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원래대로라면 어린이집 선생님으로 일했을 것이다. 하지만 따는 데만 1년 반이 걸린 보육교사 자격증이 휴짓조각이 되기까지는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아이들이 불러주는 ‘떤땡님’ 소리가 좋았던 한상희(24·가명)씨는 30일가량의 어린이집 현장실습 기간에 깨달았다.
‘아, 실전은 다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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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 이후 줄곧 꿈꿔왔던 일이지만 평생의 업으로 삼기에는 자신이 없었다. 순진한 모습으로 친구나 선생님을 골탕먹이려 하는 모습도, 자기 아이에게 극진한 보살핌을 요구하던 학부모의 다그침도 익숙해질 수 없다고 느꼈다. 그렇게 교사의 꿈을 내려놨다.
졸업한 지 2년째로 접어들자 주변 어른들이 묻기 시작한다. ‘취직 해야지?’
물론 웃음으로 넘기려 해도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같은 말을 해도 고모들 잔소리는 밉지가 않은데, 삼촌이 하는 얘기를 듣다보면 귀에서 피가 나올 것만 같다.
뉴스를 튼다. 폐렴 때문에 예정된 중국 여행을 취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단다. 상희씨에겐 중국 폐렴보다 ‘비전 있는 직장을 구해야지’, ‘살 빼야 결혼하지’ 하는 삼촌의 잔소리 폭격이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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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예능에는 가수 손담비가 나온다. “20분 거리에 살면서도 엄마 잔소리가 너무 심해서 따로 산다”고 한다. 가만 지켜보니 모든 대화가 ‘기-승-전-결혼’으로 끝난다. 손담비가 벌써 올해 38살이구나. 남 일 같지 않다. ‘우리 삼촌도 내가 38살 될 때까지 잔소리 하는 거 아냐?’ 섬뜩하다.
그래서 이번 설에는 ‘삼촌 보이콧’에 나서기로 했다. 외가에 가지 않기로 했다. ‘기-승-전-잔소리’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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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렵다는 취직에 성공한 한씨의 동갑내기 박지우(가명)씨도 고민은 마찬가지다. 돈 벌기 시작하면 엄마 아빠 용돈도 드려야 한다는데. 겨우 취업문을 뚫었더니 돈 버는 만큼 나갈 곳도 많아졌다. 집에 얹혀 사는 입장이니 부모님께 생활비 50만원 드리고 학자금도 매달 40만원씩 갚아야 한다. 취직하고 처음으로 맞는 설날이니 할머니 할아버지 용돈도 드려야 한다.
월급에서 이것저것 빼고 나면 남는 것도 없다. 분명 돈을 버는 건 맞는데. 왜 용돈 받아 쓸 때보다 옷 하나 사 입기도 빠듯한지 모르겠다. 이 와중에 먼저 취업한 다른 친구들은 명절 상여금이다 뭐다 하면서 해외 여행 계획도 세우는데. 우리 회사는 그런 것도 없고 한숨만 나온다.
그 와중에 부장님한테는 설 안부 문자를 어떻게 보내야 하나 고민이다. 신입사원 교육 때부터 주구장창 “인사가 기본”이라고 강조하시는데 안 할 수가 없다. 이런 걸 전에 해봤어야 알지. 초록창에 ‘직장상사 설 인사말’이나 검색해봐야겠다.