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주식회사 소림사’

무술 공연·브랜드 마케팅·제약·식품업 등 수익 사업
수입만 1000억원대 넘어서..스융신 방장 주도로 해외 진출 등 사세 확장
  • 등록 2006-10-22 오전 11:12:38

    수정 2006-10-22 오전 11:12:38

[조선일보 제공] 소림(少林), 무당(武當), 아미(峨嵋), 태극(太極), 형의(形意), 팔극(八極), 팔괘(八卦), 천계곤(天啓棍)…. 중국 허난(河南)성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 중국 무림의 12개 문파에서 온 장문인과 대표들이 모였다. 고대 무협소설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9월 9일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 지난 3월 소림사를 찾은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승려들의 무술을 구경하고 있다.
이날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36명의 쿵푸 수련생은 9일간의 ‘폐관수련(閉關修練·사찰의 문을 걸어 잠그거나 동굴 등에 틀어박혀 하는 수련)’을 마치고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중국 6개 도시와 미국·러시아·프랑스·이탈리아·독일·호주 등 6개국에서 예선을 거쳐 선발된 쿵푸 고수들. 소림사가 광둥(廣東)성 선전 위성텔레비전방송국과 손잡고 진행하는 ‘중국 쿵푸스타 세계TV대회(中國工夫之星全球電視大賽)’에 참가한 선수들이다.

지난 3월 말부터 시작된 이 대회에는 세계 40여개국에서 수천 명의 쿵푸 선수들이 예선에 참가했다. 지역 예선을 뚫고 본선에 오른 36명은 소림사 폐관수련 기간 동안 ‘역근경(易筋經)’과 ‘세수경(洗髓經)’ 등 소림사 비전 무술도 배웠다.

대회는 무술대결로 승부를 가리지 않는다. 겨루지만 다투지 않는 ‘쟁이불투(爭而不鬪)’ 방식으로 대회를 진행한다. ‘쟁이불투’의 대회 방식은 이유가 있다. 무조건 쿵푸 실력이 최고인 고수를 뽑는 게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회 우승자는 소림사가 직접 제작하는 TV 드라마 ‘소림사 승병 이야기’와 미국 할리우드에서 제작할 ‘신소림사’에 캐스팅될 예정이다. 쿵푸 실력 못지 않게 시청자와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는 준수한 외모와 개성 등 스타성이 중요한 것이다. 소림사는 ‘신소림사’ 영화에 1억5000만위안(약 180억원)을 투자할 뿐 아니라 해외로부터도 투자를 유치해 블록버스터급 영화로 제작한다는 계획이다.

지금까지 6개월간 진행된 대회는 흥행 면에서 대성공이다. 36명의 폐관수련 모습은 미국 CNN과 일본의 NHK 등 세계적인 TV채널이 방송하면서 해외 흥행에도 큰 성과를 올렸다. 게다가 선전 위성TV가 앞으로 최종 우승자를 결정하는 과정을 리얼리티쇼 방식으로 방송할 예정이어서 본격적인 흥행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소림사가 이 행사에 지출한 비용은 1500만위안(약 18억원). 그러나 아직 결승전을 마치기도 전에 벌어들인 수입이 2000만위안(약 24억원)을 넘어섰다. 결승전은 TV 리얼리티쇼로 진행하면서 시청자들도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투표를 통해 우승자 선발에 참여시킬 계획이다. TV 리얼리티쇼 광고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수입까지 포함할 경우 대회 수입은 훨씬 더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짭짤한 수익 사업을 기획하고 진행한 주체는 ‘소림사 문화전파 주식회사’. 소림사가 전액 출자한 회사다. 이 회사는 소림사 브랜드를 이용해 각종 문화 수익사업을 담당한다.

소림사는 이 회사뿐 아니라 산하에 식품·제약·브랜드관리 등 다양한 영역에서 모두 6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1998년 무승단(武僧團)의 무술공연을 담당하는 ‘소림사 실업발전 주식회사’를 처음 발족한 데 이어 채식주의자를 겨냥해서 소림사 선식을 제품화하는 식품회사, 선차(禪茶)회사, 소림약국을 잇따라 세웠다. ‘소림사’ 브랜드를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브랜드 관리 회사도 별도로 만들었다. 소림사는 여러 개의 자회사를 문어발처럼 거느린 지주회사인 셈이다.

소림사는 브랜드 관리 자회사를 통해 이미 29개 분야에 100여개의 ‘소림사’ 상표권을 갖고 있다. 자회사들은 이런 ‘소림사’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마케팅에 나선다. 예컨대 소림약국은 소설가 진융(金庸)의 소설에 나오는 ‘환혼탕(環魂湯·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는 약)’과 소설 속의 상처치료 명약인 ‘금강대력환(金剛大力丸)’ 등을 상품화할 계획이다. 현재 인터넷을 통해 시험적으로 자체 제작한 약을 팔고 있는 소림약국은 “수백 년간 전해 내려온 소림사 ‘비방(秘方)’으로 약을 만들었다”고 강조한다.

소림사의 수입 규모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수천억원대에 달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관광객으로부터 벌어들이는 수입만 해도 만만찮다. 소림사가 위치한 덩펑(登封)시의 5개 유명 관광지가 지난해 벌어들인 관광수입은 12억위안(약 1440억원). 그 중에서 절반인 6억위안(약 720억원)이 소림사와 관련된 수입으로 나타났다.

덩펑시 정부는 지난 8월 소림사가 시 관광수익 증대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소림사 방장인 스융신(釋永信) 스님에게 1억원이 넘는 폴크스바겐 SUB 차량을 제공했을 정도이다. 여기에다 자회사가 벌어들이는 수입까지 감안하면 소림사 전체 수입 규모는 1000억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소림사는 중국 내에만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인 ‘저우추취(走出去·해외 진출)’ 전략을 추진한다. 1988년 프랑스 파리시의 초청을 받아 처음으로 스님을 파견, 해외 마케팅에 나섰다. 해외 마케팅의 선봉 역할은 ‘소림 무승단(武僧團)’이 맡는다.

무승단은 1988년부터 해외공연을 시작해 지금까지 60여개국서 무술공연을 펼쳤다. 소림무승단은 해외 1회 공연 때마다 1만달러 가량을 벌어들였으나 최근에는 소림 무승단을 본뜬 ‘가짜 무승단’들의 공연이 많아 5000달러 수준으로 줄었다고 한다.

미국·영국·독일 등 세계 10개국에는 소림사 문화센터를 두고 있으며 20여개국에는 소림사 무승을 상주시켜 소림무술과 소림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소림사는 지난 8월 호주에 12만㎢ 규모의 땅을 매입했는데 이곳에 대형 소림무술문화센터를 건립할 계획이다.

공산화 이후 은둔의 사찰로 남아있던 소림사가 최고의 경영실적을 올리는 ‘주식회사 소림사’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것은 탁월한 CEO 스융신(釋永信·41) 방장이 있기 때문이다. 소림사 자회사 설립과 각종 수익 사업은 대부분 그가 소림사 주지와 방장을 맡고 난 뒤 주도한 것이다.

소림사는 1980년대 초만 해도 10여명의 스님이 28마지기 땅에 의존해 근근이 생활하는 무너져가는 사찰이었다. 스융신 방장은 16세이던 1981년 소림사로 출가해 6년 뒤인 1987년 주지를 맡았다. 그가 주지를 맡았을 때는 여건도 좋았다. 1982년 ‘소림사’라는 영화가 개봉된 이후로 잊혀져 가던 소림사와 소림사 무술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본격적인 소림사 ‘경영’에 나섰다. 해외에 소림사 승려들을 파견한 것은 물론이고 무승단을 조직해 소림사를 찾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무술공연을 펼쳤다.

선진 경영기법 도입에도 적극적이었다. 중국에서 인터넷 보급이 거의 초보 단계이던 1996년 심산고찰이던 소림사의 홈페이지를 직접 개설했다. 그는 “홍콩에서 사가지고 온 디지털카메라로 소림사 사진을 찍어서 홈페이지에 올렸는데 한 끼 식사를 다 마치는 시간 동안 사진 한 장 올리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인터넷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드물었던 그 당시에 소림사 홈페이지를 개설한 이유에 대해 그는 “세계 어느 곳에서든 소림사와 연결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브랜드의 중요성을 일찍 깨닫고 ‘소림사’ 브랜드 관리 전문회사를 설립한 것도 남다른 경영감각이다. 이 회사를 통해 그는 ‘소림사’ 브랜드를 사용하던 독일과 일본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해 승소한 적도 있다.

그의 일과도 여느 주지나 방장과는 다르다. 새벽에 일어나 경을 외는 것까지는 일반적인 스님의 모습이지만 아침 식사 이후의 시간은 완벽한 CEO의 일과다. 중국 언론에 소개된 지난 8월 23일 그의 오후 일과를 보자. 한국과 프랑스에서 찾아온 손님을 맞았으며 덩펑시 국제여행사 사장과 관광사업 문제를 논의했다.

이후 정저우(鄭州)시 문화국장, 칭화대(淸華大) 건축과 교수와 500만위안(약 6억원)을 들여 탑림(塔林ㆍ탑이 모여있는 지역)을 보수하는 문제를 의논한 뒤 어두워지자 다시 다른 손님을 만나러 시내 모처로 향했다.

그는 CEO의 책무라고 할 수 있는 인재 양성에도 소홀하지 않는다. 과거 소림사 승려 교육은 농사와 경전 학습에 그쳤으나 지금은 지리와 역사뿐 아니라 영어 교육까지 진행한다. 소림사의 세계화를 위해 일부 승려에게는 경영학석사(MBA) 교육까지 시키고 있다.

소림사의 기업적인 성공에 대한 칭송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소림사의 지나친 세속화·상업화에 비판적인 여론도 적지 않다. 덩펑시가 스융신 방장에게 1억원대 SUV 차량을 선물했을 때 네티즌이 “출가한 승려가 호화 차량에 욕심을 부린다”고 들끓었던 것은 ‘주식회사 소림사’에 대한 여론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방증한다.

평론가 왕다웨이(王大衛)는 “소림사의 상업적인 성취의 원천은 깨끗한 마음으로 수련·참선하며 무술을 익혀 몸을 단련하고 심령을 도야하는 선(禪)과 무(武)의 결합에서 온 것”이라고 말한 뒤 “그러나 최근 소림사의 현대적인 변화는 소림사의 근본마저 배반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소림사의 근본이 희미해지고 엔터테인먼트회사나 공연단체와 다를 바 없어진다면 ‘소림무술’이 무엇으로 외국인에게 어필하겠느냐는 지적이다.

비판적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스융신 방장의 신념은 확고하다. 그는 “‘현대 종교는 신앙이라는 상품을 제공하는 것’이라는 미국 종교학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라고 말한다. 그는 또 “소림사는 마땅히 기업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면서 “사회에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생각을 견지해야만 더 잘 생존할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물론 소림사의 기업 이념은 일반 기업과는 다르다. 스융신 방장은 “우리는 경영이라는 방식을 통해 소림문화를 전파하는 데 중점을 둔다”라고 말한다. 예컨대 채식 식품회사를 운영하는 것도 소림 문화 전파의 일환으로 설명한다. 맥도날드·코카콜라가 미국 문화의 첨병 역할을 하듯 소림사 선식으로 소림문화를 전파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주식회사 소림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에 대해 “실질적인 일을 해본 사람만이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독경과 참선수행이 아닌 실사구시적인 사업으로 중생 속으로 뛰어든 소림사를 대변한 말이다. 그래서 ‘주식회사 소림사’는 사회주의 이념은 점점 퇴색해가고 ‘샹첸저우(向錢走·돈을 향해 나아간다)’에 혈안이 돼 있는 중국식 자본주의의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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