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하나는 ‘적자 편향’ 가설로 경기의 호·불황에 관계없이 매년의 재정수지가 적자를 보이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가 경기 호황 국면에서 크게 늘어나는 재정수입을 부채를 갚는데 이용하기보다는 그해 정부지출을 더 크게 늘림으로써 재정수지를 흑자가 아닌 적자로 만들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주요 원인으로는 경제 발전에 따른 복지 수요 증대, 행정부처의 이기주의, 선거에서 예산의 정치적 수단화 등이 지적된다. 다음 세대가 갚아야 빚에 무관심한 현세대의 무책임도 여기에 한몫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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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건전재정 모범국으로 인정받던 우리나라에서도 통제되지 않는 재정의 자기모순이 현실화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거치며 재정수지 적자가 3년 연속 국내총생산(GDP)의 5%에 이르면서 GDP 대비 부채비율이 벌써 50%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 속도라면 5년 후 부채비율은 65%에 근접해 재정 유지 가능성에 적신호까지 켜지게 된다. 저성장과 고령화로 현재 우리나라의 재정 여건은 다른 어느 선진국들이 경험한 것보다 빠르게 악화하는 실정이다.
다행히도 새 정부에서는 지난달초 국가재정전략회의를 통해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건전재정으로 기조전환과 함께 재정준칙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관건은 지난 정부 말 논란이 됐던 정부 준칙안의 한계를 온전히 보완하는 것에 있다.
재정총량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 제약은 통합재정수지가 아니라, 국가채무에 직결되는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GDP의 3%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 국제표준에 더 부합한다. 우리나라 중장기 재정 경로를 볼 때 적정부채 규모를 일률적으로 정하는 것은 경제학적으로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합리적이지 않으며 논란만 야기할 수 있다. 너무 낮은 부채 상한선은 현실적으로 달성 가능하지 않고 너무 높은 비율은 통제력이 없어 실효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된다. 따라서 국가채무 비율에 단순 상한선을 설정하는 방식은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신 재정지출 증가율을 명목 성장률에 준하는 수준으로 통제하는 지출준칙 활용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만하다. 지출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가 재정 건건성 유지에 유용하다는 점을 인정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은 선진국들이 지출준칙 채택을 통해 재정규율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준칙의 존재가 필요한 재정의 역할마저 크게 약화시킬 것이라는 주장은 사실 근거가 부족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실제 자료를 보면 경제 규모 대비 핵심공공지출 비율과 채무비율간에 상관성이 거의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재정준칙에 의한 채무통제가 반드시 작은 정부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일 준칙도입에 따른 부작용으로 재정운용의 경직성이 크게 우려된다면, 극심한 경기침체나 재난적인 자연재해 또는 전염병 확산 시 준칙 적용의 예외를 허용함으로써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현명하다. 다만 예외 규정은 구체적이어야 하며 가능한 한 사전에 실질성장률이나 실업률과 같은 수치로 명시화될 필요가 있다. 또한 위기적 상황이 끝난 후에는 재정건전화 조치를 의무화하는 회복조항을 구비하는 것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세계은행(WB)이나 국제신용기구 모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급격히 소진되는 우리 재정 여력에 우려를 표하며 준칙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상황이다. 국제사회가 관심을 두는 준칙 도입이 여야 간 정치적 대립으로 지연되거나 좌초되는 일만큼은 생기지 않도록 간절히 기원한다. 국민과 정부, 국회가 국가 미래 대계를 위한 대승적 차원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