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대상이 '고객'…'매도' 말했다간 거래 끊기고, '중립'도 눈치 보여

거래 중단에 탐방 기회도 박탈…'매도'는 금기어
기업, 종목 분석 대상이자 고객사 '딜레마'
IT·조선 등 규모 큰 업종 투자의견에 예민
"서비스로 껴주기 대신 철저히 비즈니스 관점에서 제공해야"
  • 등록 2022-11-24 오전 5:15:00

    수정 2022-11-24 오전 5:15:00

[이데일리 안혜신 양지윤 기자] “애널리스트가 제시한 투자의견은 이제 못 믿겠어요. 작년 이맘때 23만~24만원으로 목표가를 제시하고선, 이제 와서 ‘매도’ 의견도 없이 6만~7만원이라니요.”

컴투스 주주 A씨는 “애널리스트들이 양심이 있는 건지 의문이 든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지난 16일 한 증권사가 목표주가를 6만5000원으로 기존 11만원에서 40.9%나 하향 조정했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은 불과 1년 만에 목표주가를 최대 70% 이상 낮추면서도 매도 의견은 내놓지 않았다. 이날 컴투스 주가는 장중 6만5600원까지 올라 목표주가를 넘어섰고, 종가 기준 상승여력은 1%대에 쳤다. 주주들은 사실상 매도하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매도’ 금기 깼다간…거래 중단에 탐방 기회 박탈 ‘후폭풍’

올해 국내외 증시가 역대급 하락장을 맞았지만 증권가에서는 여전히 매도 리포트를 찾아보기 힘들다. 손절 시기를 놓치거나 증권사의 부정적 리포트로 주가가 떨어진 투자자들이 너도나도 “무책임하다”며 아우성을 치는 것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내 증권사들의 리포트가 한결같이 ‘매수’ 일색인 이유는 연구원들의 독립성을 보장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증권사 입장에서 기업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존재다. 분석 대상인 동시에 고객사이기도 하다. 특히 기업금융(IB) 부서는 기업공개(IPO), 주식·채권 발행, 인수합병(M&A) 등 기업을 상대로 영업활동을 한다. 증권사 수익의 상당 부분이 IB 사업부에서 나오는 만큼 기업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은 일종의 자해 행위로 여겨진다. 더구나 리포트를 발간하는 리서치센터의 경우 증권사 내부에서 돈을 쓰는 ‘비용부서’이다보니 안팎의 입김에 더욱 취약하다는 평가다.

연구원 입장에서도 ‘득’보단 ‘실’이 많다는 항변이 나온다. 매도 리포트를 발간하면 해당 기업들로부터 탐방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은 물론 정보 수집도 제한된다. 실적 추정과 분석은 해당 업체의 기업설명(IR) 담당자와 꾸준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확보한 정보를 기반으로 이뤄지는데, 매도 의견을 내면 업체 담당자가 소통을 거부하는 게 다반사다. 애널리스트의 눈과 귀가 막혀 기업 분석이 아예 불가능해진다는 얘기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매도 의견을 내면 기업 출입 금지 뿐만 아니라 회사와 대출 등 기존 거래도 다 끊어버리기 때문에 내부에서 연쇄적인 갈굼(괴롭힘)을 당할 수 있다”면서 “‘중립’ 의견을 내더라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 그조차도 쉽지 않다”고 푸념했다.

한 고참급 연구원은 “특정 산업을 오래 맡은 시니어들은 해당 기업과 오랜 기간 관계를 형성해 그나마 ‘중립’ 의견을 내는 것은 가능하다”면서 “다만 보고서가 나오기 전 업체에 미리 연락해 귀띔을 해야 서로 껄끄럽지 않게 넘어갈 수 있다”고 털어놨다.

분석 대상이자 고객사 ‘딜레마’…결국, 콘텐츠의 문제

정보기술(IT)과 조선, 철강 등 업종에서 시장 점유율이 높은 기업들이 투자의견에 민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너의 입김이 강한 기업들도 여의도발(發) 리포트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사례가 왕왕 있다는 게 증권가 전언이다. 개인 투자자들의 반발도 연구원들이 움츠러들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종목 투자자들로부터 협박성 전화가 쏟아지는 것은 물론 지점 영업장의 경우 고객 이탈을 각오해야 한다.

이 같은 복잡한 사정으로 인해 투자의견은 뒷북 조정이 되기 일쑤고, 이로 인해 투자자들의 불신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최근 투자의견이 조정된 카카오페이(377300)가 대표적인 예다. 씨티증권은 지난달 초 실적 악화를 예상하며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매도로 과감하게 낮췄다. 반면 국내 일부 증권사들은 중립이나 ‘언더퍼폼(시장수익률 하회)’ 의견을 내는 데 그쳤다. 완곡한 매도 의견이다. 투자자들에게 눈치껏 대응하라고 신호를 주되 해당 기업으로부터 면죄부를 얻는 꼼수를 부린 셈이다.

한 개인 투자자는 “국내 증권사들은 주가가 하락 추세를 보이거나 급락할 때 뒤늦게 뒷북치듯 투자의견을 내기 때문에 무시하는 편”이라며 “오죽하면 증권사에서 매수 의견이 나올 때 팔아야 한다는 말이 나오겠느냐”고 꼬집었다.

낙관론 일색인 보고서 관행을 깨기 위해서는 콘텐츠에 제값을 쳐주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증권사의 리포트는 고객들에게 서비스 차원에서 무료로 배포하는 일종의 미끼 역할을 한다. 반면 해외 증권사의 경우 투자자들이 비즈니스에 콘텐츠를 활용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유료로 제공한다. 물론 국내 증권사의 보고서는 시장의 정보 비대칭성을 일부 완화해주는 순기능도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콘텐츠는 질이 담보되지 않아 보고서 전반에 대한 신뢰도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매수, 매도 의견과 무관하게 기업분석을 잘한 보고서에 인센티브를 주고, 콘텐츠를 유료로 전환해 연구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면서 “해외처럼 독립리서치를 활성화시켜 문화도 함께 바꿔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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