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에 핀 '사군자'…홍콩 물들인 '무용한류'

국립무용단 '홍콩예술축제' 초청공연 '묵향'
26·27일 이틀 공연 전석 매진
절제된 몸짓으로 '매란국죽' 표현
세계 각지 관객 1100명 박수갈채
"우리 메시지 세계에 통한 의의"
  • 등록 2016-03-01 오전 6:16:00

    수정 2016-03-01 오전 6:16:00

‘제44회 홍콩예술축제’에서 초청공연을 펼친 국립무용단 ‘묵향’의 한 장면. 지난 26일 홍콩 완차이의 공연예술아카데미 내 리릭극장에는 세계 각지에서 모인 1100여명의 관객이 한국서 건너온 ‘전통춤의 향기’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사진=국립극장).


[홍콩=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화선지를 연상케 하는 새하얀 무대. 한폭의 수묵화를 그리듯 우아한 무용수의 몸짓이 공간을 채웠다. 도포에 상투를 튼 12명의 남자 무용수는 힘있는 춤사위로 시작을 알렸고, 고운 색감의 한복으로 시선을 압도한 여성 무용수들은 섬세한 손놀림과 발디딤으로 ‘매란국죽’(梅蘭菊竹)의 향기를 극장 가득히 퍼뜨렸다. 이른 봄의 추위를 무릅쓰고 피어나는 매화와 겨울에도 푸른 잎을 유지하는 대나무 등을 춤으로 그려낸 한국 ‘사군자’의 멋을 각국에서 온 관객들은 숨죽여 지켜봤다.

지난 26일 홍콩 완차이의 공연예술아카데미(APA) 내 리릭극장.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무용단의 ‘묵향’(墨香)이 끝나자 1143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냈다. 21명의 무용수와 총연출을 맡은 디자이너 정구호, 안무가 윤성주가 무대에 올라 인사를 하자 박수소리는 더욱 커졌다. 공연이 끝난 후 로비에서 만난 70대 노부부는 한국에서 건너온 예술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독일 출신의 울라(70) 씨는 “남편이 한국에 관심이 많아 이전에도 한국공연을 본 적이 있다”며 “이번 공연은 음악과 춤, 의상 모두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멋진 무대였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이틀 공연 전석 매진…“세련·심플한 무대 인상적”

2월 19일 막을 올려 오는 20일까지 여는 ‘제44회 홍콩예술축제’(Hong Kong Arts Festival)는 세계의 유명예술가를 만나볼 수 있는 홍콩의 대표적인 문화행사다. 교향악, 영화, 발레, 경극, 재즈콘서트, 연극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약 한달 간 한자리서 만나볼 수 있다. 축제에 초청받은 국립무용단의 ‘묵향’은 지난 26일과 27일 이틀간 무대에 섰다. 2회의 공연은 모두 매진됐고, 유료 객석점유율도 90%를 넘어섰다.

안호상 국립극장장은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홍콩예술축제’에 한국무용이 초청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세계 각국의 관람객이 몰리는 축제인 만큼 한국예술을 세계적으로 알린 데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제44회 홍콩예술축제’에서 초청공연을 펼친 국립무용단 ‘묵향’의 한 장면. 지난 26일 홍콩 완차이의 공연예술아카데미 내 리릭극장에는 세계 각지에서 모인 1100여명의 관객이 한국서 건너온 ‘전통춤의 향기’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사진=국립극장).


‘묵향’은 한국의 전통무용과 음악에 현대적인 요소를 가미한 작품. ‘사군자’로 불리는 ‘매란국죽’을 사계절에 맞춰 무대 위에 형상화했고, 서무·매화·난초·국화·오죽·종무 등 총 6장으로 구성했다. 국내서는 무용가이자 안무가였던 최현의 유작인 ‘군자무’를 재창작해 2013년 첫선을 보였다. 지난해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해 일본 초청공연으로 진행했고, 이번 홍콩에 이어 오는 6월엔 프랑스 리옹에서 열리는 레뉘드 프루비에르 페스티벌에서도 초청공연을 펼친다.

이날 공연이 끝난 후 진행한 ‘관객과의 대화’에는 100여명의 관객이 객석에 남아 공연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냈다. 중국에서 왔다는 한 중년 여성은 “작품이 매우 세련되고 우아하고 심플했다”며 “어렸을 때 먹물을 써서 글씨를 썼던 기억을 회상할 수 있는 시간이 됐다. 공연을 보며 정말 그때의 먹향이 나는 것만 같았다”며 울먹였다.

△절제미·무대미학…“무용 한류 기대”

국립무용단 ‘묵향’의 공연 모습(사진=국립극장).
이날의 공연은 기본에 충실한 한국 전통춤의 절제미는 물론 계절의 변화에 따라 형형색색으로 물드는 무대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한국춤의 맛과 멋을 잘 살려내는 윤성주와 탁월한 디자인 감각을 지닌 정구호가 만난 결과다. 두 사람은 작품을 깊이 있게 이해해준 해외관객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정 연출은 “특히 해외공연에서 매진이 되니 감회가 새롭다”며 “우리의 메시지가 세계에 통했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싶다”고 말했다.

‘사군자’를 표현하는 안무가의 선택은 탁월했다. 해금의 중저음에 맞춰 여성 무용수들은 늦가을 추위를 이겨내는 국화의 꿋꿋함을 보여줬고, 2~3m의 장대를 들고 나타난 남성무용수의 군무는 대나무의 올곧은 기개를 느끼게 했다. 윤 안무가는 “눈밭 속에 움을 틔운 매화 한송이가 여러 개의 꽃으로 피어나는 2장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라며 “한국무용은 숨쉬기가 중요한데 이번 공연처럼 무용수의 호흡이 관객과 동화됐을 때 말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말했다.

의상과 몸짓에 맞춰 서서히 채워지는 무대미학도 돋보였다. 샛노란 치마를 입은 무용수의 춤사위를 따라 노란색 국화가 사방에 퍼지고, 녹색 저고리의 남녀무용수가 난초를 그릴 땐 초록의 수많은 선이 무대를 수놓았다. 정 연출은 “무용수의 춤, 색깔 등 한국무용의 뿌리와 핵심을 추출해 모던하고 상징적인 형태 안에서 부각하고자 했다”며 “K팝, K무비도 유명하지만 한국에는 훌륭한 공연예술이 많이 있다. 한국적인 미학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더 많은 세계인에게 소개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제44회 홍콩예술축제’에서 초청공연을 펼친 국립무용단 ‘묵향’의 한 장면. 지난 26일 홍콩 완차이의 공연예술아카데미 내 리릭극장에는 세계 각지에서 모인 1100여명의 관객이 한국서 건너온 ‘전통춤의 향기’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사진=국립극장).
총연출을 맡은 디자이너 정구호(오른쪽)와 안무가 윤성주(사진=국립극장).
국립무용단 ‘묵향’의 공연 모습(사진=국립극장).
국립무용단 ‘묵향’의 공연 모습(사진=국립극장).
국립무용단 ‘묵향’의 공연 모습(사진=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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