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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1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 브리핑실.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최종 54.15%의 지지를 얻어 1위를 거머쥔 홍준표 대선후보가 ‘도지사 꼼수 사태’와 관련된 질문을 하는 기자에게 면박을 줬다. 홍 후보 특유의 장난기와 친근감을 드러내는 표현이라 현장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일부 기자는 “홍 후보는 자기가 답하고 싶은 질문만 받는다”며 볼멘소리를 냈다.
2. “기자 여러분들 모처럼 쉬는 주말에 정말 죄송합니다.”
한국당 대선 경선이 끝난 지 꼭 보름만인 4월 15일 울산광역시청 회의실. 지역 공약발표를 하러 기자실로 막 걸어들어온 홍 후보는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대뜸 사과부터 했다. 아무리 ‘어디로 튈지 모르는’ 홍 후보라지만 이날 발언은 그를 늘 쫓아다니는 마크맨들에겐 생소한 일이었다.
90도 인사·큰절…겸손 넘어 ‘의기소침’해 보이기도
‘한국의 트럼프’, ‘핵이빨’, ‘막말의 대명사’ 홍 후보가 달라졌다.
“만약 (성완종 비리 연루 관련 재판에서) 유죄가 나온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자살하는 것도 검토하겠다”, “이 정부의 일부 ‘양박’(양아치 친박)들하고 청와대 민정 주도하에 내 사건을 만들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대통령될 일 없으니 그런 꿈 안 꿔도 된다” 등. 홍 후보는 여론의 비판은 의식하지 않는다는 듯 거칠고 비도덕적인 발언을 하루가 멀다고 쏟아냈다.
그러나 14~15일 TK(대구·경북) 유세 일정에서 홍 후보는 평소완 거리가 먼 겸손한 모습을 종종 보였다.
한 기자가 “이번 탄핵 사태 관련 대구 시민들에게 사과할 생각 없는가”라며 몰아붙일 때도 홍 후보는 “오후에 안동 유림을 만나 뵙고 큰절할 생각이다”라며 잘못을 받아들였다. 홍 후보는 실제로 이날 오후 5시 경북 유교문화교육관에서 진행된 ‘안동 유림과의 간담회’에서 유림들에게 큰절을 올렸다.
오후 4시 30분 안동 중앙신시장 상가를 방문했을 때도 상인들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몇몇 상인들과 눈을 마주치며 웃기도 했지만 대개는 진지하다 못 해 무표정이었다. 이날 마지막 일정이었던 오후 9시 대구 김광석거리에서도 보통의 홍 후보처럼 위풍당당하진 않았다. 가수 김광석씨 동상 옆에 서서 사진을 찍으라는 주변의 요구에 홍 후보는 팔로 동상 어깨를 감싸고 ‘썩소’를 지은 채 섰다. 지지자들이 “노래해, 노래해”를 연신 외쳐대도 홍 후보는 도망치듯 인파를 빠져나왔다.
물론 이날도 “당당하게 홍준표를 찍고 안 되면 같이 죽자”, “종북좌파가 싫다고 강남좌파를 찍으면 안 된다” 등 거친 언사는 나왔다. 하지만 전에 없던 ‘저자세’ 등이 일정 중간마다 노출돼 무언가 변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왜 달라졌나?
홍 후보가 겸손에서 나아가 의기소침해 보이기까지 한 가장 큰 이유로 한자릿수를 넘지 못하고 있는 저조한 여론조사 지지율을 들 수 있다.
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홍 후보는 당내 최종 경선이 있었던 3월 5주차에 지지율 4%를 기록한 뒤 보름 동안 3% 정도를 끌어올려 7%를 유지하고 있다. 이외 어떤 조사기관에서도 10%를 넘는 경우는 없었다.
“탄핵이 끝났으니 샤이(Shy)·셰임(Shame) 보수가 뭉칠 것”, “한반도 안보 위기로 국면이 전환돼 보수·우파가 절대 유리해질 것”이라고 했던 확신이 저조한 지지율로 부끄러워지고 있는 것이다. 홍 후보가 연일 계속되는 ‘막발 비판 여론’을 드디어 의식하게 됐을 가능성이 있는 지점이다.
후보의 24시간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공유하는 수행비서들도 낮은 지지율을 벗어나지 못하는 홍 후보를 안타까워했다.
홍 후보가 안동시장을 방문한 직후 한 수행비서는 “충남 대전에 있는 중앙시장에 방문했던 일주일 전만 해도 후보 자신이 굉장히 즐거워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대전에선 일정에 있지도 않은 가게에도 즉흥적으로 들어가서 상인들과 즐겁게 얘기도 나누고 엄마 따라나온 한 아이를 안아주며 저희가 봐도 (유세를) 참 잘했다”면서도 “그런데 안동에선 (상인들) 손만 한차례 잡고 놓는 등 좀 급하게 하신 면이 있다”고 했다. 그는 “아마 지지율 반등이 안 돼 그런 것 아니냐”는 말에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나 한 한국당의 핵심 관계자는 “홍 후보는 여론 비판에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다”며 부인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가 수차례 (홍 후보에게) 막말이나 폭언 등 비판의 소지가 될 만한 행동을 삼가 달라고 당부했다”며 “물론 이같은 조언을 받아들여 일시적으로 태도가 바뀔 수도 있겠지만 사람의 성격, 성정이라는 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어 “대선후보 정식 등록을 이제 막 한 상황이라 속단은 이르다”며 “다음 주인 4월 3주차 여론조사에서 분명히 반등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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