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우리 아들이 마지막이 되어야 합니다"

  • 등록 2020-10-23 오전 6:00:00

    수정 2020-10-23 오전 6:00:00

[조흥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서울대 명예교수] 부산 로젠택배 강서지점에서 일하던 40대 택배기사가 이틀 전 10월 20일 새벽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택배 노동자가 과로로 숨지는 일은 10월 들어서만 4명, 올해 들어 벌써 11명째다. 더구나 이번 사고는 고용노동부가 택배회사를 대상으로 3주간 긴급 근로점검을 실시하기로 발표한 지 하루도 채 안 돼 발생했다. 국민들은 언제까지 이러한 참담한 죽음의 소식을 계속 들어야만 하는가.

택배 노동자의 사망 원인은 ‘과로사’가 압도적이지만 이번처럼 ‘갑질’도 주요 원인임을 알 수 있다. 당일 배송을 요구하는 기업 원청과 대리점의 요구를 거부하게 되면 택배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구조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택배 노동자들이 종사하는 형태는 대개 직영 직원과 지입 기사 등 두 가지 유형이다. 직영 직원은 일정한 월급을 받고 종사하는 유형이고, 지입 기사는 자기 소유의 배송 차량과 사업자를 갖고 계약을 통해 하청을 받는 유형이다. 그러나 모두 배달물량의 수에 따라 수익이 달라지는 일종의 능력급 구조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노동 강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당일 배송이라는 소비자의 입맛을 맞추는 배송 속도도 한몫을 하게 돼 더욱 택배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를 옥죄게 한다.

또한 택배 노동자 문제는 특수고용노동자(특고) 문제와 직결돼 있다. 작년 특고 노동자의 재해율(1.95%)은 전체 산업 평균(0.58%)보다 3.4배 높았다. 그럼에도 특고 노동자는 보험료를 아끼려고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을 하는 경향이 있어 10명 중 8명이 산재보험 적용제외를 신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택배기사를 포함한 특수고용직 직종은 산재보험 당연 적용 대상인데도 본인이 신청할 경우 산재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 주는 제도를 악용해 산재 적용제외 신청을 강요하는 대리점도 상당수 있다. 그러니 특수고용직의 산재보험 적용 비율은 20%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로 택배산업 시장의 무한경쟁 구조를 살펴봐야 한다. 소비자의 부담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과다한 택배비 인하 경쟁구조 속에서 택배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경제는 대다수 부문에서 상당히 어렵지만 택배 업계는 그렇지 않다. 비대면 소비 증가에 따라 택배 물량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3분기에는 코로나19 특수와 함께 추석 물량이 겹쳐 택배산업이 큰 폭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국토교통부가 2019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5대 택배회사인 CJ대한통운, 롯데택배, 한진택배, 우체국택배, 로젠택배가 택배 점유율의 85%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특히 국내 택배시장의 절반가량을 점유하고 있는 최대 규모의 기업인 CJ대한통운의 2분기 영업이익은 83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16%가 늘어났으며, 3분기 영업이익은 1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올해 택배기사 사망자 11명 중 5명이 CJ대한통운에서 나왔다는 것은 영업실적이 좋아져도 택배기사들의 노동환경은 쉽게 개선되지 않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고용노동부장관과 택배업계는 지난 8월 14일에 택배 쉬는 날 지정, 심야 배송 때 택배노동자 충원 등을 통한 적정한 휴식시간 보장 노력, 택배 종사자의 건강상태 점검 노력, 안전하고 효율적인 작업환경 구축 노력 등이 담긴 공동선언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노력하겠다는 의지 표명만 있지 실효성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와 갑질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분류작업 시간의 감축, 휴무일 보장, 산재보험 적용, 표준계약서 마련 등의 내용을 담은 제도적 장치 구축이 필요하다. 얼마 전 과로사한 30대 택배 노동자 아들을 기리며 “우리 아들이 마지막이 되어야 합니다”라고 절규한 아버지의 소원을 속히 이루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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