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그린스펀, "비이성적 과열에서 전염성 탐욕으로"

  • 등록 2002-07-18 오전 9:49:40

    수정 2002-07-18 오전 9:49:40

[edaily 전미영기자] "그린스펀 효과"는 없었다. 16일과 17일(현지시각)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의회 출석증언을 통해 미 경제의 회복세를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은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16일 뉴욕증시 3대지수가 일제히 하락한 데 이어 17일엔 그린스펀 의장의 하원 증언이 이뤄지는 동안 주요지수들의 상승폭이 줄어들었다. 17일 뉴욕증시가 상승세로 장을 마치긴 했지만 이는 그린스펀 의장의 도움이라기 보다는 주요 대형주들의 실적 호조에 따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시장 설득에는 실패
회계 스캔들에 휘둘린 시장이 워낙 침체돼 있었던 탓에 그린스펀 의장의 반기 의회 증언은 그 어느 때 보다 큰 관심을 모았다. 그린스펀 의장은, 그 자신이 "날뛰는"(skittish)이라고 표현한 그 시장의 고삐를 쥘 적절한 기회를 얻은 셈이다. 주식시장의 안정을 위해 예정에 없는 "이벤트"를 벌임으로써 역으로 시장의 불안감을 자극하는 모험을 감행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만약 시장의 불안감을 잠재울 것을 의도했다면, 그린스펀 의장은 시장을 설득하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미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은 "그린스펀 의장의 증언은 FRB가 미 경제의 회복을 돕기 위해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으나 시장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했다"고 논평했다. 뉴욕타임스도 금리인하에 대한 시사가 없었다는 점을 들어 "역설적으로 그린스펀 의장의 낙관적인 경제 전망이 주가엔 악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린스펀 의장이 주식시장에 관해 긍정적으로 언급한 부분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상원 은행위원회에서 주가하락이 보다 합당한 밸류에이션으로 다가가는 조정을 의미하는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그린스펀 의장은 "높아진 생산성은 예전보다 더 높은 주가수익비율(PER)을 지지한다"고 말해 이를 부인했다.

◇경제 낙관..금리유지 시사
그린스펀 의장이 던진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기업 회계비리 스캔들을 비롯한 잠재적 위험요소가 있지만 미 경제는 순탄한 회복경로를 밟아가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금리 인상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린스펀 의장은 "미 경제가 FRB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의 경제 지표들은 경제가 개선되고 있음을 뚜렷이 보여준다"면서 올 미 경제의 성장 전망치를 3.5~3.75%로, 내년은 3.5~4%로 높여 잡았다.

그린스펀 의장은 이와 함께 주식시장 침체를 비롯한 위험 요소들이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점도 경고했다. 투자자들의 불신으로 회사채 수익률이 상승하고 있으며 그 결과 기업의 자본비용이 증가해 설비투자 회복을 저해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지정학적 위기와 테러리즘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그러나 결론은 긍정적이었다. "이 모든 위험요소에도 불구하고 펀더멘탈은 지속가능한 건강한 성장 궤도로 복귀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관심을 모았던 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해서는 시사하지 않았다. 미 경제의 강한 회복세가 지속되고 있음을 강조하는 한편 예기치 못했던 충격에 의해 경기 반등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을 함께 언급함으로써 당분간 금리를 현행 수준 그대로 유지할 의도를 내비쳤다.

일부 투자자들은 증시 침체에 대응해 FRB가 한두차례 금리를 더 내릴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해 왔으나 그린스펀 의장은 이를 부정했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금리유지가 그린스펀이 제시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는 것이다. "미 금리가 이미 40년만의 초지 수준으로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FRB로서는 추가 금리인하를 고려할 만한 여유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이 잡지는 분석했다.

◇"전염성 탐욕"..너무 늦은 경고
지난 96년 미 증시 급등을 놓고 투자자들의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를 경고했던 그린스펀 의장은 현재 미 증시의 침체를 가져온 회계 스캔들의 원인을 "전염성 탐욕"(infectious greed)으로 요약했다. "스톡옵션을 비롯한 인센티브들이 다수 경영진의 건전한 판단을 방해하고 전염성 탐욕이 이들을 사로잡았다"고 그는 진단했다.

그렇다면 "비이성적 과열"과 "전염성 탐욕"이란 말로 현재의 증시 위기를 가져온 90년대 미 주식시장에 대해 판결을 내린 그린스펀 의장은 이로써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 그는 과연 버블에 대해 충분히 경고했는가.

뉴욕타임스는 신경제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였던 그린스펀 의장 역시 90년대 주식시장의 버블을 키운 사람 중 하나라고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나스닥지수가 정점에 이른 직후 거품 파열이 막 시작됐던 지난 2000년 4월, 그린스펀 의장은 생산성 향상에 힘입어 테크놀로지 기업의 수익이 계속 증가할 것이란 예상을 밝힌 적이 있다.

그린스펀 의장은 당시 백악관 컨퍼런스에서 "기술 시너지는 여전히 확장되고 있으며 생산성 증가의 기대도 계속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두고 실제 현상이라기 보다는 기대에 가깝다는 반론이 있지만 모든 것은 역사가 판정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알려진 대로 그린스펀 의장의 권위와 영향력은 막대하며 그의 견해는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돼 왔다. 뉴욕타임스가 "그린스펀 의장이 좀 더 일찍 탐욕의 전염에 대해 경고하지 않았던 것이 유감"이라고 지적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같은 아쉬움은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제 2의 버블과 연관돼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린스펀 의장이 이끄는 FRB가 공격적인 금리인하를 통해 미 경제의 침체(리세션) 기간을 단축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주로 주택경기 부양에 의한 것이란 점이 우려의 대상이다. 이른바 "자산효과"(wealth effect)에서 주식시장 보다 더 영향력이 큰 주택시장에 거품이 일고 있다면, 그래서 어느 시기에 이 거품이 파열된다면 미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증시침체를 능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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