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소현의 일상탈출)⑫20루피짜리 최고의 음식

  • 등록 2006-10-06 오후 9:17:33

    수정 2006-10-07 오전 2:42:13

[이데일리 권소현기자] 콜카타 배낭여행자들의 거리 셔더스트릿에는 늘 비쩍 마른 인력거꾼과 수다스러운 호객꾼, 다양한 피부색의 배낭여행객들이 뒤섞여 있다.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소는 이리저리 거리를 어슬렁 거리고 개들은 그늘에 자리를 잡고 늘어지게 낮잠을 즐기며 양이나 염소들이 가끔 떼지어 우르르 지나가기도 한다.

아침에 셔더스트릿으로 나서면 늘 한국어로 말을 거는 인도 아저씨가 있었다. "안뇽하쎄요?(안녕하세요?) 밤 머고소요?(밥 먹었어요?) 요기 진차 마시쏘요(여기 진짜 맛있어요)" 하얀 런닝셔츠에 반바지를 입은 이 아저씨는 늘 똑같은 말만 건넸다. 외국인 치고는 발음이 그럭저럭 괜찮았다.

▲ 아저씨만의 작은 조리공간, 조리도구도 별로 없는데 뚝딱 요리를 만들어냈다.
이 아저씨를 처음 본 것은 콜카타에 도착한 날이었다. 밤 늦게 셔더스트릿에서 묵을 곳을 찾아 여기저기 헤메고 다녔다. 처음부터 끝까지 100m정도 밖에 안 되는 이 거리에서 딱 중간 정도에 유난히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접시 하나씩 들고 간이 의자에 앉아서, 혹은 서서 음식을 먹고 있었다.

이 사람들에게 분주하게 요리를 해주고 있었던 깡마른 아저씨. 남의 가게 앞에 아주 낡은 조리도구 몇 개와 휴대용 가스레인지 하나를 놓고 뚝딱 뚝딱 요리를 해냈다.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이 아저씨는 항상 그 자리에서 요리를 했다. 워낙 더운 나라라 인도인 대부분이 늦게 하루를 시작하는데 아침 이른시간에도 아저씨는 그 자리에서 똑같은 인사를 건넸다.

그렇지만 우리는 매번 그 아저씨를 지나쳐 셔더스트릿 끝쪽에 있는 캐서린 제과점에서 아침을 먹었다. 여기엔 베이글부터 샌드위치, 케익까지 없는 게 없었다. 아침 에어콘이 빵빵하게 나오는 제과점에서 매일 다른 종류의 빵에 네스카페 한잔을 마시면서 그날의 동선을 짜곤 했다.

캐서린 제과점의 빵이 맛있기도 했지만 아저씨네 음식을 외면한 것은 탈날까봐였다. 인도에서 길거리 음식은 바로 설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생수도 짝퉁을 파는 곳인데 길거리에서 만든 음식이라니 아무리 맛이 있다고 해도 선뜻 발이 멈춰지지 않았다.

▲ 아저씨표 김치볶음밥, 김치국수, 비빔면
그런데 콜카타를 떠나는 날, 기차시간을 2시간 남겨놓고 문득 아저씨 손맛이 궁금해졌다. 맛이 어떻길래 늘 그 아저씨네 노점상 앞에는 사람이 바글댔을까. 배가 고프지도 않았는데 뭔지 모를 허전함을 채우려 아저씨네로 향했다.

점심은 한참 지났고 저녁까지는 먼 애매한 시간이라 사람이 별로 없다. 서양 남자와 여자가 테이블도 없는 긴 나무의자에 앉아 일회용 접시에 음식을 가득 담아 먹고 있다.

그 나무의자 한쪽에 걸터앉았다. 그동안 그냥 지나치느라 못 봤는데 벽에는 일본어와 한국어로 된 메뉴가 빼곡하게 적혀져 있다. 저 많은 요리를 혼자서 한단 말인가. 비빔면과 김치국수, 김치볶음밥을 시켰다. 가격은 20루피에서 22루피 사이, 500원도 안 된다.

아저씨가 조리기구 늘어놓은 곳으로 가더니 성냥을 켜서 곤로같이 생긴 가스레인지에 불을 켠다. 곤로가 하나라 요리도 하나씩 차례로 해야 하지만 아저씨는 능숙한 솜씨로 척척 요리를 만들어낸다.

요리 세개를 차례로 내어온 아저씨는 옆에 앉아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자기 얘기를 풀어놨다. 한국인 친구한테 한국요리를 배워서 길거리에서 시작했는데 한국 사람들이 다들 너무 맛있다고 칭찬해줘서 너무 기쁘다는 것이다. 그 한국 친구는 지금 한국에서 고추장도 부쳐준단다. 그러고 보니 선반에 순창고추장이라는 딱지가 붙어있는 용기가 눈에 띈다.

콜카타에서 400루피짜리 신선로도 먹어봤고 200루피가 넘는 탄두리치킨도 먹어봤다. 그러나 20루피짜리 아저씨의 음식에 비할데가 못 됐다.

땀 뻘뻘 흘리면서 편하지도 않은 긴 나무의자에 앉아 먹은 길거리표지만, 콜카타에 와서 먹은 어떤 저녁보다도 맛있었다. 맞은편 나무 그늘 아래 인력거를 세워놓고 낮잠을 자는 릭샤왈라가 더욱더 여유를 느끼게 했다.

왜 이 맛을 늦게 알았을까 후회하면서 서둘러 기차역으로 향했다. 기차 안에서도 그 맛이 계속 입안을 맴돌았다.

한국에 돌아와 인도 여행정보를 얻었던 인터넷 카페에 "콜카타에 가면 셔더스트릿 중간쯤에 깡마른 아저씨가 하는 노점 음식점 꼭 먹어보삼...강추!!" 하고 한줄 올렸다. 
 


▲ 콜카타 셔더스트릿에서 늘 음식을 팔던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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