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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한반도'' 논란, 약일까 독일까
- [스포츠월드 제공] 강우석 감독의 15번째 영화 ‘한반도’(7월13일 개봉)의 일부 장면들과 내용이 상당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과연 이러한 장면들과 내용이 영화 흥행에 득이 될지, 아니면 독이 될지에 일반의 관심이 모아진다.27일 열린 언론시사회를 통해 첫 공개된 영화 ‘한반도’는 명성황후 시해와 고종의 독살, 등의 장면이 가감 없이 보여지고, 대통령이 내린 지시를 무시하고 국정원을 움직이는 등 독단적인 행동을 일삼는 국무총리나 그런 국무총리에게 반기를 들고 역시 경찰특공대로 하여금 정부종합청사에 시한폭탄을 부착, 폭파시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이에 대해 강우석 감독은 “명성황후 시해, 고종황제 독살 등 민감한 부분이 많아 사료도 많이 찾고 고증 작업도 여러 차례 거쳤다”며 “명성황후 시해 장면의 경우 흔히 궁녀로 변장해 도망을 치다 암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당시 러시아 공사의 본국 보고 문서에는 그런 부분은 전혀 없고, 옥호루 앞에서 당당하게 죽은 것으로 돼 있다. 극중 황후가 대례복을 입고 죽음을 준비하는 설정은 과장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더 세게’ 나갔어도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그는 “전·현직 정치인을 모티브로 삼았거나 특정인을 묘사한 일은 없다”고 못박으면서 “일본에 대한 영화적 시각은 다분히 개인적인 성향이 강하다. 일본은 계속 정치적 망언을 이어왔다. 우리는 약자이기이기 때문에 언제나 당할 수밖에 없었는데, 개인적으로 영화감독일 뿐이지만 그런 일본에 대해 제대로 한번 들이받고 싶었다”고 털어놨다.사회적 논란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다는 듯한 강우석의 이번 ‘들이받기 전략’이 과연 일반 관객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7월1일 스크린쿼터 축소 시행과 함께 한국 최고의 흥행감독으로 불리는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는 묘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씨네프리뷰]피가 나도록 긁어 버린 사회악●한반도영화 ‘한반도’(강우석 감독, KnJ엔터테인먼트 제작)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점은 명확해 보인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이고, 민족간 화합과 단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반도’는 100년 전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던 때와 일본이 남북한 통일을 저지하고 제2의 국권 침탈을 일삼으려는 지금의 한반도의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전제 하에 시작된다.최근 소설과 영화 등에서 유행하는 팩션(역사적 사실이나 실존인물의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새로운 사실을 재창조하는 문화 장르)의 한 장르인 ‘한반도’는 대한제국과 일본이 체결한 을사늑약이 무효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진짜 국새’에 대해 다루고 있다. 나라의 안위를 걱정한 고종이 대한제국의 국새를 봉인했다는 것.이 과정에서 민족의 자주를 지키고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세력과 지금의 한미일 정세가 변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세력의 긴장감이 고조된다. 영화는 이러한 상황을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대립으로 이끌어내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여러 고증을 통해 완성됐다는 명성황후 시해와 고종의 독살장면 등은 한국인의 애국심을 자극 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렇다고 해서 ‘한반도’가 반일, 극단적 국수주의를 부추긴다고 보긴 어렵다. 애국자는 존재 하지만 선과 악이 나누어지지는 않는다.사회의 부조리와 악에 대해 그동안 영화를 통해 간질간질했던 부위들을 시원하게 긁어 주던 강우석 감독이 이번에는 아예 옷을 모두 벗기고 피가 나도록 긁어 버린 느낌이다. 어쩌면 강감독은 이번 ‘한반도’로 21세기 새삼스레 영화의 사회적 기능이 무엇인지 증명해 보이려 했다. 할 소린 하겠다는 강감독의 객기다. 그러나 대중영화의 정점에 서 있는 강감독의 객기는 다소 충격이다. 심지어 일종의 프로파간다 영화가 아니냐는 일부 지적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의도야 어쨌든 ‘한반도’는 때에 따라서 뜨거운 태양과 시원한 선풍기가 될 수 있는 영화임엔 틀림없다.
- “이 XX들 총질을 해? 우린 서울로 간다”
- [조선일보 제공]‘실미도 사건’이 벌어졌던 1971년 8월 23일, 실미도 부대원들이 탈취한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의 생생한 경험담이 20일 공개됐다 ‘구사일생-실미도 난동자와의 동승기’라는 제목이 붙은 이 글을 쓴 사람은 인천시립박물관장을 지낸 인천 지역 화가 고(故) 우문국(禹文國, 1917~1998)씨. 우 화백은 사건 당시의 상황을 다룬 수기(원고지 40여매 분량)를 직접 써서 보관하고 있었다. 화백의 마지막 전시회가 열렸던 1998년, 아들 경원(45)씨가 아버지의 수필과 그림을 정리하다 이를 발견하고 워드로 정리해 보관하고 있었다. 이 문서가 이번에 공개된 것. 동승기는 경인일보가 ‘인천인물 100인’ 시리즈를 준비하며 우 화백의 유가족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밝혀지게 됐다. 우 화백이 직접 쓴 원고는 그 후 몇 번의 이사 끝에 사라져 지금은 찾을 길이 없다고 유족인 딸 미령(48·인천시 남동구 간석동)씨는 전했다. 미령씨는 이날 기자와 만나 “사건 당일, 아버지는 자식 4명을 불러 앉혀 놓고 당시의 이야기를 해 주셨다. 승객들도 타고 있었는데 먼저 총을 쐈던 진압군에 대해 굉장히 분노하셨다”며 “언젠간 밝혀야겠다고 생각해서 생전에 문서를 계속 갖고 계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작성 일자가 실미도 사건 직후인 71년 9월이라 적혀 있는 문서 서문에는 “이 글은 사건 당시 보도된 신문이나 국회의원 조사에서 송도교전 상황이 약간 차이가 나기에 적어두며, 발표해도 무방할 시기가 올 때까지 보류해 둘 것”이라고 씌어져 있다. 우 화백의 동승기는 영화 실미도를 통해 일반에 알려진 것과는 몇몇 대목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다음은 주요 내용. ◆버스 탈취 과정 우 화백은 사건 당일 12시40분경 송도 유원지 정문 앞에서 인천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다.당시 버스 승객은 자신과 20대 남녀 한 쌍이 전부였다고 한다. 다음 정류장에서 면식이 있는 동서기 외 한 명과 고등학생 한 명, 두서너 명의 남자가 올라탔다. 버스가 수인선 송도역을 출발하자 그곳서 약 100미터 앞 옆길에 일단의 군인들이 길 양쪽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차가 그들이 있는 곳에 이르자 그들은 길을 일(一)자로 막고 대위 계급장을 단 장교가 장총을 들어 차를 세웠다. 20명 내외로 보이는 그들이 다 차에 오르자 장교는 여차장 옆에서 “다 탔나? 너희들은 오른쪽에 자리 잡고 일반 손님은 왼쪽으로 보내” 하고 명령조로 말하여 모두들 자리를 바꾸게 했고 곧이어 누군가가 “운전사, 빨리 몰지 않으면 죽인다” 하고 위협을 했다. 실미도 부대원들이 송도에서 버스를 탈취한 후 바꿔타지 않고 곧바로 서울로 향하는 영화와는 달리, 동승기는 버스가 인천시내 석바위를 넘다가 타이어 펑크 때문에 멈춰서자 군인들이 모두 내려 뒤에 오던 버스를 탈취해 서울로 향했다고 썼다. 이때 우 화백은 군인들과 섞여서 버스에서 내려 오른쪽 언덕 위 인가에 숨어 들었다고 한다. ◆최초 사격자 최초 사격자는 영화에서처럼 실미도 부대원(설경구)이 아니라 진압군이었다고 한다. 동승기는 “부대원들이 탄 버스가 출발하는 순간 차창은 2㎝간격으로 구멍이 뚫리고 동시에 외부에서 연발의 총성이 들려왔다”고 기록했다. 그 순간, 자신이 타고 있던 버스에선 “엎드려!” “이 새끼들, 총질을 해?”라는 소리가 들리며 동시 교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최초 격전지 부대원들과 진압군간의 첫 총격전이 벌어진 곳도 영화처럼 바리케이드가 쳐진 평지가 아니라 아무런 저지선이 없는 내리막길이었다. 동승기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이들이 차에 오를 땐 외부의 그 어느 곳에도 군인들이 있는 것을 못 보았는데…(중략). 버스 오른쪽은 차가 서 있는 도로변에서 완만한 경사의 밭과 야산이 수인선 철로까지 연장되고 철로를 넘어서서는 경사가 빠른 산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외부에서는 내려다보며 사격을 할 수 있고 표적이 움직이지 않는 버스와 차내에 있는 인원은 독 안에 든 쥐나 다름없이 절대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었다.” ◆목적지 영화에는 부대원들이 처음부터 청와대로 향한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동승기에 의하면 정해진 목적지가 없었던 것 같다. 동승기는 “사격이 멎자 제멋대로들 지껄이기 시작했다. 장교인 듯한 사람이 승객들은 머리를 들지 말고 (좌석 바닥 쪽으로 머리를 숙인) 그 자세 그대로 있으라고 소리쳤다. 내 옆쪽에 있던 병사가 ‘프린스 호텔로 몰아라’고 외치자, 가운데 쪽에선 ‘사령부로 가자’고 맞섰다. 차가 학익동을 지날 때는 ‘한국은행으로 가자’ ‘서울로 차를 돌리라’고 외치자 이곳저곳서 ‘서울로 가자’하고 운전사를 위협했다”고 한다. 동승기는 또 그때 장교인 듯한 사람이 앞으로 나와 “ 다들 결의가 돼 있나?” 하니 모두 “네” 하고 대답했고 장교는 “우리는 서울로 간다. 앞으로 행동을 같이 해야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실미도 부대원들의 태도 영화에선 부대원들 모두가 비장한 결의를 보였던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인간적인 고뇌도 다소 드러났었다고 한다. 우 화백 앞에 있던 한 부대원은 풀죽은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나도 집에는 부모가 있는데”라고 중얼거렸다. 또 창 밖을 내다보던 군인 하나가 옷을 잘 차려입은 남녀를 보고 “야, 저 새끼 옷 잘 입고 간다. 쏠까?” 라고 하자 누군가가 “야, 민간인은 다치지 말아”라고 말했다는 구절도 나온다. ◆대원들이 밝힌 자신의 정체 영화 속에서 설경구는 승객에게 “주석궁을 폭파하고 김일성의 목을 따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고 말했다. 기록에는 한 대원이 “우리는 공비가 아니다. 우리는 김일성이를 적으로 싸우는 특수부대인데 4년 동안을 시골에서 죽을 고생만 했다. 그런데 나라가 우리를 배반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부대원들은 승객들의 의심을 풀려는 의도인지 “여기저기서, 또 그 후에도 다른 병사들이 몇 번씩 이 말을 되풀이해서 말했다”고 동승기는 썼다. 인천=오윤희기자 oyounhee@chosun.com
- "일본, 독도 폭파하자" 먼저 발언했다
- [이데일리 정태선기자] 26일 모두 공개된 한일 협정 관련문서 가운데는 한일회담의 최대 사건으로 알려진 1962년 11월 12일의 `김종필-오히라 메모`의 진실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이번 공개된 문서에는 김종필-오하라 메모를 통해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 민간차관 1억달러 이상`이라는 전체 금액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배경과 한국정부가 전체 개별 청구권을 포기하고 `정치적, 포괄적 타결을 보는 방향으로 선회하는 과정이 잘 그려져 있다. 특히 일본은 회담 초기부터 독도문제를 제기하고 나섰고 폭파하거나 공동사용하자는 주장했으며, 한국정부는 회담의 논의과정에서 이를 배제시켰던 것으로 확인됐다. ◇독도 폭파 발언 배경은 김종필-오히라 회담에서 불거진 `독도 폭발 발언`은 알려진 것과 달리 일본측이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세키 국장이 1962년 9월3일 제6차 한일회담 제2차 정치회담 예비절충 4차회의에서 "독도는 무가치한 섬이다. 크기는 히비야 공원 정도인데 폭발이라도 해서 없애버리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독도 폭파론이 불거졌다.일본은 62년부터 독도를 한일회담의 본의제로 상정하고자 노력했고, 우리정부는 독도가 한일회담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일본은 국제법에 회부하거나 폭파하거나 공유하자고 주장했고, 우리나라는 `폭파할 정도로 중요하지 않은 섬을 어떻게 회담의 대상에 넣자고 하느냐`며 응수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 같은 우리정부의 대응도 의제화되는 것을 피하려는 전술적 어법일 뿐 정말로 독도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라고 외교관계자는 해석하고 있다. 당시 일본측은 독도 문제를 한일협상의 타결 전제조건으로 내걸었고 한국은 초기 제3국 조정방안을 통해 검토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가 여론이 수용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이 제안을 철회했다. 최종적으로 65년 체결된 `한일 기본관계 조약`에는 독도문제는 제외하고 대한민국 정부를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일합방 등 구조약의 문제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 우리는 한일합방 당시부터 조약이 무효라고 주장한 반면 일본은 이후부터 무효라고 주장했다. 한편 일본으로부터 받은 배상금 가운데 6000억원 가량을 당시 김종필 총리가 정치자금으로 사용했다는 일부 설과 관련, 이번에 공개된 문서나 기록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다. ◇김종필-오히라 메모는 왜 1962년 3월의 한일 외상회담부터 11월의 `김종필-오히라 회담`에 이르기까지의 청구권을 둘러싼 양국의 정치적 절충과정은 당시 일본 이케다 정권이 한국에 이를 수용 시키는 과정이 기록돼 있다. 청구권 문제는 법적근거를 둘러싸고 양국의 견해차가 컸다. 이 때문에 한국정부는 청구권 문제가 실무협의를 통해서 해결되기 어렵다고 판단, 정치적으로 일괄타결을 모색하면서 특사를 파견해 일본이 제시할 금액을 탐색했다. 협상 초기 청구권 타결을 전제로 한국측이 제시한 금액은 8억달러, 일본측이 제시한 금액은 5000만달러에 불과했다. 한국과 일본은 절충을 통해 5억달러 대 1억7000만 달러까지 범위를 축소했지만 더 이상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김종필 중앙정보부장과 오히라 외상간의 고위급 회담을 추진했다. 양측은 두차례 회담에서 청구권의 명목과 금액에 관한 최종적인 담판을 지었다. 두번째 회담에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은 단독회담에서 생길수 있는 해석의 차이를 방지하기 위해 메모를 남기자고 제안했다. 이렇게 탄생한 김-오히라 메모는 일본측이 한국에 제공할 금액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 민간차관 1억달러 이상`이라는 총액을 대강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명목에 대한 표기는 유보한 채 양 정부가 대내적으로 명목을 해석할 여지를 남겨두게 됐다. 이 때문에 후에 이 금액을 두고 한국정부는 `청구권자금`이나 `사실상의 배상`으로 설명하고 있고, 일본정부는 `경제협력자금`이나 `독립 축하금`으로 해석하고 있다. 또 이후 추가 실무접촉으로 확정된 합의문서에는 `일본의 무상유상자금 제공의 수반적인 결과로 청구권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규정이 채택, 한국측이 청구권을 포기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결국 10여년의 한일 회담의 초대 초점이었던 청구권문제는 양국 역사청산이라는 본질과는 괴리된채 `경제협력`이라는 기이한 형태로 결착됐다. 이 타협 내용은 1965년 6월 한일간 청구권 교섭의 최종 합의문서인 청구권 및 경제협정의 기본골격을 이루게 됐다.
- (일문일답)노대통령 "아무런 의도도 음모도 없다"
- [이데일리 김윤경기자] 노무현 대통령은 8일 옛 국가안전기획부의 불법 도청, 이른바 `X파일` 사건과 관련 기자간담회를 갖고 "아무런 의도도 음모도 없다"면서 정치적 음모설을 정면 반박했다. 노 대통령은 "터져나온 진실을 덮을 힘은 없고 비켜갈 순 없다"면서 "적어도 부닥친 이상 최선을 다해서 진상을 밝혀야 할 것"이라면서 "참여정부에 도청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자체 조사중이며 검찰 조사와 함께 결과를 확인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특검 도입 주장에 대해선 강하게 반론을 펼쳤으며 "정경언 유착도 중요하지만 도청 문제 자체가 더 중요하고 본질적"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국정원 개편 주장에 대해선 "너무 앞질러 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노 대통령 기자간담회 주요 내용.(모두발언)자주 안나오는게 좋다는데 나올 일이 자꾸 생긴다. 오늘은 근래 얘기하고 있는 도청 문제를 갖고 얘기했으면 좋겠다. 나온 이유는 문제의 본질이 왜곡돼 있고 혼란스럽게 꼬여있다. 그래서 사실을 사실대로 바로잡고 꼬인 부분 가닥을 바로 잡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왔다. 얘기하고 싶은 것은 아무런 의도가 없다. 아무런 음모도 없다. 아무런 정치적 의도가 없다. 그리고 이 사실은 내가 파헤친 것이 아니고 그냥 터져 나왔다. 우리 정부가 파헤친 사건이 아니다. 일부가 나오니까 도청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정부가 이에 대해 성의를 다해 진실을 밝힐 수 밖에 없다. 나는 대통령이지만, 내가 모르는 진실을 그냥 파헤치지 않을 수는 있지만 터져나온 진실을 덮을 힘은 없다. 부닥친 이상 최선을 다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 그것 밖에 없다. 내가 지금 그 의무를 위반하고 사실을 덮어버리면 나는 그렇다치고 나를 위해 일한 참모들은 다음 정부에서 불려다녀야 한다. 다시는 김승규 국정원장이 검찰에 불려가선 안된다. 왜 정치적 음모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유능하지 않다. 정치적 공작에 뛰어난 능력 갖고 있지 않다. 정면으로 부닥치고 상황을 진실에 맞서서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 자신을 버리는 것, 두 개 이상 어떤 수단도 갖고 있지 않고 써본 일도 없다.정치의 어려운 고비에서 내 자신이 고비를 넘길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진실이고 진실대로 하는 것이고 그 외에는 나 자신을 던지는 것이다. 내가 썼던 술수 있으면 여러분 얘기해 보라. 왜 음모설, 의도설을 말하고 받아쓰고 그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선동정치 아닌가. 왜 음모설 자꾸 맞대응을 치나. (질의응답)-김대중 정부 4년간 불법도청 밝혀졌고 참여정부에선 없다고 얘기했는데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는가. 김대중 대통령도 재임중엔 몰랐다고 했다. 야당 주장하는 국정조사 수용 의사는 있는지.▲대단히 어렵다. 없다는 것을 어떻게 입증하는가. 자체 조사하고 있다. 스스로 조사한다는 것은 최대한 진실을 고백하고 용서받겠다는 것 아니겠냐. 자체 조사에 대해 기대를 갖고 지켜보자. 또 거기에 그치지 않고 동시에 검찰 조사하고 있다. 검찰 조사를 하니까 어느 정도 결과가 나오지 않겠나. 결과 보고 참여정부 도청 있었는지 없었는지 확인하면 된다. 검찰 조사를 한 번 보고 그것 믿기 어려운 구체적인 의혹과 징표들이 있을 때 특검을 하든 국정조사를 하든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처음부터 검찰 못믿겠다 덮어버리자, 바로 가자, 하는 것은 사실 조사에 있어서 적절한 방법인지 별로 좀 동의하기 어렵다. 국가가 갖고 있는 제도를 구체적이고 명백한 사유도 없이 무력화시켜 버리는 발상, 그것이 지금 당장은 우리 국민들 기분에 영합될지 모르지만 장래에 있어 좋은 일이겠냐. 검찰이 믿기 어려운 일 과거에 한 것도 사실이지만 도청 수사 하나 믿고 맡기지 못할 만큼 믿기 어려운 조직인가. 우리 검찰을 그렇게 믿을 수 없어서 제도를 놓고 다른 방법으로 조사해야 한다면 국가 심각한 문제 아니냐. 국가가 만든 제도는 전략적으로 쓰고 안쓰고 하는게 아니고 제도대로 써야 한다. 그리고 구체적 의혹이 있을 때 그 때 국회에서 합의해서 하면 될 문제다. -의도가 없었다 했는데, 야당에서 보기엔 처음에는 YS 정부 문제였다가 DJ 정부로 타겟이 옮겨갔다, 또 대통령이 연정론을 제기한 상황이었다. 대통령이 국정원 자체 발표에 대해 압력을 넣었다는 주장도 있다. ▲우연히 그렇게 연결된다고 할지라도 과거 정치에서 우리가 형성한 인식의 틀이다. 옛날에는 그렇게 정치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정치 안했다. 옛날 정치방식 답습하지 않았다. 그리고 연정에 대한 글은 6월9일 미국 방문 사흘 전에 탈고했다. 그 글은 컴퓨터 휴지통에 들어있을 것 같은데 6월7일 탈고하고 그 뒤 글을 다시 써서 당원에게 올렸다. 오래된 얘기다.김영삼 대통령 시절 미림팀 도청 사건이 터져 나왔다. 당연히 국민들과 언론은 이것말고 도청이 없었는가 질문을 던지게 돼 있고 참여정부에 대한 의문도 제기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국정원에 다 밝히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확실히 조사해서 모든 것을 이번에 다 털고 가자는 것이다. 곤란한 사람이 있고 없고간에 덮으라고 했다가 발각되면 누가 책임져 주겠나. 덮으라고 했을 때 명을 받은 사람이 줄줄이 수십명 될텐데 그걸 어떻게 누가 뒷감당하나. 나는 그렇게는 못한다. 내 자신의 정치자금 문제에 대해서 잘 보지 않았는가. 가혹한 수색 다 당해도 한 마디 방어 안했다. 대통령 되고난 후에 국정원을 좀 써야 하는거 아니냐 했지만 단 한 번도 정보 모아오라고 한 일 없고 누구누구 겁 좀 주라고 한 일이 없다. 내가 위대해서 안한게 아니고 오늘날 국정원 직원 입에 의해서 사건 터지고 파장이 생긴게, 이런건 반드시 나오게 돼 있다. 내가 갖고 있는 신념이다. 내 신앙은 불법은 묻어 놓으면 묻힌 깊이만큼 폭발력 생긴다. 다이나마이트로 암석 폭파할 때 장약을 아주 깊이 묻는다. 폭발력이 크기 때문이다. 불법 비리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한다. 깊이 묻을수록 크게 터져 나온다. 시효를 넘길 방법이 없다. 도청은 구조적 뿌리가 있다. 깨끗한 척하고 참여정부 조사하자고 하는데 그들은 이것을 묻어둘 만한 힘이 있어서 그렇다. 참여정부는 묻어둘 힘이 없다. -음모론이 터진 계기가 정경언 유착 부분이 내용적이고 본질적인데 불법 도청의 문제로 가면서 의혹의 시선이 생긴 것이다. 정경언 유착, 도청 내용 부분에 대한 진상규명 의지는 얼마나 있나. 또 국정원 개혁에 대한 지적도 나왔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의혹을 가질만 하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의혹은 갖다 붙이면 언제든지 제기할 수 있다. 일련의 과정을 놓고 저에 대해 정치적 의도 있는 것으로 제기하는건 나에 대한 모욕이라 생각한다. 나는 정치 그렇게 하지 않았다. 노무현이란 사람이 정치해 온 과정을 돌이켜 점검 한 번 해봐라. 한 정치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살아온 과정 분석해 보면 된다. 감히 자신있게 말한다. 나는 그런 식으로 정치하지 않고 그런 과거의 근거 남긴적도 없다. 절대로 의심하지 말라. 옛날 정치하던 사람 보고 잔상 오버랩하지 말라.정경언 유착이라는 것과 도청 문제 뭐가 본질이냐가 중요한지 모르겠지만 도청 문제가 더 중요하고 본질적이다. 도청은 유착보다 훨씬 심각한 인권침해고 국민에 대해 가해지는 범죄이므로 더 중요하다. 이 문제야말로 철저히 규명하고 재발없도록 조치해야 한다. 국가권력에 의한 조직적인 국민에 대한 범죄행위가 본질적이다. 정경유착보다 가볍지 않다. 개인적으론 더 무겁게 본다.정경유착도 무겁다. 그러나 5공 청문회부터 진상이 계속 밝혀져 왔고 전모가 역사적으로 상당히 밝혀지고 정리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해결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도청은 의혹만 있었지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일이 없다.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벌어졌던 소위 국가정보조직의 불법행위에 대해 도청 문제야말로 권력의 불법이라는 가장 중요한 본질적 문제다. 도청대로 수사해 나가고 역사적 평가도 하자는 거다. 내용 가운데엔 범죄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시효 지난 것도 있다. 범죄 아니지만 국가적으로 역사적으로 확인하고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것도 있고 보호되야 할 사생활도 뒤엉켜 있다. 그래서 어디까지 공개하냐 아니냐는 수사의 문제와 다르며 이는 법에 따라 해야 한다. 법을 뛰어 넘을 수 없다. 결국 국회에서 법을 안만들고선 안된다. 특검은 (내용을)공개할 수 없다. 내가 혼란이 있다는 것은 특별법이냐 특검이냐 얘기하는데 별개의 문제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공개냐 비공개냐, 이후 자료를 보존하느냐 퍠기하느냐에 대해서도 국회가 나서 특별법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 다음에 조사인데 검찰이 무슨 제척 사유가 있냐. 검찰 조직이 그렇게 믿을 수 없는 조직이냐. 동의할 수 없다. 그렇게 해선 안된다. 난 대통령이다. 정부 조직을 그렇게 함부로 무력화하는데 동의할 수 없다. 사건이 몇 건인지도 모르고, 도청 사건인지 내용인지 구분도 없이 마구잡이로 특검하자고 몰고간다. 특검 대상도 없이. 또 검찰이 수사못할 이유가 있어야 특검할 거 아니냐. 예외적으로 특검하는거 아니냐. 대통령 연루됐다는 유전, 행담도 사건 특검 자진해서 받겠다고 했다. 검찰이 연루된 사건은 특검하자고 하면 말이 된다. 검찰도 연루돼 있지 않은 수많은 사건, 대통령 연루안된 사건을 왜 특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국민 60% 이상이 특검해야 한다고 답하는 상황이 됐나. 여기에 대해 우리 모두의 책임이 있다. 특검은 특검의 사유를 냉정하게 어떤 때 해야 하는지 사회적 공론 있어야 한다. 적어도 어느정도 의심스러운 단서 있으면 특검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야지, 사건만 나오면 정치적 이용 가능성만 있으면 특검한다면 나라가 어떻게 제대로 굴러갈 수 있나. 국정원 조직개편 문제는 좀 더 보자. 나도 국정원의 조직과 역할을 정비한다고 했는데 또 뭐가 남아있는지 수사 끝나고 좀 보자. 그런 논의는 좀 앞질러 가는거 아니냐. 수사 좀 하고 조직 전모가 드러나고 국정원 전면 점검 필요하다는 논의 제기된다면 점검해 볼 수 있겠다. 지금 이 단계에선 거기까지 가는건 너무 비약아니냐.
- (선물전망)런던폭파 사건, 해외 변수 부각
- [edaily 이승우기자] 영국 런던 폭파 사건의 영향으로 8일 국채선물도 상승을 타진할 것으로 보인다.
전날 영국 수도 런던의 출근길 지하철과 시내버스에서 네 차례의 연쇄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세계 금융시장은 혼란을 겪었고 안전자산 선호현상으로 미 국채 수익률은 하락했다. 유럽 국채 수익률도 크게 떨어졌다.
금통위 불확실성 제거와 경부의 안정의지를 확인하며 재료가 소진된 채권시장에 해외변수의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콜금리를 동결했다. 박 총재는 부동산 문제보다는 경기에 초점을 두겠다며 시장의 우려를 일단 해소시켰다.
그러나 단기적인 안정에 대한 바탕은 마련했지만 펀더멘털 개선에 대한 중기적인 방향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부동산 문제가 아니라도 경기 회복이 가시화되면 금리 인상의 수순을 밟아갈 것이라는 점을 경기 회복의 자신감 표출과 함께 시사했기 때문이다. `저금리 기조`라는 문구가 사라진 것 역시 이같은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기술적으로 110.65p 돌파 이후 110.80p에 대한 극복시도가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110.65p 상단에서의 매물벽은 다소 완화된 상태라는 전언을 감안하면 110.80p 공방이 다시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참가자들이 `어렵다`는 말로 전망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다. 경기 회복이 이뤄지는 것 같지만 어느 정도일지 대체 가늠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중기적으로 방향성을 고민하는 쪽에서도 시간적 여유를 가졌다고 하지만 오히려 그 여유가 고통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다.
다음은 각 선물사별 전망.
◇현대선물=전일 종가 기준으로 5일 이평선[110.66p]을 소폭 하회하며 마감, 정책 불확실성 해소에도 불구하고 국채선물 시장은 기술적 불확실성의 연장국면에 들어서게 되었다. 다만, 채권시장을 압박해 온 정책 리스크가 제거된 만큼 이로 인한 조정흐름은 전일 미처 이루지 못한 바닥 다지기 및 110.80 이하에서의 소정의 매물 소화 과정으로 바라보며 효율적인 매수 기회로 삼는 전략이 유효할 전망이다.
5~6일 양일간 장중 지지선이었던 110.50대 중반과 기존 저점인 110.40선을 1, 2차 지지선으로 삼아 분할매수 기회를 모색할 것을 권한다. 적정 수준의 조정 이후 5일 이평선 회복이 가시화될 경우에는 110.80선 진입시도가 재개될 전망이다. 레인지는 110.50p-110.85p를 제시했다.
◇삼성선물=금통위 회의에 대한 막연한 기대는 있었지만 결국 힘을 받지 못했다. 불확실성 해소 여부가 중요한 변수였는데 실질적으로는 불확실성이 진행형이 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즉 경기, 물가, 부동산 어느 한쪽보다 문제가 되는 부분을 우선시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채권시장의 피로도는 쉽게 해소되지 못할 것이다.
또한 증시, 시중자금 이동 등 금통위 이후 부담스런 변수가 이어질 것이어서 단기 기대에 따른 대응은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다. 4%와 110.80대의 두터운 벽은 확인된 측면이 있어 110.65를 기준으로 한 단기대응이 전개될 전망이다. 레인지는 110.40~110.80을 제시했다.
◇KB선물=박승 총재의 단기적 시장 안정 의지, 재경부의 일시적인 금리 상승 억제 의지와 이 총리의 부동자금 재분배 방안 지시 등의 단기적 효과가 영국 런던 폭발 사고로 인해 부각될 것으로 보여 약한 강세 기조에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위 세 요소가 궁극적으로는 채권시장 비우호적이라는 점에서, 초단타 매매를 제외하고는 추세적 국채선물 매수를 지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