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의 눈] 돈 앞에 고개 숙인 미국

  • 등록 2016-09-14 오전 6:00:00

    수정 2016-09-14 오전 6:00:00

[뉴욕=이데일리 안승찬 특파원] 9월11일은 미국인들에게 치욕적인 날이다. 꼭 15년 전인 2001년 9월11일 오전 8시46분. 정체불명의 비행기가 뉴욕 맨해튼 세계무역센터(WTC)를 들이받았다. 110층짜리 쌍둥이빌딩인 WTC는 한시간 만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고층빌딩들이 숲처럼 빽빽하게 들어선 맨해튼은 마비됐고 3000여명이 죽었다. 9.11테러로 아들을 잃은 도시 에스포시토는 “15년이 지났지만 겨우 15초가 흐른 것 같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그날의 악몽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9.11 하루만큼은 정치인들도 정쟁을 멈춘다. 모든 정치 광고는 중단되고 비방도 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다.

민주당과 공화당 대선 후보도 추모 행사에 묵묵히 참석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행사 도중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클린턴은 사실 이틀 전 폐렴 진단을 받았다고 뒤늦게 공개했다. 9.11 추모식은 몸이 좋지 않다고 빠질 수 있는 행사가 아니다.

9.11테러가 발생한 지 15년이 흘렀지만 유독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의혹은 사라지지 않는다. 미국 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알카에다와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해 공격을 단행했지만 사우디에 대해선 어정쩡한 태도를 취했다.

9.11 테러범 19명 중에서 15명이 사우디 출신이었고 9.11테러 배후에 사우디가 있다는 의혹이 수없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미국 상원과 하원이 합동 조사한 567쪽의 방대한 9·11테러 조사 보고서에서도 28쪽이 공개되지 않자 사우디에 대한 의혹은 기름을 부은 듯 커졌다.

사라진 28쪽을 내놓으라는 요구가 빗발쳤고 결국 공개된 28쪽 보고서에는 9.11 테러범들이 미국에 머무는 동안 사우디 정부와 연계됐을 수 있는 사람들과 연락을 취하거나 그런 사람들로부터 지원을 받았을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테러와의 직접적인 연계를 입증할만한 결정적인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9.11테러 15주년에 맞춰 미국 의회는 ‘테러 행위 지원국에 맞서는 정의’라는 이름의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외국정부에 대한 소송이 면책특권을 받지만 테러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소송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사실상 사우디를 겨냥했다.

이번에도 미국 정부는 미온적인 입장이다. 백악관은 거부권을 행사할 계획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사우디와 외교적 마찰이 생길 수 있고 다른 나라에서도 미국을 소송할 수 있는 법을 만들 수 있지 않으냐는 논리를 폈다.

미국이 정작 무서워하는 건 사우디가 보유한 어마어마한 규모의 미국 채권이다. 미국 정부가 밝힌 사우디의 미국 채권 보유 규모는 1168억달러(올해 3월말 기준)다. 우리 돈으로 약 129조5896억원에 달한다. 특히 사우디가 다른 나라 은행에 몰래 넣어둔 미국 국채까지 포함하면 채권 보유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는 이 법이 도입되면 보유중인 미국 국채를 모조리 팔겠다고 대놓고 으름장을 놓는다. 세계 최대 군사력을 자랑하는 ‘슈퍼 파워’ 미국도 돈을 꿔준 채권자 사우디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꼴이다.

미국의 채무국 1위는 중국이다. 중국은 1조3000억달러의 미국 국채를 들고 있다. 우리 돈으로 1442조3500억원이다. 우리 나라의 한해 국내총생산(GDP) 전체와 맞먹는 돈이다. 최근 대선을 앞둔 미국 정치 지도자들이 중국을 향해 포문을 열고 맹공을 퍼붇고 있지만 미국에 돈을 빌려 준 중국이 정색하고 달려들면 미국은 화들짝 놀랄 수 밖에 없는 처지다. ‘돈 앞에는 장사 없다’는 말이 냉엄한 국제정치 현실에도 딱 들어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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