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트초코가 사라질 때 일본의 여름은 지나간다[김보겸의 일본in]

봄에는 벚꽃, 겨울엔 딸기…여름은 민트초코?
일본 식품업계는 왜 계절별 콘셉트에 진심일까
'규모의 경제' 집착 버려야 성공할 수 있어
  • 등록 2021-08-21 오후 3:32:19

    수정 2021-08-21 오후 6:23:40

올 여름 일본에선 민초 열풍이 식품업계를 강타했다(사진=파파버블)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일본에선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면 민트초코를 좋아하는 이른바 민초파들이 고개를 든다. 편의점만 봐도 민초의 시대를 알리는 듯 보는 것만으로도 청량하고 시원한 민트색으로 가득 찬다. 이렇듯 일본에서 민트초코는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으로 통한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고 했던가. 기세등등한 불볕더위도 언제 그랬냐는 듯 가을에 자리를 내주는 것처럼 민초 열풍도 한여름 열기와 함께 사라진다. 민트초코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 일본의 여름도 지나가는 셈이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에서 여름철 일본의 ‘초코민토(민트초코·キットカット)’ 열풍에 주목했다. 고디바 재팬의 제롬 슈샹 대표가 “일본 시장은 계절에 따라 움직인다”고 할 정도로 일본 식품업계는 계절별 콘셉트에 진심인 편이다. 봄이 오면 온갖 음식과 디저트가 벚꽃 옷을 입는다. 가을이 되면 일본 스타벅스에는 고구마 맛탕맛(!) 프라푸치노가 등장한다.

올해 삿포로맥주가 출시한 민트초코 맥주(사진=삿포로)
올여름 특히 일본에선 민트초코가 크게 인기를 끌었다. 민트초코 아이스크림과 민트초코 쿠키는 얌전한 수준이다. 민트초코 버터부터 민트초코 사이다, 심지어는 민트초코 맥주까지 등장했다.

일본 식품업계가 이토록 지독하게 콘셉트에 충실한 이유는 뭘까. 이는 생존과도 관련이 있다. 다양함이 무기인 일본 디저트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콘셉트 하나라도 확실해야 한다는 절박함이다. 시장조사업체 데이터스프링의 오카야마 타쿠야는 “일본의 모든 디저트는 이미 맛에서 상향 평준화를 이룬 상태”라며 “특이함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했다. 참신함이 가장 큰 덕목인 일본 편의점에서 소비자 선택을 받으려면 언제 어디서나 사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얘기다.

그래서일까. 일본에 진출한 거대 다국적 제과 회사들은 과감히 ‘규모의 경제’를 포기한다. 동일한 품목을 일정한 규모로 제조하는 이른바 ‘소품종 대량생산’이 비용을 줄이는 지름길이란 사실을 이들도 안다. 하지만 일본에는 통하지 않는 방식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다.

미국에선 평범한 초콜릿 바 킷캣, 일본에선 350종? (사진=네슬레)
일본에 가서 일본법을 충실히 따른 대표적인 회사가 글로벌 제과업체 네슬레다. 미국에선 초콜릿으로 감싼 평범한 웨이퍼(웨하스)에 불과한 킷캣은 일본에서 종류가 350개나 된다. 각 지역 특산물을 이용해 만든 것으로, 자색 고구마맛부터 팥맛, 심지어 와사비맛도 있다. 평범함보다는 차라리 기상천외함을 택하는 전략은 영국에서 크게 실패했지만 일본에선 대성공을 거뒀다. 다카오카 고조 네슬레 재팬 전 대표는 “일본에선 신박한 아이템이 제조에 들어가는 추가 비용을 상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네슬레의 성공이 귀감이 됐을까. 올여름 일본의 민초 열풍에 가장 적극적인 건 스페인 제과업체 파파버블이다. “세계에서 제일 재미있는 과자가게”라는 모티브에 걸맞게 지역 특산물을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타코야끼의 고향 오사카 지점에는 문어 다리 모양 사탕을, 일본 토종닭 하면 떠오르는 지역 나고야에선 닭날개 모양 사탕을 발견할 수 있다.

폭염에 마스크까지 써야 하는 올 여름, 민트 컨셉을 잡은 파파버블이 내놓은 얼음 사탕 (사진=파파버블)
그런 파파버블이 지난 5월 초여름이 오기도 전부터 도쿄 아오야마에 민트초코 팝업 스토어를 열었다. 올해 유례없는 폭염이 도쿄에 닥쳐 한낮 최고기온이 39℃를 웃도는 와중에도 코로나19 때문에 마스크를 써야 하는 상황 속 민트 콘셉트는 신의 한 수가 됐다. “마스크 속에서나마 시원함을 즐겨라!”라며 민트향과 레몬밤을 넣은 얼음 모양 사탕을 출시해 호응을 이끌어 내면서다.

요코이 사토시 파파버블 일본 지사장은 “맛을 강화하는 것만으로 경쟁사들과 차별화하긴 매우 어렵다”며 “특별한 뭔가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파버블 민트초코 팝업 스토어는 여름이 막바지에 달하는 8월 말 문을 닫는다.

일본에서도 민초파들의 위력은 거센 모양이다. 이코노미스트가 “소셜미디어에서조차 컬트적인 팬을 거느린 민트초코만큼 팬층을 확보한 맛은 없다”고 평가할 정도다. 하지만 민트초코 열풍은 여름과 함께 수명을 다하고 있다.

“민트초코 시대가 끝나면 조금 슬플 것 같다.” 민트초코를 너무 사랑해서 도쿄 초콜릿 안내책자까지 낸 일본판 ‘민초단’ 우시쿠보 신타로의 발언을 소개하며 이코노미스트는 이렇게 끝맺는다. 우시쿠보는 올겨울 편의점을 장악할 딸기 맛 과자들로 슬픔을 달래며 내년 여름을 기약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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