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고 있다"...한국경제, 10월 거센 외풍

  • 등록 2017-10-10 오전 5:00:00

    수정 2017-10-10 오후 1:12:10

△지난 6월 부산 남구 부산항 부두에 접안한 컨테이너 선박에 수출 화물이 실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세종=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Winter is coming(겨울이 오고 있다).”

국제 통상 전문가인 이시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올해 2월 정부 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직후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외치는 보호무역 강화가 ‘수출 대한민국’에 새로운 위기라는 우려가 컸다. 이를 미국 유명 드라마인 ‘왕좌의 게임’ 속 대사를 인용해 경고한 것이다.

이 교수의 우울한 예측이 적중한 것일까? 새 정부 출범 후 순항하던 한국 경제에 거센 외풍(外風)이 불고 있다.

한·중 통화스와프 계약 10일 종료

발등에 떨어진 불은 한·중 통화 스와프다. 이달 10일 만기를 앞두고 계약 연장 여부가 안갯속이어서다.

통화 스와프는 서로 다른 통화를 미리 정한 환율에 따라 일정 시점에 교환하는 것이다. 외화가 바닥났을 때 다른 나라 통화를 빌려 쓰는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 역할을 하는 금융 안전망이다. 예를 들어 해외 금융기관이 자금을 빼 가 국내 외국환 은행에 외화가 모자라는 사태가 벌어질 경우 한국은행이 상대국 중앙은행에 원화를 주고 그 나라 화폐를 빌려와 은행에 긴급 자금을 공급할 수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2008년 12월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과 원·위안 통화 스와프 계약을 맺고, 2014년 10월 그 규모를 3600억 위안으로 확대하면서 계약을 올해 10월까지 3년 더 연장했다. 미국 달러화로 환산하면 약 560억 달러 수준으로, 한국 정부가 체결한 전체 통화 스와프(약 1220억 달러)의 46%를 차지한다.

문제는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경제 보복이 통화 스와프 연장 협상에도 악영향을 미치리라는 우려가 커졌다는 점이다.

협상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와 한은은 9일 “당분간 현재 상황을 확인해 줄 수 없다”는 공식 견해를 내놓고 입을 굳게 다문 상태다.

美, 통상 압력 커져…北도발, 환율보고서도 불안

미국의 통상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미국은 한국 수출의 12%(금액 기준 올해 8월까지)를 차지하는, 중국에 이은 2위 수출 시장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오는 11일 외교부, 전자업계와 긴급 대책 회의를 열기로 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앞서 지난 5일(현지 시각) 삼성전자, LG전자 등 한국산 세탁기 수출로 자국 산업이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다고 판정하며 ‘세이프가드’를 발동할 가능성이 커져서다.

세이프가드는 특별한 목적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무역구제 조치의 하나로, 정상적으로 수입한 품목에도 산업 피해를 방지할 수 있을 만큼의 높은 관세를 매길 수 있다. ICT는 지난달 22일에도 한국산 태양광 패널이 미국 산업에 타격을 주고 있다고 판정한 바 있다. 미국이 한국산 수입품에 세이프가드를 발동한다면 이는 2002년 이후 16년 만에 제재를 재개하는 것이다.

정부가 ‘당당한 대응’을 강조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이미 개정 협상 절차를 밟고 있다. “FTA를 폐기할 수도 있다”는 미국 으름장에 한발 물러선 것이다.

이를 위해 산업부는 오는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미 FTA 개정을 위한 보고를 할 계획이다. 이후 경제적 타당성 검토, 공청회, 통상 조약 체결 계획 수립, 국회 보고 등을 거쳐 본격적인 개정 협상에 들어갈 예정이다. 업계는 FTA 개정으로 인해 국내 자동차·철강 업종 등이 불이익을 받고, 국내 농산물 시장 추가 개방(관세 즉시 철폐) 요구 등도 거세질 수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금융·외환시장 변동성을 확대할 수 있는 불안 요인도 적지 않다.

정부는 노동당 창건일인 10일 북한이 추가 도발을 시도할 수 있다고 보고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도 연휴 마지막 날인 9일 각각 회의를 열고 “북한 추가 도발과 미국 중앙은행의 자산 축소 개시 등으로 금융시장 불안 심리가 커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외환 당국은 미국 재무부가 이달 미 의회에 제출하는 ‘환율 보고서’가 걱정거리다.

이 보고서는 미국 정부가 주요 교역 상대국의 환율 정책을 평가한 것으로, 경상수지와 무역수지 흑자, 환율 시장 개입 규모 등 3가지 요건 가운데 2개에 해당하면 환율 조작국(심층 분석 대상국)에 지정될 수 있다. 환율 조작국은 미국 연방정부 조달시장 참여 금지 등 직접 제재와 환율 하락 압박을 함께 받는다.

통화스와프 무산, 경제 영향은↓…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도 낮아

관건은 악재의 현실화 가능성과 이로 인해 우리 경제가 입을 손실이다.

전문가들은 우선 한·중 통화 스와프 계약 연장이 만약 무산돼도 경제에 미치는 실질적인 영향은 거의 없으리라고 예상한다.

박복영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는 보유 외환이 과다하다는 지적이 나올 만큼 많고 경상수지 흑자도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라며 “통화 스와프 협정이 외환위기를 대비하는 것인 만큼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의미가 없고, 우리 경제의 다른 안전판도 있으므로 설령 연장이 불발되더라도 금융시장 영향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외환 보유액은 지난 8월 말 기준 3848억 달러로 세계 9위 수준이다. 중국과 맺은 통화 스와프 규모를 7배 정도 웃도는 역대 최대 규모다. 외환 보유액 대비 단기 외채 비율은 6월 말 기준 30.8%로 대외 지급 능력도 양호한 편이다.

애초 한·중 통화 스와프 체결의 기대 효과가 크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의 위안화 거래 규모가 미국 달러화나 일본 엔화 등에 크게 못 미치기 때문이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위안화의 외환시장 거래 비중은 작년 4월 기준 4%로, 달러화(87.6%), 유로화(31.3%), 엔화(21.6%) 등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뒤집어 말하면 금융 안전판이 넓을수록 좋지만, 그렇다고 우리 정부가 중국에 ‘구걸’하듯 목맬 대상도 아니라는 얘기다.

박 교수는 “한·중 통화 스와프 계약 중단은 중국 정부가 앞으로 한국과의 관계를 부정적인 방식으로 가져가겠다는 신호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이 실질적인 걱정거리”라며 “중국도 위안화 국제화 등을 위해 계약 유지가 필요한 만큼, 우리가 통화 스와프 효과를 침소봉대하고 과잉 대응하면 오히려 협상력을 스스로 줄이는 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환율 조작국 지정 가능성도 작다는 전망이 많다.

외환 당국 관계자는 “미·중 간 정치적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미국이 무역 보복을 하겠다며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은 매우 제한적”이라며 “미국이 중국만 두고 한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지난 4월 발표한 환율 보고서를 보면 중국의 지난해 대미(對美) 무역 흑자액은 3470억 달러로 압도적인 세계 1위였다. 한국은 277억 달러로 중국의 10분의 1에도 못 미쳤다. 환율 조작국 지정이 미국을 상대로 막대한 무역 흑자를 내는 나라를 겨냥한 것인 만큼 최우선 타깃도 중국이다. 하지만 북한 제재에 중국 손을 반드시 빌려야 하는 미국이 현시점에서 느닷없이 환율 조작국 카드를 꺼내는 것은 어려우리라는 관측이다.

“美, 韓만 때리는 이유 파악해야”

다만 FTA 등 통상 분야 압력은 한국 경제에 장기적이고 실질적인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관세 인상 등이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어서다.

이시욱 KDI 교수는 “애초 트럼프 정부가 출범했을 때만 해도 미국 통상 압력이 중국이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에 가해지리라는 예상이 많았다”면서 “우리 대미 무역흑자 규모가 다른 나라보다 크지 않은데, 이처럼 안보에 통상 압력까지 한국만 동시다발적으로 집중포화를 당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정부가 우리만 집중적으로 압박하는 것이 어떤 시그널(신호)인지 이해하는 것이 우선 관건”이라며 “미국 정부의 상식과 룰(규칙)을 벗어나는 조처의 의미와 기존 한국 정부의 대응 방식에 문제가 있었는지 등을 차분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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