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 의문의 1패 아닌 명백한 1패

  • 등록 2018-02-13 오전 5:30:00

    수정 2018-02-13 오전 8:05:40

[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정부가 강남과의 전쟁에서 졌다고 합니다. 강남과 전쟁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데, 의문의 1패를 당하고 있는 것이죠.”

지난달 말 손병석 국토교통부 제1차관이 오찬 브리핑에서 한 말이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책이 강남, 그 중에서도 재건축을 타깃으로 한 것으로 비치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것이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금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최대 8억4000만원이 나온다”는 자료나, “재건축은 내구연한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김현미 국토부 장관의 발언이 강남과의 전쟁으로 해석됐다. 실제 효과도 있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1월 둘째 주 1.17%까지 치솟았던 서울 재건축 아파트값 상승률은 계속 둔화해 2월 첫째 주에는 0.72%까지 낮아졌다.

하지만 길게 가지는 않았다. 서울 재건축 아파트값 상승률은 지난주 다시 0.98%로 높아졌다. 그뿐만 아니라 재건축 시장이 쉬어가는 사이 일반 아파트값은 상승에 속도를 냈다. 1월 첫째 주까지만 해도 0.26%였던 서울 일반아파트 상승률은 둘째 주에 0.45%로 뛰었고 2월 첫째 주에는 0.51%로 더 높아졌다. 이른바 풍선효과다.

의문의 1패가 아니다. 정부는 시장과의 심리 싸움에서 명백하게 패했다. 시장의 절반은 심리다. 더 오를 것이란 기대감이 있으면 투자자들은 움직이게 돼 있다.

사실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집을 왜 사나?”라고 반문하는 젊은층이 많았다. 집값이 오를 것 같지 않은데 왜 굳이 사서 대출 이자며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같은 각종 부담을 떠안느냐는 것이다. 때문에 전세값이 치솟는데도 집값은 제자리걸음이었다. 지난 2013년에는 일부 수도권에서는 같은 지역 같은 아파트의 전세값이 급매로 나온 매매가격보다 비싼 이상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다주택자들조차 이제 부동산으로 돈 버는 시대는 지났고, 집은 거주하는 공간이라는 말을 많이 했다.

그때와 비교해보면 거시 여건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작년 경제성장률이 3.1%를 기록해 모처럼 3%를 넘었지만 2013년과 2014년에도 2.9%, 3.3%였고 2015년과 2016년엔 연속 2.8%에 머물렀다. 경제가 크게 나아진 상황은 아니다. 오히려 금리는 상승세이고 대출을 받기는 어려워졌다. 세 부담은 더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 아파트값이 이렇게 오르는 것은 결국 학습효과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시즌2’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동산 규제책과 시장 흐름이 그때와 닮아있다. 지금 부동산시장에서는 “정책에 맞서지 마라”는 격언보다는 “시장 이기는 정책 없다”는 말을 더 믿는 분위기다.

앞서 의문의 1패 얘기로 돌아가면 손 차관은 강남과 싸우고 싶은 게 아니라 서민들의 주거 복지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집값은 뛰는데 대출은 막히고 금리는 오르니 집이 필요한 실수요자들은 집 사기 더 힘들어졌다. 결국 현금을 가진 자산가들만 이득을 보는 시장이다. 과도한 개입은 시장 안정과 주거 복지를 모두 놓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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