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트럼프만도 못한 정부의 한국은행 압박

  • 등록 2018-10-14 오전 7:32:36

    수정 2018-10-14 오전 7:32:36

[이데일리 이정훈 증권전문기자] 한 나라의 중앙은행이 수행하는 통화정책의 목표는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다. 전통적으로는 금리라는 수단으로 물가 안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면 그만이었지만 이제는 고용이나 금융시장 안정까지 관리해 달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이 복잡하게 꼬인 정책 목표들을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현대 통화정책은 그래서 `종합예술`로 불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어느 하나의 목표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쪽에게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늘상 불만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지금 미국 상황이 딱 그렇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데다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치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고용을 비롯한 실물경제 호조세와 재정팽창정책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기준금리 인상이 달갑지 않다. 이런 다급함이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미쳤다”는 막말까지 동원하도록 하고 있다. 재미있는 건,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국내에서도 한국은행(한은) 통화정책에 행정부가 개입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나서 “이제는 기준금리 인상을 검토해야할 때가 됐다”고 시그널을 던졌고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저(低)금리를 거론하면서 압박 수위를 높였다. 한 나라에선 “왜 그렇게 기준금리를 빨리 올리느냐”며 인상 속도를 늦추도록 하고 있고 다른 한 나라에선 “이젠 기준금리를 올려 보라”며 인상에 속도를 내도록 종용한다는 차이는 있지만, 행정부가 중앙은행 통화정책에 직접 개입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일로 볼 수 있겠다.

물론 통화정책의 목표가 바뀌듯 중앙은행의 독립성도 시대에 따라 바뀌고 있다.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중앙은행이 정부나 정치권 간섭을 받지 않고 정책을 펼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데, 화폐금융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앨런 블라인더 프린스턴대 교수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란 통화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의 선택과 운용에서의 자유를 의미할 뿐 통화정책 목표 자체는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중앙은행에 부과되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합의로 중앙은행에 부여하는 통화정책 목표라고 해도 법적 절차와 실효성을 전제해야 한다. 최근 새롭게 금융 안정을 정책 목표로 받아들이고 있는 연준이지만, 법적으로 부여받은 물가 안정과 완전고용이라는 두 가지 정책 목표보다 금융 안정을 앞세울 순 없는 노릇이다. 물가 안정이라는 단일 목표를 가진 한은으로서도 정부가 고민하는 가계부채 증가와 집값 불안을 고려하지 않을 순 없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통화정책의 부차적 목표일 뿐이다. 더구나 늘어난 가계부채와 치솟는 집값을 안정화 하는데 기준금리라는 거시적인 카드가 거의 실효성을 갖지 못한다는 건 대부분 전문가들도 동의하는 대목이니 말이다. 결국 미국이든, 한국이든 행정부가 나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무시한 채 정책 개입에 나서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

특히 가계부채 증가나 집값 상승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정부의 정책 실패를 한은 탓으로 돌리기 위해서든, 이전 박근혜 정권에서 기용돼 기준금리 인하로 정부 정책기조에 부응했던 이주열 한은 총재에 대한 정치적 앙갚음이든 한은을 볼모로 잡으려는 정부의 노림수는 더더욱 온당치 못하다. 지금 한은을 압박하는 정부·여당은 무지하면서도 비겁하다. 연준을 압박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더 무지하긴 하지만 차라리 솔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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