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시계요? 척 보면 알 수 있죠"

소문난 ''시계수리'' 가족, 명장 이희영씨네

  • 등록 2006-04-02 오후 12:39:54

    수정 2006-04-02 오후 12:39:54

[오마이뉴스 제공]




▲ 두 아들, 딸, 며느리와 함께 시계 수리를 하는 명장 이희영씨.
ⓒ 전득렬
10명 중 8명은 휴대폰의 시계를 보는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 시계 수리를 한다? 그것도 아버지 아들 딸 며느리까지 가족 5명이 '시계수리'에 매달린다. "손목시계를 구경하기조차 힘든데 수리할 게 어디 있느냐?"라는 질문은 천만의 말씀.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하는 시계 마니아와 명품 시계가 그들을 알아본다. 수십 개에서 수백 개에 이르는 시계 부품을 일일이 핀셋으로 집어 맞춰 넣는 시계수리 명장 이희영씨네. 시계가 줄어들면서 생긴 블루오션의 바다를 항해하는 이 가족의 꿈과 희망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라

"아버지, 저도 '시계수리'를 해 보렵니다. 시간이라는 단어가 있는 한 시계는 없어지지 않을 것 아닙니까? 시계수리가 사양 산업이라고 하지만, 아버지처럼 이 분야에서 최고가 된다면 가장 좋은 직업 아니겠습니까?"

대한민국 시계수리의 최고 장인인 명장 이희영(52·대구 달서구)씨는 둘째 아들이 시계수리를 배우겠다고 했을 때 선뜻 결정을 못 내리고 고민해야 했다. 큰아들도 시계수리를 하고 있는 터라 둘째만큼은 다른 일을 하기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의 만류와 설득도 둘째 인호씨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인호씨는 이후 아버지의 기술과 장인정신을 이어받아 지난해에 경상북도 기능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하고, 제40회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동메달을 수상했다. 그리고 최근 경북 구미 홈플러스 내에 '명품시계수리전문 구미점(스위스)'을 열어 당당히 시계수리점 사장이 됐다.

가족 중 5명이 시계수리에 올인하다


▲ 가족이 반대했지만 차남 인호(왼쪽)씨는 미래를 예견하고 시계 수리에 도전했다. 시계수리 경력 10년 차인 장남 윤호(오른쪽)씨. 아버지의 명성을 이어 시계수리'대물림'을 하고 있다.
ⓒ 전득렬
이희영 명장은 요즘 '마음 부자'가 됐다. 첫째 아들 윤호(31), 둘째 인호(29)씨에 이어 막내딸 미경(27), 그리고 둘째 며느리인 서유민(25)씨까지 '시계수리'에 합류했기 때문. 그야말로 아들·딸·며느리까지 5명의 가족이 시계를 만지는 '시계수리가족'이 됐다. 자식들이 이렇게 아버지의 뒤를 당당히 이어가고 있으니 마음이 든든하고 기쁘기 그지없는 것이다.

장남 윤호씨. 타고난 소질 있어 기계과를 졸업하고 지난 1996년 일찌감치 '시계수리기능사 자격증'을 획득했다. 이어 2002년에는 경상북도 지방기능경기대회 금메달을, 제37회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는 동메달을 획득하고 경북도지사표창 등을 받는 등 '가업 대물림'의 합격점을 받았다. 벌써 경력 10년이 넘는 베테랑. 아버지의 명성을 이어가는 데 손색이 없다는 평이다. 현재 대구 성서 홈플러스 내 '명품시계전문점본점(스위스)'에서 아버지와 여동생과 함께 일하고 있다.

차남 인호씨. 대학에서 전기를 전공한 후 '기사1급 자격증'을 땄다. 전공을 살려 관련 직종에 취업했고, 직장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았으나 사표를 냈다. 어릴 때부터 시계를 장난감 삼아서 놀았던 인호씨는 막을 수 없는 핏줄에 이끌려 뒤늦게 시계수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천부적인 재능 때문일까, 아니면 아버지와 형의 헌신적인 지도 때문이었을까? 인호씨는 휴대전화의 등장으로 손목시계를 구경하기조차 어려운 요즘, '시계수리'라는 '아날로그 기술'을 전파하는 20대의 '신세대 기술자'가 됐다.


▲ 둘째 며느리 서유민씨. 시계수리에 열중하는 남편에 반해 시계수리를 시작했다.
ⓒ 전득렬
최근 시계수리 대열에 합류한 막내딸 미경씨와 며느리 서유민씨.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내가 사용할 시계라 생각하고 수리해야 한다'는 이 명장의 철학에 따라 시계수리의 상담, 접수부터 시계수리의 기본이 되는 시계 줄 교체, 전지 갈기 등의 일부터 배우고 있다.

며느리 서유민씨는 "손목시계의 착용은 많이 줄었지만 명품시계와 브랜드 패션시계의 착용은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명품시계는 마니아가 꾸준히 늘고 있으며, 수리를 위해 멀리 타지방에서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택배로 수리를 맡겨 오는 것을 보면 명품시계를 제대로 수리하는 곳이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짝퉁시계 1위 롤렉스, 척 보면 알 수 있죠

"짝퉁시계요? 척 보면 알 수 있죠. 선물 받은 시계라 하면서 '진품'인지 '짝퉁'인지 감정해 달라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함부로 진위를 가리지는 않습니다. 선물한 사람의 성의가 훼손될 우려가 있고, 또 구입한 곳과 뜻하지 않게 마찰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죠."


▲ 짝퉁시계 1위 롤렉스. 척 보기만 해도 진위를 가릴 수 있다. 왼쪽이 짝퉁, 오른쪽이 진품이다.
ⓒ 전득렬
우리나라에서 명품시계라 불리는 것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시계는 '롤렉스'. 그만큼 짝퉁도 많다고 한다. '짝퉁시계'의 대부분은 국적 불명의 '미아시계'들이다. 대부분 외국 출장과 여행지 등에서 구입한다고 한다. 한국에서 구입한 경우는 짝퉁인 것을 알지만 싼 가격 때문에 사게 됐다는 사람이 대부분. 짝퉁시계들은 조잡해서 '척' 보기만 해도 바로 알 수 있다. 그러나 간혹 아주 정교한 모방품들을 볼 수 있는데 이런 것도 만져 보기만 하면 바로 진위를 가릴 수 있다.

반면, '진품'은 내구성이 있어 30년이 지나도 '이름값'을 한다고 한다. 명품의 중고 가격은 그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50만 원부터 300만 원까지 호가한다고. 명품시계를 선호하는 이유는 브랜드 특유의 디자인과 탄탄한 내구성, 그리고 고품격을 유지하기 위해 한정 생산을 하기 때문이다.

고가의 명품시계는 시계의 내·외부에 하나뿐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고유번호가 새겨져 있다. 자동차의 차대번호와 엔진번호처럼 그 고유성과 명성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때문에 명품시계를 수리할 때는 접수증에 반드시 고유번호를 확인해 주고 기록을 남긴다. 다른 시계(짝퉁)와의 차별성을 확인시켜주고 혹, 가격이 다른 것과 바뀌지 않게 일일이 확인해 '믿음과 신뢰'를 심어 준다고 이 명장은 설명한다.

장롱 속 시계, 멈춰 있다면 수리하라


▲ 한때 '시계는 고가'라는 등식이 사라졌지만 지금은 명품이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 전득렬
시계가 귀하던 60~70년대는 시계를 착용하는 것 자체가 자랑스러운 시대였다. 80년대부터 시계 착용 인구가 많아지면서 그만큼 수리도 많아져서 시계업계는 황금기를 맞았다. 그러나 80년대 후반부터 시계수리업은 내리막길로 돌아섰다. '태엽'을 돌려 시계를 움직이던 시대에서 '전지'를 사용해 시계가 돌아가게 하는 일명 '전지시계'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또 만원 안팎의 저가 '일회용시계'가 넘쳐나면서 고장 난 시계를 수리해서 다시 사용하는 시대는 끝나는 듯 보였다. 시계를 맡기고 술을 마시던 낭만의 시대도 가고, '시계=고가품'이라는 등식마저 사라졌다. 이와 함께 '시계수리점'도 노을 속으로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이 명장은 가장 어려웠던 그때를 떠올리며 그래도 시계수리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오늘이 있었음을 확신한다고 말한다. 시계 전지만 갈아주며 겨우 전전하던 시계수리업자들도 하나 둘씩 문을 닫고 폐업할 때 그는 이미 '전지시계의 짧은 운명'을 예견했다고.

그의 예상대로 2000년부터 전지시계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기계식 시계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시계 판매와 수리업이 부활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시계수리점이 사라졌고 예전에 비해 10%도 안 되는 시계수리점은 귀한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 명품시계의 전문수리를 위해 소문을 듣고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 전지가 닳은 시계가 장롱 속에 잠자고 있다면 빨리 전지를 갈아주는게 좋다.
ⓒ 전득렬
"명품시계들이 태엽을 감아서 '시계 밥'을 주는 '기계식'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고 이 명장은 설명한다. 명품 브랜드 중에도 태엽이 아닌 '전지'를 넣어서 시곗바늘이 돌아가는 시계가 생산되기는 했지만 기계식 생산 비율은 꾸준히 유지됐다고 한다.

전지식 시계는 전지가 닳아서 시계가 멈추면 그대로 버려두지 말고 빨리 새 전지로 갈아 끼우라고 조언한다. 시계가 멈추면 전지에 남아 있는 전지의 액이 흘러내려 시계의 작은 부품들이 하나 둘씩 부식되어 시계 전체를 못 쓰게 되기 때문이다. 전지만 갈면 움직이는 시계를 그냥 방치해 뒀다가 시계 전체를 수리하게 되면 부품 비용과 수리비용이 만만치 않게 든다.

후진양성 위한 나의 길, 나의 꿈

경북 의성이 고향인 이 명장은 그곳에서 28년간 '정시당'이라는 시계점을 운영하며 시계수리와 판매업을 했다. 이후 2002년 대구 성서 홈플러스 오픈과 함께 자리를 옮겼다. 기능대회의 메달을 휩쓸며 수많은 종류의 명품시계를 해체하고 조립했던 지난 35년의 세월. 그 시간은 생애 최고의 훈장인 '명장'의 칭호를 부여했지만 그에게는 한 가지 걱정이 남아있다.

"시계에 생명 불어 넣어 줄 '시계수리 기술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시계의 종류와 형태가 다양해지고 복잡해질수록 시계 앞에 앉아 묵묵히 연구하며 기술을 전수해 갈 젊은이들이 없습니다."


▲ "많은 젊은이들이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가 가야할 길"이라고 이 명장은 말한다.
ⓒ 전득렬
깨알 같은 부품을 현미경을 통해 들여다보고, 핀셋으로 집어 분해·조립하는 일이라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는 게 이 명장의 설명. 배우려는 사람이 없으면, 기술 전수도 어려워지고 우리나라 시계수리 기술의 발전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다행히 그의 두 아들이 기술을 배워 기능대회에 입상하는 등 대물림을 하고 있지만 대중적으로 발전시키기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차남 인호씨는 "시계수리는 고장의 정도에 따라 부품제작과 조립에 온 신경이 곤두설 만큼 많은 집중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꼼짝도 않던 시계가 내 손을 거쳐 바늘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그 생명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면 그 보람도 매우 크다"고 덧붙였다. 요즘은 시계 수리하는 곳이 드물기 때문에 직업적인 전망도 좋고, 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해 입상도 가능하며 노력한 만큼 그 대가도 충분히 주어지는 '멋진 직업'이라고 설명했다.

이 명장은 "두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명장'이 되고, 많은 젊은이가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가 가야할 길"이라고 한다.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그 속에서 땀과 열정을 쏟아 우리나라의 시계산업을 부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가족과 함께 노력하는 게 그의 꿈이라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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