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 고전영화는 치유가 된다

  • 등록 2014-04-28 오전 7:25:20

    수정 2014-04-28 오전 7:25:20

[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낙원상가 4층에 두 개의 영화관이 있습니다. 실버영화관과 서울아트시네마입니다. 실버영화관은 55세 이상 어르신들이 2000원에 영화를 보는 곳이죠. 4월달 프로그램은 그레고리 펙, 에바 가드너 주연의 ‘그날이 오면’, 이경희·이신재 주연의 ‘사랑의 원자탄’, 브래드 피트 주연의 ‘흐르는 강물처럼’ 등입니다. 5월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대장 부리바’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서울아트시네마는 B급 서부영화의 거장 버드 베티커감독의 영화 8편이 상영됐습니다. 지금까지 30여년 이상 영화를 봐왔지만 버트 베티커의 전설적인 서부극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고전영화관은 치유의 효과를 갖고 있습니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브라운관이나 컴퓨터 화면으로 보는 DVD가 아니라 필름을 영사기로 상영하는 대형스크린 고전영화감상은 울적한 마음에 위안을 주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전영화관이 장사가 썩 잘되는 건 아닙니다. 만성적자에 허덕인답니다. 여유 없는 현대인들이 불황을 만들어낸 주범일 것입니다.

오래 전 미국 뉴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예술영화관으로 유명했던 극장 ‘필름 포럼’이 적자로 문을 닫았습니다. 뉴욕타임스, 빌리지 보이스 등의 신문에서 필름포럼이 없어져선 안 된다는 글이 발표된 것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이후 1년 뒤 시민들의 후원으로 필름포럼이 다시 생겨났습니다. 그때 뉴욕시민들의 예술을 애호하는 정신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필름포럼 같은 극장, 빌리지 보이스 같은 고급 문화잡지, 그들을 후원하는 시민정신이 예술도시를 만드는 원동력임을 배웠습니다. 필름포럼에 가면 헌금봉투가 항상 놓여 있었고 기부자 명단이 벽에 붙어있습니다. 일반 관객들은 입장료 외에 항상 얼마씩이라도 후원하는 게 습관처럼 돼 있습니다. 현재 정부에서 운영하는 고전영화관은 디지털미디어시티에 있는 한국영상자료원이 유일합니다.

최근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에서 피터 셰퍼의 연극 ‘에쿠우스’를 보았습니다. ‘에쿠우스’는 1970년대에 몇 가지 화제를 뿌렸던 연극입니다. 주인공이 나체로 나왔다는 것, 주인공을 공개모집해서 선발했다는 점, 실험극단의 전용극장 실험극장에서 공연했다는 것. 이런 요소들이 관객들의 관심을 모았고 수십년을 버텨왔던 연극입니다. 강태기를 필두로 조재현·최민식·최재성 등 기라성 같은 현역 배우들이 그 출신입니다.

고전영화관의 폐관 위기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3년 서울 시내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인 서대문아트홀(구 화양극장)이 폐관됐습니다. 서울아트시네마도 자칫 같은 길을 갈 뻔 했습니다. 또 타계한 명배우 김동훈 씨가 사재를 털어 만들었던 실험극장이 없어진 뻔 한 일은 한국이란 사회가 얼마나 고전의 가치를 버리고 살아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명물극장이 사라진다는 것은 경제 때문이 아니라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부족해서라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노블레스 오블레주가 전혀 없는 나라란 걸 뼈저리게 실감합니다.

문화재 보존은 먹고사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하지만 정신의 자양분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먹고살기 위해 개발만 해대다가 정신이 문득 황폐해짐을 느낄 때 그 속은 무엇으로 채울 것입니까. 고전영화, 고전예술은 우리의 빈궁해진 정신의 청량제로 작용하고 아픈 마음을 어루만질 치유의 약손이란 걸 모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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