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지]통큰치킨, 그땐 반대하고 지금은 아니다?

롯데마트, 2010년 한 마리 5000원 통큰치킨 선봬
치킨 프랜차이즈 반발에 출시 일주일만에 판매 중단
2019년 재출시 했지만 반향 9년 전과는 달라
대기업vs소상공인 논리 희석되고 타겟층 차이 뚜렷
  • 등록 2021-03-27 오전 11:00:00

    수정 2021-03-28 오전 9:18:52

[이데일리 김무연 기자]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홍상수 감독의 이 영화는 유부남인 한 영화감독이 낯선 여인을 만나 1박2일간 겪는 애정행각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어지며, 각각 동일한 인물이 비슷한 사건 안에서 미묘한 태도 차이를 보인다. 같은 상황에서 등장인물의 대사나 행동, 접근방식의 차이를 짚어 보는 게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다.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한 장면(사진=인터넷 커뮤니티)
해당 영화 제목은 최근 수많은 정치, 경제, 사회 상황에 적용되고 있다. 야당 시절 반대했던 법안을 집권 여당이 되자 필요하다고 주장을 한다든지, 과거에 비판했던 사건을 현재에는 필요했던 행동이라고 옹호하는 등 같은 상황이지만 자신들의 입지와 여론에 따라 태도를 바꾸는 표리부동함을 비꼬는데 사용된다. 물론 기업 간 다툼에도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 모습은 심심찮게 발견된다.

‘통큰치킨’은 롯데마트에서 2010년 12월 판매하기 시작한 자체 브랜드(PB) 상품이다. 당시 유명 치킨 프랜차이즈들의 치킨값이 1만5000원을 넘어서면서 지나치게 비싼 것이 아니냐는 국민적 비판여론이 형성되던 상황이었다. 롯데마트는 이를 노려 치킨 한 마리를 5000원의 파격적인 가격에 판매해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고자 했다.

통큰치킨(사진=롯데쇼핑)


소비자 열광한 통큰치킨… 업계 반발로 퇴장

통큰치킨은 사전 대량 물량 기획과 기존 설비를 이용해 원가를 줄여 가성비(가격 대비 얻을 수 있는 효능)가 뛰어난 제품이었다. 다만 각종 염지와 시즈닝으로 맛을 더한 프랜차이즈 치킨과는 맛에서 경쟁하기 어려웠다. 또한 기존 치킨 소비자들이 배달 서비스로 치킨을 소비했기 때문에 마트까지 직접 찾아가야 하는 통큰치킨은 직접적인 경쟁상대가 아니었다.

통큰치킨이 출시되자 소비자들은 롯데마트로 몰리기 시작했다. 통큰치킨은 개점 30분 만에 마감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끌었다. 치킨 프랜차이즈의 높은 가격에 불만을 품은 소비자들이 일종의 항의 개념으로 값싼 대체재인 통큰치킨을 사들인 것이다.

롯데마트의 통큰치킨 판매에 반대하는 자영업자들(사진=이데일리DB)
이에 치킨 프랜차이즈들의 거센 항의가 빗발쳤다. 치킨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는 자영업자의 사업 존립 기반을 위협하는 대기업의 횡포라고 날을 세웠다. 또한 통큰치킨을 원가 이하로 판매해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들의 존재 자체를 위협한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여기에 정진석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 또한 트위터에 “대기업인 롯데마트가 매일 600만원씩 손해보면서 하루에 닭 5000마리를 팔려고 한다”며 “혹시 ‘통 큰 치킨’은 구매자를 마트로 끌어들여 다른 물품을 사게 하려는 ‘통 큰 전략’이 아니냐”고 비판했다. 정부의 압박까지 들어오자 롯데마트는 결국 출시 4일만에 통큰치킨 운영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맛은 좀 떨어지지만 값싼 치킨과 좀 더 비싸지만 맛있는 치킨이란 선택지를 고를 수 있었는데 프랜차이즈 업계의 항의로 전자의 선택지가 “저가에 우리가 원하는 상품을 구입하겠다는데 무엇이 문제냐”, “통큰치킨에 반발한 프랜차이즈 치킨 업체에 정이 떨어졌다”는 부정적 여론이 강했다.

롯데마트 큰치킨(사진=롯데쇼핑)
◇ 저가형 치킨 다시 나오는데… 조용한 치킨 업계


사라졌던 통큰치킨은 2019년 3월 부활한다. 한정판매 상품으로 부활한 통큰치킨은 출시 일주일간 8만 마리나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에 힘입어 롯데마트는 저가형 치킨인 ‘큰 치킨’을 론칭했다. ‘큰 치킨’은 1마리당 9900원에 판매하고 있으며, 롯데그룹의 통합 쇼핑 플랫폼 ‘롯데ON’(롯데온)으로도 주문할 수 있다.

롯데마트 뿐만 아니라 유통업계 전반에 걸쳐 저가형 치킨을 내놓는 추세다. 편의점 GS25는 지난 15일 순살 치킨 조각 ‘치킨25’로 패키지를 구성한 ‘쏜살치킨’을 선보였다. 640g으로 성인 2~3명이 즐길 수 있고, 매콤한 양념과 치킨무, 펩시 190㎖를 포함해 1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GS25에서 판매하는 쏜살치킨(사진=GS리테일)
에어프라이어로 간단하게 조리해 먹을 수 있는 치킨도 인기다. 신세계푸드가 지난해 11월 출시한 ‘올반 옛날통닭’의 누적판매량은 출시 5개월 만에 10만개를 넘어섰다. 이마트 노브랜드 치킨 5종 또한 지난해 판매량이 전년보다 26% 늘었다. 제품 가격은 판매가 기준으로 6280~1만480원 사이다.

유통 대기업들이 앞다퉈 저가형 치킨을 내놓지만 치킨 프랜차이즈 업계의 반응은 통큰치킨이 처음 출시된 11년 전과는 사뭇 다르다. 2019년 통큰치킨이 재출시됐을 때 ‘좌시하지 않겠다’라고 경고성 메시지를 던진 게 전부다. 저가형 치킨과 프랜차이즈 치킨을 찾는 소비자 층이 다르고 당시 통큰치킨 퇴출 사건으로 치킨 프랜차이즈들의 브랜드 이미지가 악화한 점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학과가 교수는 “마트에서 치킨을 사는 사람과 주문해서 먹는 사람은 목적성이 다르고 마트 치킨과 프랜차이즈 치킨은 맛, 가격 등 제품 차별성도 뚜렷하다”라면서 “현재 마트 치킨에 위기의식을 느끼는 프랜차이즈가 있다면 그건 스스로가 마트 치킨 수준의 제품을 만들고 있다고 자인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대기업이 골목상권을 침해한단 강자 대 약자 논리가 약해진 것도 한 몫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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