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이 북한에 없는 까닭[땅의 이름은]

위치 드러내기 제격이라 흔한 '동서남북' 지명
행정 편의적이고 일방적으로 읽히지만 직관적이라 쉬워
방위의 기준이 되는 주체는 절대권력자 왕이 대부분
  • 등록 2023-08-26 오전 9:05:00

    수정 2023-08-26 오전 9:05:00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동네 이름을 지을 때는 사방을 가리키는 ‘동서남북’이 만만하게 붙는다. 지명(地名)은 생래적으로 위치를 드러내야 하기에 동서남북이 제격이다. 동해시와 남해군이 동쪽과 남쪽 바다에 면한 지역이라는 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서울 한강을 중심으로 강동과 강서, 강남, 강북의 구도 마찬가지.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미국의 사우스·노스 캐롤라이나, 일본의 홋카이도(북해도), 중국의 하이난(해남)도 비슷하다.

북한산 백운대.(사진=서울관광재단)
서울 시내 주요 지명을 예로 들면, 종로구 교남동과 교북동은 돌다리 남북에 있다고 해서 지었다. (이 다리를 흐르던 만초천은 복개돼 자취를 감췄다.) 서대문구 북가좌동과 남가좌동은 가좌리를 위아래로 나눈 것이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延南洞)은 분가하면서 이름을 얻은 사례다. 애초 서대문구 연희동(延禧洞)에 속했다가 1975년 떼어져 나왔다. 이름이 필요했는데 연희동 남쪽에 있던 지역이니 연남동이라고 이름 붙였다. 다소 행정 편의적인 작명이지만 복잡하지 않아 쉽다.

주요 시설은 방위의 기준이 된다. 중구의 북창동(北倉洞)은 조선 시대 선혜청(쌀을 공물로 거둬들이는 관청)의 북쪽 창고가 있던 지역이다. 곡식이 쌓이는 곳이라고 해서 부촌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중구 남학동(南學洞)은 조선 시대 사부학당(四部學堂) 가운데 하나인 남부학당(南部學堂)이 있던 곳이다. 법정동으로서 남학동은 행정동으로는 필동(筆洞)에 속한다. 지명에 붓(筆)까지 넣은 데에서 이 지역 학구열을 짐작해볼 수 있다.

용산구 서빙고동과 동빙고동은 조선 시대 얼음을 저장하던 장소가 동서로 나뉘었던 게 지금 지명에까지 이르렀다. 얼음을 조달하는 곳이니 한강 변이라는 걸 유추해볼 수 있다. 성북구 성북동(城北洞)은 조선 시대 어영청의 북둔(北屯·북쪽 부대)이 있어서 이름 지었다. 어영청은 도성을 방어하고 왕을 호위하는 부대였다. 공교롭게도 중구 북창동과 이름이 같은 시설이 성북동에도 있었다. 북둔의 군량을 보관하던 시설이었다.

이밖에 용산구 한남동은 한강과 남산의 앞글자를 땄다. 남산은 한양의 남쪽에 있는 산이라는 의미이니 한남동은 한강과 사이에 놓였다. 성북구 동선동(東仙洞)은 같은 구의 동소문동과 삼선동에서 동과 선을 따서 각각 지었다. 동소문은 서울 동쪽 혜화문의 속칭이다.

기계적으로 지은 지명은 시비의 대상이 되곤 한다. 서울 용산구 남영동은 한양 남쪽에 군영(軍營)이 있어서 지은 이름이다. 구전으로는 조선 시대 군사훈련을 하던 장소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군영은 일제가 조선을 침략하고 난 뒤로는 일군이 주둔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남영동 지명을 일제 잔재로 여긴다. 해방 이후 남영동에는 미군 용산기지가 들어섰다.

서울 종로구 경복궁 일대.(사진=연합뉴스)
사방을 붙이는 지명은 권위적이고 절대적인 측면이 있다. 지명을 짓는 주체가 어디 위치하는지에 따라 사방이 결정되는 탓이다. 따라서 지명을 따져보면 이 동네가 절대자로부터 얼마나 가까운 데에 있었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서울 종로구(鐘路區)는 조선 시대 종루(鐘樓·‘종각’으로도 불림)가 세워져 있었던 곳이라는 데에서 지명이 붙었다. 종루는 도성을 여닫고 인정(人定·통행금지)과 파루(罷漏·통행해제)를 알리는 종이다. 당시 시간과 통행 통제는 절대자의 권한이었다. 종로는 한양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대부분 지명은 절대자가 위치하는 한양 도성을 중심으로 한다. 북한산(北漢山)과 남한산성(南漢山城)도 도성에서 봤을 때 북쪽과 남쪽에 있기에 지은 이름이다. 기준이 한국(韓國)이 아니라 한양(漢陽)이다. 관악구 남현동(南峴洞)은 남쪽에 있는 고개(峴·고개 현) 남태령에 있는 바람에 붙은 이름인데, 도성에서 바라봤을 때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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