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티에서 온 편지]고려인들은 고국을 잊을 수 없었다

총영사관, 남부 카자흐스탄 관할…고려인 8만명 거주
척박한 땅 일궈내…카자흐스탄 쌀 생산량의 90% 기록
독립운동가 묘역 관리하는 등 고국 향한 여전한 애정
한국서 일할 기회 찾아…다른 역사 겪었지만 '한민족'
  • 등록 2022-08-19 오전 6:30:00

    수정 2022-08-19 오전 6:30:00

[박내천 주알마티총영사] 카자흐스탄 제1의 경제, 문화 도시 알마티에는 중앙아시아 내 유일한 대한민국 총영사관이 있으며 그만큼 우리와의 무역, 인적 교류가 활발하다. 총영사관은 알마티를 포함한 남부 카자흐스탄 지역을 관할하고 있고 이곳 전체에 약 8만 명의 고려인 동포들이 살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구한말, 일제시대부터 연해주 지역에 살던 그들은 1937년 스탈린 정권에 의해 이곳으로 이주되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희생도 있었지만, 수세대가 지난 오늘날 그들은 과거의 아픔을 딛고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는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준 현지인들의 도움이 컸다.

알마티에서 서북쪽으로 1000km가량 떨어진 도시 크즐오르다에는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과 계봉우 지사의 묘역이 있다. 그곳을 새로이 단장하고 추모공원화하기 위한 준비작업으로 6월 말 방문했다. 이동 중에 본 풍경은 메마르고 황량했는데, 도착해보니 예상대로 강한 햇살과 더위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거리와 건물들이 잘 정비되어 있고, 7000 명에 달하는 많은 고려인 동포들이 살고 있다고 하니 좋은 인상과 함께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곳의 고려인들은 이주 직후 벼농사를 짓기 시작했는데 토양에 소금기가 많고 날씨가 맞지 않아 처음 몇 년은 실패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결국 수확에 성공해 오늘날에는 카자흐스탄 전국 쌀 생산량의 90%를 기록하고 있고 주변국에 수출도 하고 있다. 한국인의 강인한 생활력이 그곳에서도 큰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고려인 동포 대표들과 함께 두 독립운동가 묘역을 방문하고 헌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두 분 또한 다른 고려인들과 함께 그곳으로 이주한 후 영면하셨는데, 두 분의 유해는 이후 우리 정부의 노력과 카자흐스탄 정부의 협조로 한국에 봉환될 수 있었다. 두 분 생전에 고려인 동포들이 이웃으로서 함께 생활했고 돌아가신 후에는 고려인 자녀 세대가 그 묘역과 고택을 소중히 관리하고 유해 봉환 과정에서도 많은 지원을 했다. 고려인들이 이처럼 독립운동을 자랑스러워하고 기념해왔다는 것은 그들의 고국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을 잘 보여준다.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지 이제 80여 년이 흘렀고 소련 붕괴도 어느덧 30여 년 전 일이 됐다. 고려인들의 세대가 변하고 국적도 소련에서 카자흐스탄으로 바뀌게 되었다. 세월이 흐르고 변화가 계속되면서 젊은 고려인들은 정체성 혼란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 또한 일제강점기, 남북 분단, 전쟁 등 어려웠던 시기를 겪었고 그 시대에 우리와 단절된 그들을 챙길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일부는 그 시절에 “고국은 고려인들을 버렸고, 고려인들은 고국을 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그들은 고국을 잊을 수 없었다.” 고려인들은 한식을 주식으로 하고 한국 드라마를 보며 한국의 음악을 듣는다. 청년들은 한국에서 공부하거나 일할 기회를 찾고 있다. 우리도 이제 그들을 외면하거나 잊지 않고 있다. 총영사관은 그들의 방한과 한국 문화 보존을 위한 지원을 하고 있다. 그들과 우리는 현대사의 아픔 속에서 서로 떨어져 다른 역사를 겪어야 했지만 결국은 같은 뿌리에서 난 같은 한민족인 것이다. 이는 결국 우리 민족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운명의 한 부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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