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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대통령직인수위 등에 따르면 공정위는 기업결합 심사제도를 영국 CMA 모델을 참고해 개편하겠다고 인수위에 보고했다. 지난달 30일 전년도 기업결합 동향을 발표하며 “시정조치 실행 가능성을 높이고 기업 자율성을 최대한 반영하는 제도 개편을 추진 중”이라고 밝힌 지 약 보름 만이다.
영국 CMA, 합의 불발시 직접 시정조치…EU보다 ‘적극적’
현재 공정위는 M&A(인수합병)로 인한 독과점 우려가 커 사업부 매각 등 구조적 조치 또는 행태적 조치가 필요한 기업결합을 심사할 때 먼저 심사관(사무처)이 시장획정·경쟁제한성을 분석 후 직접 시정조치까지 만든다. 결합신고회사가 시정조치에 대한 의견서를 내고 심사관과 조율하지만 참고하는 정도다. 이후 공정위는 위원회에서 심사관 시정조치를 담은 심사보고서와 기업 의견을 모두 청취해 승인 여부와 이에 따른 최종 시정조치를 명령한다.
반면 유럽연합(EU)는 경쟁제한성이 있는 기업결합 심사를 할 때 기업에 먼저 자진시정안을 내도록 한다. 경쟁당국은 기업이 제출한 자진시정안을 토대로 계속 협의를 하면서 최종 시정조치를 마련한다. 만약 마지막까지 결론이 도출되지 않으면 경쟁당국은 ‘불승인’으로 종결하며, 결합 신청회사가 이에 불복할 경우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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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가 참고한 영국 CMA 모델도 최초 자진시정안을 결합 신청회사가 먼저 제출하는 것은 EU와 같다.
하지만 영국은 결합 신청회사와의 협상에서 끝까지 시정조치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하면 자체적으로 만든 시정조치 명령(notice of making an order)을 내릴 수 있다. 합의 불발 시 직접 시정조치를 내지 않고 바로 불승인 종결하는 EU보다 훨씬 적극적이다. 현 공정위 및 EU 제도의 혼합형인 셈이다.
글로벌 스탠다드 맞추고 기업 자율성 반영…공정위 부담↓
공정위가 결합심사 제도 개편에 나선 것은 여러 이유가 있다. 먼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결합건이나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건 등 해외 경쟁당국과 많은 조율이 필요한 글로벌 딜을이 잇달아 경험하면서 심사절차를 EU를 비롯한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출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또 공정위가 시정조치를 직접 제시하는 현 방식에 대해 일부에서는 기업의 자율성을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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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이 먼저 시정조치안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결합심사를 진행할 경우 공정위가 더 효율적으로 심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글로벌 기업이 많아지는 상황에서 해외 경쟁당국과 절차를 논의하기도 더 수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기업이 먼저 시정조치안을 제안할 경우 조치 수준의 시작이 제한적일 수 있으며, 경쟁당국이 아닌 기업이 심사를 주도한다는 인상도 줄 수 있다”며 “여러 우려도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정위 관계자는 “아직 결정된 심사 모델이 있는 것은 아니다”며 “다음 달부터 한국법제연구원과 공동연구를 진행하며 심사제도 세부 개편안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