원강사랑은 엄청난 차이가 있잖아요. 증권회사라면 미국사람들도 job responsibility가 어쩌니 저쩌니 못할 거 아니겠어요. 2년간 괜찮다는데 금방 떠나려고 했죠. 그런데 학위받는 일에 대해서 회의가 들기 시작했어요. 유학 갈 형편도 안됐지만. 사실 우리나라에서 학계만큼 정치적인 곳도 없잖아요. 물론 하고 싶은 일을 못했다는 것에 대한 자괴감이 없을 수는 없죠. 사람인데. 수도하면서 도장받으러 다니려고 내가 이때까지 공부했나. 이런 생각들. 그래서 대학때부터 다니던 교회에도 뜸하게 되고. 저는 토요일 교회모임 때문에 대학시절 내내 그 흔한 MT도 한번 안 간 사람인데 말이에요. ‘이렇게 열심히 살면서 하나님을 모셨는데 생 양아치 같은 애들은 다 잘되고 나는 남들 다 가는 유학 한 번 못 가나’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해도 위에서 뭐하라고 시키면 죽어라 하거든요.(웃음) 제가 바로 그랬어요. 마음 속은 썩어 문드러져도 하라면 다 했으니까요. 그러다 지금 다니는 교회 목사님을 만났어요. 그 목사님께서 “하나님이 자네를 유학 보내시지 않은 이유가 있다. 이 세상에서 지금 자네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지금 그 일을 시키시려고 일부러 여기 남게 하신 거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시장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일에 관한 재능을 주신거다. 네가 경제학을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그 부분은 하나님이 메꿔 주실거다.” 이렇게 설득을 하시더군요. -조직 안에서 전문적으로 분석을 시작한 건 언제인가요. ▲수도일이 끝나고 나서는 상품운용팀에 들어갔어요. 말이 상품운용이지 일반고객들을 상대로 채권을 파는 거였죠. 전자계산기도 무지 잘 써야했구요. 세금계산을 손으로 하는데 나중에는 손이 보이지않을 정도로 손동작을 놀려야 했습니다. -아니 엑셀이 있었을텐데 왜 그런 일을 했습니까. ▲관행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깨지는 것이 아네요(웃음). 엑셀쓰자고 어른들에게 건의하면 무조건 손으로도 할 줄 알아야 된대요. 컴퓨터 없을 때는 네가 어떡할거냐는 거죠. <”상상력과 재치” 시황으로 이름을 얻다> -그럼 시황을 본격적으로 쓴 건 언제입니까. ▲브로커팀으로 옮기면서 시황을 쓰게 됐습니다. IMF 외환위기가 터지기 3개월 정도 전이었어요. 97년 9월로 기억합니다. 그 당시 데일리 한편 조그만 귀퉁이에다가 제 이름으로 시황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평이 너무 좋은 거에요. (웃음) -제 기억으로도 호평을 받았던 것이 생각나네요. 기술적 분석과 관련된 코멘트도 최초로 나왔었죠 아마? 지금도 그 얘기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자체 제작한 툴을 가지고 하니까 제 예측이 잘 맞으니까 ‘이걸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자’ 라는 마음에서 시작하게 됐어요. 나름대로 제가 생각한 아이디어도 많이 넣었죠. 확인도 안 해보고 “이런 건 아닐까? 저런 건 아닐까?” 를 집어넣은 겁니다. 그때는 그게 장점이었죠. 지금은 단점이 됐지만(웃음) 제가 지금도 “너는 확인해보면 간단한 일을 가지고 상상을 먼저 해. 그래서 안돼” 질책을 받아요. 그러면서 맨날 깨지거든요. 하지만 그 때 당시에는 그것이 재미있다고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해요. -당시 데일리 말고 따로 리포트를 쓴 적은 없나요. ▲사실 저는 데일리를 쓸 만한 내공도 가지지 못했어요. 지금도 그렇구요. 배우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채권을 잘 알지도 못하는 애가 채권계에 입문해서 뭔가 쓴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준 정도겠죠. DB 만들고 상관관계 분석하는 모든 일들이 재미있었고 지금도 도움이 많이 됩니다. -첫번째 프리젠테이션은 어디서 했습니까. ▲정말 기억이 안나요. 한때 많이 불려다니긴 했는데 어디서 처음 했는지가 기억이 잘 안 나는군요. 자주 갔던 곳은 외환, 한미은행 등 은행권이었습니다. -혼자 갔습니까. ▲아뇨. 담당부장님과 함께 갔습니다. 가서 상담하고 이것저것 말해주고. 사실 맞았던 적보다 틀린 적이 훨씬 많았어요. 틀렸을 때의 그 창피함, 짜증남이라는 건 말로 못해요. 틀린 것만 가지고도 많은 공부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만해도 채권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곳이 거의 없었어요. 다른 곳에서는 프리젠테이션을 한다고 전해주는 정보가 채권시장 안에 있는 사람들에겐 너무 빈약하게 느껴진거죠. 시장도 좁고 돌아가는 메커니즘도 빤한 곳이 이 바닥 아닙니까. 그런데 제가 가서 이러저러 말을 하니까 “쟤는 채권수도도 해 본 녀석이고 말은 좀 통하네” 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아는 건 절대 아네요. 전 지금도 투신, 은행권이 어떻게 채권을 사고 파는지 잘 몰라요. 많은 선배들은 제게 “네가 말은 참신하고 조리있게 했지만 실상 은행이나 보험이 그렇게 단순하게 자산운용을 하는 곳이 아니다” 라고 충고를 해줬죠. -그 당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뭡니까. ▲우리 시장이 좀 건조하다 보니..제가 장난기가 좀 심한 편이라 의도적으로 코믹하게 쓰려고 했어요. 그러면서도 내용의 본질은 놓치지않으려고 나름대로 애를 쓰긴 했는데. 별루 기억에 남는 것이 없네요. -시황제목을 무척 재미있게 달았던 걸로 기억됩니다만. ▲음 그런 건 있었어요. 외환위기 이후 IMF 고금리 정책을 계속 고수했잖아요. 그 후 분기마다 정책 내용을 바꾸게 됐는데 한번은 영문을 읽어보니까 이번엔 고금리 정책 완화기조로 간다 뭐 이렇게 느껴지더라구요. 그리고 진짜 금리가 내렸습니다. 마침 금리가 하락하는 날 IMF 서울사무소장의 금리하락 멘트도 나갔죠. 그 시점에서 제가 뭐라고 코멘트를 했냐면 “IMF는 Immediate Money-market Fever 다“ 라고 했어요. 사람들이 그런 걸 기억해 준 거죠. 분석을 잘해서가 아니라. (인터뷰 하편으로 이어짐)
2001.05.04 I 정명수 기자
  • 재계원로가 본 고 정명예회장-송인상 전 능률협회장
  • [edaily] 21일 별세한 고 정주영 현대그룹 전 명예회장은 한국 현대사를 이끈 재계의 거목으로 평가되고 있다. 재계원로들이 평소 가졌던 그에 대한 평가를 들어본다. ◇송인상 전 한국능률협회장= <아이디어 샘솟는 불세출의 기업가> 아산에 대해 나는 여러 가지 입장에서 겪어 보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다양한 시각에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긴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와 함께 지냈던 기억의 편린들을 하나하나 꺼내보고 그의 성격과 일하는 스타일, 생각하는 방식 등을 그저 내 나름의 느낌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아산과 나는 1920년대 초에서 중반에 이르는 시기를 강원도 통천에서 보냈다. 그는 송전보통학교에 다녔고, 나는 통천보통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서로 만날 기회는 없었지만, 같은 시대를 한 지역에서 보낸 셈이다. 통천군 송전은 청송백사(靑松白沙)로 유명한 송전해수욕장이 있고 경치가 수려한 고장이기도 했다. 이러한 자연조건이 소년 시절 아산의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 특유의 소박하면서도 사람을 매혹하는 아산의 자질은 아마도 이런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해방의 감격과 전쟁의 참회를 거쳐 전재복구에 여념이 없던 1950년대 종반, 미국 원조가 DLF 차관으로 바뀌어져 갈 무렵 부흥부 장관으로 재임하던 나는 아산과 만나 시멘트 공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때 기업가로서의 아산의 편모를 들여다 볼 기회가 있었다. 불행하게도 나의 재임 중에 현대시멘트 건설은 실현을 못보았지만 그의 치밀한 기업가적 재능은 엿볼 수 있었다. 1960년대 중반에 나는 박정희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세계 각국을 돌며 한국에 투자할 것을 권고했다. 당시 정부의 4대 기획사업 가운데 하나였던 조선분야의 투자 유치를 위하여 스웨덴의 요테보리(Gothenburg) 조선소와 노르웨이의 아카(Aker)그룹을 방문해서 관계인사들과 폭넓은 교섭을 하였는데, 그것이 현대가 조선사업을 시작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교섭의 결과로 아카그룹의 시엠(Siem) 사장 일행이 한국에 왔고, 아산은 현대그룹이 정부로부터 조선사업자로 지정된 것을 전후하여 영국의 애플도어(Appledore)와 조선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때에도 아산의 과감성과 사업적 수완은 여실히 표출되었다. 영국에서 조선소 건설에 필요한 자재가 도착하기도 전에 아산은 희랍의 선주로부터 이미 수주를 따냄으로써 세계의 조선업계 인사들을 놀라게 했던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현대중공업이 조선사업을 전개해가는 과정에서 아산은 리더십이 탁월한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대내외에 과시했다. 사업을 펼쳐가면서 그가 보여준, 미지의 세계에 돌입하는 모험심과 불퇴전의 용기는 뭇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했고 지금도 우리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조선소 건설 현장을 야간에 손수 돌아보다가 자동차를 탄 채 물에 빠졌던 이야기는 그의 불굴의 용맹과 모험심을 여실히 알려주는 일화이기도 하다. 나는 아산과 함께 6년 동안 전경련을 맡아 일한 적이 있다. 내가 전경련 부회장이 되었을 때 아산은 이미 회장으로서 4년 여를 일해오던 터였다. 원용석, 정인욱 그리고 내가 부회장으로서 아산을 모시고 전경련의 일들을 열심히 돌보았는데, 그 과정에서 아산의 기업가로서의 모습은 크게 드러났다. 그는 나 같은 행정가 출신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아이디어를 때때로 내놓곤 했다. 그런 제안들에는 거시적으로 크게 멀리 내다보는 혜안과 탁견이 담겨 있었고, 그러면서도 비용과 효율을 충분히 고려하는 기업가의 본질이 내포되어 있었다. 아침에 모여 회의를 하다보면 아산은 곧잘 깜짝 놀랄만한 아이디어를 돌연하게 이야기했다. 한강의 고수부지도 그가 제안한 것이다. 오늘날 서울 시민들에게 큰 혜택을 주고 있는 이 고수부지의 아이디어를 아산이 담담하게 꺼냈을 때, 그런 일에 전혀 조예가 없던 나로서는 실현 가능성에 회의를 가질 수밖에 없는 꿈같은 이야기로 들렸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옳았으며 지금의 고수부지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언젠가 아산이 나에게 “송 회장도 무슨 사업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물었을 때 “나 같은 관료 출신은 사업을 하기에 가장 부적절하고, 나는 사업가로서의 재능이 전혀 없다.”고 답한 적이 있다. 그러자 아산은 “나는 길을 가다가도 이곳 저곳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을 발견하는데, 송 회장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눈에 뜨이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실제로 아산에게는 무슨 아이디어든지 사업으로 전환해서 이익 창출의 기회를 마련하는데 천재적인 소질이 있었다. 아산이 전경련 회장으로 있을 때는 한국경제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큰 발전을 향해 줄달음치던 시대였다. 아산은 비단 대내적인 경제발전 뿐만이 아니라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을 높이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전경련의 국제협력사업에 대하여 남다른 정열을 쏟았다. 동남아 여러 국가와 경제적 유대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한·아세안 협력사무소(Korea-ASEAN Business Club)를 만들었고, 몸소 대표단을 이끌고 필리핀을 비롯한 여러 나라를 심방하기도 했으며, 구주를 위시한 각국과의 경제협력위원회 설립에도 엄청난 집념을 보였다. 이러한 일련의 활동들이 오늘날 한국이 국제적으로 잘 알려지고 경제적 측면에서 훌륭한 파트너로서 여러 나라들과 유대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고 생각한다. 아산은 도전을 기회로 만드는 탁월한 재질과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어려운 일에 당면해서 우리가 용기를 잃고 있을 때 그는 이런 때야말로 진정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서 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격려했다. 한국이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잃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의 하나로서 아산은 지나치게 높은 금리를 들었다. 그는 경제기획원 장관실과 한국은행 총재실을 찾아가 대만 등 우리와 비슷한 개발도상국의 금리를 비교하면서 금리를 비교하면서 금리 인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또한 정부의 규제를 철폐, 완화해 줄 것을 집요하게 건의했고, 전경련 내에 규제 완화를 연구하고 건의하기 위한 기구를 설치, 운영하기도 했다. 아산은 정부가 그러한 몇 가지 일만 도와준다면 다른 경제적 사안에 대해서는 기업가인 우리가 책임지고 해결하겠다는 것을 역설했는데, 그런 과정에서의 아산은 기업가 정신이 투철한 철인 같은 모습으로 비추어졌다. 아산은 어느 모로 보나 웅변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말에는 기업가로서의 철학에서 우러나온 진지함이 있었기 때문에 항상 무게가 실렸다. 아산과 함께 일본에 가서 한일경제협력회의에 참석했던 때의 일이다. 일본측 위원들은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보다 아산이 말하는 것에 더 큰 무게를 두고 경청했다. 그것은 아산의 확고 부동한 기업가적 신념과 그 소박한 접근 방식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의 기업인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아산이 성취한 현대의 성장사가 큰 무게로써 그들을 압도한 것이라고 믿어지는 대목이다. 아산과 나는 강원도의 낙후된 지역 출신으로서 한국경제가 도약단계로 뛰어들 무렵 경제계에서 같이 생각하고 희비애락을 함께 나누었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라기보다 필시 우리 두 사람이 전생에 대단히 깊은 인연이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불세출의 기업가 아산과의 만남은 나의 인생에 있어서 정녕 매우 뜻깊은 것이었다. *자료 = 현대그룹 사이버 박물관
2001.03.22 I 김기성 기자
  • 대우자동차 노조 기자회견문(전문)
  • <대우자동차 정리해고에 맞선 결사투쟁 선포 기자회견문> 정리해고를 즉각 철회하라 1. 16일로 예정된 사측의 정리해고에 맞서 대우자동차 노동조합은 총파업에 돌입하며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정리해고를 분쇄하기 위한 투쟁에 돌입할 것을 선언한다. 2. 노동조합은 조합원이 당하고 있는 엄청난 고통에도 불구하고 "경영혁신안"을 제출하며 정상화를 위한 방향을 제출했다. 그러나 사측은 2차에 걸친 일방적인 의원퇴직을 실시하고 노동조합 총회투표를 방해하는 것은 물론 노조에 협조하는 조합원에게 협박을 서슴치 않으면서 정리해고를 강행할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인원감축한다면서 오히려 깡패를 70명 채용하여 폭력적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기막힌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3. 대우차 고용관련 문제는 노사의 문제를 넘어서 있다. 10일 재경부장관, 14일 산업은행총재는 지난 11월의 동의서를 강요하던 상황과 똑같이 "정리해고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파산 할 것" 이라는 협박을 했고 여당까지 나서서 대우차 정리해고 강행을 부채질 하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은 노사간의 합리적인 문제해결을 막고 현 정권의 정권재창출을 위해 정리해고를 강행함으로서 노조 싹쓸이 작전을 펼치고 있다는 의혹을 떨쳐 버릴 수 없다. 4. 인원감축은 결코 대우차의 회생을 위한 합리적인 방안이 아니다. 우리는 수 차례에 걸쳐 정리해고 방식보다는 순환휴직을 실시하는 것이 훨씬 더 정상화를 위한 자금흐름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또한 그에 따른 비용을 부담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그러나 사측은 순환휴직이 합리적인 방안임을 알면서도 대외 명분상 정리해고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5. 조합원들은 길게는 4년 전부터 휴무, 반복되는 휴업, 그리고 체불임금 등 수많은 고통속에서 부도 이후 4,091명을 떠나보내는 참혹한 시기를 보내왔다. 정든 동료를 눈물 섞인 이별주로 떠나 보내는 참혹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정상화의 희망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분노를 분노답게 표현하지도 못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6. 그러나 이제 우리는 모든 상황을 기꺼이 각오하며 결사투쟁에 돌입할 것을 선언한다. 우리의 투쟁은 잘 나갈 때는 한 가족이라고 외치다 집안 살림이 어렵다고 가족을 &51922;아 내는 비인간적인 행위에 맞서는 투쟁이다. 합리성을 상실하고 정권과 채권단을 위한 명분을 차리기 위해 수천의 가장을 생존의 위기로 모는 반인륜적인 행위에 맞서는 투쟁이다. 오직 GM만을 짝사랑하면서 대우차는 물론 수십만의 협력사 사원 및 가족의 생존을 외면하는 반국민적인 정부에 맞서는 투쟁이다. 7. 지금부터 부평공장의 휴무 조합원에게는 총결집 출근투쟁을 근무자에게는 파업을, 또한 지부에 파업을 실행할 것을 선포한다. 우리는 그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인간적, 계급적 분노를 모두 모아 정리해고분쇄를 위한 최후까지 결연하게 투쟁할 것이다. 정리해고가 철회되지 않는다면 이 투쟁은 계속될 것이며 만약 사측과 정권의 어떤 형태의 도발이 있다면 우리는 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조치를 분명히 강행할 것임을 경고한다. 8. 아울러 이미 농성투쟁에 결합한 금속산업연맹 위원장을 중심으로 전국의 금속노동자와 민주노총, 그리고 우리를 지지하는 모든 세력과 기꺼이 연대하며 함께 할 것임을 선언한다. 2001년 2월 15일 대우자동차 노동조합 위원장 김 일 섭
2001.02.15 I 문주용 기자
  • 주택은행 노조,"국민은행과 합병 반대" 성명서(4보)
  • 주택은행 노동조합은 11일 국민은행과의 합병 가능성과 관련, "합병과 대량해고는 동의어"라며 합병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주택은행 노조는 국민은행과의 합병이 사실상 소매금융 독점은행을 만드는 것으로 결코 슈퍼클린뱅크의 탄생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이에 앞서 지난 8일에도 성명서를 발표, 국민은행과의 합병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주택은행 노조는 이 성명서에서 "(합병설에 대해) 은행측의 침묵이 계속될 경우, 언론보도를 사실로 인정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다음은 주택은행 노조의 지난 8일자, 11일자 성명서 전문. ◇주택은행 노조 11일자 성명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주택은행지부(문의 : 02-769-8166, FAX : 02-769-8170) 국민은행과의 합병, 실현불가능한 "공염불"! -소매금융 독점은행을 만드는 것이 금융구조조정인가? -국민은행노조와 긴밀한 공조체제 통해 합병설 분쇄할 것 우리 은행의 합병설이 꼬리를 물고 있다. 이르면 금주 중에 합병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유언비어마저 돌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합병설은 "연내 금융구조조정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는 정부가 지지 부진한 은행권 구조조정에 돌파구를 마련하는 한편, 정부 요구에 순응하지 않는 일부 은행들에 대한 "충격요법"의 의미가 강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같은 합병설은 근거야 어찌 됐건 현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공염불에 불과하며 이를 강행할 경우, 두 은행의 노조는 물론 전 금융인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는 점을 경고하는 바이다.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합병은 사실상 소매금융 독점은행을 만드는 것 지난 달까지만 하더라도 우량은행간 합병에 관련, 대세는 "소매금융+도매금융"과 같은 차별화된 업무영역을 가진 은행들간 합병이었다. 시너지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동종은행간 합병도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일례로 우리 은행 김정태 행장은 지난 11월23일 서울이코노미스트조찬강연에서 "이런 형식으로 은행합병이 이뤄지면 나중에는 같은 형태의 은행들만 남게돼 경쟁심화를 피할 수 없다"며 "은행전략에 부합하는 합병", 즉 소매은행과의 합병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우리는 이같은 다양한 의견 자체를 부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분명한 입장은 소매은행간 합병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국민은행은 결코 적절한 파트너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은 모두 우리 나라의 소매금융을 대표하는 은행이다. 따라서 이 두 은행의 합병은 얼핏 보면 "슈퍼클린뱅크"의 탄생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소매금융분야의 "거대독점금융자본"이 출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시장경제의 핵심은 경쟁이다. 그런데 이 두 은행의 합병은 경쟁이 아닌 독점체제로 가자는 얘기다. 이것이 정부가 얘기하는 시장주도형 금융구조조정의 실체인가? 독점과 금융의 결합이 얼마나 위험한 "로맨스"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부는 또 한번의 금융총파업을 유도하는가? 정부는 연말이 다가오면서 시간에 쫓기고 있다. "은행장들이 불려 갔다 왔다더라", "어쨌다 더라" 하는 얘기들이 끊이질 않고 있다. 정부는 정부가 임의로 그어 둔 시한 내에 구조조정을 마치는 것에 주안점을 두지 말고 "구조조정다운 구조조정"이라는 원칙으로 돌아와 주기 바란다.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합병이 가능한 얘기라 하더라도 시한에 쫓겨 "번개 불에 콩 구워 먹듯" 해 버린다면, 그에 따른 부작용과 피해는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것이다. 두 은행은 소위 우리 나라의 우량은행들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은행들로서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일반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따라서 이 두 은행의 합병으로 긍정적인 결과가 기대된다 하더라도 치밀한 연구분석과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진행되어야 하는 문제이다. 정부가 만약에 지금과 같은 일방통행식 구조조정을 밀어부친다면 한가지 각오해야 할 것이 있다. 금융노동자들의 대규모 저항이 그것이다. 투쟁이 본격화되고 있는 평화, 광주, 제주, 경남은행지부는 물론 대다수 은행권노조들과 조합원들이 총파업 이후의 정부정책에 대해 깊은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정부가 사태의 본질을 잘 못 파악할 경우 지난 7월 총파업을 능가하는 전면전을 각오해야 한다. 국민은행과의 합병은 대량해고와 동의어 김정태 행장을 위시한 경영진에게도 우리의 입장을 밝힌다. 우리는 이같은 합병이 앞서 밝힌 독점의 폐해말고 도대체 어떤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지 회의스럽기 짝이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주주들의 이익상승은 가능하겠지만 그 외의 어떠한 긍정적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 먼저 합병의 대전제인 시너지 효과를 살펴보자. "시너지"란 "1+1=3 또는 그 이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중복투성이인 이들 두 은행이 통합하면 중복부분에 대한 칼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1+1=2"라는 단순등식조차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결국 두 은행의 합병이 노리는 것은 자산규모를 늘리되 중복인력과 점포를 감축해서 이윤창출구조를 극대화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합병전 32% 가량의 인력을 감축했던 한빛은행의 두 전신, 상업과 한일처럼 국민과 주택에도 대규모의 정리해고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외환위기 직후 부실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이뤄졌던 이들 은행의 합병과 현재 국민과 주택의 상황이 과연 일치하는 것일까? 노조는 여기서 분명히 밝히는 바이다. 합병과 관련, 단 한 사람의 종업원도 해고할 수 없다는 점을 말이다. 현행법은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규정을 두고 있으나, 이 역시 "경영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사업의 양도, 인수, 합병"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은행은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성립할 여지를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 까다롭다고 하는 뉴욕증시에서도 인정받은 우리 은행의 경영상황 아닌가? 은행 경영진이 현행법을 존중하는 사람들이라면 합병에 따르는 여러 가지 사안을 놓고 노조와 협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조를 교섭테이블에 앉히고 싶다면, 합병과 관련해서 단 한명의 종업원도 자르지 않겠다는 각서부터 제출해야 한다. 이를 제출한다면, 은행발전이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교섭에 응할 용의가 있다. 김정태 행장님, 1만2천 임직원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김정태 행장은 또한 11월23일의 같은 날 강연에서 ‘합병의 기본원칙’으로 "은행전략에 맞아야 하고 주주 가치가 상승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좋다. 일리있는 얘기다. 그러나 또 하나의 중요한 원칙을 망각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바로 오늘의 주택은행이 있기까지 헌신했던 종업원들에 대한 신의말이다. "세계화시대에 이 무슨 한가한 신의타령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한 국가의 경제가 안정성을 갖고 지속적인 발전을 구가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기업윤리라는 얘기다. 이윤극대화의 체제만을 좇아 우량은행을 창출한 최고의 공신들이었던 종업원들을 길거리로 내몰아도 된다는 위험한 발상과 김정태 행장은 결별해야 한다. 김 행장은 또한 "합병이 원활하게 이뤄지기 위해선 일정 기간 경영진을 퇴진시키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견해도 같은 자리에서 피력했다. 맞는 얘기다. 경영진도 고용안정이 필요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기업의 존재목적이 합병을 위한 것이 아니고 지속적인 경영에 있는 것이니만큼 종업원의 고용안정이 경영진의 고용안정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 김정태 행장에게 다시 한번 촉구한다. 세간에 억측이 분분히 나돌고 있는 것을 언제까지 좌시할 것인가? 뉴욕증시 상장 이후 우리 은행에 쏟아지는 관심이 얼마나 높은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행장이 이처럼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 책임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 그 동안 김 행장이 은행의 발전을 위해 여러 은행들과 합병을 시도해 왔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당초 염두에 두었던 은행들과의 합병이 사실상 어려워졌으며, 남아있는 우량은행이래 봐야 국민은행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국민은행과의 합병설이 더욱 신빙성있게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김정태 행장은 언론보도를 의식한 강연류의 "인기성 선문답"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우리 은행의 진로에 관한 분명한 비젼부터 임직원들에게 밝히는 것이 순서다. 노조는 인내보다 행동이 빠른 집단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행장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2000년12월11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주택은행지부 위원장 김 철 홍 ◇주택은행 노조 8일자 성명서 <성명서> 김정태 행장은 각종 합병설에 관한 분명한 입장을 밝혀라! 전국금융산업노조주택은행지부(문의 : 02-769-8166, FAX : 02-769-8170) 김정태 행장은 각종 합병설에 관한 분명한 입장을 밝혀라 ! -정부, 언론은 무책임한 말의 잔치를 그만 둬야 최근 우리 은행과 국민은행이 합병할 것이라는 보도가 물의를 빚고 있다. 우리 지부는 이와 같은 정부와 언론의 여론몰이 작태로 인해 시장의 혼란과 임직원의 불안감이 더욱 심화되는 현실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지부는 "국민은행과의 연내 합병설"을 비롯한 기왕의 여러 합병설과 관련, 은행측의 명확한 입장 발표를 촉구하는 한편, 합병을 비롯한 은행 경영현안들은 일방적 결정의 대상이 아니라 노동조합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어나가야 할 사안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바이다. 괴소문 떠도는 데 경영진은 뭐하고 있나? 7일과 8일 일부 언론에 따르면, 금감위 고위 관계자와 주택, 국민 두 은행 수뇌부가 소위 "원칙적 방향"에 합의한 상태에서 논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은행의 공식적인 코멘트가 나오고 있지 않은 가운데 언론은 "자산기준(99년말)으로 세계 78위 은행 탄생", "중복점포 정리와 대규모 인원감축에 대해 노조를 설득하는 것이 가장 큰 난제가 될 것", "합병은 지주회사방식의 느슨한 방법으로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식의 성급한 관측들을 쏟아 내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상황이 이러함에도 일체의 입장발표를 않고 있는 은행 경영진의 태도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합병하라는 정부의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경영진의 고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책임있는 자세라고는 보기 어렵다. 임직원은 물론 고객 및 주주, 국가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우리 은행의 합병을 놓고 세간의 무책임한 "말의 성찬"을 제어할 책임은 일차적으로 경영진에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만일 이에 대한 은행측의 침묵이 계속될 경우, 언론보도를 사실로 인정하는 것으로 간주, 노조 역시 "적절한 대응"에 나설 것이라는 점을 경고한다. 정부는 구조조정을 하자는 건가, 군기를 잡자는 건가? 또한 우리는 정부의 "조폭식 구조조정"에 대해서도 강력히 항의하는 바이다. 내년 2월까지 4대부문 개혁을 완료한다고 밝힌 이후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은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렸다. 시한에 쫓기고 있는 정부는 국가경제의 명운을 좌우하게 될 금융구조조정을 충분한 검토도 없이 "밀린 방학숙제하듯" 밀어부치고 있다. 금융지주회사와 관련, "한빛은행 주도냐, 아니냐", "공적자금투입대상 한정이냐, 아니냐" 등을 놓고 이미 몇 번의 반전을 거듭했으며, 합병정책 역시 "부실은행간 합병", "우량 대 부실합병", "우량 대 지방은행간 합병"에서 "우량은행간 합병"으로 정신없이 변모되어 왔다. 이같은 혼선은 연말이 다가오면서 더욱 심해져 하루가 멀다 하고 우량은행의 합병 파트너가 바뀌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은 분명한 정책실패이다. 그럼에도 "연내 슈퍼뱅크 탄생"운운하며 금융기관을 압박하는 작태가 "조폭식 구조조정"이 아니고 무엇인가! 특히, 정부는 구조조정과 관련, 심각한 "이중성"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는 마땅히 존속되어야 할 공기업들마저 민영화로 떠밀고 있다. 그런데 정작 은행들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보면 정부산하기관쯤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즉, 시장의 자율을 무시한 채 정부의 강압으로 진행되고 있는 작금의 금융구조조정이 과연 정부가 부르짖는 진정한 개혁의 상과 일치하는지 의문스럽다는 얘기다. 지금과 같은 정부 주도의 금융구조조정은 금융산업의 자율성 훼손과 퇴보만을 불러올 뿐이다. 경영진은 정부의 압력에 굴하지 말라 다시 한번 김정태 행장에게 촉구한다. 우량은행의 합병이 최대 관심사가 되고 있는 지금, 행장이 갖고 있는 합병에 관한 구상과 입장을 밝혀야 한다. 그래서 합병이 필요하다면 왜 그런지, 무엇을 얻을 수 있으며, 합병과 관련해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원칙들은 무엇인지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그 동안 우리 은행은 정부의 집요한 합병요구에 대해 나름대로 소신껏 대응해 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난국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라도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한다. 그럼에도 합병과 관련, 은행이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이거나 은행 독단으로 합병을 공식화한다면 노조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서 투쟁할 것임을 분명히 밝히는 바이다. 이로 인한 모든 책임은 당연히 정부와 은행의 몫이다. 2000년 12월 8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주택은행지부 위원장 김 철 홍
2000.12.11 I 허귀식 기자
  • 美 자동차 빅3 구매책임자 인터뷰-①포드 카를로스 마조린
  • 현재 전세계 완성차 시장은 크게 미국의 빅 3인 포드, 제너럴모터스, 다임러크라이슬러와 도요타, 폴크스바겐 다섯 업체의 대결로 요약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미국의 빅 3는 생산규모면에서 1, 2, 3위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 특유의 개방적인 사업 방식으로 업체간의 정보공유, 프로젝트 협력이 잘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최근에는 사상최대 공동 전자상거래망인 코비신트(Covisint) 발족으로 세계 자동차 산업 전체에 더욱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국 완성차업계가 새로이 경이로운 처방전으로 여기게 된 전자상거래를 구매부서가 책임지게 되면서 각 완성차 업체들은 자사의 구매 책임자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상태이다. 현재 미국 빅 3의 글로벌 구매 총책임자들은 존경과 비난을 한 몸에 받으면서 자사와 자동차산업 전반에 걸쳐 권력을 더해가고 있다. 구매 책임자는 부품업체들을 상품개발에 가까이 끌어들이면서 한편으로는 가격 삭감이라는 철권을 가혹하게 휘두르고 있다. 구매 총책임자는 이들 한 부품업체의 번영과 생존을 결정할 수 있는 절대권력이 되어버린 상태이다. 현재 미국 자동차 업계에서는 문제가 있으면 구매 책임자를 만나라는 말이 있을 만큼 구매부서에 대한 중요성이 전례없이 높아지고 있으므로 이들의 전략을 분석하는 것이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디트로이트무역관은 점차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는 미국 빅 3의 글로벌 구매 총책임자 3명과의 연속 인터뷰를 통해 이들 빅 3의 구매정책 뿐 아닌 미국 자동차 산업에 대한 총체적 비전을 점검해 보는 기회를 가졌다. KOTRA 디트로이트 무역관이 현지에서 가진 빅3 구매책임자 인터뷰를 차례로 전제한다. ①포드 구매 총책임자 카를로스 마조린(Carlos Mazzorine) -글로벌 구매 총책임자로서 지난 1월 임기를 시작했는데 새 직책에 대한 개인적 소감은. 승진인가. ▲승진은 아니다. 나의 이력을 좀 밝히겠다. 1년여전에 나는 포드자동차 CEO인 Jac Nasser를 만나 우리 회사를 언제쯤 소비재 기업(Consumer Company)으로 전환시킬 것인지에 대해 상의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소비재 기업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재발견하는데 진전을 보았다. 당시 우리는 4개 브랜드를 가지고 있었는데 나는 멕시코 지역 전체를 담당하고 있었고 글로벌 구매를 총괄하고 있었다. 그리고 NAFTA로 인해 캐나다, 미국, 멕시코가 협력하게 되었다. 내가 남미 전체를 맡게 되면서 직책에 변화가 생겼다. 나는 이전과 같은 직책과 책임을 가지고 있지만 Jac Nasser에게 직접 보고하게 된 것이다. - Big 3의 구매 총책임자들은 회사에서 대단한 인정을 받고 있는 것같은데 왜 그런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완성차 업체가 자동차 판매로 벌어들인 1달러에서 60센트는 원자재 값으로 나간다. 포드는 1,600억달러의 매출액을 가진 회사인데 연간 910억달러 어치의 구매를 하고 있다. 구매는 포드와 부품업체 사이에 또 파트너와 기술사이에서 우리에게 힘을 주는 요소라 생각한다. 구매의 매력은 구매가 더 이상 독립된 영역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늘날 구매는 엔지니어링의 영역이며 제조영역이고 전문영역이다. 이들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으며 우리는 적합한 파트너와 적합한 기술, 적합한 가격 및 비용, 제조를 배합시킴으로써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있다. 만약 부품업체들이 모두 Lean(대량 생산방식 시대 이후 나타난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개발 방식. 90년 당시 강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던 일본 자동차 산업의 생산방식을 미국 MIT공과대학의 자동차연구 그룹이 이념적으로 명명)하게 되고 경계가 없는 방향으로 운영된다면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린 생산방식 습득과 대담한 경영전략 추진에 의해 미국업체의 경쟁력이 강화됐다. 이후 기존의 "좋은 것을 값싸고 대량으로"에서 "새롭고 좋은 것을 적기에 신속하게 적량을" 만들어 고객에게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게 된다. - 포드내에서 구매와 관련해 다루고 싶은 특정한 분야는 무엇인가 ▲지금 910억달러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성장을 한 구매는 우리가 부품업체와 거래하는 방식을 바꾸었다. 작년에는 상위 100개 부품업체로부터 47%의 구매를 했으나 현재는 같은 수의 업체로부터 80%의 구매를 하고 있다. 상위 50%의 구매가 이루어지는 14개 업체는 정말로 다국적이며 유럽, 미국, 아시아 등 전세계에 걸쳐 사업체를 가지고 있다. 우리 산업은 부품업체 산업이라 할 수 있는데 훨씬 더 복잡해졌다. 우리가 상호작용하는 방법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우리는 포드와 부품업체들 사이에서 가상의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 확대 기업, 확대 가치사슬(Extended Value Chain)에 대해 많은 논의를 해오고 있다. 실제로 총체적인 통합은 현실이다. 우리가 경영하고 서로 거래하는 방법에서 가장 큰 변화를 목격하고 있다. 심지어 3년전만 해도 현재와는 완전히 틀렸다. 현재 포드의 상위 10대 부품 공급업체들은 실제로 포드 자동차부품 하나하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는 소비재 기업이 느끼고 행동하는 것을 고스란히 해내려고 한다. 우리는 이것을 부품업체들과 함께 잘해내고 있는 중이다. 과거 같았으면 우리는 결코 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연수시설을 부품업체들에게 공개하고 연수과정을 디지털화해서 연수를 원하는 어떤 장소에서든 할 수 있게 했다. 우리에게는 Lean Resource Center이라는 교육시설이 있는데 부품업체의 고위 간부까지 연수받을 수 있는 곳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그 사람은 우리의 계획과 적합한 행동방식에 일치하게 된다. 우리는 이제까지 수천명을 교육시켜 왔다. 또 Quality Center에서는 부품업체들이 품질향상 방법을 익힐 뿐 아니라 포드 딜러와도 함께 일하고 서비스 전화 응대를 하는 방법까지도 배우게 된다. 우리는 계속해서 교육 내용을 확장하고 있다. 현재 Value benchmarking center에서는 완전히 상품개발과 구매 내용으로 통합되었다. 처음에 말했듯이 내부적 시각에서 볼 때 아주 큰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구매, 제조, 상품개발과 판매 마케팅 모든 분야에 걸쳐서 모든 영역 구분이 모호해지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은 어떤 한 구성요소만으로 작동하는 산업이 아닌 모든 산업이 유기체처럼 어우러져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공통된 이해가 팽배하게 되었다. 나는 이것을 가장 주요한 동향이라고 말하겠다. - 다국적 15개 부품업체들이 포드가 구매하는 모든 것의 50%를 차지한다는 말인가. ▲비스티욘과 델파이 예를 들어보자. 그들은 거대업체들이다. 시트류 업체인 리어, JCI, 마그나도 마찬가지로 거대 부품업체이다. 에어백을 예로 든다면 Autoliv, TRW, Takata로 답이 정해져 있다. 자동차 모든 부품들, 예를 들면 인스트루먼트 패널을 구매하고자 할 때 그렇게 많은 부품업체가 있는 게 아니다. 인테리어업체도 그렇고 브레이크도 페인트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완성차 산업 자체를 예를 들자면 연간 700만대를 생산하는 GM과 포드 두 개 업체가 있다. 예전에 거대 부품업체들이 너무나 힘이 강해지는 것이 아니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이것은 상호의존 관계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부품업체들이 자동차 700만대를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완성차 업체와 부품업체는 함께 생존해야 한다. 서로 선택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들의 생존은 극적일 만큼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데 달려 있다. 부품업체들에게는 더 이상 포드가 이런 것을 원할 지 GM이 저런 것을 원할 지 고민거리가 아니다. 이제는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느냐에 달렸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쟁이다. 현재 시장에는 선택이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업체들이 제공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내놓아야 한다. 만약 우리가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내놓지 못하거나 아주 완벽한 정확성으로 이것을 수행하지 못하면 생존하지 못할 것이다. -지난 몇년간 글로벌 소싱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생산해낸 제품의 예를 들어줄 수 있나. ▲우리가 올해 출범시킨 포커스와 링컨LS은 글로벌 소싱을 통해 생산한 제품이다. 나는 전세계 어디서든 구매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작은 품목을 명확하게 구분해 놓는 작업을 하고 싶다. 어떤 품목이든지 일본에서 구매해서 전세계로 운반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경우 운송비용이 높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 이슈이다. 그래서 포드의 구매중 50%를 차지하는 15개 부품업체들이 전세계에 걸쳐 있는 것이다. 이들 부품업체들을 통해 포드는 해외 구매를 수행하면서 생산은 각 지역에서 하고 이 자리에서 모니터링하면서 품목을 전세계적으로 관리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규모의 경제를 얻을 수 있다. 특히 상품개발에서 규모의 경제의 이득을 많이 본다. 규모의 경제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엔지니어링을 단 한번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매로 우리는 엔지니어링을 여러 번 할 필요가 없다. 가치사슬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로 규모의 경제가 판가름나는 것이다. -포드는 소비재 기업이 되고자 하는데 글로벌 소싱을 하면서 "10∼15일 딜리버리 자동차"는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 또 소비자들이 10일 딜리버리가 길다고 느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매우 좋은 질문이다. 전에도 말했듯이 전세계로 이리저리 운송할 수 있는 부품은 정말 극소수이다. 값비싼 품목들같은 경우 물론 비행기에 실을 수도 있다. 또 전자부품들, 시계와 같이 작은 품목들은 하루 밤만에 비행기로 실어 나를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결국 배로 실어 보내는 것이 더 싸다. GM이나 포드의 예로 보아도 어떤 완성차 업체든지 부품업체들을 공장 가까이 두고 싶어한다. 우리에게는 In-Line Vehicle Sequence라는 게 있기 때문에 부품업체들을 매우 가까이 두고서 In-Line에서, 또 순서(Sequence)에 맞추어서 부품을 사용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생산되는 차를 생산하기 위해 영국에서 부품을 구매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하면 완전히 엉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소비자들이 갖지 않은 것은 시간이다. 사람들은 시간의 중압감아래 살고 있다. 모든 사람이 시간에 대한 압박을 느낀다. 10일이 길다고 했나? 그렇다. 10일은 너무 길다. 고객은 24시간내에 구입한 물건을 갖고 싶어한다. 소비자들은 기다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Jac Nasser가 포드를 소비재 기업으로 변모시킬 것이라 말했을 때 그것은 머나먼 개념이었고 모든 사람이 이해했을 것이라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나 좋은 서비스와 신뢰성을 원한다. 그런데 자동차사가 처음으로 그러한 좋은 서비스와 신뢰를 제공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나는 거대한 변화를 목격하고 있다. 만약 고객들이 5일 딜리버리 자동차를 원한다면 그것이 부품업체들에게는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만약 5일이라는 시간 범위내에서 모든 작업을 수행하자면 툴을 바꾸는 것, 제조 유연성, 툴링 제작 모두에서 리드타임을 어마어마하게 줄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모든 것들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온라인 구매에 대한 포드의 비전은. ▲작년에 포드가 Auto Exchange를 만들기 전에도 우리는 제한된 범위내에서 온라인 견적을 시행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잭의 리더십 아래 우리는 오라클과 함께 AutoExchange를 출범시키게 된 것이다. 오라클이 가장 강력한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과 일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것이 포드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라 생각했다. 사실 AutoExchange는 포드만을 위한 것이었는데 우리는 포드, GM, 다임러크라이슬러, 르노·닛산에 의해 공동 소유된 코비신트(Covisint)를 발족하게 되었다. 연방무역위원회(FTC)가 코비신트에 허가를 내주는 동안 코비신트는 AutoExchange라는 이름하에 운영되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얘기하고 있는 온라인 구매에 대한 비전은 사실 코비신트가 아니라 현재 AutoExchange이름하에서 운영하고 있는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코비신트에 허가가 나면 AutoExchange에서 쌓인 노하우를 모두 코비신트에 적용할 것이다. -기존에 포드에서 행해지던 것과 코비신트에서 행해지는 구매에는 큰 차이가 있는가. ▲자동차 기름이 필요하면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넣고 신용카드를 집어넣은 다음 영수증을 받아 차에 타고 주유소를 떠난다(미국 주유소는 셀프서비스임). 또 돈이 필요할 때면 ATM에 가서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당신은 주유소와 은행을 위해서 이러한 모든 작업을 하고 있다. 우리도 아직까지는 그러한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코비신트를 통해 부품업체들이 우리의 재고를 확인할 수 있고 언제 부품을 공급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라. 나는 손 하나 까딱할 필요가 없어지고 부품업체들은 모든 서류 작업에서 해방될 것이다. -모든 부품업체가 동시에 포드의 요구 사항을 볼 수 있다는 말인가. ▲맞다. 동시에 볼 수 있다. 그 영향은 굉장할 것이다. 만약 그러한 영향이 품질에 미친다면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 만약에 무언가 변경될 때마다 모든 부품업체들이 알 수 있다면 어떨까. 확실히 우리가 사업하는 방식을 바꾸어버릴 것이다. 서류작업 비용만 해도 엄청나게 줄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엔지니어에 변화가 있을 때마다 부품업체들 모두에게 투명하게 전달된다면 제조공정을 얼마나 신속화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 보라. 2∼3년 이후에 다행이도 내가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그간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전자상거래가 포드 구매 전체를 책임진다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Non-Production 품목만을 담당한다는 것인가. ▲내가 말한 것은 Production 품목(자동차부품)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무엇을 코비신트로부터 구매할 것인지, 우리가 무엇을 직접할 것인지, 무엇이 상호 의존적이어야 하는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코비신트를 포드 서플라이어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코비신트에는 2가지 면이 있는데 하나는 Non-Production 부품을 공동구매해서 나누는 것이고, 또다른 하나는 공동구매가 아닌 포드에게만 필요한 Production Part를 구매하기 위해서 코비신트를 전자 네트워크로 사용하는 것일 것이다. 만약 포드가 에어백을 구매한다면 거래가 전자상에서 이루어질텐데 가입자 모두 그걸 동시에 알 수 있나. ▲Harold Kutner(GM의 전자상거래 총책임자)가 말한대로 우리는 모든 것에 동의한 상태가 아니다. 우리는 FTC의 독점금지법 때문에 할 수도 없다. 우리는 시장의 90%까지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 매점 말이다 - 사실상 20% 이상은 움직일 수 없다. 그것이 한계선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코비신트에서 Non-Production 품목을 먼저 다룰 것이고 Production 품목은 그 다음 단계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포드측이 부품업체들에게 코비신트가 가격삭감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고 안심시키고자 한다는 걸 들었는데 좀 더 설명해 줄 수 있는지. ▲만약 코비신트가 B2B와 동의어이고 비용을 절감시키며 따라서 가격을 떨어뜨리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래야만 한다"고 답하겠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왜 우리가 이걸 하고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가 독점이고 비이성적이며 비열하고 독재자인가 하면 아니다. 우리는 코비신트를 그런 식으로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원한다고 해도 그렇게 할 수 없다. 코비신트 이사회에는 부품업체들도 있다. 자문위원에도 역시 부품업체들이 있다. 우리는 코비신트를 위해 부품업체들과 연합했다. 시간이 지나면 그러한 불안은 없어질 것이다. -폴크스바겐이 코비신트에 가입하지 않고 유럽에서 독자적인 표준을 구축하고자 한다. 내가 보기에 코비신트는 북미에서 심지어는 국제적으로도 표준이 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에 폴크스바겐이 유럽에서 독자적인 표준을 만드는데 성공한다면 아시아에서 유럽에서 북미에서 등 여러가지 익스체인지 표준이 나오게 될 것인가. ▲코비신트는 현재 유럽 사무소를 여는 작업에 있다. 종국에는 익스체인지의 성공여부는 그것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특성을 결정할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코비신트 상위 4개 업체의 영향력을 고려해 보라. 물론 그들 모두 다국적업체들이다. 그들이 코비신트에서 잘 해내면 모두들 따라오게 되어 있다. -비스티욘의 독립이 포드 구매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는가. ▲포드는 비스티욘을 외부 일반 부품업체와 똑같이 대하고 있다. 비스티욘은 포드의 제1위 부품업체로서 연간 170억달러의 판매액을 보이고 있다. 비스티욘은 2년전부터 세일즈 사무실과 세일즈 직원을 두기 시작했고 거래를 위해 우리와 협상을 벌인다. 비스티욘이 포드와 완전히 분리되면 비스티욘은 포드 외부의 한 부품업체가 되는 것이다. 비스티욘의 독립을 결정하는 순간부터 지속적으로 준비해왔기 때문에 포드로서는 비스티욘이 독립된다고 해도 별로 변하는 것이 없다. 나는 지난 3년간 비스티욘으로부터 구매 주문을 하면서 여타 다른 부품업체와 하듯이 가격협상을 벌이고 있다. 이제는 서로 가는 길이 아주 명확해졌다. -비용 삭감에 대해 묻고 싶다. 지난해 우리가 인터뷰를 했을 때 포드가 얼마만한 비용 삭감을 요구하고 있는 지 얘기했다. 그 때 에어백, ABS와 같은 첨단부품에서 비용 삭감의 여지가 있다고 언급하면서 14%까지 비용삭감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번에도 첨단 부품이 비용삭감에 더 민감한 부분이 될 것으로 보는가. ▲나는 비용에 대한 압력이 언젠가는 사라질까라는 물음을 던지고 싶다.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어떠한 사업에서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소비재 기업이 되고자 한다면 소비재 상품을 보라. 그들의 가격은 계속 떨어진다. 가격에 대한 압력이 계속될 것이라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하겠다. 왜냐하면 시장이 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계속되는 부품업체들의 합병이 이를 가능케 할 것이다. 지금 포드의 Supplier Base를 보고 모든 업체가 Lean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답은 "아니다"이다. 하지만 가격에 대한 압력이 결국 그들을 Lean하게 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소비자라면 비용이 얼마인지에 대해서는 결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소비자의 관심사항은 가격인 것이다. 그리고 가격들을 비교할 것이다. 가격은 소비자가 기꺼이 지불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격이고 시장이 기꺼이 지불하고자 하는 가격이 결정된 이후에야 비용구조를 가격에 맞추는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다. (KOTRA 디트로이트무역관)
2000.09.02 I 이훈 기자
  • 임동원 대통령특보 오찬답사(전문)
  • 김정일 국방위원장님! 우리는 2박3일간의 평양 방문 일정을 마무리하면서 가슴 벅찬 마음을 누를 길이 없습니다. 대표단과 7천만 민족이 기다려 왔던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위원장이 처음 만나 활짝 웃으시는 가운데 손잡는 모습이 전파를 타고 온누리에 펴졌습니다. 그 누가 감격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7천만 민족의 염원에 평양도 울고 서울도 울었습니다. 기쁨의 눈물입니다. 공항에서 군의장대를 김대통령이 사열한 것은 김 대통령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남북간 화합과 단합, 교류와 협력에 대한 김위원장의 확고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4시간이 넘는 마라톤 회담을 통해 우리는 7천만 민족과 전세계에 민족자존을 알리는 공동선언을 내놓았습니다.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의 자주적 두 지도자의 의지가 확고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모두가 장시간 피로함도 모르고 여기에 참여한 데 대해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대화를 통해 다시는 이 땅에 민족끼리 싸우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55년 동안의 민족 대립과 갈등을 씻고 화해와 협력이 필요하다는 김위원장의 말씀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전적으로 동감을 표시합니다. 김대통령과 김위원장의 뜻을 받들어 민족진로를 향한 일에 전력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두 정상들이 인간적 이해로 신뢰감을 두텁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최고 지도자간 인간적 신뢰를 바탕으로 남북관계를 힘차게 열어갑시다. 평양에서의 열렬한 환영과 환대와 함께 오찬을 베풀어 주신데 대해 감사합니다. 김위원장이 적절한 시기에 꼭 서울에 오셔서 우리의 답례를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김 대통령 내외의 건강과 행복, 김위원장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축배를 제의합니다.
2000.06.15 I 이정훈 기자
  • SOC 비료 등 남북경협 수혜주(종합)
  • 남북정상회담이 6월에 열릴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남북경제협력 관련주와 북한특수규모 등에 다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10일 증시에서도 관련주들이 일제히 강세를 보이고 잇다. 그동안 증시에서는 북한관련 재료가 나올 때면 건설주와 농약, 비료관련주들이 상승세를 보이며 테마군을 형성했다. 특히 대북사업이 많은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등이 강세를 보였다.비료생산업체인 동부한농 조비 삼성정밀화학 이화산업 경기화학, 농약생산업체인 경농 등이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현재 남북경협과 관련있는 상장사는 대우 고합물산 한일합섬 국제상사 녹십자 동양시멘트 태창 대우전자 한국전력 한화 LG전자 한국통신 삼성전자 코오롱 신원 대상물류 삼천리자전거 외환은행 에이스침대 롯데제과 현대상선 현대건설 금강개발 현대아산 한국전자산업 한국통신 온세통신 한국담배인삼공사 등으로 알려져 있다. *표 참조 분야별로는 <>농어업부문에서 남해화학 동부한농화학 삼성정밀화학 한국카프로락탐 조비 경기화학 녹십자 동방아그로 경농 <>SOC부문에서 현대건설 삼성물산 코오롱건설 현대산업개발 현대상선 동양시멘트 LG상사 국제종건 금강개발 삼부토건 대림산업 삼환 고려개발 등이 주목된다. 또 <>소비재부문에서 LG전자, 삼성전자 대우 고합 한일합섬 국제상사 코오롱 신원 한화 롯데제과 녹십자 <>에너지부문에서 한국전력와 가스업체 <>통신부문에서 한국통신 등이 수혜주로 거론되고 있다. 이밖에 대주주가 북한 출신 기업가인 샘표식품도 관심주다. 비상장 회사로는 광고관련회사인 아자커뮤니케이션과 광인, 수산물 관련 사업을 진행중인 미흥식품과 태영수산 및 파라우수산, 부동산 개발 업체인 코리아랜드, 버섯재배업의 백산실업 등이 있다. 의류 임가공 업체인 서전어패럴, 모니터 생산업체인 IMRI,음향기기 제조업체인 극동음향, 카세트 테이프 생산업체인 성남전자등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기업들이다. 한편 남북관계가 개선돼 북한투자가 본격화되면 북한특수규모는 향후10년간 30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와있다. 대우증권이 지난 3일 낸 자료에 따르면 대(對)북한 투자수요는 2010년까지 총2508억달러(3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연간 북한투자수요는 27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대우증권은 북한지역에 대한 정부의 사회간접자본(SOC)투자는 2010년까지 1143억달러(137조원,환율은 달러당 1200원)로 연평균 12조 5000억원이 투자돼야 한다는 자체분석자료와 민간투자부문을 감안해 이같이 추정했다. 대우증권은 그러나 "이러한 추계는 통일을 가정한 것이기 때문에 과장된 수치임에는 틀림없으며 따라서 우리가 상정할 수 있는 최대규모"라고 강조했다. 대우증권은 예상할 수 있는 시범사업으로 서해안공단입지로 신의주를 지정하고 이를 활용하기위해 신의주화력발전소,경의선(서울-신의주)간 경의선 등을 건설하거나 복원하는 등 다양한 사업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우증권은 또 북한의 SOC사업이 본격 추진될 경우 세계은행(IBRD)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제기구의 참여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대우증권은 그러나 북한의 내부개혁이 병행되지 않을 경우 대북투자기업(특히 중소기업)의 사업성은 낮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총선후 국민과 야당에 설명하고 본격적인 남북정상회담과 당국자회담을 추진하겠다며 선거후 중동특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대규모 북한특수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이어 "특히 중소기업들에는 상상할 수 없는 규모로 투자의 길이 열릴 것"이라며 "이를 위해 현재 북한과의 비공식접촉이 여러 경로를 통해 진행중"이라고 덧붙였다. *표 [남북경협관련주] 대우 남포공단 셔츠 가방 재킷 등 고합물산 의류 봉제 직물 등 4개사업 한일합섬 스웨터 방적 등 4개사업 국제상사 신발 녹십자 혈전치료제 동양시멘트 시멘트사일로건설 태창 금강산샘물개발 대우전자 TV 등 가전생산 한국전력 경수로건설지원사업 한화 장판제조 LG전자 전자제품조립 한국통신 경수로건설 통신지원사업,금강산개발 삼성전자 전전자교환기(TDX) 통신센터 추진 코오롱 섬유가공 신원 의류봉제사업 대상물류 나진선봉 물류기지 삼천리자전 자전거생산 외환은행 경수로사업지구내 은행점포 에이스침대 침대와 가구류 제조 롯데제과 쵸코파이생산 등 현대상선 금강산개발 현대건설 금강산개발 금강개발 금강산개발 현대아산 금강산개발 온세통신 통신지원 한국전자산 통신지원사업 담배인삼공 "한마음"담배합작사업
2000.04.10 I 허귀식 기자
  • SOC,비료,섬유 등 남북경협 수혜주
  • 남북관계와 관련한 중대발표가 10일 있을 것이라는 보도로 남북경제협력 관련주와 북한특수규모 등에 다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동안 증시에서는 북한관련 재료가 나올 때면 건설주와 농약, 비료관련주들이 상승세를 보이며 테마군을 형성했다. 특히 대북사업이 많은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등이 강세를 보였다. 비료생산업체인 동부한농 조비 삼성정밀화학 이화산업 경기화학, 농약생산업체인 경농 등이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현재 남북경협과 관련있는 상장사는 대우 고합물산 한일합섬 국제상사 녹십자 동양시멘트 태창 대우전자 한국전력 한화 LG전자 한국통신 삼성전자 코오롱 신원 대상물류 삼천리자전거 외환은행 에이스침대 롯데제과 현대상선 현대건설 금강개발 현대아산 한국전자산업 한국통신 온세통신 한국담배인삼공사 등으로 알려져 있다. *표 참조 이밖에 대주주가 북한 출신 기업가인 샘표식품도 관심주다. 비상장 회사로는 광고관련회사인 아자커뮤니케이션과 광인, 수산물 관련 사업을 진행중인 미흥식품과 태영수산 및 파라우수산, 부동산 개발 업체인 코리아랜드, 버섯재배업의 백산실업 등이 있다. 의류 임가공 업체인 서전어패럴, 모니터 생산업체인 IMRI,음향기기 제조업체인 극동음향, 카세트 테이프 생산업체인 성남전자등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기업들이다. 한편 남북관계가 개선돼 북한투자가 본격화되면 북한특수규모는 향후10년간 30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와있다. 대우증권이 지난 3일 낸 자료에 따르면 대(對)북한 투자수요는 2010년까지 총2508억달러(3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연간 북한투자수요는 27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대우증권은 북한지역에 대한 정부의 사회간접자본(SOC)투자는 2010년까지 1143억달러(137조원,환율은 달러당 1200원)로 연평균 12조 5000억원이 투자돼야 한다는 자체분석자료와 민간투자부문을 감안해 이같이 추정했다. 대우증권은 그러나 "이러한 추계는 통일을 가정한 것이기 때문에 과장된 수치임에는 틀림없으며 따라서 우리가 상정할 수 있는 최대규모"라고 강조했다. 대우증권은 예상할 수 있는 시범사업으로 서해안공단입지로 신의주를 지정하고 이를 활용하기위해 신의주화력발전소,경의선(서울-신의주)간 경의선 등을 건설하거나 복원하는 등 다양한 사업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우증권은 또 북한의 SOC사업이 본격 추진될 경우 세계은행(IBRD)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제기구의 참여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대우증권은 그러나 북한의 내부개혁이 병행되지 않을 경우 대북투자기업(특히 중소기업)의 사업성은 낮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총선후 국민과 야당에 설명하고 본격적인 남북정상회담과 당국자회담을 추진하겠다며 선거후 중동특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대규모 북한특수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이어 "특히 중소기업들에는 상상할 수 없는 규모로 투자의 길이 열릴 것"이라며 "이를 위해 현재 북한과의 비공식접촉이 여러 경로를 통해 진행중"이라고 덧붙였다. *표 [남북경협관련주] 대우 남포공단 셔츠 가방 재킷 등 고합물산 의류 봉제 직물 등 4개사업 한일합섬 스웨터 방적 등 4개사업 국제상사 신발 녹십자 혈전치료제 동양시멘트 시멘트사일로건설 태창 금강산샘물개발 대우전자 TV 등 가전생산 한국전력 경수로건설지원사업 한화 장판제조 LG전자 전자제품조립 한국통신 경수로건설 통신지원사업,금강산개발 삼성전자 전전자교환기(TDX) 통신센터 추진 코오롱 섬유가공 신원 의류봉제사업 대상물류 나진선봉 물류기지 삼천리자전 자전거생산 외환은행 경수로사업지구내 은행점포 에이스침대 침대와 가구류 제조 롯데제과 쵸코파이생산 등 현대상선 금강산개발 현대건설 금강산개발 금강개발 금강산개발 현대아산 금강산개발 온세통신 통신지원 한국전자산 통신지원사업 담배인삼공 "한마음"담배합작사업
2000.04.10 I 허귀식 기자
  • 북한특수 향후10년간 300조-대우증권 추정
  • 북한특수규모가 향후10년간 30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대우증권은 3일 대(對)북한 투자수요는 2010년까지 총2508억달러(300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연간 북한투자수요는 27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대우증권은 북한지역에 대한 정부의 사회간접자본(SOC)투자는 2010년까지 1143억달러(137조원,환율은 달러당 1200원)로 연평균 12조 5000억원이 투자돼야 한다는 자체분석자료와 민간투자부문을 감안해 이같이 추정했다. 대우증권은 그러나 "이러한 추계는 통일을 가정한 것이기 때문에 과장된 수치임에는 틀림없으며 따라서 우리가 상정할 수 있는 최대규모"라고 강조했다. 대우증권은 예상할 수 있는 시범사업으로 서해안공단입지로 신의주를 지정하고 이를 활용하기위해 신의주화력발전소,경의선(서울-신의주)간 경의선 등을 건설하거나 복원하는 등 다양한 사업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우증권은 또 북한의 SOC사업이 본격 추진될 경우 세계은행(IBRD)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제기구의 참여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대우증권은 그러나 북한의 내부개혁이 병행되지 않을 경우 대북투자기업(특히 중소기업)의 사업성은 낮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총선후 국민과 야당에 설명하고 본격적인 남북정상회담과 당국자회담을 추진하겠다며 선거후 중동특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대규모 북한특수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이어 "특히 중소기업들에는 상상할 수 없는 규모로 투자의 길이 열릴 것"이라며 "이를 위해 현재 북한과의 비공식접촉이 여러 경로를 통해 진행중"이라고 덧붙였다.(자료출처:대우증권 경제정보-김대통령의 "총선후 북한특수" 언급에 대해서-이코노미스트 이효근 (02)768-4128)
2000.04.03 I 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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